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2
우승 후보 양키스 (5)
25경기 16홈런 20도루.
타율/출루율/장타율은 0.434/0.568/0.803.
이 기세대로 풀 시즌을 치른다면 메이저리그 모든 기록을 갈아치우고도 남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겨우 90타수가 넘었고, 16살 타자다 보니 초반에 상대 투수들이 방심한 것도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또한 작년부터 훈련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부분은 코어 운동.
순간적인 움직임에 있어서 부상을 방지하는 코어 운동은 수비와 타격은 물론이고 주루에도 큰 도움이 됐다.
21번의 시도 중에서 20번을 성공시킨 도루.
그것이 대부분의 투수들이 날 쉽게 거를 수 없는 이유였고, 그것은 내게 더 높은 타율을 보장해 줬다.
물론 이곳은 선수들의 분석을 위해서 매년 몇십억을 태우는 세이버메트릭스의 성지 메이저리그.
나에 대한 표본이 꽤 쌓였으니, 각 팀들은 나름의 분석을 끝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내 플레이 방식을 바꾸지는 않는다.
언제나 스트라이크 존 안에 들어오는 공은 타격하고 밖으로 빠져나올법한 공은 치지 않는다.
멤버들과 가볍게 펑고를 비롯한 훈련 후에 휴스턴 애스트로스와의 경기가 시작됐다.
“플레이 볼!”
1회 초 공격은 원정팀인 뉴욕 양키스부터 시작됐다.
휴스턴 애스트로스의 홈구장인 미닛 메이드 파크.
폐지된 철도역을 역사만 남기고 승강장과 선로가 있던 부지에 야구장을 건설한 경기장이었다.
이곳은 메이저리그 전체에서 가장 투수 친화적인 구장.
깊은 좌중간과 우중간이 무려 123, 124m의 광활한 크기를 자랑했다.
그리고 마운드 위에 휴스턴의 1선발 투수가 올라왔다.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을 확정 지었다는 평가를 받는 잭 그레인키.
그는 완벽한 투구 외에도 실버 슬러거를 받을 정도의 타격 실력과 골드 글러브까지 받은 선수였다.
말 그대로 수비, 타격, 투구가 모두 되는 소설에 나올법한 사기 캐릭터 야구선수.
그가 내셔널이 아닌 아메리카 리그에서 뛰고 있다는 것은 많은 팀들에게 위안이 될 정도였다.
포심, 슬라이더, 체인지업을 던지는 쓰리 피치 스타일.
1983년생으로 올해 40살이 된 그는 노화로 인해서 구위, 구속 하락에 대한 가장 이상적인 정답을 보여주는 투수이기도 했다.
평균 구속 94마일(151km/h)의 포심은 어느덧 87마일(140km/h)까지 떨어진 잭 그레인키.
하지만 그는 철저한 분석을 통한 심리전과 스트라이크 존에 걸치는 절묘한 보더라인 피칭으로 극복해냈다.
그리고 그러한 분석은 당연히 동부 지구 1위인 우리에게도 동일했다.
“스트라이크 아웃!”
0-2까지 몰아붙인 그는 1번 타자 DJ 르메이휴에게 몸쪽 낮은 볼로 루킹 삼진을 잡아냈다.
르메이휴는 판정에 불만스러운 듯 잠시 심판을 쳐다보다가 타석에서 물러났다.
2번 타자는 최근 좋은 컨디션을 되찾은 애런 저지.
따악―!
그는 2구로 들어온 체인지업을 힘껏 당겨 쳤지만, 너무나도 먼 담장까지는 뻗지 못하고 좌익수에게 잡혔다.
2아웃 주자 없는 상황에 내 첫 타석이 돌아왔다.
오늘 심판은 스트라이크 존 좌우 판정에 후한 편.
그 사실을 머리에 각인시키고 타석에 들어섰다.
“스트라이크!”
초구로 들어온 이 공을 칠 필요는 없었다.
몸쪽 낮은 슬라이더.
사실 어제 경기 심판이었다면 볼을 외칠법한 코스였다.
하지만 적응해야 했다.
심판마다 조금씩 다른 스트라이크 존은 늘 생길 수 있는 변수이니.
‘적극적으로 타격해야겠네.’
보더라인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투수에게 카운트가 몰리면 피곤한 상황이 생기기 마련이다.
배트를 꽉 움켜쥐고 두 번째 공을 기다렸다.
마운드 위의 그레인키는 와인드업 후에 공을 던졌다.
따악―!
바깥쪽 높은 포심을 밀어 쳤지만, 아쉽게 파울 라인을 벗어나는 타구.
0-2의 압도적으로 불리한 카운트가 되었다.
“타임!”
그레인키는 쉴 틈도 주지 않고 투구 타이밍을 잡았고 난 심판에게 타임을 요청했다.
배팅 장갑을 풀었다가 다시 착용한 후에 타석에 다시 들어섰다.
마운드 위의 투수는 와인드업 후에 세 번째 공을 던졌다.
‘체인지업? 아니다. 더 느려.’
왼쪽 발과 어깨가 타격 타이밍에 움찔거려도 도착할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 세 번째 공.
몸의 움직임을 최대한 간소화해서 어깨만으로 배트를 휘둘렀다.
따악―!
타구는 3유간으로 향했고, 두 야수는 잡아내지 못하며 좌익수 앞으로 굴러가는 안타.
전광판을 바라보니 구속은 무려 53.5마일(86km/h)이었다.
한국에서는 아리랑 볼이라고 부르는 이퓨스볼을 던진 그레인키였다.
“나이스 배팅. 타이밍 잡기 힘들었을 텐데 용케 잡았네.”
“그러게요. 저도 깜짝 놀랐어요.”
난 보호대를 1루 주루 코치에게 건네주며 웃음으로 답했다.
“세이프!”
“세이프!”
한 시즌에 도루 허용이 5개 이하로 주자 억제를 잘하는 그레인키.
그는 나에게 견제구를 두 차례 던진 후에 타자에게 초구를 던졌다.
따악―!
초구로 들어온 슬라이더를 타격한 4번 타자 게리 산체스.
“아웃!”
하지만 빗맞은 공은 유격수에게 향했고 1회 초 뉴욕 양키스의 공격은 무실점으로 끝이 났다.
1회 말 휴스턴 애스트로스의 공격.
오늘 양키스의 투수는 1선발 코리 클루버였다.
적은 피홈런을 자랑하는 그에게 오늘의 경기장은 최고의 환경이었다.
“아웃!”
그런 코리 클루버는 안타를 하나 허용했지만, 역시나 무실점으로 1회 말을 마무리했다.
그 후로는 투수전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난 두 번째 타석에서 잘 맞춰냈지만, 아쉽게 펜스 앞에서 우익수에게 잡히는 뜬공으로 물러났다.
선취점은 휴스턴 애스트로스가 먼저 뽑아냈다.
4회 말 2아웃에 두 번째 타석에 들어선 휴스턴의 4번 타자 카일 터커.
그가 코리 클루버의 투심을 당겨서 우측 담장을 넘기는 솔로 홈런을 만들어냈다.
한국의 광주 팀에서 용병 타자로 뛰고 있는 프레스턴 터커의 동생인 카일 터커.
휴스턴에서 애지중지 키운 유망주다운 성장을 보여주고 있었다.
0:1로 뒤처진 뉴욕 양키스.
하지만 경기는 이제 중반으로 접어들었을 뿐이다.
5회 초 뉴욕 양키스의 공격은 오늘 9번 타자로 출장한 2루수 오도어부터 시작했다.
따악―!
오도어는 3구에 들어온 체인지업을 정확한 타이밍에 걷어 올리며 중견수 앞에 떨어지는 안타를 만들어냈다.
다음 타자는 1번 DJ 르메이휴.
“볼! 포볼!”
그는 9구까지 커트해내며 끈질긴 승부 끝에 볼넷을 얻고 1루에 걸어 나갔다.
노아웃 1, 2루에 타석에 들어선 2번 타자 애런 저지.
따악―!
초구로 들어온 슬라이더를 결대로 쳐낸 애런 저지의 타구는 중견수 앞에 떨어졌다.
워낙 빠른 타구였기에, 주루가 느린 오도어는 3루에서 멈췄다.
우우―
내 타석이 돌아오자 미닛 메이드 파크가 야유로 가득 찼다.
노아웃 만루의 찬스.
뉴욕 양키스 입장에서는 오늘 처음 맞이하는 기회였다.
잭 그레인키의 스트라이크 존 구석구석을 파고드는 슬라이더와 체인지업은 확실히 쉬운 공은 아니었다.
하지만 모든 투수가 원하는 곳으로 공을 던질 수는 없는 법이다.
따아아아아악―!
그레인키의 초구는 몸쪽 낮은 코스였지만, 평소보다는 살짝 가운데로 몰린 공.
난 평소보다 빠르게 허리를 회전해서 공을 타격했고 공은 쭉쭉 뻗어 나갔다.
내 타구는 123.1m의 광활한 거리를 자랑하는 미닛 메이드 파크의 펜스에 직격했다.
내 장타를 의식해서인지 평소보다 뒤쪽으로 시프트 수비를 했던 외야수들.
그들은 침착하게 중계 플레이를 전개했지만, 난 이미 2루에 도착한 이후였다.
1루 주자인 애런 저지가 워낙 느린 주루를 갖고 있는 선수였기에, 홈에 들어오지는 못했다.
하지만 2타점 2루타.
2:1로 역전에 성공한 뉴욕 양키스의 사기를 북돋우기에는 충분한 상황이었다.
이어서 나온 게리 산체스의 안타로 추가 득점.
그리고 6번 타자인 히오 우르셸라의 희생 플라이로 또 추가 득점.
5회에만 4점을 뽑아내며 순식간에 경기를 4:1로 만든 뉴욕 양키스였다.
양키스의 1선발 코리 클루버.
그는 타자들의 점수를 잘 지켜내며 7이닝 1실점을 끝으로 마운드에서 내려왔다.
8회 말에 마운드에 올라온 미네소타 출신의 알렉스 콜로메.
그는 볼넷 하나를 허용했지만, 역시나 무실점으로 휴스턴의 타선을 꽁꽁 틀어막았다.
3점 차이로 세이브 요건이 달성된 순간.
하지만 오늘은 최근 연달아 공을 던졌던 아롤디스 채프먼 대신 필승조 투수인 잭 브리튼이 올라왔다.
사실 8회에 올라온 알렉스 콜로메나 지금 올라온 잭 브리튼 역시 이전 팀에서는 마무리 투수였다.
2017년도 탬파베이 레이스에서 AL 세이브왕이었던 알렉스 콜로메.
2016년도 볼티모어 오리올스에서 마찬가지로 AL 세이브왕이었던 잭 브리튼.
그들을 이 팀에 데려온 것은 천문학적인 페이롤을 자랑하는 뉴욕 양키스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스트라이크 아웃!”
왕년의 세이브 왕이었지만 지금은 필승조 투수인 잭 브리튼.
그는 1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아내며 오랜만에 세이브를 달성했다.
경기 MVP는 솔로 홈런을 제외하면 완벽한 투구를 보여줬던 코리 클루버가 받게 되었다.
***
[안녕하십니까! 뉴욕의 야구 팬분들. 오늘은 뉴욕 양키스와 휴스턴 애스트로스의 3차전 선발 당일입니다.]
[어제 휴스턴의 경기가 깔끔했죠.]
[그렇습니다. 어제 뉴욕 양키스의 선발 투수인 게릿 콜의 7이닝 2실점 활약. 하지만 휴스턴의 2선발 크리스티안 하비에르의 8이닝 무실점 호투로 1승 1패가 되었습니다. 어제 경기 패배의 원인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무래도 양키스 타선의 아쉬운 결정력이 원인이었겠죠. 특히 상대 선발인 하비에르가 최강남 선수와의 대결에서 볼넷으로 도망가는 피칭을 보여줬거든요. 선두 타자인 1, 2번 타자들이 출루에 성공해서 최강남 선수를 쉽게 거를 수 없도록 만드는 것이 중요한 요소라는 생각이 되네요.]
어제 열린 휴스턴과의 2차전은 0:2 양키스의 패배.
최근 팀의 최다 타점을 기록한 최강남은 4타석 1타수 무안타 3볼넷을 얻었다.
도루 2개를 시도해서 하나를 성공시켰지만, 아쉽게 득점에는 실패했다.
뉴욕 양키스의 애런 분 감독은 그 실패의 원인을 1~5번 타자가 전부 우타자인것에 초점을 뒀다.
오늘 휴스턴의 3선발은 랜스 맥컬러스 주니어.
이번에도 우투수였다.
애런 분 감독은 그런 맥컬러스 주니어에게 전통적인 작전을 들고 나왔다.
일명 좌우 놀이.
1, 2번 타자를 루그네드 오도어와 애런 힉스로 출전시킨 뉴욕 양키스.
그것은 3번 타자 최강남 타석 앞에서 최대한 많은 출루를 성공시키겠다는 생각이 돋보이는 작전이었다.
― 제발 오늘 이기자 휴스턴은 위닝 시리즈로 가져와야지
ㄴ 인정 휴스턴은 모든 야구팬들의 적이지
ㄴ 이상하게 얘네들은 정이 안 간단 말이야. 레드삭스는 미운 정이라도 들었는데
ㄴ 레드삭스가 양키스한테나 약하지 나름 근본은 있지
ㄴ 인정 저런 사인 훔치기로 우승한 애들이랑 비교하면 섭섭하지
― 그래도 레드삭스보다는 휴스턴이 낫지 않냐?
ㄴ 너희 방송가서 놀아라
ㄴ 평생 쓰레기통이나 두드리면서 살아 레드삭스는 까도 우리가 까
ㄴ 진짜 역겹다 그게 야구냐?
2017년 휴스턴 애스트로스의 월드시리즈 사인훔치기 논란.
쓰레기통을 두드리며 동료들에게 사인을 준 휴스턴의 선수들이었다.
하지만 휴스턴의 현역 선수들은 MLB 팬들과 관계자들에게 사죄의 발언만 했을 뿐, 실질적인 징계를 받지는 않았다.
이에 대해 다른 팀 선수들은 물론이고 다른 팀의 팬들까지 휴스턴을 바라보는 시선은 곱지 않았다.
그리고 오늘의 선발 투수는 2015년부터 휴스턴 애스트로스에서 뛰던 랜스 맥컬러스 주니어.
리그 최상위 수준의 너클커브를 던지는 이 투수는 문제의 월드시리즈 7차전 선발로 나왔던 선수이기도 했다.
LA 다저스 팬들은 물론이고 보수적인 야구팬들에게도 눈엣가시 같은 선수의 선발 등판.
모든 야구팬들은 한마음으로 생각했다.
이번에 메이저리그에 돌풍을 안겨다 준 슈퍼 루키가 저놈에게 절망을 안겨달라고.
최강남이 뉴욕 양키스를 비롯한 수많은 팬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며 3차전이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