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8
최연소 메이저리거 (8)
노아웃 1, 2루의 상황.
마운드에 올라온 상대 투수는 일본인 아리하라 코헤이였다.
최고 155km/h에 평균 140km/h 중후반의 포심을 던지는 아리하라.
그의 장점은 투심, 체인지업, 포크볼, 슬라이더, 커터, 커브 등 다양한 변화구를 구사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난 이런 변화구 투수에게 무척이나 강한 편이었다.
“게스 히터 스타일인 것 같은데 초반 몇 경기에서 운이 좋았나 보지?”
오늘 텍사스 레인저스의 포수 마스크를 쓴 제프 매티스.
커리어 통산 0.198의 타율을 기록하고 있는 제프가 내게 트래시 토크를 시작했다.
아무리 트래시 토크라고 하지만, 내 기록을 보고 코스와 구종을 예측해서 치는 게스 히터라는 이야기를 하다니.
어처구니없는 헛소리였기에 굳이 대꾸는 하지 않았다.
프레이밍은 리그 평균이었지만, 블로킹 하나만큼은 좋은 평가를 받는 수비형 포수.
볼을 스트라이크로 둔갑시켰지만, 시비는 걸지 않던 탬파베이의 포수가 갑자기 그리워졌다.
마음 같아서는 홈런이라도 하나 치고 세리머니라도 하고 싶다.
하지만 난 더 이상 첫 경기를 뛰는 루키가 아니었고, 이곳은 악명 높은 텍사스의 홈구장.
그런 제스처를 보여준다면 이번 3연전 내내 머리로 날아오는 공을 피하는데 모든 신경을 쏟아야 할 것이다.
“볼!”
초구는 원바운드로 떨어지는 포크볼.
노아웃 1, 2루의 상황에서 원바운드 변화구라니.
확실히 블로킹 하나만큼은 리그 최상위권이라고 불리는 포수에게 던질법한 공이었다.
“볼!”
2구는 바깥쪽으로 휘어서 존을 빠져나가는 슬라이더.
이번 공도 지켜봤다.
“원하는 공이 오지 않는 모양이지? 아니면 텍사스 분위기가 우리 루키에게 많이 두려움을 주려나?”
“입 좀 닥치고 하자. 백스윙으로 뒤통수 깨버리기 전에.”
“뭐?”
“너는 경기 전에 선수 영상도 안 챙겨보냐? 내 벤치 클리어링 못 봤으면 이번에 보여줄게.”
하도 쫑알쫑알 대길래 좀 거칠게 표현했다.
그러니 상대 포수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고 난 만족스럽게 세 번째 공을 기다렸다.
“스트라이크!”
세 번째 공은 바깥쪽 꽉 차는 코스로 들어온 커터.
많은 변화구를 갖고 있다는 장점은 이럴 때 확실하게 드러난다.
슬라이더라고 생각한 나는 지켜봤다.
실제로 아까 궤적으로 들어온다면 충분히 존 밖으로 나갔을 것이다.
하지만 아리하라 코헤이는 다양한 변화구를 던질 수 있는 투수.
조금 덜 휘어서 들어온 커터에 카운트를 하나 버리게 되었다.
뭐든 깊게 생각하는 것은 내 성격에 맞지 않는다.
아까 포수가 날 게스 히터라고 불렀지만, 난 순간적인 감각에 의존해서 타격하는 편이었다.
따아아아악―!
바로 지금처럼.
2-1의 카운트에서 네 번째 공은 몸쪽으로 향했고 난 있는 힘껏 배트를 휘둘렀다.
완벽하게 당겨 친 타구는 여유롭게 좌측 담장을 넘어서 스탠드 중간에 떨어졌다.
4만 명이 넘는 텍사스의 홈구장 글로브 라이프 필드가 숙연해졌다.
와아아―!
원정까지 따라온 3천 명의 열성적인 뉴욕 양키스 팬들만 제외하고 말이다.
그렇게 내 홈런으로 1회 초부터 3:0 리드를 시작하게 된 뉴욕 양키스였다.
“게스 히터가 첫 타석부터 운 하나는 더럽게 좋네. 몸쪽 투심이 들어올지는 어떻게 알았냐?”
“투심? 내가 쳤던 공이 투심이었나. 몰랐네. 그냥 몸쪽에 공이 오니까 반사적으로 쳐낸 거라서.”
“···뭐?”
벙쪄보이는 표정을 한 포수를 뒤로하고 더그아웃으로 들어왔다.
선수들을 비롯한 코치와 감독의 환호까지 받고 벤치에 앉았다.
‘모 아니면 도’라는 평가를 받는 텍사스의 선발 아리하라 코헤이.
저번 경기에서 7이닝 무실점을 한 아리하라는 오늘 경기에서 상당히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따아아아악―!
그는 나 다음 타자로 들어선 4번 타자 게리 산체스에게도 홈런을 맞았다.
홈경기에서 1회 초에 4명의 타자를 상대해서 4실점.
그 이후로도 안타를 두 개나 맞았지만, 추가 실점은 하지 않으며 1회 초 공격이 끝이 났다.
1회 말 뉴욕 양키스의 수비.
마운드에는 최근 완벽한 피칭을 보여주고 있는 게릿 콜이 올라왔다.
“스트라이크 아웃!”
1번 타자부터 삼진을 잡아내며 좋은 투구를 보여주는 게릿 콜.
그는 2번과 3번을 땅볼과 뜬공으로 잡아내며 삼자범퇴로 빠르게 1회 말 수비를 끝냈다.
2회 초 뉴욕 양키스의 공격.
다시 마운드에 올라온 상대 투수 아리하라 코헤이였다.
“스트라이크 아웃!”
비록 1회에 4실점 후에 2개의 안타를 맞았지만, 마지막 아웃 카운트 두 개를 삼진으로 잡아낸 아리하라.
그는 2회 초에도 좋은 투구를 이어가며 두 번째 타석에 들어선 1번 타자 DJ 르메이휴를 4구 삼진으로 돌려세웠다.
2번 타자는 이틀전까지 5번을 뛰던 애런 저지.
그는 3구에 들어온 체인지업을 타격했지만, 우익수 뜬공으로 물러났다.
“Strong Man! The Strongest Man! Choi! Gang! Nam!”
그렇게 2아웃 주자 없는 상황에서 내 두 번째 타석이 돌아왔다.
이번에는 상대 포수가 별다른 시비를 걸어오지는 않았다.
따아아아악―!
난 초구로 들어온 몸쪽 슬라이더를 그대로 당겨 쳤다.
배트 스윗 스팟에 정확하게 맞은 내 타구는 이번에도 쭉쭉 날아가서 좌측 담장을 가볍게 넘어갔다.
그렇게 아리하라는 2회에 마운드에서 내려오게 되었다.
***
[오늘 첫 타석에서 좋은 3점 홈런을 쳐낸 최강남 선수의 두 번째 타석입니다. 쳤어요! 큽니다!]
[좌측 담장을 가볍게 넘어가는 솔로 포! 최강남이 오늘 경기에만 두 번째 홈런을 때려내며 텍사스와의 원정 첫 경기에서 본인의 존재감을 확실하게 드러냅니다!]
[투수 코치가 1회에 이어서 2회에도 마운드에 올라갔죠? 이번에는 교체일 확률이 큰데요.]
5연승을 하고 있는 뉴욕 양키스.
양키스의 해설진인 YES Network 역시 높은 텐션으로 해설을 이어가고 있었다.
잠깐이었지만 동부지구 3위까지 떨어진 뉴욕 양키스.
그때에 비하면 파죽지세의 5연승은 훨씬 해설하기 수월했다.
거기다가 현재 레드삭스와 함께 공동 1위의 상황.
해설진 입장에서 이때보다 할 맛 나는 순간은 쉽게 찾아오지 않았다.
똑똑―
그때 조용하게 유리벽에 노크를 하고 들어온 PD가 종이를 건넸다.
PD에게 자료를 받은 해설진 브로디.
상당히 놀란 듯 눈이 동그랗게 커진 브로디가 자료를 자세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텍사스의 투수가 조일러 로드리게스로 변경됩니다. 이렇게 되면 초반부터 승기를 확실하게 잡게 된 뉴욕 양키스죠.]
[방금 정말 재밌는 정보가 하나 들어왔네요. 최강남 선수의 양키 스타디움에서 기록이 5경기 3홈런. 전부 우측 담장으로 밀어서 쳐낸 홈런이거든요? 그런데 오늘 2개의 홈런은 모두 당겨친 홈런입니다.]
[텍사스의 홈구장인 글로브 라이프 필드가 좌측 담장이 1m 가까운 것이 영향이 클까요?]
[그렇다기보다는 뉴욕 양키스처럼 크게 담장의 거리가 차이 나지 않는다면, 밀고 당겨서 치는 것에 모두 자신 있다는 생각으로 보이네요.]
[정말 뉴욕 양키스에 엄청난 유망주가 들어왔네요. 히오 우르셸라의 2주의 공백기만 완벽하게 채워줘도 대활약이라고 생각했던 16세의 유망주! 그가 이번 원정 경기에서도 뉴욕 양키스에게 연승을 가져다줄 수 있을지 기대가 됩니다!]
최강남의 활약에 열광하는 것은 해설진만이 아니었다.
― 이게 진정한 유망주지
ㄴ 16살인데 벌써 이렇게 활약하면 크면 어떻게 되는 거냐
ㄴ 무조건 다음 계약에도 잡아야지
ㄴ 신인왕 가능? 선정 무효 기준이 130타석이었나?
ㄴ 130타수 미만인데 이 페이스면 충분히 넘을 테니까, 앞으로 활약이 중요할 듯
ㄴ 최연소 유망주도 갈아 치우는 건가?
ㄴ 으휴 양키스 벌써부터 설레발
ㄴ 레드삭스 팬 너 나가
ㄴ 레드삭스 주제에 무슨 1위냐
ㄴ 인정 레드삭스는 평생 양키스 아래지
누구보다 야구에 미친 뉴욕 양키스의 팬들.
그들은 그런 최강남의 신인왕 후보 가능성까지 벌써부터 거론하기 시작했다.
***
게릿 콜은 오늘도 저번 경기처럼 좋은 투구 내용을 보여줬다.
7.1이닝 1실점.
밋밋한 실투를 솔로 홈런을 맞은 것을 제외하면 완벽한 피칭이었다.
거기다가 초반부터 폭발하기 시작한 타선은 계속해서 점수를 쏟아냈다.
텍사스 레인저스는 2회에 올라온 조일러 로드리게스 이후로도 5명의 투수가 더 올라왔다.
이렇게 불펜을 풀가동했다면, 앞으로 있을 2, 3차전에서도 유리한 위치를 선점할 수 있게 된 뉴욕 양키스였다.
경기는 9:3 승리.
난 다음 세 타석에서 볼넷 두 개와 범타 하나를 기록했다.
당연하게도 이번 텍사스와의 1차전 MVP는 내가 받게 되었다.
인터뷰의 내용은 특별한 건 없었다.
난 그런 아나운서의 질문에 친절하게 답해주고 인터뷰를 마쳤다.
애런 분 감독의 피드백도 끝이 나고 호텔 식당으로 향했다.
확실히 메이저리그의 식단은 마이너리그와는 비교도 되지 않았다.
최고급 고기는 물론이고 영양소가 골고루 균형이 잡힌 식단.
경기가 끝나고 긴장이 완전 풀린 상태였기에, 정신없이 먹어치웠다.
“루키. 요즘 너무 잘하는 거 아니야?”
“오늘 제가 밥 산다니까 왜 호텔 식당으로 왔어요.”
“밥은 내일 경기에서 사. 오늘 내가 워낙 못해서 좀 그렇네. 빠르게 저녁 먹고 훈련에 집중하려고 그랬지.”
“알겠어요. 내일은 진짜 제가 밥 살 수 있도록 해줘요. 오늘 좋은 모습 보여줬으니.”
“그래. 내일은 나도 루키에게 밥 얻어먹을 자격이 있는 기록을 가져오도록 하지.”
오늘 5타석 4타수 1안타 1볼넷을 기록한 2루수 루그네드 오도어.
그와 가벼운 농담을 주고받으면서 저녁을 먹었다.
그렇게 호텔 방으로 돌아와서 샤워를 마쳤다.
오늘은 하루를 쉬어서 그런지 유독 정신적으로 지친 하루였다.
커너 코퍼레이션의 제임스에게 광고 관련 문자를 보내고 빠르게 잠에 들었다.
***
“제임스! 최강남 관련 광고들 어떻게 됐어?”
“최강남 선수에게 연락받았는데 1시간 이하의 광고 촬영은 괜찮다고 합니다. 되도록 경기 영상 위주로 만들어서 짧은 촬영 시간을 원한다는 의견이었습니다. 아무래도 메이저리그 시즌이 워낙 타이트하니까요.”
“역시 나이에 비해서 프로 정신이 투철한 꼬맹이라니까. 하긴 빅 리그에서 벌써 7경기 선발 출장이니, 그럴 만도 하지. 오늘 2홈런 후에 MVP 인터뷰는 특이점 없었고?”
“예. 특별히 신경 쓰실만한 내용은 없었습니다.”
“알겠어. 광고 최대한 선수에게 지장 가지 않도록 잘 해결하고.”
“알겠습니다.”
처음에 커너가 최강남을 영입한 이유는 가능성이 있는 유망주라는 확신이 들어서였다.
물론 아시아의 선수라면 자국에 화제성을 부르기 쉽다는 것도 알고는 있었다.
하지만 이제 고작 16살의 선수였다.
사실 3년의 계약을 제의한 이유도 그 기간 안에 메이저리그에서 교체 선수 정도의 경험을 쌓고, 좋은 조건으로 이적하기 위한 이유였다.
그런데 최강남이 뜻밖에도 너무나 빠르게 빅 리그 데뷔에 성공했다.
거기다가 최근 7경기에서 5홈런은 물론이고 에러 하나 없는 수비를 보여주며 주전 선수로서의 가능성을 제대로 보여줬다.
그렇다고 최강남이 신인이 많은 약한 팀에서 뛰고 있나?
당연히 아니었다.
야구를 전혀 모르는 사람도 한 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뉴욕 양키스.
들어보지 못한 사람이라도 로고가 박힌 모자를 써봤을 바로 그 빅 리그 주전이었다.
‘정말 사람 일은 모르네.’
16살의 선수가 그런 뉴욕 양키스의 주전으로 뛰는 날이 오다니.
그것도 본인의 코퍼레이션에 속한 선수가.
커너는 진심으로 기도했다.
선수 본인과 회사를 위해 최강남이 더 좋은 모습을 보여 달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