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7
최연소 메이저리거 (7)
혹자는 말한다.
야구는 인생처럼 한 치 앞도 알 수가 없다고.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오늘 경기는 인생보다는 훨씬 예측이 쉬웠다.
탬파베이 레이스의 투수는 3선발로 최근 좋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마이클 와카.
그는 4이닝 5실점을 하며 저번 경기에 이어서 이번에도 5이닝을 채우지 못하고 강판 당했다.
반면 뉴욕 양키스의 선발 투수는 1선발인 코리 클루버.
2019년과 2020년 연이은 부상.
그리고 2021년의 슬럼프를 겪고 새롭게 부활에 성공한 코리 클루버였다.
그는 오늘 7이닝 무실점의 완벽한 투구 내용을 보여줬다.
작년부터 30대 중반의 선수들에게 흔하게 있는 부진을 보여준 코리 클루버.
그런 그에게 은퇴를 해야 한다는 기자들과 팬에게 오늘 경기에서 확실히 보여줬다.
자신은 3번째 사이 영에 대한 도전을 계속할 것이라는 사실을.
“오늘 수비 좋았어. 올해 야수의 수비 중에서 아까 그 수비가 제일 완벽했어. 정말 만족스러웠다고.”
“감사합니다.”
“다음 경기도 진심으로 기대하지. 앞으로 야구 인생도 오늘처럼만 간다면 좋을 텐데. 너무 즐겁네.”
코리 클루버는 다른 투수와 교체되고 나서야, 내가 아까 보여준 수비에 대해서 감사 인사를 표했다.
즐겁다는 말과는 다르게 계속해서 무표정인 코리 클루버.
좀 특이하긴 했지만 나쁜 선수는 아니었다.
같은 팀 입장에서 공 잘 던지는 투수가 나쁘기 힘들기도 했지만, 선발 등판 중인 투수들 중에서 대화를 하는 선수도 워낙 보기 힘든 케이스였으니까.
그냥 감사 인사라고 생각하고 그러려니 했다.
아까 4회 초에 보여준 수비는 운도 조금 따라줬다.
1아웃 2, 3루의 위기.
상대 타자의 타구는 곧바로 나에게 향했고, 난 공을 잡고 벙쪄서 눈앞에 있는 2루 주자를 태그해서 더블 아웃을 잡아냈다.
전형적인 유격수 직선타.
코리 클루버가 오늘 직면한 유일한 위기이기도 했다.
경기는 큰 점수 차인 7:0으로 이기고 있지만, 아직 끝나지는 않았다.
“Strong Man! The Strongest Man! Choi! Gang! Nam!”
오늘 네 번째 타석.
첫 타석에서는 담장을 직격하는 2루타를 때려냈다.
그리고 이어서 두 타석에는 내게 좋은 공을 던지지 않는 상대 투수들이었다.
땅볼 하나와 뜬공 하나를 치며 두 타석 연속 범타로 물러났다.
“볼! 포볼!”
이번 타석에서도 내게 좋은 코스의 공은 들어오지 않았다.
볼넷으로 여유롭게 1루에 걸어 나갔다.
“큰 점수 차에는 도루 안 하는 게 불문율인 거 알지?”
“그럼요.”
“수비랑 스윙 진짜 깔끔하더라. 또 언제 만날지는 모르겠지만, 그때도 잘 해보자고.”
“잘 부탁드립니다.”
탬파베이 레이스의 1루 수비는 어제에 이어서 오늘도 선발로 출장한 최지혁 선수.
오랜만에 한국어로 이야기를 하고 주루에 집중했다.
따악―!
3번 타자로 타석에 들어선 애런 힉스.
최근 좋지 않은 모습을 보여준 그는 이번 타구도 유격수 정면 땅볼을 쳐냈다.
워낙 빠른 타구였기에 슬라이딩도 하지 못하고 1루 주자인 내가 아웃.
그리고 본인도 아웃되며 오늘 두 번째 병살타를 기록했다.
세이브 요건은 되지 않았기에, 채프먼은 몸을 풀지조차 않았다.
8회 이후로 올라온 양키스 3명의 계투.
2이닝 동안 1실점을 기록하며 7:1로 뉴욕 양키스가 승리했다.
이렇게 탬파베이 레이스와의 시리즈를 모두 스윕하게 된 뉴욕 양키스.
오늘 경기의 MVP는 최근 3연속 좋은 모습을 보여준 선발 투수 코리 클루버가 받게 되었다.
“오늘 경기까지 이기느라 고생이 많았다. 레드삭스가 오늘 경기 이기면서 현재 공동 1위니까, 다음 텍사스 원정에서 우리가 1위를 탈환하자고.”
“고생하셨습니다!”
애런 분 감독의 가벼운 피드백 후에 가볍게 생필품을 챙기기 위해 숙소로 향했다.
“루키! 양키스 전용기는 처음 타보지?”
“네. 원정 경기를 버스 안 타고 이동하는 것만 해도 너무 좋네요.”
“버스랑 비교할 수준이 아니지. 숙소 밥보다 전용기 기내식이 훨씬 좋은 수준이니까 말이야. 이번에 짐 챙길 때 면도기는 꼭 챙기라고. 이놈의 뉴욕 양키스는 면도는 필수사항으로 강조하면서 스태프들이 면도기는 안 챙긴다니까. 호텔 일회용 면도기는 따갑잖아.”
“충고 감사합니다. 특별하게 다른 물품도 챙겨야 할 것 있을까요?”
“그냥 가벼운 생필품 정도. 어차피 야구 관련 용품들은 스태프들이 전부 챙기니까.”
탈모에 완벽한 면도로 다람쥐가 되어버린 루그네드 오도어.
나와 키스톤 콤비로 뛰고 있는 그가 나에게 몇 가지 조언을 알려줬다.
그리고 이내 평소처럼 농담이 섞인 장난을 걸었다.
이번 시즌 뉴욕 양키스의 5연승이 내 덕이라는 뭐 그런 것들.
그런 시답잖은 이야기를 나누며 숙소로 향했다.
***
“대리님. 인터뷰 질문사항 전부 정리했습니다. 그런데 너무 내용이 무미건조하지 않습니까?”
“최강남은 우리 승진 동아줄이라고. 아군한테 악의적인 기사라도 쓰자는 얘기야?”
“아뇨.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한 이유가 이미 그 정도의 레벨을 넘어섰다는 확신 때문인가요? 이런 이야기는 괜찮을 것 같아서···.”
“괜히 이상한 소리 하지 마. 최강남 선수가 부진 하는 모습 보여줘서 마이너리그라도 내려간다면 네 시말서로는 안 통해. 최소한 사직서 낼 생각은 하고 있어야 할 테니.”
“명심하겠습니다.”
미리 텍사스 홈경기 근처의 5성급 호텔에 도착한 MBS 인터뷰 팀.
지휘를 맡은 김동환 대리는 연예부 출신 후임의 이야기에 불같이 화를 내며 이야기했다.
워낙 광적인 야구팬이었기에, 선수들의 심정을 잘 아는 김동환 대리.
개복치와도 같은 선수들의 마인드는 기자들의 기사 한두 줄에도 순식간에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오늘 인터뷰에 임하는 마인드는 더욱 조심스러웠다.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반갑습니다. 뉴욕 양키스에서 뛰고 있는 최강남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최강남의 당당한 모습을 보고 조금 긴장이 풀렸다.
너무나도 어린 메이저리그 초특급 유망주.
예상외로 그는 평온했고 자신감이 넘치는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면모를 보여줬다.
‘이 느낌은 베테랑 주장이랑 인터뷰하는 것 같네.’
그런 최강남과 인터뷰를 하는 김동환 대리는 조금 자신감 있게 질문을 던졌다.
어쩌면 선수에게 있어서 부담이 될 수도 있는 질문.
하지만 지금 눈앞의 유망주는 그동안 봐왔던 신인과 다르다는 확신에서 나오는 질문이었다.
“혹시 최강남 선수의 올해 목표를 들을 수 있을까요? 꼭 기록이 아니어도 어떤 마음가짐만 이야기해 주셔도 괜찮습니다. 부담되시면 답변 안 하셔도 되고요.”
“괜찮습니다. 제 이번 시즌 목표는 당연히 각종 MVP 수상이죠. 하지만 올해는 시즌 중간에 콜업으로 인해서 사실상 불가능하겠네요. 그래서 신인왕을 목표로 두고 열심히 경기에 임하고 있습니다.”
“혹시 신인왕 관련 제목으로 기사를 내도 될까요?”
“그럼요. 좋은 기사 부탁드립니다. 이거 준비한 선물인데 받으세요.”
“아이고··· 뭘 이런걸. 그럼요! 저희가 정말 최강남 선수님도 만족하실 수 있는 그런 기사 내도록 하겠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한국에서 뵐 수 있으면 좋겠네요. 오늘 인터뷰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최강남이 구단에 미리 이야기해서 받은 뉴욕 양키스 팬들에게 제공되는 유니폼.
그 유니폼들을 받아든 김동환 대리와 팀원들은 화기애애하게 인터뷰를 끝냈다.
***
“슈퍼 루키! 어제 인터뷰는 잘 끝냈어?”
“그럼요. 그냥 평범한 인터뷰였어요.”
“언제나 기자들을 조심하라고. 그게 스포츠 선수들에게 있어서 롱런의 비결이야.”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양복은 어땠어? 비싼 것들은 착용감이 다르다니까.”
“넥타이는 괜찮았죠? 비싼 넥타이들은 목을 편안하게 해주는데. 목베개처럼요.”
요즘 가장 친하게 지내는 선수인 2루수 오도어.
오도어가 그런 내 농담에 껄껄 웃는 모습이었다.
그와 동시에 호텔 로비에 애런 분 감독이 도착했다.
별다른 이야기는 없었다.
내일 경기에 대한 간단한 정보와 자율 훈련을 진행하라는 내용이었다.
“오늘 같이 훈련할까? 어떻게 할 생각이야.”
“평소처럼 배팅 훈련 좀 하다가 웨이트로 끝내려고요.”
“텍사스 경기장이 인조 잔디인거 알아? 수비할 때 많이 힘들걸. 배팅 훈련은 변화구?”
“아니요. 원래 포심 위주로만 훈련해요. 내일 투수가 아리하라인건 아는데, 변화구는 감각으로 치는 거죠. 인조 잔디야 뭐 전 아마추어 기간이 더 길어서 적응하기 쉽고요.”
“감각으로 변화구를 치는 타자라. 역시 천재의 설명은 이해하기 어렵네.”
“같이 할까요?”
“아니. 난 웨이트 하고 브레이킹 볼 위주로 타격 훈련 진행할거라서. 조금 있다가 저녁이나 같이 먹자. 저번에 말했던 입에서 살살 녹는 스테이크 사줄 테니까.”
“알겠어요. 내일 경기에서 제가 2홈런 치고 더 맛있는 거 먹으러 가죠.”
2020년까지 텍사스에서 뛰었던 오도어.
그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각자 훈련을 위해 흩어졌다.
텍사스는 2020년 홈구장을 새롭게 만들었다.
메이저리그 구장에서 두 번째로 많은 돈을 쓴 글로브 라이프 필드.
첫 번째로 많은 돈을 들여 만든 양키 스타디움과는 다르게 개폐식 돔구장인 글로브 라이프 필드였다.
최대 수용 인원은 40,300명.
양키 스타디움보다는 적었지만, 메이저리그에서 손에 꼽을 정도로 많은 수용 인원이었다.
오늘의 훈련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왔다.
역시 메이저리그는 원정 경기에서도 최고의 시설을 자랑했다.
욕조에서 가볍게 반신욕을 하고 안마의자에서 오늘 훈련의 피로를 풀었다.
그리고 내일 경기를 위해 빠르게 잠에 들었다.
***
“네. 전화 받았습니다.”
“이번 트레이드에 대해서 감독 입장이 궁금해서 전화했어. 아무래도 유격수랑 투수를 1순위로 뽑는 게 낫겠지?”
원정 경기 호텔 스위트룸.
극소수의 베테랑과 감독만이 누릴 수 있는 호화로운 방에서 애런 분 감독이 전화를 받았다.
발신인은 뉴욕 양키스의 단장인 캐시먼.
자주 원정 경기도 찾아왔기에, 주로 직접 만나서 이야기하는 편인 캐시먼.
하지만 스토브리그와 버금가도록 바쁜 7월 트레이드였기에, 전화로 대신 감독의 의견을 물었다.
“아니요. 유격수보다는 외야수가 더 필요할 것 같습니다. 아시다시피 애런 힉스와 클린트 프레이저가 최근 타격 부진이잖습니까. 좌익수와 중견수 서브를 볼 수 있는 타자 영입이 더 나을 것 같습니다. 물론 좋은 불펜 투수는 언제나 환영이고요.”
“그 말은 16살짜리 유격수를 믿고 가도 되겠다는 생각이네?”
“지금 당장은 괜찮을 것 같습니다. 타격은 어느 정도 이야기 들었는데, 예상외로 수비에서 완벽한 모습입니다. 체력과 관련된 문제는 이번 텍사스 원정에서 전 경기 출장으로 테스트할 생각입니다.”
“알겠어. 일단 투수와 외야수 위주로 트레이드 계획해보지. 이번 텍사스 경기 기대하겠네. 전반기 1위로 마무리와 2위 마무리는 그 체감이 완전 다르니까.”
“알겠습니다. 좋은 소식 들고 오겠습니다.”
16살의 선수였지만 공수 모두에서 베테랑의 향기가 물씬 풍기는 독특한 신인.
애런 분 감독이 스쿼드를 바라보며 깊은 고민에 빠졌다.
***
우우우―
경기장을 가득 채운 40,300명의 관중들.
뉴욕과 가까운 워싱턴 경기장이었지만, 텍사스의 팬들은 양키스 못지않게 극성이었다.
원정치고는 양키스의 팬들도 꽤 많았지만, 텍사스 팬들의 일방적인 야유를 이겨낼 정도는 아니었다.
“루키. 5경기 만에 3번 타자로 들어선 기분이 어때?”
“타순이 의미가 있나요. 그냥 늘 최선을 다하는 거죠.”
“어제 스테이크 부드러웠지? 오늘 경기에서 2홈런 치고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고.”
“기대해요. 오늘은 유독 컨디션이 좋으니까.”
벤치에 앉아서 농담을 하는 5번 타자 오도어를 뒤로 하고 대기 타석으로 향했다.
1번 타자인 DJ 르메이휴는 볼넷으로 1루로 걸어 나간 상황.
타순이 많이 바뀌었다.
이틀 전까지 2번을 치던 애런 힉스가 6번으로 바뀌었다.
오늘의 2번 타자는 전까지 5번 타자로 뛰던 애런 저지.
6번 타자였던 오도어는 5번으로 앞당긴 타순이 되었다.
그 덕에 나도 오늘은 2번이 아닌 3번 타자로 스쿼드를 배정받았다.
따악―!
애런 저지의 타구는 유격수 정면으로 향했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방향이 바뀐 공을 잡아내지 못하는 상대 유격수였다.
인조 잔디의 최대 단점인 불규칙 바운드.
그 사실은 비싼 경기장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만석의 글로브 라이프 필드의 공기가 순식간에 무거워졌다.
“Strong Man! The Strongest Man! Choi! Gang! Nam!”
그런 상황에서 약 3천 명의 뉴욕 양키스 팬들은 내 응원가를 연호하기 시작했다.
노아웃 1, 2루의 기회에서 맞이한 첫 번째 내 타석.
1회 초부터 절호의 찬스를 맞이한 뉴욕 양키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