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0
최연소 메이저리거 (10)
오늘 텍사스의 선발인 마이클 폴티네비치.
그가 공격적인 피칭으로 삼진을 잡는 투수라면 양키스의 선발인 조던 몽고메리는 정반대의 스타일이었다.
무브먼트와 다양한 변화구로 범타를 잡아내는 선발 투수.
리그 평균 이상의 슬라이더, 커브, 체인지업, 싱커와 리그 평균의 포심까지.
토미 존 수술 후에 전체적으로 오른 구속은 그의 방어율을 더 낮춰줬다.
따악―!
“아웃!”
그는 2번 타자를 우익수 뜬공으로 유도하고 3번 타자는 포수 뜬공으로 잡아냈다.
폴티네비치와 다른 의미의 삼자범퇴.
경기를 지켜보는 코치진과 선수, 팬들의 머릿속에는 모두 한 가지 생각만이 떠올랐다.
‘선취점이 가장 중요하다.’
전형적인 투수전으로 이어질 법한 양상.
물론 타격 수준은 뉴욕 양키스가 텍사스에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높았다.
하지만 야구란 것이 연봉과 실력만으로 되는 스포츠인가?
주 6일 총 162경기의 일정인 메이저리그.
우스갯소리로 아마추어와 붙어도 모든 경기를 이길 수는 없다는 말도 있었다.
다른 메이저 스포츠와는 다르게 매일 열리기에, 늘 완벽한 상태로 경기를 뛸 수 없는 메이저리그.
거기에 오늘 상대 선발은 유독 공이 잘 긁히는 날이었고, 원정 경기를 뛰는 상황이었다.
“스트라이크 아웃!”
그러한 상황에서 4번 타자인 게리 산체스마저 삼진으로 물러났다.
원정 경기지만 늘 몇천 명의 팬들이 따라오는 열성적인 양키스의 팬들.
그들이 목이 터지라고 내 응원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Strong Man! The Strongest Man! Choi! Gang! Nam!”
주자 없는 1아웃.
오늘은 5번 타자로 선발 출장한 내가 2회 초에 타석에 들어섰다.
1경기 이후로 딱히 시비를 걸어오지 않는 포수를 뒤로하고 투수를 바라봤다.
앞선 타자들의 공을 지켜 본 결과 완급조절이 뛰어난 상대 선발 투수 마이클 폴티네비치.
체력적으로 유리해서 투수들의 필수 덕목이라고 불리는 완급 조절이었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이야기가 달랐다.
동일한 타석에서 5마일(8km/h)이상 차이 나는 같은 구종을 던지는 투수.
거기다가 공의 궤적도 매 공마다 다른 스타일이었다.
포심, 슬라이더, 체인지업을 던지는 쓰리 피치 스타일인 것이 정말 다행이었다.
카운트가 몰리기 전에 타격하겠다는 생각을 하며 초구를 기다렸다.
“볼!”
스트라이크 존 정중앙으로 향하는 공이 타격 직전에 존 바깥으로 빠져나갔다.
끔찍한 궤적을 가진 슬라이더.
그 공을 머릿속에 새기며 다음 공을 기다렸다.
부웅―
“스트라이크!”
2구로 들어온 공은 체인지업.
알고 휘둘렀지만, 배트에 공을 맞추지 못했다.
전 타석인 4번 타자 게리 산체스에게 던진 체인지업보다 7마일(11km/h)나 떨어진 구속.
떨어지기까지 하는 서클 체인지업의 궤적이었기에, 알고도 쉽게 쳐낼 수 없는 타이밍이었다.
‘일단은 체인지업은 배제하고 슬라이더와 포심 타이밍만 잡아야겠네.’
“볼!”
3구로 들어온 체인지업을 걸러냈다.
이제 2-1의 카운트.
여기서 볼을 던진다면 상당히 수세에 몰리는 투수였기에, 카운트를 잡으러 들어올 확률이 높았다.
따아악―!
바깥쪽으로 휘어 나가는 슬라이더에 그대로 배트를 휘둘렀다.
아까보다 살짝 빠른 구속에 조금 커진 공의 궤적.
확실히 스윗 스팟에 맞추기 힘든 더러운 공을 던지는 투수였다.
살짝 빗맞은 타구를 우익수가 끝까지 따라가는 모습.
다행히도 공은 여유롭게 파울 담장을 넘어가며 2-2에서 승부를 계속할 수 있게 되었다.
“생각보다 배트가 따라 나오네? 네 앞에 타자들은 스치지도 못했는데.”
“그러게요. 공이 수박만 하게 보이네.”
빗맞아서 약간 찌릿한 오른손을 주무르며, 오랜만에 트래시 토크를 날리는 포수에게 웃어줬다.
포수는 그런 내게 별말을 하지 않고 표정을 찡그리며 입을 닫았다.
‘이렇게 되면 체인지업이 들어오겠네. 타이밍을 느리게 잡고 포심이나 슬라이더가 오면 커트하는 방식으로 가야겠다.’
아까 그런 슬라이더가 들어온다면 확실하게 커트할 자신은 없었다.
하지만 인생과 야구는 늘 선택의 연속.
그리고 늘 좋은 결과만을 장담할 수 없는 것이기도 했다.
폴티네비치의 손에서 다섯 번째 공이 떠났다.
스트라이크 존 아래에 걸칠만한 공.
내 배트가 그 공을 타격하기 위해 따라왔고 공은 아래로 방향을 바꿨다.
오른쪽 팔꿈치를 최대한 몸쪽으로 당겨서 그대로 걷어 올렸다.
따아아아아악―!
골프 스윙과도 비슷한 자세.
걷어 올린 공은 끝없이 날아갔고 전광판을 맞추고 나서야 힘없이 떨어졌다.
“나이스 홈런!”
“감사합니다.”
내 홈런을 본 1루 주루 코치의 찬사를 시작으로.
“나이스 배팅!”
“전광판을 맞췄네. 그 마른 몸에서도 생각보다 타구에 힘이 실린단 말이야.”
“나이스 루키!”
많은 사람들의 찬사가 이어졌다.
와아아―
물론 원정 경기를 찾은 뉴욕 양키스 팬들의 환호가 글로브 라이프 필드를 가득 메웠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중요한 상황에 나온 솔로 홈런.
이 홈런으로 양키스는 2회 초부터 1:0으로 앞서가기 시작했다.
***
[최강남 선수가 2-2에서 체인지업을 걷어 올리며 홈런을 하나 추가합니다!]
[이렇게 되면 양키스 선발인 몽고메리 입장에서는 정말 마음 편하게 던질 수 있게 된 상황이죠.]
[그렇습니다. 거기다가 전광판을 때려내는 홈런을 추가하며 8경기 6홈런이라는 정말 대단한 기록을 올리고 있는 루키거든요. 과연 이 선수의 독주를 누가 막을 수 있을까요!]
양키스 YES Network의 해설진은 변함없는 최강남의 활약에 또 다시 환호를 내질렀다.
메이저리그에서 선수로 뛰었던 해설위원 브로디는 최강남의 기록들을 다시 확인한 후에 해설을 이어갔다.
[우측에 3개 좌측에 2개 중앙에 1개! 기록도 기록이지만 약점이 전혀 보이지 않는 초특급 유망주의 홈런 방향입니다!]
[다른 선수에 비해서 비교적 왜소한 몸이거든요? 프로필상 188cm에 84kg인데 최근 2kg 증량에 성공했다고 하더라고요. 브로디 해설위원은 저런 몸으로 이런 많은 홈런을 때려낸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기본적으로 힘을 실어서 때릴 수 있는 선수예요. 허리와 배트 회전 속도도 남들보다 훨씬 빠릅니다. 이런 선수들의 대체적인 약점이 컨택이 낮다는 건데 타격은 물론이고 선구안도 정말 좋은 최강남 선수거든요? 그냥 뉴욕 양키스에게 하늘에서 뚝 떨어진 보물이나 다름없네요.]
[정말 엄청난 찬사네요. 브로디 해설위원이 이 정도로 장점만 늘어놓는 경우는 저도 처음 보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최강남의 홈런으로 1:0으로 앞서가는 뉴욕 양키스! 파죽지세의 기세로 8연승에 도전합니다!]
해설진의 찬사와 더불어서 중계를 인터넷으로 지켜보는 시청자들의 반응 역시 뜨거웠다.
― 벌써 홈런 6개라고? 홈런 60개 페이스네
ㄴ 저런 선수를 왜 이리 늦게 메이저리그에 올렸어
ㄴ 이제 겨우 16살이잖아 저렇게 포텐 터질 줄 누가 알았겠어
ㄴ 근데 진짜 잘하긴 한다
ㄴ 16살 맞냐? 피지컬 좀만 좋아지면 진짜 날아다니겠는데
ㄴ 벌써 날아다니는 중
ㄴ 오늘 경기 이기고 레드삭스가 지면 선두 탈환이지?
ㄴ 양키스는 언제나 지구 1위는 해야지 페이롤이 얼만데
ㄴ 올해의 양키스는 다르다!
― 수비에서도 괜찮고 이 정도면 히오 우르셸라 부상 복귀해도 유격수 주전은 최강남이겠는데?
ㄴ 진짜 이놈의 양키스 우승 대체 언제 하냐
ㄴ 인정 매년 우승 후보만 몇 년째야
ㄴ 올해는 진짜 우승 해야지
시청자들의 반응 역시 호평 일색.
또한 뉴욕의 기자들은 최강남의 홈런을 보고 벌써부터 뉴욕 양키스의 8연승에 대한 기사들을 내용 없이 쏟아내기 시작했다.
***
경기는 모두의 예상대로 투수전으로 이어졌다.
텍사스 레인저스의 선발 투수인 마이클 폴티네비치.
그는 나에게 맞은 홈런을 제외하고 7이닝 1실점의 호투를 보여줬다.
7이닝 동안 내 타석은 두 번이 왔다.
두 번째 타석은 연속 볼을 던지며 볼넷을 얻어냈다.
세 번째 타석은 초구 슬라이더를 당겨 치며 좌익수 앞에 떨어지는 안타를 만들어냈다.
뉴욕 양키스의 선발 투수인 조던 몽고메리 역시 7이닝 1실점의 호투.
5회에 선두 타자에게 2루타를 맞은 후에 안타를 추가로 맞으며 첫 실점을 허용했다.
다음 타자의 안타성 타구를 내가 잘 잡아내서 병살타.
그 다음 타자까지 범타로 마무리하며 다행히 1실점으로 위기를 끝냈다.
8회에는 양팀의 중계 투수가 호투를 보여주며 무득점으로 끝이 났다.
1:1 무승부 상황에서 대망의 정규 이닝 마지막 9회.
9회 초 뉴욕 양키스의 공격은 4번 타자인 게리 산체스부터 시작했다.
상대 마운드에 올라온 투수는 이안 케네디.
따아아악―!
케네디의 초구를 때려낸 산체스는 좌측 담장을 원바운드로 직격하는 장타를 때려냈다.
워낙 달리기가 느린 산체스였지만, 여유롭게 2루까지 들어올 수 있는 타구.
그리고 대주자인 브렛 가드너와 교체되었다.
커리어 하이 49개의 도루를 기록한 브렛 가드너.
그가 2루에 있다는 사실은 안타를 때려내기만 해도 홈으로 들어올 수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더그아웃의 사인은 특별하게 없는 상황.
공을 배트에 정확히 맞히겠다는 생각을 하며 투수의 초구를 기다렸다.
초구는 몸쪽 낙차 큰 커브.
난 그대로 커브를 당겨 쳤고 라인 드라이브성 타구가 3루를 향해 빠른 속도로 날아갔다.
3루수가 슬라이딩으로 타구를 건드렸지만, 글러브를 맞고 튀어나오는 모습.
난 여유롭게 1루에 안착했고 주자는 3루에 멈춰 섰다.
노아웃 1, 3루의 상황.
별다른 지시사항이 없는 더그아웃에 2루 도루를 하겠다는 사인을 보냈다.
발이 상당히 빠른 3루 주자이니 여차하면 홈으로 쇄도까지 할 수 있을 것이다.
더그아웃에서는 알겠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마운드 위의 투수 발끝에 집중한 나는 좋은 타이밍에 스타트를 끊었다.
포수가 2루로 공을 던짐과 동시에 3루 주자는 스타트.
“세이프!”
일단 2루에서는 세이프 판정이 나왔다.
공을 잡은 2루수는 빠르게 홈으로 던졌다.
“세이프!”
정말 아슬아슬한 타이밍에 홈에서 세이프 판정을 받은 3루 주자 브렛 가드너.
텍사스 레인저스에서는 비디오 판독을 요청했지만, 결과는 바뀌지 않았다.
이후로 추가 점수를 내지는 못했지만, 우리에게는 리그 최고의 마무리라고 불리는 아롤디스 채프먼이 있었다.
그에게 있어서 1점이란 2, 3점과 별로 다를 바가 없었다.
9회 말 정규 이닝 텍사스 레인저스의 마지막 공격이 그렇게 시작됐다.
“스트라이크 아웃!”
채프먼은 첫 번째 타자를 뜬공으로 잡아내고 연이어 두 타자를 모두 삼진으로 돌려세웠다.
뉴욕 양키스의 2:1 승리.
전반기 마지막 경기까지 승리를 추가하며 8연승으로 마무리하게 되었다.
경기 MVP는 오늘 좋은 투구를 보여준 조던 몽고메리가 받게 되었다.
최근 완벽하게 기세가 살아나고 있는 뉴욕 양키스의 선발진.
타자들의 타격감도 조금씩 올라오고 있었고, 전체적인 분위기도 나쁘지 않았다.
애매한 것은 양키스의 중계 투수.
확실하게 1, 2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아낼 투수 한두 명만 더 생긴다면 충분히 우승을 노려볼만한 상황이었다.
“다들 전반기 마지막 경기까지 집중하느라 고생이 많았다. 레드삭스는 오늘 경기에서 졌다는 소식이야. 이로써 우리가 동부 지구 단독 1위가 되었어. 후반기에도 좋은 모습 보여주길 바란다.”
“고생하셨습니다!”
동부 지구 1위를 다시 탈환하게 된 뉴욕 양키스.
우리의 도전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