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1
우승 후보 양키스 (4)
“이번에 주전 타자랑 투수들 최대한 휴식 주면서 여유롭게 가자고. 무슨 말인지 알지?”
“알겠습니다. 이번 시애틀 3연전은 조금 여유롭게 스쿼드 만들어보겠습니다.”
애런 분 감독의 말에 타자, 투수 코치는 밝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현재 동부 지구 독보적 1위인 뉴욕 양키스의 다음 상대는 시애틀 매리너스.
월드 시리즈 우승은커녕 포스트시즌 마지막 진출이 2001년인 팀.
그들은 당연하게도 올해도 아메리칸 리그 압도적인 꼴찌를 달리고 있었다.
그에 반해 뉴욕 양키스의 역대 기록은 모든 메이저리그 팀을 통틀어도 최고 그 자체였다.
17년도 이후로 쭉 포스트시즌에 진출했던 뉴욕 양키스.
그럼에도 마지막 월드 시리즈 진출이 2009년인 이유는 분명했다.
근본적인 원인은 19년도를 제외하고는 전부 와일드카드 진출.
대부분의 선수들은 나이가 많았고, 마지막까지 와일드카드 경쟁을 하면서 체력적 소모가 컸다.
큰 페이롤로 스타플레이어들이 우글거리는 뉴욕 양키스였지만, 평균 연령이 31세를 넘는 노령화 팀.
‘그래도 올해는 8월인데 부상 인원이 적네. 최근 합류한 어린 선수들도 점점 기량이 올라오고.’
현재 뉴욕 양키스는 압도적인 동부 지구 1위.
작년 이맘때 즈음에 3위에게 한 경기 차이로 추격당하는 2위였다는 걸 감안하면, 아주 만족스러운 현재 결과였다.
잦은 부상과 더불어서 타자들의 부진이 많았던 최근 몇 년간의 뉴욕 양키스.
올해와 마찬가지로 작년에도 선발 투수들의 기록은 너무나 훌륭했다.
아니, 엄밀히 따지면 투수들 기록 자체는 작년이 훨씬 좋았다.
리그 압도적 방어율 1위.
선발 5명의 투수 전체 방어율 2.76.
이것은 투수에게 극도로 불리한 양키 스타디움을 홈으로 쓰면서 세운 엄청난 기록이었다.
말 그대로 천문학적인 뉴욕 양키스의 페이롤이 만들어낸 결과.
올해는 그보다는 떨어진 2.97의 선발 전체 방어율.
하지만 작년보다 훨씬 좋은 결과를 내고 있는 뉴욕 양키스였다.
이유는 다양했다.
주전 선수들은 부상이 없었고, 작년부터 연달아 트레이드된 선수들이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타격 또한 리그 상위권을 기록할 정도로 좋은 모습.
‘그래도 저 선수가 제일 컸지.’
오늘도 묵묵히 스트레칭을 하고 있는 최강남을 바라보며 애런 분 감독은 생각했다.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워크 에씩(Work ethic)과 분석.
하지만 아직은 어린 선수였기에, 체력적으로 부담이 클 것이다.
그런 최강남에게 이번 시애틀 3연전에서 최대한의 휴식을 제공해야겠다고 생각한 애런 분 감독이었다.
***
“그런 이유로 이번 3연전은 로스터 안의 모든 선수들에게 기회를 제공할 생각이야. 그렇다고 해도 언제든 교체할 상황이 온다면 출전할 수 있으니, 몸은 다들 확실히 풀고.”
“알겠습니다!”
코치의 말을 들은 선수들은 모두 표정이 밝아 보였다.
누군가는 야구를 레저 스포츠라고 비아냥거리기도 하지만, 사실 본인들도 알 것이다.
야구는 매일 열리는 데일리 스포츠.
체력 소모가 너무나도 많은 주전 선수들이었기에, 감독의 말에 표정이 밝은 것은 당연했다.
오랜만에 출전 기회를 잡은 후보들이 밝은 건 당연했고.
양키 스타디움에서 열리는 시애틀 매리너스와의 3연전.
오늘의 선발 투수는 제임슨 타이욘.
예비 5선발로 필승조를 담당했던 투수였다.
다른 선수들은 오늘 알게 됐지만, 타이욘은 며칠 전에 통보를 받았을 것이다.
팀에 합류한지 얼마 되지 않은 1루수 히오 우르셸라와 최근 좋은 컨디션을 보이고 있는 우익수 애런 저지.
이 둘을 제외하고는 모든 야수들은 후보 선수들이 선발 스쿼드로 출장했다.
내 유격수 포지션에는 글레이버 토레스가 뛰게 되었다.
타격은 애매했지만, 수비 하나만큼은 안정감 있는 평가를 받는 유격수.
오늘 웬만하면 내가 출장할 일은 없을 것이다.
경기는 무난하게 진행됐다.
퀄리티 스타트에는 실패했지만, 6이닝 4실점으로 선방한 선발 투수 제임슨 타이욘.
타선은 3회까지 무려 6점을 뽑아내며 활약했다.
결과는 9:5 승리.
대부분의 주전 선수들이 경기에 나오지 않고 거둔 승리였기에, 더욱 의미 있는 결과였다.
“오늘 다들 고생 많았다. 내일은 시애틀 1선발 등판 차례여도, 웬만하면 오늘처럼 주전 로스터를 쉬게 해줄 계획이야. 그렇다고 오늘 술 마시지는 말고 가볍게 훈련 후에 푹 쉬도록.”
“고생하셨습니다.”
애런 분 감독 역시 오늘 경기 내용이 상당히 마음에 든 모습이었다.
“최! 오늘은 당연히 웨이트 하러 갈 거지?”
“그럼요. 전 리그 진행 중에도 늘 가볍게는 했었습니다.”
“오늘은 같이 가자고.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 경기 있는 날에는 이제 힘들더라고. 그래도 오늘처럼 쉰 날에는 몸 풀어주러 가야지.”
오늘 경기에 뛰지 않았던 2루수 오도어.
그와 함께 웨이트 트레이닝을 1시간 정도 해주고 숙소로 돌아왔다.
그리고 평소처럼 인터넷 여론의 반응을 보다가 잠에 들었다.
***
아침 9시에 알람이 울리며 새로운 하루가 시작됐다.
침대에 누워 가볍게 스트레칭 후에 커튼을 걷히고 햇볕을 쬐다가 샤워를 마쳤다.
그리고 휴대폰을 보니 정말 많은 연락들이 온 모습이었다.
― 아들아 난 네가 정말 자랑스럽다. 안자고 기다릴 테니 일어나면 연락해주렴.
많은 연락들 중에서 아빠에게 먼저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우리 아들! 난 네가 정말 자랑스럽다.”
“네. 그 문자 보고 연락드렸어요. 무슨 일 있어요?”
“아직 기사 못 봤어? 네가 이번 7월 이달의 신인과 이달의 선수를 동시에 수상했다는 기사. 지금 한국에서 난리가 났어. 실시간 검색어 1위는 물론이고 아빠 휴대폰에도 이 사람 저 사람 다들 연락이 왔거든.”
“그래요? 이달의 신인은 어느 정도 예상했는데, 선수는 의외네요.”
“아들아!”
“네.”
“메이저리그에서 은퇴할 건 아니지? 혹시 KBO로 오면 꼭 대전으로 와서 우승컵 좀 들어 올려주렴. 그럼 이 아빠는 정말 여한이 없을 것 같다.”
“만약 KBO로 간다면 꼭 그 팀으로 갈게요. 그리고 아빠 소원대로 우승에도 도전할게요.”
“그래. 여기는 벌써 밤 11시라 이만 자야겠네.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렴.”
“네. 아빠도 좋은 하루 보내세요.”
야구는 혼자서 우승 시킬 수 있는 스포츠가 아니다.
1999년 우승 이후로 단 한 차례도 없었던 그 팀.
사실 지금의 내가 가도 우승을 확신할 수는 없을 것 같다.
하지만 가끔은 선의의 거짓말이 필요한 것 아닐까?
전화를 끊고 다른 연락에 답장하기 전에 기사를 확인했다.
내 기록에 대한 찬사와 호의적인 댓글 반응들.
칭찬을 고래도 춤을 추게 만든다.
한껏 좋아진 기분으로 연락에 답장을 하고 식당으로 향했다.
“루키! 기사 봤어. 축하해.”
“앞으로도 좋은 플레이 기대할게.”
“예비 신인왕! 멋지다!”
“이런 날에는 어깨 좀 올라가야지. 애런 저지가 동시에 수상했을 때 식당에 선글라스 끼고 온건 아직도 가끔 생각난다니까.”
“그때 이야기 좀 루키들한테 그만 해요. 그날 햇빛이 너무 강해서 눈이 부셔서 그런 거니까.”
“하긴 식당이 워낙 눈부시긴 하지.”
“끝까지 비꼬기는. 어쨌든 축하한다. 너무 부담감 가지지는 말라고. 잘하면 찬양받고 못하면 욕먹는게 이 직업이니까.”
다들 기사를 봤는지 내 수상을 축하해주는 분위기였다.
비슷한 시기에 뉴욕 양키스에 온 게리 산체스와 이전에 동시 수상을 했던 애런 저지.
그들은 티격태격 하면서도 내게 엄지를 치켜세웠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잠깐의 휴식 후에 다들 오늘 경기를 위해 몸을 풀기 시작했다.
경기 시작 시간은 오후 1시.
오늘 선발 투수는 4선발 조던 몽고메리였다.
어제 예비 5선발에 이어서 다시 4선발을 출전시키는 뉴욕 양키스.
이렇게 되면 상위 선발 투수들은 6일의 휴식 기간을 갖게 된다.
아무래도 약체라고 불리는 시애틀과의 3연전에 힘을 쏟기보다는 다음 일정인 서부 지구 1위 휴스턴 애스트로스와의 경기에 집중한다는 뜻으로 보였다.
오늘도 대부분의 선수들은 선발 출장에서 제외됐다.
아무래도 상대가 상대이니만큼 모두가 쉬운 승리를 예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역시 야구는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이번 시즌 3.12의 방어율을 기록 중인 조던 몽고메리.
그는 3회까지는 무실점으로 잘 막아냈지만, 4회에만 3실점을 허용했다.
이대로 2이닝만 더 막으면 퀄리티 스타트.
나쁘지 않은 결과였다.
문제는 오늘 타선이 3회 말까지 1점도 뽑아내지 못했다는 것.
오늘 시애틀의 선발은 제임스 팩스턴.
19, 20년도를 뉴욕 양키스에서 보냈던 그는 오늘 최고의 피칭을 보여주고 있었다.
3이닝 연속 삼자범퇴.
독특한 투구폼을 가지고 있는 그는 유리 몸이라는 단점을 극복해내고 작년에 첫 규정이닝 투구에 성공했다.
16승 8패 방어율 3.13.
몇 년째 꼴찌를 도맡아 하는 시애틀에서 커리어 하이를 달성한 제임스 팩스턴.
그는 오늘도 좋은 투구를 계속 이어가고 있었다.
오늘은 선발로 출장한 주전 1번 DJ 르메이휴의 타석부터 시작되는 4회 말 양키스의 공격.
“최강남! 저 투수에 대한 분석도 했나?”
“그럼요. 항상 선발 투수와 필승조 투수에 대한 분석은 완벽하게 하는 편입니다.”
“그렇다면 타격 준비해. 2번 글레이버 토레스 대신에 대타로 내보낼 테니까.”
“알겠습니다.”
애런 분 감독의 지시를 받고 대기 타석으로 향했다.
마운드 위의 저 투수는 확실히 까다로운 스타일이다.
평균 96마일(154km/h)의 포심 이외에도 싱커, 커터, 슬라이더, 체인지업과 낙차 큰 너클 커브까지 던지는 투수.
게스 히터들에게 특히나 강한 면모를 보이는 다양한 구종을 던지는 제임스 팩스턴이었다.
따악―!
첫 타석에서 좌익수 뜬공으로 물러났던 DJ 르메이휴는 이번에 좌익수 앞 안타를 만들어냈다.
“타임!”
타격 코치는 내 교체를 심판에게 알렸고 순식간에 양키 스타디움의 열기가 뜨거워졌다.
“Strong Man! The Strongest Man! Choi! Gang! Nam!”
“하나만 쳐달라고! 시애틀한테 지는 양키스가 말이 되냐!”
“믿는다! 슈퍼 루키!”
내 응원가와 함께 여러 종류의 말들이 섞여서 들려왔다.
하지만 부담감은 전혀 없다.
오히려 대타로 나올 때는 평소보다 더 침착한 편이었으니.
커터, 슬라이더, 싱커는 우타자인 나에게 큰 힘을 발휘하기는 힘들다.
그렇다면 초구로 던질만한 공은 포심과 체인지업과 너클 커브.
난 어느덧 30경기에 가까운 출전을 했고, 나에 대한 분석 역시 모든 구단이 끝냈을 것이다.
내가 장타로 많이 만들어냈던 공은 포심, 체인지업, 슬라이더.
그렇다면 상대 투수가 초구로 던질만한 공은 너클 커브.
양키 스타디움의 경기장은 작으니 힘을 싣는 스윙보다는 가볍고 정확하게 맞춰내는 것이 더 중요하다.
특히나 그게 너클 커브라면 더더욱.
우우―
마운드 위의 투수는 1루 주자인 DJ 르메이휴에게 두 번 연속 견제구를 던졌다.
당연하게도 양키 스타디움은 야유로 가득 찼다.
달리기가 느려서 도루 확률이 제로에 가까운 1루 주자.
그럼에도 연속 견제를 하고 있다는 것은 나와의 싸움에 부담을 느끼고 있다는 뜻이나 다름없었다.
‘왔다.’
초구는 내 예상대로 너클 커브.
바깥쪽으로 향했지만, 스트라이크 존 안에는 충분히 들어올 법한 코스.
평소보다 오른쪽 팔꿈치를 훨씬 열고 조금 늦게 허리를 회전시키며 타격했다.
따아아아악―!
스윗 스팟에 정확하게 맞은 상대 투수의 비장의 무기.
우측 담장이 훨씬 짧은 양키 스타디움에서 2년을 뛰었던 투수답게, 타구를 바라보지도 않고 주저앉는 제임스 팩스턴.
내 타구는 당연하게도 우측 담장을 가볍게 넘어갔다.
“바로 그거야! 그게 슈퍼 루키지!”
“고맙다! 네 덕분에 요즘 경기 볼 맛이 난다!”
“사랑한다! 아프지 마!”
내 홈런에 환호하는 열성 팬들이 내게 소리쳤다.
관객석에 그물이 없는 메이저리그.
그 때문인지 훨씬 친근감을 느낄 수 있는 찬사였다.
난 웃으며 그들에게 손을 흔들어주고 더그아웃으로 들어왔다.
0:3으로 뒤처진 경기를 순식간에 2:3으로 만드는 2점 홈런.
이후로도 더그아웃에서는 대부분의 주전 선수들을 교체로 출장시켰고, 몽고메리는 추가 실점 없이 호투를 이어갔다.
결과는 6:4 양키스의 역전승.
3차전에는 1, 2차전에서 번갈아 가며 쉬었던 주전 선수들이 전부 선발 출장했다.
이번에도 9:5로 뉴욕 양키스의 승리.
확실히 내가 초반에 합류했을 때에 비해서 타선이 살아난 것이 느껴졌다.
내일부터 이어지는 경기는 AL 서부 지구 1위 휴스턴 애스트로스.
그들과의 경기를 위해 우리는 휴스턴으로 전용기를 타고 이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