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7
디비전 시리즈 (1)
뉴욕 양키스의 남은 정규 리그 일정은 11경기.
난 4경기에 선발 출장했고, 2경기에는 대타로 출전했다.
홈런을 2개 추가했고, 도루는 3개를 추가하며 최종 기록은 23홈런 27도루.
시즌의 절반 정도가 지나고 팀에 합류한 것 치고는 최고의 결과였다.
올해의 AL 정규 리그 홈런왕은 49개를 때려낸 마이크 트라웃에게 돌아갔다.
2위는 47개를 기록한 오타니 쇼헤이.
홈런 순위 1, 2위를 보유한 LA 에인절스.
그들이 일찌감치 포스트시즌 경쟁에서 탈락한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길었던 정규 시즌 치르느라 고생이 많았다. 3일 후에 우리의 역사적인 2022년 첫 번째 포스트시즌 경기가 열릴 거야. 우리의 상대는 이미 정해졌으니까, 다들 부상 없이 좋은 모습 기대하겠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AL의 와일드카드 진출 팀은 보스턴 레드삭스.
마지막까지 와일드카드 진출권을 두고 경쟁했던 팀은 서부 지구의 오클랜드 어슬레틱스였다.
레드삭스는 시즌 막바지에 7연승을 기록하며 1경기 차이로 아슬아슬하게 와일드카드 진출에 성공했다.
그리고 연장전까지 가는 승부 끝에 4:3 승리를 기록하며 디비전 시리즈에 올라가는 기염을 토했다.
완벽하게 힘을 쏟은 보스턴 레드삭스와 붙었으면 좋았겠지만, 우리의 대전 상대는 휴스턴 애스트로스.
보스턴 레드삭스의 상대는 중부 지구 우승 팀인 미네소타 트윈스였다.
올해 시즌 초반부터 최고의 모습을 보여준 미네소타 트윈스는 뉴욕 양키스보다 승률이 6리(0.006) 높게 마무리했다.
정말 간발의 차이로 비교적 쉬운 상대인 레드삭스를 놓치게 된 양키스였다.
하지만 휴스턴 애스트로스 역시 우리와 악연이 깊은 팀이었다.
2017년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보여줬던 사인 훔치기 논란.
거기에 최근 경기에서 난투극에 가까운 벤치 클리어링까지 붙었던 두 팀이었기에, 디비전 시리즈 최대 관심사이기도 했다.
휴스턴 애스트로스에 비해서 우리의 승률은 2푼이나 높았다.
그렇기에 1, 2차전과 5차전은 양키 스타디움에서 열리게 되었다.
물론 우리의 목표는 휴스턴의 홈구장인 미닛 메이드 파크에서 디비전 시리즈를 끝내는 것.
그렇게 수많은 야구팬들의 관심사와 함께 2022년 디비전 시리즈가 시작 되었다.
***
“형! 여기에요!”
“다들 오랜만이다. 잘 지냈어?”
박병규의 아버지 박종수의 치킨집인 병규네 치킨.
그곳에 문정 리틀야구를 비롯한 리틀야구 월드시리즈 우승 멤버들이 함께 모였다.
물론 한 살 위인 이강현을 제외하고는 U-15 야구 월드컵 우승 멤버들이기도 했다.
“저희야 잘 지냈죠. 형은 리그에서만 뵙고 사석에서는 처음이네요.”
“우리 성환이 그때 그 소심한 친구 맞지? 17살 먹더니 이제 어른처럼 이야기하네.”
“형. 언제 이야기를 하시는 거예요. 저 이제 어른이나 다름없습니다.”
“어쨌든 고교 리그에서 본 친구들도 있고 오랜만에 보는 친구들도 있네. 다들 뭐 하고 지냈니?”
그들은 오늘 병규네 치킨에 모여서 오랜만에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눴다.
그리고 오늘 만난 이유가 TV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그래도 내 눈에는 아직 다들 애기로 보이네. 쟤 빼고는. 쟤는 13살부터 독했어. 나랑 만난 첫 경기에서 뒤질래? 라고 했던 거는 아직도 기억나네.”
“강남이가 예전부터 포스 하나는 대단했죠. 메이저리그에서도 충분히 잘 할 줄 예상했습니다. 그게 설마 올해일지 몰랐던 거죠.”
“그러게. 괴물은 진짜 괴물이네. 최연소 데뷔에 신인왕 수상 유력에 포스트시즌 선발 출장하는 한국인 17살 선수라니.”
뉴욕 양키스의 포스트시즌.
최연소 데뷔에 이은 최연소 포스트시즌 선발 출장.
최강남은 오늘도 유격수이자 3번 타자로 양키 스타디움에 발을 딛는 모습이었다.
당연히 여기 앉아있는 모든 사람들은 그런 최강남의 모습에 자부심을 느꼈다.
말도 안 되는 괴물과 같은 팀으로 뛰었다는 자부심.
“흐아!”
1회 초에 최강남의 완벽한 병살타 처리를 보고 유상현은 오랜만에 기합을 질렀다.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기합은 고교 리그에서 투수를 하면서도 여전했다.
1아웃 1루가 순식간에 3아웃이 되며 이제 경기는 1회 말 뉴욕 양키스의 공격으로 바뀌게 되었다.
***
“나이스 수비.”
“에이 이 정도는 기본이죠.”
“1회에 타석에서도 기대해도 되지?”
“그럼요. 솔직히 휴스턴한테 질 수는 없죠. 저번에 벤치 클리어링으로 저한테도 개 같은 팀인데.”
“그럼! 우리가 쟤네한테 지는 건 말도 안 되지.”
오늘 뉴욕 양키스의 선발은 최근 전성기의 기량을 완벽하게 되찾은 게릿 콜.
그는 2번 타자에게 볼넷을 하나 허용했지만, 땅볼 타구를 유도해냈다.
그리고 난 그 타구를 병살타로 잡아내며 게릿 콜의 삼자범퇴를 도왔다.
쿵―
쿵―
양키 스타디움에서 열린 1차전.
경기장을 가득 채운 양키스의 팬들은 전부 쓰레기통을 하나씩 들고 와서 두드리기 시작했다.
우우―
휴스턴 애스트로스의 1선발 투수인 잭 그레인키가 마운드에 올라오자, 모든 팬들은 일제히 야유를 시작했다.
그런 상황에도 잭 그레인키의 표정은 별 반응은 없었다.
뭐··· 2019년에 휴스턴에 트레이드 된 선수이니, 자기와는 별 상관없다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어쨌든 그렇게 1회 말 뉴욕 양키스의 공격이 시작됐다.
1번 타자는 작년에 이어서 올해에도 대부분의 경기에서 선발 출장했던 DJ 르메이휴.
그는 3-2 풀카운트에서 타격했지만, 우익수 뜬공으로 물러났다.
2번 타자는 후반기에 좋은 모습을 보여줬던 애런 저지.
따악―!
그는 3구로 들어온 슬라이더를 완벽한 타이밍에 쳐냈다.
하지만 3루수 직선타.
“Strong Man! The Strongest Man! Choi! Gang! Nam!”
2아웃 주자 없는 상황에서 내 첫 번째 타석이 돌아왔다.
스트라이크 존에서 살짝 빠져나가는 볼이 연속으로 세 개가 들어왔다.
3-0의 상황.
“볼! 포볼!”
난 네 번째 공을 지켜봤지만, 이번에는 존에서 많이 빠지는 공을 던지는 잭 그레인키였다.
아무래도 포스트시즌에서 주자가 없는 상황에서는 나와 맞붙을 의지가 없어 보이는 모습이었다.
“세이프!”
“세이프!”
우우―
2아웃 1루의 상황에서 두 번 연속 견제구.
안 그래도 야유가 심했던 양키 스타디움은 더욱더 분위기가 살벌해졌다.
“세이프!”
와아아―
난 초구에 2루로 뛰어서 도루에 성공했다.
그리고 더그아웃에 다음 공에 3루로 뛰겠다는 사인을 보냈다.
더그아웃에서는 긍정의 사인이 돌아왔다.
잭 그레인키의 두 번째 공은 바깥쪽에 꽉 차는 포심.
난 투수의 왼쪽 발이 움찔거림과 동시에 스타트를 끊었다.
포수는 공을 받음과 동시에 3루수에게 공을 던졌고, 3루수는 그 공을 받아 내 손에 태그했다.
“세이프!”
하지만 내 손이 훨씬 빠르게 베이스에 닿았다.
난 여유롭게 옷에 묻은 흙을 탈탈 털어내며, 3루 베이스를 밟고 일어났다.
“바로 그거야! 오늘 휴스턴 놈들에게 본때를 보여주라고!”
“나이스! 슈퍼 루키!”
경기장을 가득 채운 47,000여 명의 팬들은 그런 내 플레이에 환호를 보냈다.
따악―!
4번 타자 게리 산체스의 강한 타구는 3유간을 빠져나갔다.
3루에 있는 난 여유롭게 홈을 밟으며 양키스의 선취점 득점에 성공했다.
“1회부터 도루 2개네. 좋은 플레이였다.”
“감사합니다.”
좀처럼 보기 힘든 애런 분 감독의 하이 파이브.
당연하게도 뉴욕 양키스의 더그아웃의 분위기는 뜨거워졌다.
“아웃!”
1회 말 추가 득점에는 실패했지만, 오늘 양키스의 선발 투수는 게릿 콜.
1점의 리드에도 충분히 안정감을 보여주는 믿음직한 투수였다.
2회 초 휴스턴 애스트로스의 공격.
볼넷 하나와 안타 하나를 맞았지만, 실점을 허용하지 않으며 게릿 콜은 또다시 3아웃을 잡아냈다.
“스트라이크 아웃!”
“스트라이크 아웃!”
2회 말 뉴욕 양키스의 공격은 6번 타자부터 시작했다.
2구에 땅볼 아웃시킨 잭 그레인키는 하위 타선인 7, 8번 타자를 연속 삼진으로 잡아냈다.
거기에 연속 삼진 세리머니까지 선보이며 양키스 팬들의 야유에도 전혀 기죽지 않는 모습을 보여줬다.
3회 초 휴스턴 애스트로스의 공격.
따악―!
9번 타자의 타구는 빠르게 내게 향했고, 난 자세를 조금 낮춰서 안정적으로 공을 잡은 후에 1루로 던졌다.
“아웃!”
1아웃 상황에서 맞이하는 두 번째 휴스턴의 상위 타선.
따악―!
1번 타자를 2루수 땅볼로 유도한 후에 올라온 2번 타자에게 안타를 맞은 게릿 콜.
하지만 별다른 표정 변화는 없었다.
따아아아아악―!
하지만 다음으로 타석에 올라온 3번 타자 카일 터커에게 큰 한 방을 맞고는 표정이 살짝 구겨진 모습이었다.
우측 담장이 좌측보다 훨씬 짧은 양키 스타디움이었기에, 좌타 거포에게는 어쩔 수 없는 홈런이 종종 나오기도 한다.
지금이 바로 그런 순간이었다.
담장을 아주 살짝 넘어가는 홈런.
우측 담장이었다면 여유로운 플라이 아웃이었을 것이다.
“스트라이크 아웃!”
하지만 양키 스타디움을 홈구장으로 쓰는 투수들에게 이런 홈런은 세금이나 다름없었다.
피할 수 없는 운명.
게릿 콜은 익숙한 듯 다음 타자를 삼진으로 돌려세우며 3회 초를 마무리했다.
1:2로 역전된 상황.
양키 스타디움은 우측 담장이 짧다.
그것은 양키스 타자들에게도 똑같이 유리한 점이었기에, 충분히 따라잡을 수 있는 상황.
3회 말 뉴욕 양키스의 공격은 9번 타자인 클린트 프레이저부터 시작했다.
파워와 주루는 좋지만 컨택이 좋지 못하다는 평가를 받는 타자인 프레이저였다.
따아아악―!
하지만 실투를 못 칠만한 타자는 아니었다.
상대 선발인 잭 그레인키의 오늘 경기 첫 존 한가운데 실투.
프레이저는 그 타구를 담장 근처까지 보내며 여유롭게 2루타를 만들어냈다.
노아웃 2루에서 1번 타자 DJ 르메이휴.
그는 느린 발에도 리드오프를 뛰는 이유인 좋은 선구안을 제대로 보여줬다.
“볼! 포볼!”
8구까지 계속되는 커트로 끈질긴 승부를 이어간 르메이휴는 9구에 들어온 볼을 골라내며, 노아웃 1, 2루를 만들었다.
따악―!
2번 타자 애런 저지는 초구에 빠르게 배트를 휘둘렀다.
2루 주자가 발이 빠른 프레이저였지만, 중견수 앞에 떨어지는 빠른 타구의 안타.
프레이저는 3루에 멈춰 섰다.
3회 말에 맞이한 절호의 찬스.
노아웃 만루에서 내가 타석에 들어서자 경기장의 모든 관중들은 응원가와 환호를 고래고래 소리치기 시작했다.
“볼!”
“볼!”
몸쪽으로 들어오는 슬라이더와 아래로 빠지는 커브.
신중한 승부를 이어가는 잭 그레인키의 투구였다.
내가 양키 스타디움에서 밀어 쳐낸 홈런이 많다 보니, 계속해서 몸쪽 승부를 이어가는 모습이었다.
그레인키는 타석에서 보일 정도로 심호흡을 크게 한번 하더니, 세 번째 공을 던졌다.
이번에도 몸쪽 슬라이더.
아까 궤적과 동일하다면 충분히 스트라이크 존 안으로 들어올 만한 코스였다.
난 그 공에 그대로 배트를 휘둘렀다.
따아아아아악―!
상대가 몸쪽 공을 던진다면 당겨서 쳐내면 된다.
우측 담장이 좌측보다 10m나 짧지만, 그런 것은 전혀 상관없다.
난 좌측 담장 너머로도 공을 충분히 날릴 수 있는 자신감이 있으니까.
난 타구를 잠시 바라봤다.
그리고 배트를 가볍게 던지고 오른손 검지를 하늘로 쭉 뻗은 채 베이스를 돌기 시작했다.
***
[노아웃 만루의 상황. 올해 양키스를 동부 지구 압도적 1위로 만들어준 것에 가장 큰 공을 세운 16세의 해결사! 최강남이 타석에 들어섭니다.]
[연달아서 볼 2개를 걸러내는 좋은 선구안까지 겸비한 최강남! 세 번째 공에 배트를 그대로 휘두릅니다!]
[너무나 큰 타구! 좌측 담장을 훌쩍 넘어가는 만루 홈런을 기록합니다! 역시 양키스의 해결사! 최! 강! 남!]
[1:2로 뒤처지는 경기를 다시 5:2로 뒤집는 그랜드슬램! 최강남의 활약에 양키 스타디움을 찾은 모든 팬들의 환호성이 경기장을 가득 채웁니다!]
[완벽한 세리머니까지! 17년 휴스턴에게 당했던 복수를 해주는 2006년생 최강남! 신이 내린 천재 타자의 등장입니다!]
YES Network의 해설진들.
그들은 이 홈런에 해설임을 잊고 경기장을 찾은 야구팬처럼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 와 포스트시즌에도 날아다니네
ㄴ 사랑한다 최강남
ㄴ 오늘 맥주 안주로 불고기 시켰다 한국이 불고기가 유명하대
ㄴ 최강남도 뉴욕 출신 배우 앤 해서웨이의 존재를 알까?
ㄴ Do you know 시리즈 등장이냐?
ㄴ 강남이는 모르는 게 없어 다 알아!
― 2006년에도 사람이 태어나다니
ㄴ 그는 사람이 아니야 야구의 신이라고
ㄴ 이번 포스트시즌은 진짜 기대된다
ㄴ 인정 마지막 우승 때 내가 초등학생이었는데, 이제 직장인이 되었다고
ㄴ 진짜 올해의 양키스는 다르다!
짜릿한 만루 홈런 후에 세리머니.
그들은 이미 2017년의 굴욕을 잊고 새로운 꿈을 꾸기 시작했다.
뉴욕 양키스가 우승컵을 들어 올리는 행복한 상상.
최강남이 팬들에게 행복한 상상을 선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