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역대급 홈런왕의 탄생-85화 (85/126)

# 85

팀의 중심, 슈퍼 루키 (5)

“저 개자식 설마 또 사인 훔치기 같은 짓 하지는 않겠지?”

“19년도에 그 큰 난리가 있었는데 설마 그러겠어요?”

“그러고도 남을 사람이야. 진짜 동업자 정신이라고는 전혀 없는 감독이거든.”

“그래서 애런 분 감독님이 오늘 그런 지시를 내리셨을까요?”

“당연하지. 언제든 찝찝한 인간이라고.”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와 뉴욕 양키스의 1차전 당일.

오늘 2번 타자로 스쿼드에 이름을 올린 오도어가 상대 더그아웃을 노려보며 이야기했다.

뉴욕 양키스의 감독인 애런 분은 경기 시작 10분 전에 뜻밖의 이야기를 꺼냈다.

평소처럼 더그아웃에서 사인을 보내지 않고, 구종과 코스에 대한 선택권을 포수에게 위임했다.

물론 포수와 투수에게는 따로 언급이 있었을 것이다.

또한 타격이나 주루에 있어서도 오늘 경기는 선수 개인의 선택에 맡기겠다는 표현.

말 그대로 상대의 사인 스틸에 대한 대비를 철저하게 한 뉴욕 양키스였다.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의 감독 A.J. 힌치.

확실히 선수 시절부터 여러 가지 구설수에 오른 감독이긴 했다.

최근 가장 큰 이슈였던 월드시리즈 사인 훔치기 이후 디트로이트 타이거스로 복귀.

사실 디트로이트 타이거스는 객관적인 전력으로만 따져도 1위를 오를 수 있는 팀은 아니었다.

오늘 선발 투수만 봐도 그러했다.

현재 디트로이트의 2선발 투수인 매튜 보이드.

좌완 투수인 그는 통산 방어율 5.08에 올해 기록 역시 5.37로 그리 좋지는 않았다.

하지만 7승 3패라는 기록.

그것은 디트로이트의 타선이 얼마나 강한지를 증명하는 지표였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미겔 카브레라가 있었다.

전성기 시절에는 메이저리그 역사상 가장 훌륭했던 우타자 10명에 포함될 것이라는 메이저리그의 공식 의견.

나이에는 장사가 없다는 말처럼 16년도 마지막 실버 슬러거 획득 이후로 조금씩 기량이 하락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썩어도 준치는 준치.

작년 여전한 기량으로 3할이 넘는 타율과 4할이 넘는 출루율을 기록한 미겔 카브레라였다.

나이를 먹으며 점점 떨어지는 장타율을 높은 컨택과 뛰어난 선구안으로 커버한 선수.

올해로 40살의 선수는 자신이 연봉인 3천만 달러(약 336억)보다 가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에 성공했다.

확실히 저 나이에 저런 기량을 보여준다는 것은 많은 선수들에게 귀감이 될 것이다.

“플레이 볼!”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의 홈이었기에, 뉴욕 양키스의 공격부터 시작하는 1회 초.

선두 타자로는 평소처럼 DJ 르메이휴였다.

따악―!

잘 맞은 타구였지만, 아쉽게 유격수 정면 땅볼로 물러났다.

이어서 오늘 2번 타자로 출장한 루그네드 오도어가 타석에 들어섰다.

따아아악―!

그는 3구에 들어온 커브를 제대로 당겨 쳤고, 타구는 원바운드로 담장을 직격했다.

오도어는 여유롭게 2루에 안착.

1아웃 2루의 찬스에서 내 타석이 돌아왔다.

우우―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의 홈구장인 코메리카 파크.

야유 소리가 경기장을 가득 메웠다.

올해 좋은 기록을 보여주고 있는 팀인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오늘 양키스의 팬은 평소보다 적었고, 그들이 부르는 내 응원가는 4만 명이 넘는 관중들의 야유에 전부 묻혔다.

그래도 괜찮다.

이곳을 찾아준 팬들을 위한 좋은 타격으로 이 경기장을 도서관으로 만들어주면 되니까.

하지만 인생과 야구는 늘 예상대로 되지는 않는다.

“볼! 포볼!”

상대 선발 투수인 매튜 보이드는 나에게 4연속 볼을 던지며 승부를 피했다.

따악―!

이어서 올라온 양키스의 4번 타자 게리 산체스.

그는 초구를 타격했고 유격수 정면으로 향했다.

정석적인 643병살타.

양키스가 잔루 1, 2루의 좋은 찬스에서 아쉽게 득점에는 실패했다.

하지만 오늘 양키스의 투수는 코리 클루버였다.

뉴욕 양키스 부동의 1선발 투수로 올해 방어율 1.71을 기록 중인 에이스.

마이너 리그를 전전하다가 메이저리그 규정 이닝 소화 첫 시즌에 사이 영 상을 받은 코리 클루버.

그 역시 어리지 않은 37살의 나이에 두 번째 전성기를 맞이하는 투수였다.

“스트라이크 아웃!”

1번 타자를 삼진으로 돌려세운 코리 클루버.

언제나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무표정한 모습으로 두 번째 타자를 상대했다.

따악―!

빠르지만 유격수 정면의 타구.

내가 몸을 낮춰서 안정적으로 잡아낸 후에 여유롭게 1루로 공을 던졌다.

“아웃!”

최근 팀의 1루수로 합류한 히오 우르셸라.

그는 타격에서는 물론이고 수비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여주며, 포지션 변환에 있었던 많은 걱정들을 잠재웠다.

와아아―

3번 타자 카스트로의 등장에 코메리카 파크의 관중들이 열광하기 시작했다.

3번 타자 해롤드 카스트로, 5번 타자 윌리 카스트로.

4번 타자 미겔 카브레라를 사이에 둔 두 명의 카스트로라는 이름의 타자가 포함한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의 클린업 트리오.

이들이 타이거스 대부분의 득점을 책임질 정도로 폭발적인 타격을 자랑하고 있었다.

따악―!

해롤드 카스트로는 그런 관중들의 열광에 부흥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좌익수 앞에 떨어지는 깔끔한 안타.

하지만 아직 2아웃 1루였고 워낙 흔들리지 않는 멘탈을 가지고 있는 투수였기에, 그리 큰 걱정은 되지 않았다.

“히트 바이 피치!”

1-2로 4번 타자 미겔 카브레라를 구석으로 몰아세운 코리 클루버의 슬라이더가 손에서 빠지며, 허벅지를 살짝 스치는 데드볼.

2아웃 1, 2루의 상황이 되었다.

“볼!”

“스트라이크!”

득점권에 주자가 나가 있기는 했지만, 마운드 위의 저 투수는 여전히 믿음직스럽다.

그때 2루 주자인 해롤드 카스트로가 갑자기 오른쪽 귀를 만졌다.

사실 흔한 일이다.

단순히 귀가 가려워서 만질 수도 있으니까.

상대가 문제의 감독이 있는 디트로이트 타이거스만 아니었다면, 주자가 더그아웃이 아닌 타자에게 보내는 사인이 아니었다면 말이다.

따아아악―!

타임을 외칠 순간도 없이 코리 클루버는 커브를 던졌고, 5번 타자인 윌리 카스트로는 그 공을 우중간으로 날렸다.

‘이 새끼들 아직도 이러고 있네.’

난 3루 베이스 커버를 위해 달려가면서 생각했다.

방금 사인이 뭔지 정확히는 알 수 없었지만, 2루 주자가 타자에게 내리는 사인.

그리고 커브를 완벽한 타이밍에 타격한 타자.

투수의 그립을 훔쳐보고 사인을 내렸을 확률이 높았다.

2루 주자는 여유롭게 홈에 들어왔고 1루 주자였던 미겔 카브레라는 달리기가 느린 편이었기에, 3루에 멈춰 섰다.

타자는 2루까지 여유롭게 도착하며 1타점 2루타.

1회 말 선취 득점에 성공하며 1:0으로 앞서가는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였다.

난 심판에게 잠깐 타임을 외치고 마운드로 달려갔다.

“루키! 무슨 일이야? 설마 내가 1실점으로 흔들렸다고 생각해서는 아니지?”

“그립 숨겨서 잡아야 할 것 같아요.”

“뭐?”

“2루 주자가 커브 타격 전에 타자에게 사인을 내렸는데, 확실하지는 않아요.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이 새끼들 또 이렇게 야구하네. 무슨 말인지 알겠어. 고맙다.”

처음 봤다.

무표정으로 유명했던 코리 클루버의 얼굴에 미간이 찌푸려지는 모습은.

“스트라이크 아웃!”

2아웃 2, 3루의 위기.

코리 클루버는 전매특허인 커터로 삼진을 잡아내며 마운드를 내려왔다.

***

“코치님.”

“어. 무슨 일이야?”

선발 투수인 코리 클루버의 물음에 양키스의 투수 코치인 맷 블레이크가 놀라며 대답했다.

워낙 과묵하고 표현이 적은 코리 클루버.

작년부터 양키스에서 뛴 후로 선발 등판 날에는 코치에게 말을 건 적이 없었기에, 충분히 놀랄만한 맷 블레이크 투수 코치였다.

“아까 2아웃 1, 2루에서 2루 주자가 제 커브 그립을 보고 사인을 내렸다고 최강남 선수가 이야기했는데, 혹시 확인 가능하십니까? 진짜 그렇다면 저 다음 투수들도 알고 있어야 할 것 같아서요.”

“프런트 영상 분석 쪽에 전화 걸어보고 말해줄게. 감독님한테 이야기해도 괜찮겠니?”

“그럼요.”

“그래. 혹시 모르니까 2회에도 그립 최대한 숨기고 던져줘.”

“알겠습니다.”

투수의 그립을 분석한 사인 훔치기.

이것뿐만 아니라 또 어떤 비겁한 수를 꾸미고 있을지 모를 상대 감독이었다.

수석 코치에게 빠르게 이야기를 전달하고 영상 쪽에 전화를 걸었으며, 얼마 지나지 않아서 대답이 돌아왔다.

“알겠습니다. 바로 전달하겠습니다.”

정말 단순하고 미묘했지만, 타석에 서있는 타자의 눈에 쉽게 들어오는 큰 동작.

갑자기 3구를 던지기 3초 전에 2루 주자인 해롤드 카스트로가 오른쪽 귀를 만졌다는 이야기.

평소 잘 웃고 다녀서 ‘스마일 맨’이라는 별명이 있는 맷 블레이크 투수 코치의 표정에도 그늘이 졌다.

그는 감독에게 이 사실을 전달했고, 애런 분 감독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웃!”

5번 선두 타자가 볼넷을 얻었지만, 2회 초에도 양키스의 타선은 득점을 내지 못하며 끝이 났다.

***

“스트라이크 아웃!”

2회 말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의 공격.

코리 클루버는 범타 두 개와 마지막 타자에게 삼진을 잡아내며 삼자범퇴로 마무리했다.

3회 초 공격은 9번 타자 애런 힉스부터 시작됐다.

따악―!

초구를 타격했지만, 이번에도 2루수 정면 땅볼.

투수에게는 가끔 그런 날이 있다.

평소보다 공이 잘 감기고 무브먼트가 좋은 날.

아무래도 상대 선발 투수에게 오늘이 그런 날인 듯 했다.

“잠깐 모여 봐.”

DJ 르메이휴가 타석에 들어서고 2번 타자인 오도어가 대기 타석으로 가기 직전.

애런 분 감독이 선수들을 전부 불러 모았다.

“아무래도 1회에 2루 주자가 클루버의 그립을 알려준 것 같다. 다들 저따위로 야구하는 팀에게 질 거야?”

“아닙니다!”

평소와 달리 낮고 무거운 목소리의 애런 분 감독.

선수들 역시 그의 말을 듣고 상당히 격앙된 분위기였다.

“보여주자고. 우리가 어떤 팀인지. 야구가 어떤 스포츠인지.”

“알겠습니다!”

그는 짧고 굵게 말을 끝내고 다시 감독석으로 향했다.

“젠장. 내가 말했잖아. 무조건 출루할 테니까 너만 믿는다.”

“걱정 마세요. 저따위로 야구하는 팀한테 지는 건 저도 용납할 수가 없으니까.”

오도어는 나에게 한마디를 던지고 대기 타석으로 향했다.

사인 훔치기.

누군가는 이걸 하나의 전략이라고 표현했지만, 야구 선수로서 내 생각은 전혀 다르다.

열심히 양심 있게 야구를 하는 선수에 대한 일종의 기만.

또한 경기장을 찾아준 팬들에 대한 기만이라고 생각했다.

따악―!

첫 타석에 유격수 땅볼로 물러난 DJ 르메이휴가 이번에는 우익수 앞에 떨어지는 안타로 1루로 살아나갔다.

따악―!

따악―!

따악―!

“볼! 포볼!”

1아웃 1루의 상황에 타석에 들어선 2번 타자 루그네드 오도어.

그는 10구까지 가는 승부 끝에 볼넷을 얻어내며 1루로 걸어 나갔다.

아까와는 상황이 다르다.

1아웃 1, 2루에서 고의적인 볼넷을 준다면 1아웃 만루.

거기다가 4번 타자는 팀내 최고의 파워를 자랑하는 게리 산체스였기에, 상대 투수에게도 부담이 될 것이다.

“네가 그 루키냐? 첫 번째 타석에서는 공에 배트 한번 못 휘두르던데. 코메리카 파크의 야유에 기 좀 죽었나보다?”

“양심 있게 야구 좀 하자.”

“뭐?”

“구질구질하게 사인 훔쳐놓고 트래시 토크는. 쪽팔리지도 않냐?”

내 말에 상대 포수인 그레이슨 그라이너가 입을 다물었다.

아무래도 본인도 찔리는 게 있으니 그렇겠지.

“볼!”

초구는 바깥쪽에 빠지는 커브.

전 타석에서도 느꼈지만, 확실히 스카우팅 리포트나 동영상으로 확인한 것보다 공의 움직임이 좋았다.

따아악―!

2구로 들어온 공은 바깥쪽 낮은 포심.

그대로 걷어 올렸지만, 타이밍이 살짝 맞지 않으면서 폴대를 빗겨나가는 파울 홈런이 나왔다.

오늘 공이 좋다는 것은 본인이 더 잘 느끼고 있을 것이다.

거기에 던진 포심은 파울 홈런.

난 우타자였고 상대 투수는 좌투수이기에, 슬라이더를 던지기에도 겁이 날 것이다.

그렇다면 던질 수 있는 공은 체인지업과 커브.

아까부터 체인지업은 많이 빠지거나 가운데로 몰리는 상황이 나왔으니, 커브일 확률이 너무나도 높았다.

그리고 1-1에서 맞이하는 세 번째 공은 예상대로 몸쪽으로 들어오는 커브였다.

따아아아악―!

가만히 뒀으면 스트라이크 존에서 살짝 빠졌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처음부터 커브에 타이밍을 맞췄고 팔꿈치를 몸에 붙인 채 유연한 허리 회전을 이용한 스윙.

배트 스윗 스팟에 정확하게 맞춰낸 타구는 좌측 담장을 향해 날아가기 시작했다.

“양심 있게 야구 좀 하자. 그렇게 살지 말고.”

난 타구를 잠시 바라보고 뒤돌아서서 포수에게 한마디를 던진 후에 배트 플립을 선보였다.

그리고 오른손 검지를 하늘로 쭉 핀 채로 1루로 달리기 시작했다.

타구는 예상대로 좌측 담장을 훌쩍 넘었다.

또한 스탠드도 훌쩍 넘으며 경기장 밖으로 나가는 장외 쓰리런.

뉴욕 양키스가 3회 초에 디트로이트 타이거스를 상대로 3:1 역전에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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