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2
최연소 메이저리거 (2)
“이봐. 네가 그 최연소 데뷔 슈퍼 루키야? 메이저리그는 더블 A처럼 놀이터가 아니라고. 오늘 좋은 모습 보여주겠다는 생각은 하지 말고 데뷔에 의의를 둬라.”
“6월 말 데뷔니까 홈런왕은 무리겠죠? 그래도 데뷔전 홈런은 꼭 쳐서 신인왕은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해볼게요.”
“···뭐? 너 영어 잘 못하냐?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영어를 잘해야 하나요? 야구만 잘하면 됐지.”
1아웃 2루의 상황.
타석에 들어서자 상대 포수인 크리스티안 바스케스가 트래시 토크를 던졌다.
난 그런 상대 포수에게 굴하지 않고 뻔뻔하게 맞받아쳐줬다.
보스턴 레드삭스의 포수인 크리스티안 바스케스.
그는 리그 평균 이하의 타격으로도 16년도 이후로 꾸준히 주전 포수로 뛰고 있었다.
리그 최상위 수준의 블로킹과 7위의 평가를 받는 프레이밍.
전형적인 수비적인 포수였고 트래시 토크또한 기사가 날 정도로 유명한 선수였다.
거기다가 오늘 경기는 그 유명한 양키스와 레드삭스의 라이벌전이 아닌가.
어느 정도는 예상했던 순간이었다.
“거기까지 하고 경기에 집중하지.”
상대 포수는 나에게 뭔가를 더 이야기하려다가 심판의 제지에 멈췄다.
난 타격 준비 자세를 마치고 초구를 기다렸다.
토미존 수술 후에 화려하게 올해 초 복귀해서 마운드를 7회까지 지키고 있는 크리스 세일.
랜디 존슨의 재림이라고 불리는 투구 동작을 가진 투수였다.
198cm의 큰 키에서 로우 쓰리 쿼터를 던지는 좌완 투수.
평균 94, 95마일의 포심과 횡 변화량이 굉장히 큰 슬라이더, 타자 앞에서 급격하게 가라앉는 서클 체인지업까지.
거기에 앞의 공들만큼은 아니지만, 꽤 좋은 평가를 받는 커브까지 보유한 명실상부 최고의 탈삼진 머신인 크리스 세일이었다.
‘그러니 초구는 포심으로 오겠지.’
부상에서 복귀한 그는 여전히 닥치고 삼진 스타일을 고수하고 있었다.
초구에 공격적인 피칭을 하는 투수.
그와 더불어 고작 만 16세의 신인인 나였기에, 카운트를 잡는 포심이 올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타이밍을 잡았다.
따아악―!
예상대로 초구는 몸쪽 높은 코스로 포심이 들어왔다.
난 그 공을 깔끔하게 당겨 쳤고 펜스를 원바운드로 맞추는 장타를 만들어냈다.
2루 주자는 여유롭게 홈인.
나는 2루에 슬라이딩 없이 안착했다.
와아아―
양키 스타디움을 꽉 채운 뉴욕 양키스 팬들의 환호성이 경기장을 가득 채웠다.
“루키. 나이스 배팅.”
“감사합니다.”
보호대를 받은 주루 코치는 나에게 칭찬을 건넸고 난 웃으며 대답했다.
여전히 1아웃 2루의 찬스에 1:2로 지고 있는 뉴욕 양키스.
지금은 내가 홈으로 들어오는 것이 양키스에게는 너무나 절실한 상황이었다.
따악―!
이어서 올라온 8번 타자 클린트 프레이저.
그는 2구로 들어온 체인지업을 밀어 쳤고 우익수 앞으로 떨어지는 안타를 만들어냈다.
리드폭을 넓게 가져가던 나는 순식간에 3루 베이스에 도달하기 직전이었다.
“루키! 뛰어!”
3루 주루 코치는 그런 나를 보고 오른쪽 팔을 힘차게 휘저으며 소리를 질렀다.
난 3루 베이스를 밞음과 동시에 홈으로 달리기 시작했고 상대 우익수의 공도 홈으로 향했다.
홈을 막고 있는 포수에게 헤드 퍼스트 슬라이딩.
포수의 다리를 잡고 홈 플레이트에 손을 뻗었다.
손이 닿음과 거의 동시에 공을 잡은 포수의 미트가 내 몸을 터치했다.
잠깐의 정적.
심판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양팔을 좌우로 쭉 뻗었다.
“세이프!”
와아아―!
함성 소리를 들으며 더그아웃으로 향했다.
이렇게 2:2.
다시 승부가 원점으로 돌아왔다.
더그아웃에서 날 반기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너무나도 익숙했다.
KBO에도 있는 신인의 첫 홈런이나 첫 득점 무시.
나름대로 루키를 반기는 하나의 의식이었다.
하지만 내가 누구인가?
한국 야구에서만 12년, 그리고 메이저리그에서 6년을 뛰었던 선수.
몇 번이고 경험해봤던 일이었다.
허공에 하이 파이브를 하며 손을 휘젓고 손이 쏟아지는 듯한 제스처를 취하며 헬멧을 양손으로 감쌌다.
그런 행동을 하자 누군가 웃음을 터뜨렸다.
오늘 양키스의 선발 투수인 코리 클루버.
그가 웃더니 내게 오른손을 번쩍 들며 입을 열었다.
“최연소 데뷔에 최고의 플레이네. 루키! 패전 투수 지워줘서 고맙다.”
“뭘요. 당연히 제가 할 일이죠.”
난 그런 코리 클루버의 손뼉을 강하게 쳤다.
“나이스 안타!”
“이제 동점이야! 레드삭스가 우리보다 위에 있는 건 참을 수 없지!”
“당연하지. 양키스는 언제나 1위라고!”
그와 동시에 무시하는 제스처를 취했던 동료들의 환호가 쏟아졌다.
난 그런 환호에 감사 인사를 하며 벤치에 앉았다.
“아웃!”
1아웃 1루의 상황에서 뉴욕 양키스는 추가 득점을 올리지는 못했다.
이제 경기는 2:2로 8회 초 보스턴 레드삭스의 공격.
난 글러브를 들고 유격수 포지션으로 향했다.
8회 초 양키스의 바뀐 투수는 잭 브리튼.
16년도 볼티모어 오리올스에서 AL 세이브왕까지 했던 투수였다.
양키스에는 역사를 써 내려가고 있는 마무리 투수 채프먼이 있어서 필승 계투조로 활약하고 있었지만, 잭 브리튼 역시 만만한 투수가 아니었다.
평균 95마일(152km/h)에 이르는 싱커를 90%의 비율로 던지고 세컨드 피치로 너클커브를 던지는 잭 브리튼.
그라운드 볼을 80%나 유도해내는 맞춰 잡는 것에 도가 튼 투수였다.
따악―!
그런 잭 브리튼의 3번째 공을 걷어낸 상대 타자.
구종은 당연하게도 싱커였다.
느린 정면 타구가 나에게 향했고 안정적으로 공을 잡아내서 1루로 던졌다.
“아웃!”
그렇게 8회의 첫 아웃 카운트를 잡아냈다.
이후로도 레드삭스의 타자들은 싱커를 제대로 공략해내지 못하는 모습.
다음 두 타자를 모두 범타로 처리하며 삼자범퇴로 8회 초 수비가 끝이 났다.
8회 말 뉴욕 양키스의 공격.
7회 2아웃에 바뀐 투수인 애덤 오타비노가 8회에도 여전히 마운드를 지켰다.
뉴욕 양키스에서 뛰다가 보스턴 레드삭스로 2021년에 트레이드 된 애덤 오타비노.
그는 평균 93마일(149km/h)의 포심과 낙차 큰 슬라이더를 갖고 있는 투 피치 스타일의 투수였다.
워낙 포심과 슬라이더가 비슷한 위치에서 오다가 휘었기에, 타자들이 쉽게 칠 수 없는 유형의 투수이기도 했다.
“스트라이크 아웃!”
2번 타자인 지안 카를로 스탠튼은 그런 슬라이더에 삼진으로 물러났다.
3번 타자와 4번 타자는 각각 땅볼과 뜬공.
이렇게 뉴욕 양키스의 8회 말 공격도 삼자범퇴로 끝이 났다.
9회 초 레드삭스의 공격.
8회에 이어서 마운드에는 다시 잭 브리튼이 올라왔다.
그는 공 3개로 뜬공 하나와 2루수 땅볼을 유도해냈다.
따악―!
다음 타자의 타격은 3유간으로 빠질만한 코스.
난 타격과 동시에 타구 방향으로 달려가서 역모션으로 공을 잡아냈다.
그리고 제자리에서 뛰어올라 1루로 공을 던졌다.
“아웃!”
내 깔끔한 수비로 9회 초 수비도 삼자범퇴로 막아냈다.
“수비 좋은데? 앞으로 싱커 던질 때 걱정할 필요는 없겠네. 그동안 좀 불안했었거든. 유격수가 워낙 많이 바뀌기도 했고, 다들 수비도 영 마음에 안 들었는데.”
“앞으로 노력 많이 할게요. 지켜봐 주세요.”
“능력 있는 겸손한 루키다 이거야? 마음에 드네. 앞으로 잘 부탁해.”
잭 브리튼은 그런 내 수비에 글러브를 갖다 대며 감사 인사를 했다.
난 거기에 글러브를 맞대며 겸손하게 대답했다.
이곳은 메이저리그.
실력도 중요하지만 루키에게는 어느 정도의 겸손이 있어야 생활이 피곤하지 않았다.
뭐··· 성격에는 안 맞지만 어느 정도 융통성을 발휘해줬다.
경기는 이제 9회 말.
뉴욕 양키스의 정규이닝 마지막 공격이었다.
타석에는 5번 타자인 애런 힉스가 올라왔다.
마운드에는 여전히 애덤 오타비노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스트라이크 아웃!”
이번에도 슬라이더에 삼진을 당하는 모습.
“아웃!”
다음 타석에 올라온 6번 타자는 2구를 건드렸지만 2루수 땅볼로 물러났다.
“Strong Man! The Strongest Man! Choi! Gang! Nam!”
그렇게 9회 말 2아웃 주자 없는 상황에 내 두 번째 타석이 돌아왔다.
“에러 두 개쯤 하고 교체될 줄 알았는데 9회 말 타격에도 또 올라오네? 양키스에 그렇게 선수가 없나. 16살 애송이 루키에게 2연속 타격을 시키고 말이야. 첫 타석은 솔직히 운이었잖아. 안 그래?”
“아까부터 되게 중얼거리네. 투수한테 말로 사인 보내?”
“뭐? 루키 정신 놨어? 여기 메이저리그야. 루키가 어디 건방지게.”
“내가 양키스 루키지. 네 후배냐? 닥치고 공이나 잡아.”
“넌 무조건 빈볼이다. 초구 잘 피해라.”
“둘 다 거기서 더 떠들면 경고다. 조용히 경기에 집중하도록.”
전 타석과 마찬가지로 이번 타석에도 트래시 토크로 시비를 걸어오는 상대 포수.
이번에는 참지 않고 제대로 맞대응을 해줬다.
9회 말 2아웃에서 빈볼을 던진다?
만약 그런 일이 있다면 초구부터 도루를 한 후에 득점으로 경기를 끝내면 된다.
물론 크리스티안 바스케스의 성격상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
누구보다 완벽한 분석형 포수.
그는 오히려 바깥쪽 코스로 사인을 보내서 카운트를 올릴 스타일이었다.
예전에 맞붙은 적은 없었고 영상으로나 몇 번 봤던 투수인 애덤 오타비노.
대기 타석이나 더그아웃에서 볼 때도 포심과 슬라이더를 구분할 수 있는 방법은 전혀 없어 보였다.
그렇다면 선택은 둘 중 하나를 찍는 것.
야구란 것이 참 그렇다.
10번의 타석에서 3번의 안타를 치면 훌륭한 타자가 되고, 4번의 안타를 치면 역사에 남는 레전드가 된다.
모든 타석에서 좋은 타격을 할 수 있는 타자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내가 포수라면 바깥쪽 슬라이더를 요구하겠지.’
하지만 상황에 맞는 융통성 있는 판단을 할 수 있다면 그 확률을 높일 수는 있다.
투수가 초구를 던졌고 가운데로 몰리는 코스로 공이 향했다.
난 히팅 포인트를 슬라이더 궤적인 바깥쪽에 두고 배트를 휘둘렀다.
그리고 공은 마치 짜기라도 한 듯이 내 배트로 향해서 휘었다.
따아아아악―!
완벽한 타이밍에 스윗 스팟에 정확하게 맞춰낸 타구는 우측 담장을 향해 뻗어 나갔다.
이곳은 양키 스타디움.
베이브 루스의 홈런을 위해 짧게 만든 우측 담장으로 내 타구가 넘어갔다.
사실 루키답게 배트를 던지고 빠르게 1루로 달려가도 됐다.
하지만 이놈의 짜릿한 손맛은 늘 사람을 흥분시키기 마련이다.
“어이. 아직도 첫 타석에서 안타가 운이라고 생각해? 그럼 이번 홈런은?”
뒤를 돌아 상대 포수에게 한마디를 던지고 배트를 거칠게 집어 던졌다.
그리고 검지를 쭉 핀 채로 1루로 달려갔다.
사실 1루로 달려가면서 조금 후회하기는 했다.
3루 베이스를 밟고 홈으로 들어올 때는 좀 많이 후회됐다.
‘내일 경기는 피곤하겠네.’
상대 포수인 크리스티안 바스케스가 포수 마스크를 벗고 날 노려보는 표정을 보고 나서 말이다.
그런 크리스티안에게 활짝 웃어주며 홈 플레이트를 밟았다.
그와 동시에 양키스의 팀원들이 내 머리로 물을 쏟고 손으로 헬멧과 등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루키! 나이스 홈런!”
“역시 야구는 9회말 2아웃부터지!”
“배트 플립은 뭐야? 벌써부터 라이벌 의식을 갖고 있는 프로가 된 거야?”
“잘했어! 레드삭스랑 벤치 클리어링 하루 이틀 하나? 배트 플립 멋졌어!”
“데뷔 축하한다! 슈퍼 루키!”
더그아웃에서 모든 선수들이 달려와서 내게 환호와 찬사를 보냈다.
난 이 순간을 마음껏 만끽했다.
그렇게 데뷔전에서 끝내기 홈런으로 레드삭스와의 1차전을 승리로 장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