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6
최연소 메이저리거 (6)
0:1로 뒤처지고 있는 상황에서 뉴욕 양키스의 1회 말 공격.
상대 선발 투수인 크리스 아처가 마운드에 올라왔다.
이미 저 선수에 대한 분석은 뉴욕 양키스에서 완벽하게 끝난 상황.
최고 구속 99마일(159km/h)의 포심과 93마일(149km/h)의 고속 슬라이더를 던지는 투수였다.
얼핏 보면 어제 뉴욕 양키스의 선발인 루이스 세베리노와 비슷한 기록.
하지만 자세히 들어가면 완벽하게 다른 스타일이었다.
포심의 무브먼트는 없다시피 할 정도로 밋밋했고 RPM(공 회전수)또한 평균보다 낮았다.
슬라이더의 궤적은 나쁘지 않았지만, 딱히 완급 조절이 능한 선수도 아니었다.
늘 비슷한 구속과 비슷한 궤적으로 들어오는 슬라이더.
또한 세베리노와는 다르게 포심과 슬라이더를 제외하고, 메이저에서 쓸만한 다른 공을 가지고 있는 투수도 아닌 크리스 아처.
이러한 이유로 작년 리그 방어율 5.83에 30개가 넘는 피홈런을 기록한 투수였다.
따아악―!
오늘도 1번 타자로 나선 DJ 르메이휴는 그런 크리스 아처의 슬라이더를 제대로 밀어 치며 좌중간을 뚫는 안타를 만들어냈다.
잘 맞은 타구였고 상대 좌익수의 느린 판단이었지만, 발이 느린 그는 2루에서 멈춰 섰다.
“Strong Man! The Strongest Man! Choi! Gang! Nam!”
내 응원가를 따라 부르는 관중들의 환호가 경기장을 가득 메웠다.
벌써 세 번째 선발 출장.
충분히 귀에 익을만한 시기이기도 했다.
벤치에서 특별한 사인은 나오지 않았다.
날 2번 타자로 출전시켰던 이유가 작전 수행에 있어서라고 생각했는데.
애런 분 감독의 생각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다.
마운드 위에 선 투수는 2루를 흘깃 훔쳐보더니 빠른 세트 포지션으로 공을 던졌다.
공 반개는 빠질법한 코스의 슬라이더.
카운트가 몰리지 않는 상황이었기에 지켜봤다.
“스트라이크!”
애매했지만 스트라이크 존에서 확실하게 빠진 코스의 공.
하지만 심판은 스트라이크 사인을 외쳤다.
어느 정도 이해는 갔다.
탬파베이의 포수는 마이크 주니노.
2할대 타율과 출루율에 고작 3할 중반의 장타율.
리그 평균 정도의 블로킹까지.
거기다가 보스턴 레드삭스의 어떤 놈과는 다르게 트래시 토크도 전혀 하지 않는 포수였다.
하지만 시애틀에서 6년, 탬파베이에서 잠깐 부상을 제외하면 줄곧 주전 포수를 섰던 그의 최대 장점은 프레이밍.
그의 완벽한 프레이밍이 애매한 코스의 볼을 스트라이크로 둔갑시켰다.
항의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이제 겨우 초구.
거기다가 루키의 항의는 퇴장을 당할 확률이 높았기에 다음 공에 집중했다.
“볼!”
“볼!”
몸쪽을 파고드는 포심에 이어서 초구와 같은 코스의 슬라이더.
심판은 이번 공은 스트라이크를 잡아주지 않았다.
2-1의 카운트에 맞이하는 네 번째 공.
1, 3구와 비슷한 코스로 들어왔지만, 확실하게 존 안으로 들어올 궤적의 슬라이더에 그대로 배트를 휘둘렀다.
따아아아악―!
오른쪽 팔꿈치를 최대한 몸쪽으로 당기며 빠른 허리의 회전을 무릎으로 버텨내는 스윙.
내 모든 노력의 결실인 자세로 공을 배트 정중앙에 정확하게 맞춰냈다.
배트를 가볍게 옆으로 던지고 타구를 바라보며 1루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 어떤 구장에서도 지금과 같은 타구는 담장을 넘어갈 것이다.
하물며 여기는 우측 담장이 짧은 양키 스타디움.
타구는 쭉쭉 날아가며 우측 스탠드 상단에 떨어졌다.
모든 베이스를 돌아 홈으로 들어왔다.
“저번부터 느낀 건데 스윙 자세 하나는 기가 막히네. 루키 맞지? 나이 속인 거 아니야?”
“칭찬으로 들을게요. 배트 고마워요.”
1번 타자인 DJ 르메이휴가 내 배트를 들고 홈에서 기다리고 있는 모습.
농담을 건네는 그에게 웃어주며 함께 더그아웃으로 들어왔다.
더그아웃에서 환호를 받으며 벤치에 앉았다.
그렇게 내 2점 홈런으로 2:1 역전을 성공시킨 뉴욕 양키스였다.
***
[최강남 선수의 타구가 우측 담장을 넘어갑니다! 이 홈런으로 4경기 세 번째 홈런을 기록하는 한국의 유망주 최강남!]
[3개의 홈런 모두 밀어쳐서 우측 담장을 넘겼습니다. 양키 스타디움의 장점을 완벽하게 살려내는 영리한 플레이! 이 홈런으로 뉴욕 양키스가 탬파베이 레이스를 역전하게 됩니다.]
[정말 대단한 선수네요. 고작 17살의 나이에 고교 진학을 포기하고 미국으로의 도전. 그리고 그해에 이런 성과를 보여주다니요. 이로써 향후 많은 고등학교 선수들의 장래가 바뀌지 않을까요?]
[하하. 정말 그럴 수도 있겠네요. 한국에 다시 한번 메이저리그의 붐을 일으키고 있는 최강남이 오늘도 1회부터 좋은 모습을 보여주며 기분 좋은 출발을 시작합니다.]
메이저리그 독점 중계사인 MBS 방송사의 해설진들.
그들은 최강남의 좋은 모습에 그의 이름을 계속해서 연호하기 시작했다.
“김 대리! 자네 말대로 독점 계약이 신의 한 수가 됐구만 그래.”
“부장님! 아니 부국장님! 미리 축하드립니다.”
“짜식 아부는··· 올해는 정말 될 운명인가 보네. 겨우 17살의 선수가 미국에서 완벽한 모습을 보여줄 것이라고는 예상도 못 했는데.”
“예상 밖의 엄청난 선전입니다. 정말 부장님의 올해 승진은 따놓은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래. 이번에는 자네도 나도 올라가 봐야지.”
한국의 메이저리그 독점 중계권을 사온 MBS의 스포츠국 스포츠 기획부 부장인 박민철.
그는 오전 경기를 챙겨보다가 김동환 대리의 전화를 받았다.
최근 애매했던 한국 메이저리거들의 활약이었기에, 헐값에 사들인 독점 중계권.
하지만 하나 둘씩 부진을 떨쳐내고 좋은 모습을 펼쳐주기 시작했다.
거기다가 메이저리그 최연소 데뷔의 기록을 세운 초특급 유망주의 등장까지.
요즘 회사에서 어깨가 하늘로 치솟는 박민철 부장이었다.
“5회가 끝나고 중간 광고로 저번 특집 하이라이트와 최근 경기 하이라이트를 방영할 계획입니다. 괜찮으십니까?”
“괜찮고말고. 계획대로 가자고.”
“인터넷 반응도 정말 대박입니다.”
“그거야 당연하지. 이번 경기 끝나고 다음 경기는 어디서 열리지?”
“다음 뉴욕 양키스 일정이··· 텍사스 홈에서 열립니다.”
“이번에 김 대리 필두로 팀 꾸려서 텍사스 원정 인터뷰 계획이니까 준비해. 이미 이사님 허락까지 떨어졌어.”
“알겠습니다! 빠르게 준비해서 좋은 결과 가져오겠습니다.”
“그래. 기대하지.”
“예. 편히 쉬십시오!”
인터넷 반응이야 확인해보지 않아도 이미 초특급 대박.
거기다가 오전 8시에 시작됐지만, 주말인 토요일이다 보니 괜찮은 시청률까지 찍으며 정말 예상외의 선전을 해내는 모습이었다.
1회부터 최강남의 활약으로 벌써 시청률 4.2%
이 기세면 타 방송사에서 오전 10시 즈음에 방영하는 영화 홍보 프로그램과도 붙어볼 만한 수치였다.
‘정말 올해는 승진도 꿈이 아니겠구만.’
작년에 승진 기회가 왔지만, 애매한 실적으로 날린 박민철 부장.
그가 최강남의 활약을 TV로 지켜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
“아웃!”
9회 초 뉴욕 양키스의 마지막 수비.
2아웃에 올라온 한국 타자 최지혁은 채프먼의 포심을 걷어 올렸다.
하지만 타이밍을 뺐긴 타구.
“아이 갓 잇!”
미국에서 마이 볼의 의미를 담은 말을 내뱉고 내가 양팔을 벌렸다.
그리고 타구를 안정적으로 잡아냈다.
뉴욕 양키스의 6:3 승리.
채프먼이 2경기 연속 세이브를 기록하며 양키스의 연승 행진이 계속 이어졌다.
MVP는 솔로 홈런만 두 개를 쳐낸 4번 타자 포수 게리 산체스가 받게 되었다.
난 다음 타석에서 땅볼로 물러났지만, 2루타 하나와 볼넷 하나를 추가했다.
마지막 타구는 아쉽게 담장 앞에서 잡히며 5타석 4타수 2안타 1홈런을 기록했다.
“마지막 수비까지 깔끔하네.”
“오늘 저희 호흡이 좋았죠.”
“내 2루 수비는 어느 팀에 가도 명품 그 자체라고.”
수염을 밀고 다람쥐가 되어버린 2루수 루그네드 오도어.
그는 오늘 솔로 홈런을 쳐낸 것이 마음에 들었는지 경기 내내 싱글벙글한 표정이었다.
마지막 타구를 잡아내고 최지혁 선수와 눈인사를 하고 더그아웃으로 향했다.
“오늘 경기는 수비도 좋았지만, 특히나 타자들의 타격감이 살아나서 무척이나 기쁘네. 뉴욕 양키스의 타자들은 홈에서 홈런으로 팬들을 보답하는 것 잊지 말자고.”
“알겠습니다!”
“오늘 레드삭스가 타이거스에게 또 패배했어. 이걸로 우리와 공동 1위의 상황이야. 내일 경기도 승리해서 누가 동부 지구 최강자인지 보여주자고.”
“예스!”
애런 분 감독의 가벼운 경기 피드백으로 오늘 일정도 끝이 났다.
내일 경기는 승리할 확률이 너무나도 높았다.
적은 페이롤로 나쁘지 않은 팀을 만들어냈다는 평가를 받는 올해의 탬파베이 레이스.
하지만 1, 2 선발이 무너진 상대였고 내일 3선발로 나올 투수는 최근 최악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마이클 와카였다.
거기다가 뉴욕 양키스의 선발은 다시 1선발인 코리 클루버의 등판.
큰 이변이 없는 한 내일 경기에서 진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루키. 오늘 저녁은 내가 사지. 양키스 식당이 아무리 좋아도 가끔은 고급 스테이크도 먹어줘야 타구 비거리가 늘어난다니까.”
“그럼 텍사스에서 저녁은 제가 사죠.”
“텍사스까지 내가 사지. 만루 홈런이나 멀티 홈런 쳐내면 그때 밥은 네가 사라고.”
“알겠습니다. 잘 먹을게요.”
오도어는 6경기만의 홈런이 아직까지도 기분이 좋은지 실실 웃으며 이야기했다.
“나도!”
그 이야기를 들은 DJ 르메이휴와 게리 산체스까지 합류해서 식당으로 향했다.
뭐··· 결과적으로는 오도어가 밥을 사는 일은 없었다.
“절대 안 받아. 밥값이라 생각하고 월드시리즈 우승컵 좀 들어줘. 그때는 선수 전원에게 무료로 스테이크 제공할 테니까.”
본인을 뉴욕 양키스의 광팬이라고 소개하던 백발의 노인, 레스토랑 사장은 계산을 극구 거부했다.
오도어는 그런 사장에게 본인의 차 트렁크에서 가져온 배트와 유니폼을 밥값 대신 선물했다.
나를 포함한 다른 세 명의 선수들은 종이와 사장의 유니폼에 사인을 해드렸다.
“루키. 워낙 극성이지? 그래도 지금 공동 1위라 그렇지. 팀 하위권일 때는 밖에서 외식하기도 눈치 보인다니까. 뉴욕이 워낙 야구에 미쳐야 말이지. 즐길 수 있을 때 즐겨둬.”
“알겠어요.”
뭐··· 극성의 팬들은 KBO에서도 만만치 않았다.
나도 잠실 근처에서는 지갑이라도 꺼내면 사장들에게 엄청나게 혼나곤 했으니까.
물론 뉴욕의 팬들처럼 기록이 안 좋을 때는 얄짤없었지만.
외식을 마치고 간단하게 숙소로 돌아와서 샤워 후에 휴대폰을 켰다.
무수히 쏟아지는 연락들에 답장을 해주다가 의외의 연락을 발견했다.
― 최강남 선수! 최근에 광고와 인터뷰 제의가 너무 많이 들어와서요. 시간 괜찮을 때 연락 좀 부탁드립니다.
-제임스-
커너 코퍼레이션의 직원인 제임스.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최강남 선수. 최근에 너무 제의가 많이 들어옵니다. 혹시라도 광고나 인터뷰 중에서 거부하는 유형이 있을까요? 루틴에 방해가 될 것 같아서 미리 확인해두려고요.”
“딱히 루틴은 없습니다. 근데 당분간은 경기에 집중하고 싶어요. 텍사스 원정이 끝나고 올스타전 브레이크때 잡아주실수 있을까요?”
예전에는 광고를 찍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카메라 앞에서의 표정 관리도 어색했고 종종 민망한 대사나 제스처를 광고주들이 원했으니까.
하지만 내 광고를 좋아하는 부모님과 팬들의 반응을 보고 대부분 거절 없이 진행했다.
인터뷰 또한 마찬가지였다.
워낙 공격적인 질문이 많아서 데뷔 초에는 대부분 거절했지만, 나이가 들어서는 오히려 고마웠다.
팬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선수가 있다는 깨달음을 얻은 후로는 더욱 적극적으로 인터뷰에 응하는 편이었다.
물론 다른 선수들에 비해서 징크스나 강박에 가까운 루틴이 없는 둔감한 편이기도 했다.
“네. 근데 텍사스 원정 경기 전에 한국 MBS 스포츠에서 인터뷰를 요청했습니다. 혹시 경기 전이라 민감하시다면 거절하겠습니다.”
“아니요. 괜찮습니다. 어차피 월요일에는 쉬니까 하루 여유도 있고요. 호텔 도착 후에 바로 잡아주세요.”
“알겠습니다.”
거기다가 한국의 메이저 방송사 인터뷰.
부모님과 팬들에게 이보다 큰 선물은 없을 것이다.
그렇게 뉴욕에서의 또 하루가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