# 100
챔피언십 시리즈 (1)
“부국장님! 이번 양키스 정규 방송 기록이 초대박입니다!”
“그래. 나도 확인했지. 거기다가 양키스가 빠르게 4강에 올라갔다며?”
“그렇습니다. 당연히 이번에도 지상파 편성이겠죠?”
“이번에는 윗선에서 먼저 지상파 편성하라고 명령 내려왔어. 그만큼 포스트시즌 시청률에 대한 기대가 큰 거지. 이번에도 저번처럼 완벽하게 보여주자고.”
“알겠습니다! 바로 준비해놓겠습니다!”
“그래. 자네만 믿겠네.”
MBS 스포츠국 스포츠 기획부의 박민철 부국장과 김동환 과장.
그들은 요즘 MBS 내에서 모든 직원들의 부러움을 제대로 받고 있었다.
한국에서 가장 인기 많은 메이저리그 팀인 뉴욕 양키스.
그곳에서 주전으로 출전하는 것도 모자라서 팀을 승리로 이끄는 초특급 한국인 에이스.
거기다가 그 선수가 고작 17살의 선수였으니, 최근 한국의 모든 스포츠팬들의 관심사는 MBS로 몰릴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그 공로는 강력하게 메이저리그 독점 중계권을 주장했던 박민철과 김동환에게 돌아갔다.
1차전은 오전 8시에 열렸지만, 시청률 8.3% 초대박.
평소에 동시간대에 방영하던 뉴스가 5%대에서 그친 것에 비하면 눈에 띄는 도약이었다.
거기다가 주말 경기는 차원이 달랐다.
오전 10시에 열렸던 3차전의 경우에는 19.3%까지 기록하며 모든 방송사의 예능을 제치는 모습까지 보여줬다.
어느덧 한국에서 최대 관심사를 받는 운동선수가 된 최강남.
그의 챔피언십 시리즈는 당연하게도 지상파 채널을 타게 되었다.
***
반대편 디비전 시리즈인 미네소타 트윈스대 보스턴 레드삭스.
보스턴 레드삭스는 5차전까지 가는 끈질긴 승부 끝에 3승 2패로 챔피언십 시리즈 진출 팀이 되었다.
뉴욕 양키스와 함께 AL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맞붙게 된 보스턴 레드삭스.
하지만 두 팀의 상황은 너무나도 달랐다.
양키스는 일찌감치 동부 지구 1위를 확정 지으며 주전 선수들의 체력을 많이 아낄 수 있었다.
반면에 레드삭스는 마지막까지 정규 리그에서 와일드카드 경쟁을 했다.
그리고 와일드카드 전에 이어서 디비전 시리즈 5차전까지 치른 레드삭스.
체력적으로는 이미 상대가 안 되는 두 팀의 차이였다.
물론 야구, 특히 단기전의 경우에는 너무나도 변수가 많았다.
하지만 체력적 우월은 가장 유의미한 지표였고, 양키스는 그런 면에서 매우 유리한 상황에서 레드삭스와 맞붙을 수 있었다.
“다들 푹 쉬었으니 컨디션 괜찮지?”
“그렇습니다!”
내일 경기에 앞서 애런 분 감독은 모든 선수들을 불러 모았다.
“내일부터 바로 이곳 양키 스타디움에서 경기가 시작된다. 양 팀 모두 1선발 대결이지만, 우리의 불펜과 타자들은 충분한 휴식을 치렀다고 생각한다. 맞나?”
“맞습니다!”
“좋아! 우리의 목표는 디비전 시리즈와 같다. 이곳에서 좋은 활약을 보여주고 보스턴에서 이번 챔피언십 시리즈를 끝낸다! 알겠나!”
“알겠습니다!”
감독의 역할은 선수기용이나 시프트와 같은 경기적인 측면도 있지만, 선수들의 분위기 관리도 있었다.
사기를 끌어올릴 줄 아는 감독.
그런 면에서 애런 분 감독은 그 분야의 전문가나 다름없었다.
그렇게 우리는 내일 양키스 홈에서 열릴 AL 챔피언십 시리즈에 대한 준비를 마쳤다.
***
[안녕하십니까! 오늘은 뉴욕 양키스의 챔피언십 시리즈 첫 번째 날! 그것도 상대는 양키스의 영원한 숙적 레드삭스입니다.]
[사실 숙적이라기보다는 레드삭스는 양키스의 희생양에 가깝죠. 최근 포스트시즌 전적 4승 1패에 정규시즌 1,222승 1,021패로 승률이 무려 55%거든요. 거기다가 이틀을 빨리 디비전 시리즈를 끝냈기에, 레드삭스에 비해 체력적으로도 훨씬 우월한 뉴욕 양키스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경기는 대결보다는 사냥에 가깝겠네요?]
[그렇습니다! 2022년 정규 시즌 승률도 뉴욕 양키스가 월등히 앞섰죠. 그렇기에 1, 2차전은 뉴욕에서 열리게 됩니다. 3, 4, 5차전은 보스턴에서 그리고 다시 6, 7차전은 뉴욕에서 열리게 되는 챔피언십 시리즈! 그 1차전이 이제 시작됩니다!]
오늘도 뉴욕 양키스의 해설을 맡은 YES Network의 해설진들.
그들은 양키스와 레드삭스의 라이벌리를 의식하듯 편파 해설을 시작했다.
― 체력 분배 깔끔한 챔피언십 시리즈는 양키스가 압도적이지
ㄴ 거기다가 상대가 레드삭스야 절대 질 수 없지
ㄴ 레드삭스가 뭐 어때서?
ㄴ 오늘은 너희 중계 가서 놀아라
ㄴ 삭스 놈들 불안해서 여기서 투정 부리는 거 봐라
ㄴ 레드삭스는 우리 승점 자판기지
― 아 표 구하고 싶었는데 2초 만에 47,000석이 매진됐어
ㄴ 올해 포스트시즌은 진짜 표 구하기 어려운 듯?
ㄴ 올해는 정규 시즌부터 진짜 분위기가 남달랐잖아
ㄴ 거기다가 에이스들 전부 전성기 기량 되찾았고, 슈퍼 루키까지 나왔는데
ㄴ 요즘 야구 안 보던 올드팬들이 다 복귀한 듯
뉴욕 양키스의 마지막 우승은 2009년.
YES Network의 시청자들은 13년 전과 비슷한 그 우승의 흐름을 느끼며 경기를 지켜보기 시작했다.
***
“플레이 볼!”
와아아―
뉴욕 양키스와 보스턴 레드삭스의 AL 챔피언십 시리즈 1차전.
47,000여 명의 관중을 유치할 수 있는 양키 스타디움은 당연하게도 만석이었다.
오늘 선발 투수는 디비전 시리즈 1차전에서 7이닝 2실점을 보여줬던 게릿 콜.
2점 홈런을 제외하면 볼넷 2개와 안타 3개밖에 허용하지 않았던 그는 이번 1차전에도 선발 등판의 기회를 얻었다.
“스트라이크 아웃!”
메이저리그 역대 투수 FA 최고액 계약을 따낸 그는 1회부터 좋은 피칭을 보여줬다.
땅볼, 삼진, 삼진.
1회부터 삼진 두 개를 잡아내며 삼자범퇴로 레드삭스의 타선을 잠재웠다.
1회 말 뉴욕 양키스의 공격.
타선은 저번 디비전 시리즈와 비교했을 때 별 차이가 없었다.
마운드 위에는 올해 토미 존 수술 후에 다시 전성기의 기량을 되찾은 크리스 세일.
올해 방어율 2.13에 탈삼진 3위를 기록한 그는 7월에 나와 맞붙은 기록이 있었다.
4타석 3타수 2안타 1볼넷 1홈런.
최고 101마일(162km/h)의 포심을 자랑하는 좌완 파이어볼러 스타일인 크리스 세일.
그는 명백하게 따지면 작은 경기장인 양키 스타디움과는 어울리지 않는 스타일의 투수였다.
그러한 이유로 저번 양키스와의 홈경기에서 등판 일을 하루 미룬 크리스 세일.
하지만 그는 명실상부 보스턴 레드삭스의 에이스였기에, 1차전에 선발 등판한 모습이었다.
“스트라이크 아웃!”
“스트라이크 아웃!”
그리고 그는 1, 2번 타자인 르메이휴와 애런 저지에게 몸쪽 높은 공으로 삼진을 만들어냈다.
윽박지르는 듯한 피칭.
그것이야말로 크리스 세일의 진정한 매력이자 장점이었고, 오늘 경기에서 그것들을 완벽하게 보여주는 모습이었다.
“Strong Man! The Strongest Man! Choi! Gang! Nam!”
“오늘도 하나 보여주라고! 루키! 너만 믿고 오늘 경기장 왔다!”
“최! 최! 최!”
1회부터 연속 두 타자 삼진에도 불구하고 내가 등장하자 관중들은 일제히 함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많이 컸네? 저번에는 긴장해서 타석에 들어서는 게 보이더니. 그래도 여전히 어설퍼.”
보스턴 레드삭스의 포수 크리스티안 바스케스.
그는 질리지도 않는지 매번 나와 만날 때마다 트래시 토크를 하는 모습이었다.
“이 정도면 열등감인데. 제 나이 때 본인 생각이 나서 그런 거죠?”
“뭐라는 거야. 고작 80만 달러 3년 계약해놓고 지금 열등감이라고 한 거냐?”
“본인 그 나이 때 뭐 했는지 기억은 나요? 저 이제 16살인데. 2006년생.”
“······.”
말도 안 되는 시비를 걸어오는 바스케스에게 나이 공격으로 입을 다물게 해줬다.
뭐··· 저번 생의 나도 지금 나이에는 감독에게 맞아가며 고등학교 리그에서 경기를 뛰긴 했다.
그래도 시비 거는 놈한테는 못 참지.
포수는 입을 다물었고 크리스 세일은 와인드업을 시작했다.
“스트라이크!”
초구는 몸쪽 낮은 98마일(157km/h) 포심.
확실히 198.1cm의 키에서 긴 팔을 낮게 휘두르는 저 투구폼은 까다로웠다.
따악―!
그렇다고 못 칠만한 공도 아니었다.
2구로 들어온 바깥쪽 체인지업을 쳤지만, 아쉽게 빗맞으며 1루 관객석으로 향했다.
크리스 세일의 가장 큰 무기는 빠른 포심에 이어서 궤적이 큰 슬라이더와 타이밍을 뺏는 체인지업.
하지만 우타자인 내게 슬라이더는 큰 의미가 없다고 판단할 것이다.
예전 경기에서 홈런을 쳤던 공도 슬라이더였으니, 사실상 제로에 가깝다.
그렇지만 인생에 0%란 없다.
빠른 포심에 배트 속도를 맞춰놓고 슬라이더와 체인지업이 온다면 커트하겠다는 생각을 하며 세 번째 공을 기다렸다.
따악―!
따악―!
4구와 5구는 체인지업과 슬라이더.
정타를 맞추기는 힘들지만, 아슬아슬하게 커트를 해낼 여유는 있었다.
그리고 여섯 번째 공인 낮은 몸쪽 포심에 배트를 휘둘렀다.
무릎과 허리가 먼저 회전함과 동시에 오른쪽 팔꿈치를 몸쪽으로 최대한 붙여서 스윙.
따아아악―!
타구는 좌중간을 갈랐고 난 여유롭게 2루에 도착했다.
그리고 전광판부터 확인했다.
93마일(149km/h)의 포심.
오늘 경기에서 가장 느린 공을 나에게 던진 크리스 세일이었다.
아까 확인했던 포심보다 5마일이나 느리다 보니 배트 스윙 타이밍이 좀 빨랐다.
스윙 도중에 최대한 늦췄지만, 담장 밖으로 날리기는 어려운 코스의 공이었다.
중요한 상황에서 속도를 높이기보다 낮추며 타이밍을 뺏는 투수.
확실히 크리스 세일은 만만하게 볼만한 투수는 아니었다.
따아악―!
게리 산체스는 2구에 들어온 체인지업을 걷어 올렸지만, 살짝 빗맞으며 중견수 뜬공으로 물러났다.
잔루는 2루인 상황에서 무득점으로 1회 말 양키스의 공격이 끝이 났다.
아무래도 긴 투수전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글러브를 챙기고 유격수 포지션으로 향했다.
하지만 예상은 2회 초에 깨졌다.
따아아아아악―!
선두 타자로 들어선 보스턴 레드삭스의 4번 타자 잰더 보가츠.
올해에만 39개의 홈런을 쳐낸 그는 게릿 콜의 밋밋한 초구를 그대로 타격했다.
일직선으로 날아간 타구는 중견수가 펜스 앞에서 점프 캐치를 시도했지만, 글러브를 살짝 피해 담장을 넘어갔다.
레드삭스의 선취점.
“스트라이크 아웃!”
하지만 게릿 콜은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듯, 범타 두 개와 삼진 하나로 2회 초를 추가 실점 없이 막아냈다.
2회 말과 3회 초에는 두 투수가 삼진을 하나씩 추가했고, 양 팀 모두 득점이 나지는 않았다.
다시 돌아온 3회 말 뉴욕 양키스의 공격.
따악―!
선두 타자로 나선 9번 클린트 프레이저는 2-2에서 5구를 타격했지만, 유격수 땅볼로 물러났다.
그리고 타석에는 1번 타자 DJ 르메이휴가 들어섰다.
변화구 투수들도 그렇지만, 강속구 투수들은 특히나 볼수록 눈에 익기 마련이다.
따아악―!
그래서일까?
두 번째 타석에서 르메이휴는 우중간을 가르는 장타를 만들어냈다.
리드오프치고 느린 발을 갖고 있는 르메이휴도 여유롭게 2루에 안착할 수 있는 타구.
양키스 입장에서는 1회에 이어 두 번째 기회를 맞이하게 되었다.
따악―!
2번 타자 애런 저지의 느린 2루 땅볼.
하지만 그 타구로 2루 주자 르메이휴는 느긋하게 3루로 진루했다.
2아웃 3루의 상황에 내 두 번째 타석이 돌아왔다.
경기장은 환호로 가득 찼지만, 이어지는 레드삭스의 다음 행동에 환호는 야유로 바뀌었다.
자동 고의사구.
난 타석에서 공 하나 보지 못하고 바로 1루로 걸어 나갔다.
2아웃 1, 3루 0:1로 지고 있는 상황.
4번 타자 게리 산체스가 타석에 들어섰다.
평소라면 더그아웃에서 게리 산체스에게 강공 사인을 내렸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챔피언십 시리즈.
특정한 상황이다 보니 애런 분 감독은 평소와는 다른 특별한 지시를 내렸다.
더블 스틸.
비교적 발이 느린 르메이휴였지만, 내가 2루 도루를 하는 사이에 홈으로 들어오지 못할 정도로 느린 선수는 아니었다.
“세이프!”
“세이프!”
당연하게도 이 작전의 주인공은 나였다.
평소보다 더 과한 리드폭을 벌리며 투수와 포수의 이목을 끌어줬다.
크리스 세일은 그런 나에게 연속으로 견제구를 던졌고, 이것은 뉴욕 양키스를 도와주는 행동이었다.
크리스 세일이 초구를 던짐과 동시에 나는 2루로 달렸다.
초구는 스트라이크 존 밖으로 던지는 피치아웃.
포수인 크리스티안 바스케스는 일어서서 공을 받고 바로 2루로 던졌다.
“세이프!”
2루는 아슬아슬하게 세이프.
2루수는 태그를 하고 뒤늦게 홈으로 뛰는 르메이휴를 확인했다.
그리고 곧바로 홈으로 공을 다시 던졌다.
하지만 포수인 바스케스는 3루 주자였던 르메이휴에게 태그조차 하지 못했다.
DJ 르메이휴의 여유로운 홈스틸 성공.
난 2루 베이스를 밟고 오른손을 들며 소리를 질렀고, 그보다 훨씬 큰 함성 소리가 양키 스타디움을 가득 메웠다.
3회 말에 1:1 동점에 성공한 뉴욕 양키스.
경기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물론 2아웃 주자 2루 상황에서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