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3
우승 후보 양키스 (6)
쿵―
쿵―
1승 1패의 상태에서 맞이하는 3차전.
원정 팬들이 앉는 좌석에서 뉴욕 양키스의 팬들이 쓰레기통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와 동시에 휴스턴 애스트로스의 선발 투수인 랜스 맥컬러스 주니어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하지만 억울하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본인도 2017년 휴스턴의 사인 훔치기를 알고 있었지만, 우승을 위해서 묵인했으니.
그래도 지금은 상황이 비교적 괜찮았다.
오늘은 홈구장인 미닛 메이드 파크에서 열렸고 양키스의 팬들은 비교적 적은 편.
그렇다고 해도 저놈의 극성인 뉴욕의 팬들은 경기장을 절반 가까이 채운 모습이었다.
저번 양키 스타디움에서 열린 경기는 맥컬러스 주니어 입장에서는 정말 끔찍하기 짝이 없었다.
우승을 도둑맞은 LA 다저스도 마찬가지였지만, 뉴욕 양키스 또한 휴스턴을 증오하는 것은 당연했다.
월드시리즈에 직행하기 전 마지막 관문인 ALCS(아메리칸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
3:3으로 7차전까지 간 ALCS에서 휴스턴 애스트로스는 언제나 그랬듯 또 사인을 훔쳤다.
그리고 뉴욕 양키스를 꺾고 월드시리즈에 진출했으니, 뉴욕의 팬들이 휴스턴에게 좋은 감정을 가질 리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2022년.
5년이 지났고 너무 과한 보복이지 않나 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마운드 위의 선발 투수였다.
심판은 휴스턴을 위협하는 관중과 선수들에게 최근 경고를 내린 적이 전혀 없었다.
오늘 역시 평소와 똑같은 날이었다.
“플레이 볼!”
경기는 그렇게 시작됐다.
뉴욕 양키스의 타선은 1, 2차전과는 달랐다.
1번 타자 루그네드 오도어와 2번 타자 애런 저지.
좌타자를 상위 타선에 배치한 이유는 우투수인 본인을 견제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거기에 양키스의 3번 타자는 최강남.
등판 하루 전날인 어제 저녁, 투수 코치에게 귀가 닳도록 들은 이름이었다.
“스트라이크 아웃!”
하지만 랜스 맥컬러스 주니어에게 양키스의 타선이 부담이 되지는 않았다.
오히려 양키스의 타자들이 그와의 대결을 부담스럽게 여길 것이라고 생각했다.
승부조작으로 문제가 됐던 2017년 ALCS 7차전.
그는 6회에 두 번째 투수로 마운드에 올라와서 4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아냈다.
특히 8회 초부터 경기 종료까지 24구 연속 너클 커브만으로 양키스의 타선을 잠재운 랜스 맥컬러스 주니어였다.
따악―!
2번 타자로 나선 애런 저지.
그의 타구는 2루수 정면으로 향했고 호세 알투베가 안정적으로 공을 잡아내서 1루로 던졌다.
“아웃!”
‘아무리 좌타자여도 내 너클 커브는 완벽해.’
2번 타자인 애런 저지까지 아웃을 잡아내고 든 생각이었다.
거기다가 3번 타자는 우타자 최강남.
일반적으로 우타자에게 우투수가 강한 것은 당연한 사실.
특히 올해 랜스 맥컬러스 주니어는 우타자에게 특히나 강했다.
피안타율 0.103에 피홈런은 고작 2개.
그 2개도 원정 경기에서 나온 피홈런.
오늘 경기가 열리는 미닛 메이드 파크에서는 올해 피홈런이 하나도 없었다.
그것은 투수에게 너무나 유리한 구장과 더불어 타자에게 스윗 스팟을 맞추기 힘든 너클 커브가 합쳐진 결과였다.
“스트라이크!”
‘슈퍼 루키라더니. 역시 손도 못 대네. 하긴 우타자가 내 공을 건드릴 수는 있겠어?’
초구로 던진 바깥쪽 높은 너클 커브.
최강남은 배트를 휘두르지도 않고 지켜보는 모습이었다.
포수의 두 번째 사인은 몸쪽 낮은 너클 커브.
랜스 맥컬러스 주니어는 고개를 끄덕이고 크게 와인드업을 시작했다.
포심을 던질 때와 똑같은 와인드업 후에 던지는 공.
평소와 똑같은 느낌, 아니 어쩌면 오늘 연습구를 포함해서 최고의 공.
그 공에 최강남은 배트를 휘둘렀다.
따아아아아악―!
와아아―
타격과 동시에 미닛 메이드 파크에 함성이 울려 퍼졌다.
1, 2차전과는 다르게 절반 이상을 채우고 있는 뉴욕의 극성 야구팬들.
이들 중 대부분은 2017년의 패배에 대한 불만으로 먼 텍사스 주까지 이동한 팬들이었다.
쿵―
쿵―
당연하게도 그들은 연신 쓰레기통을 두드리며 휴스턴의 선수들을 자극했다.
그리고 예상하지 못했던 의외의 상황이 하나 더 나왔다.
“닥쳐!”
베이스를 돌던 루키가 유격수 카를로스 코레아에게 소리를 질렀다.
그와 동시에 양 팀의 더그아웃에서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느껴졌다.
***
따아아아아악―!
정확하게 맞춰낸 내 타구는 광활한 크기를 자랑하는 미닛 메이드 파크의 좌측 담장을 가볍게 넘어갔다.
난 배트 플립이나 세리머니 없이 가볍게 배트를 던지고 1루로 향했다.
양키스와 애스트로스가 좋지 않은 감정을 갖고 있다는 사실은 당연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당시에 경기를 뛰지 않았던 나와는 관계없는 일.
올해 데뷔한 내가 나설 이유가 전혀 없는 두 팀의 앙숙 관계였다.
그렇기에 굳이 상대 선수에게 도발을 할 필요성은 없었다.
“빨리 안 뛰냐? 건방진 루키 주제에 뉴욕에서 뛴다고 거들먹거리네. 그래봤자 너희들은 나 같은 엘리트 선수를 막을 수 없어.”
평범하게 달리던 나는 2루 베이스를 밟고 3루로 향하고 있었다.
그때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돌아보니 휴스턴 애스트로스의 유격수 카를로스 코레아가 팔짱을 끼고 소리치는 모습이 보였다.
사인 훔치기 스캔들의 일원으로 다른 선수들과는 다르게 적반하장의 태도를 보인 코레아.
그는 현재 메이저리그 최고의 악역이라는 말을 듣는 선수였다.
‘ALCS에서 4경기 동안 3점 낸 양키스는 이길 자격이 없다.’
2021년에 했던 저 말로 뉴욕 양키스 최고의 원수가 된 카를로스 코레아.
그에게 이런 모욕적인 말을 들었는데, 굳이 내가 참을 필요는 없었다.
“닥쳐! 쓰레기통 없으니까 양키스에게 질까 봐 불안하냐?”
“뭐?”
“꼬우면 달려와서 쳐보던가. 반 죽여줄 테니까.”
난 그에게 조롱하는 대답을 건네고 속도를 매우 늦춰서 천천히 달리기 시작했다.
당연히 코레아는 나에게 달려올 수 없었다.
홈런을 치고 홈으로 들어오는 타자에게 달려든다면 가벼운 징계로 끝나지는 않을 테니까.
미닛 메이드 파크에 야유와 환호 소리가 가득 찼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천천히 달려서 홈 플레이트를 밟았다.
“루키. 무슨 일이야?”
다음 타자인 4번 게리 산체스.
그의 물음에 내가 입을 열었다.
“미안해요. 상대 유격수가 저는 물론이고 양키스까지 욕보이는 이야기를 해서 참지 못했어요. 이번 타석에서 데드볼 조심하셔야겠네요.”
“무슨 소리인지 알겠어. 나였어도 그랬을 거다. 너무 걱정하지 마. 내가 책임질 테니까.”
“고마워요.”
“천만에.”
게리 산체스에게 고마움을 표현한 후에 더그아웃으로 향했다.
그리고 나에게 묻는 코치와 선수들에게도 똑같은 이야기를 전해줬다.
내 말을 들은 양키스 더그아웃의 분위기는 급격하게 가라앉았다.
“히트 바이 피치!”
생각보다 빨리 벤치 클리어링은 일어났다.
상대 투수는 초구부터 게리 산체스의 허벅지에 포심을 던졌고, 그와 동시에 양측 더그아웃에서 선수들이 그라운드로 달려 나갔다.
순식간에 투수와 타자를 중심으로 많은 선수들이 둘러싸였고, 단순한 몸싸움이 아닌 몇 번의 주먹질이 오갔다.
그리고 그런 혼란 속에서 나와 상대 유격수 카를로스 코레아가 눈이 마주쳤다.
“이번에도 쫄아서 못 오냐?”
난 그런 코레아에게 한마디를 뱉었고 그는 나에게 달려들었다.
코레아가 뻗는 오른손 주먹을 왼쪽으로 숙여서 가볍게 피했다.
그 모습을 본 코레아는 왼쪽 주먹을 뻗었고, 이번엔 오른쪽 아래로 숙이며 피했다.
그리고 코레아의 왼쪽 턱주가리에 오른손 주먹을 정확하게 맞춰냈다.
퍽―
단 한방에 쓰러지는 코레아.
투수와 타자에게만 집중되었던 시선이 우리에게 향했고 다른 선수들의 만류로 벤치 클리어링은 빠르게 정리됐다.
심판은 여러 선수에게 경고를 내렸지만, 퇴장 조치를 취하지는 않으며 사건은 일단락되었다.
***
[아! 랜스 맥컬러스 주니어가 게리 산체스의 허벅지에 초구를 던집니다! 이건 명백한 빈볼이죠.]
[그렇습니다. 산체스가 투수에게 달려가며 벤치 클리어링이 열리게 됩니다.]
[가장 먼저 일어나는 몸싸움은 애런 저지와 호세 알투베! 2017년 MVP 사건 이후로 처음으로 맞붙게 되는 장면이죠?]
[애런 저지와 호세 알투베의 몸싸움! 애런의 주먹은 유효타, 호세의 주먹은 허공을 가르는 모습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싸움은 오도어와 율리에스키 구리엘! 역시 오도어의 주먹은 화끈하네요.]
[율리에스키 구리엘 선수 역시 2017년 휴스턴의 가짜 우승 당시에 주전으로 뛰었던 선수죠. 오도어 선수는 그 당시에 텍사스 선수였지만, 이제는 뉴욕 양키스의 주전 2루수! 양키스 유니폼을 입은 선수다운 모습을 보여줍니다!]
1회부터 일어나게 된 벤치 클리어링.
YES Network의 해설진은 당연하게도 양키스의 선수들 중심으로 해설을 시작했다.
그리고 이것은 복싱 해설위원 출신이었던 브로디에게 날개를 달아주었다.
해설진은 2017년 휴스턴 애스트로스의 승부 조작에 대해 계속해서 언급했다.
쓰레기통 소리가 한번 나면 변화구, 소리가 나지 않으면 포심을 던졌던 상대의 투수들.
그리고 이 이야기는 그날을 기억하는 시청자들에게 좋은 몰입감을 만들어줬다.
[모든 선수들이 그라운드에 엉켜서 벤치 클리어링은 계속 이어집니다! 아! 그리고 드디어 오늘 벤치 클리어링의 원인이 되었던 두 선수가 경기장에서 마주칩니다. 카를로스 코레아가 최강남 선수에게 먼저 달려듭니다!]
[코레아의 라이트와 레프트를 숙이며 위빙으로 피해내는 최강남! 그의 라이트 스트레이트는 단 한방에 코레아에게 적중하며 그대로 다운! 이렇게 되면 유격수 벤치 클리어링 챔피언은 단연 최강남 선수죠! 이번에도 타이틀 방어전에서 성공하는 양키스의 슈퍼 루키 최강남입니다!]
[하하··· 그렇네요. 쓰러진 코레아와 최강남 선수를 중심으로 다른 선수들이 뒤엉키면서 벤치 클리어링은 끝나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심판이 어떤 결정을 내리는지가 중요하겠죠?]
[당연히 징계는 물론이고 퇴장도 없어야 합니다. 2017년 휴스턴이 보여줬던 기록은 메이저리그의 수치입니다! 우승 박탈은커녕 선수들 징계조차 내리지 않았던 메이저리그의 사무국. 양키스는 아직도 그날을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네. 아무래도 그게 영향이 있어서일까요? 오늘 격렬한 벤치 클리어링을 보여줬던 몇몇 선수들에게만 경고 조치를 취하고 경기는 계속 이어집니다!]
최근 몇 년간의 벤치 클리어링 중에서도 가장 격했던 두 팀의 싸움.
그리고 격렬한 난투극에서 이례적인 노 퇴장 선언.
당연히 이 장면을 지켜본 양키스의 팬들은 모두 몹시 흥분하기 시작했다.
― 휴스턴이 우리한테 우승을 뺏어온 건데 퇴장이 없는 건 당연하지
ㄴ 그래도 사무국에서 징계 조치 있지 않을까?
ㄴ 그래봤자 끽해야 5경기 출장 정지야 우리 다음 경기 전부 여유롭잖아
ㄴ 파드리스랑 에인절스 경기면 1.5군으로 출전해도 위닝 시리즈 충분하지
ㄴ 크 이게 얼마만의 독보적인 뉴욕 양키스냐
ㄴ 인정 부상 선수만 없어도 양키스 스쿼드는 언제나 우승 후보지
― 근데 최강남은 진짜 잘 싸우지 않냐?
ㄴ 그러게 무슨 복싱 학원이라도 다니나
ㄴ 브로디가 해설하니까 진짜 복싱 경기 보는 것 같네
ㄴ 앞으로도 브로디 나올 때만 벤치 클리어링 했으면 좋겠네
ㄴ 브로디 복싱 해설은 인정이지
벤치 클리어링에 속 시원하다는 반응을 보이는 시청자들.
그렇게 3차전의 1회가 이제 시작되었을 뿐이었다.
***
1회 초에 내 1점 홈런 이후에 생긴 양 팀 선수들의 무력 충돌.
양키스의 선수들은 투지에 불탔고, 애스트로스의 선수들은 반대로 사기가 떨어진 모습이었다.
경기 결과는 모두의 예상과는 다르게 일방적으로 진행됐다.
휴스턴 애스트로스의 선발 투수 랜스 맥컬러스 주니어.
그는 오늘 경기에만 3피홈런을 허용하며, 4회에 마운드에서 내려갔다.
난 두 번째 타석에서도 우중간을 가르는 3루타를 때리며, 팀의 타점 하나와 득점 하나를 가져다줬다.
맥컬러스 주니어가 초반부터 무너졌던 반면 양키스의 선발 투수인 루이스 세베리노는 완벽한 피칭을 보여줬다.
7이닝 2피안타 2사사구 무실점.
경기는 초반부터 리드를 하던 양키스가 끝까지 지켜내며 8:1 대승으로 끝이 났다.
그렇게 우리는 AL 서부 지구 1위 휴스턴과의 원정 경기를 2승 1패 위닝 시리즈로 마무리했다.
압도적인 AL 동부 지구 1위를 달리고 있는 뉴욕 양키스.
우리의 다음 일정은 비교적 약한 팀인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LA 에인절스와의 홈경기였다.
그렇게 뉴욕 양키스의 1위 순항은 기분 좋게 진행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