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역대급 홈런왕의 탄생-65화 (65/126)

# 65

더블 A (5)

따아아악―!

언제 느껴도 황홀한 홈런을 쳤을 때의 타격감.

배트를 던지고 타구를 바라보며 1루로 향했다.

타구는 좌측 담장을 훌쩍 넘어갔다.

전 타석에서 자기의 위닝샷을 맞았다는 자존심 때문이었을까?

이번에도 같은 코스로 슬라이더가 들어왔고 깔끔하게 그 공을 담장 밖으로 날렸다.

가장 자신 있는 결정구로 홈런을 맞자 망연자실한 표정을 하고 있는 마운드 위의 투수.

굳이 눈을 마주치지 않고 베이스를 도는 것에 집중했다.

그리고 별다른 세리머니를 하지 않고 더그아웃으로 걸어갔다.

이런 상황에서 특이한 행동을 한다면 다음 타석에서 바로 빈볼이 올 것이 확실했으니.

“나이스 배팅!”

“오늘 3타점을 다 뽑았어!”

“스트롱 맨!”

팀원들의 손이 헬멧과 등에 쏟아졌다.

씩 웃으며 이 기분을 만끽하고 벤치에 앉았다.

“좋은 타격이었어요. 오늘 경기에서 계속 좋은 모습 기대할게요.”

“알겠습니다.”

페르디난드 감독은 내 옆에 앉더니 등을 두드려주며 칭찬을 했다.

따아아악―!

이어서 타석에 들어선 4번 타자 1루수 앨런.

몸쪽 낮은 슬라이더를 당겨 쳐서 나와 비슷한 위치로 떨어지는 홈런을 만들어냈다.

백투백홈런.

그것도 투수가 가장 자신 있어 하는 구종과 코스로 맞은 연속 홈런이었다.

따악―!

이런 상황에서 멘탈을 유지하는 더블 A의 투수는 없을 것이다.

마운드 위에 서있는 테오도르도 그런 이유로 흔들렸다.

5번 타자인 3루수 샘.

나와 4번 타자처럼 동일한 우타자인 샘도 슬라이더를 쳐냈다.

좌익수 앞에 떨어지는 타구로 여유롭게 1루에 멈춰선 샘.

끝나지 않는 3회 말 2아웃이었다.

그 후로도 1점을 추가로 득점하며 5:1로 트렌턴 선더가 월등히 앞서나가기 시작했다.

내가 타격에서 팀원의 기세를 올렸다면, 스티브는 마운드에서 상대의 기세를 꺾었다.

평소에 범타를 많이 유도했던 스티브의 싱커.

“스트라이크 아웃!”

오늘은 유독 공의 궤적이 아름다웠고, 이리 시울브즈의 타자들은 스치지도 못하며 더그아웃으로 들어가는 모습.

그렇게 4회 초는 물론이고 5회도 무실점으로 막아낸 스티브였다.

***

[5회 말 트렌턴 선더의 선두 타자는 3번 타자 최강남 선수입니다.]

[4회 말 9번 타자부터 시작하는 공격이 삼자범퇴로 아쉽게 끝이 났죠. 이리 시울브즈의 선발 투수인 테오도르의 폼이 5실점 후에야 조금씩 올라오는 모습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홈런 하나와 2루타 하나를 쳐내며 최고의 컨디션임을 증명하고 있는 최강남 선수가 세 번째 타석을 맞이합니다.]

뉴욕 양키스의 더블 A 구단인 트렌턴 선더의 인터넷 중계방송.

해설진들도 양키스에 소속되었기에 편파 중계를 이어가고 있었다.

오늘 인터넷 방송의 시청자는 무려 8,000명.

어제 최강남의 두 개의 홈런이 1,000명을 추가로 불러들였다.

― 매일매일 실력이 느는 것 같네 저번 주에 싱글 A에서 뛰던 그 선수 맞냐?

ㄴ 이제 고작 16살이니까 하루하루 성장하는 건 당연한 거지

ㄴ 16살? 그렇게 어렸어?

ㄴ 2006년생이야 그러니까 다들 초특급 유망주 나왔다고 보러 왔지

ㄴ 와 2006년에도 사람이 태어나냐?

[5구도 볼! 최강남 선수가 좋은 선구안을 통해서 1루 베이스를 획득합니다.]

[아무래도 테오도르 선수에게 최강남은 넘지 못할 산인 것 같네요. 세 번째 승부를 포기하면서 도망가는 피칭을 보여줍니다.]

***

“포볼!”

5구도 존에서 확연하게 벗어난 공.

3구에 존 끄트머리에 걸친 공을 제외하면 모두 존 근처로 오지도 않았다.

5실점을 하고 금방 강판 당할 줄 알았지만, 5회에도 마운드를 지키는 건 테오도르였다.

생각보다 멘탈이 좋았다.

거기다가 1회보다 5회에 기록이 좋은 어깨가 뒤늦게 풀리는 스타일의 투수.

그런 테오도르의 멘탈을 아까처럼 건드려줄 필요가 있었다.

평소보다 리드폭을 넓히고 무게중심을 낮게 잡은 후에 몸을 좌우로 흔들었다.

“세이프!”

1루 견제에 슬라이딩으로 세이프 판정을 받았다.

“볼!”

“볼!”

역시나 테오도르는 그런 내 리드폭을 계속해서 의식하느라 타자와의 승부에 집중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3구에 더그아웃에 도루한다는 사인을 보내고 2루로 달렸다.

“스트라이크!”

3구는 몸쪽 커터로 스트라이크.

하지만 몸쪽 코스다 보니 포수의 2루 송구 동작이 조금 느렸다.

“세이프!”

그렇게 여유롭게 2루 베이스를 훔쳤다.

상대 2루수의 표정에 불만이 많아 보였다.

그렇다고 편의를 봐줄 생각은 없었다.

2루에서는 1루보다 리드폭을 훨씬 넓게 가져가며 상대 투수를 압박했다.

이렇게 되면 자연스레 상대 2루수와 유격수도 날 견제하기 위해서, 수비 포지션이 좁아질 수밖에 없었다.

3루수는 말할 것도 없었고.

“세이프!”

계속해서 날 흘깃대던 테오도르는 2루에 견제구를 던졌다.

2루수인 자콥은 공을 잡아서 날 태그 했지만 내 슬라이딩이 훨씬 빨랐다.

“공은 잘도 보네. 눈도 작으면서.”

자콥은 투수에게 다시 공을 던지며 말했다.

명백한 인종차별 발언.

아무리 메이저리그에서 볼일이 없어도 내가 들었으니, 그냥 넘길 수는 없었다.

바로 일어나서 아무 말 없이 자콥의 어깨를 양손으로 강하게 밀쳤다.

자콥이 흑인이기는 했지만, 나는 인종차별 발언은 하지 않았다.

마이너리그에서는 말로 하는 징계가 패는 것보다 오히려 더 컸으니.

자콥은 심판에게 항의하는 제스처를 취했고 잠깐 그라운드가 싸해졌다.

하지만 벤치 클리어링은 일어나지 않고 일단 사건은 종료됐다.

따악―!

4번 타자 앨런은 우익수 앞에 떨어지는 안타를 쳤다.

리드폭을 넓게 가져가던 나는 여유롭게 3루를 돌아서 홈으로 들어왔다.

내 득점으로 6:1로 앞서나가는 트렌턴 선더.

하지만 이전 상황과는 다르게 더그아웃에 들어와도 날 반겨주는 사람은 없었다.

오히려 내 눈치를 보는 모습.

“최. 무슨 일인데?”

“저 2루수가 인종차별 발언을 해서 잠깐 시비가 붙었어요.”

“나만 믿어. 루키 어드밴스드 리그에서부터 널 위해서라면 언제든 복수해 줄 준비가 됐다고. 그동안 실점을 몇 개를 막아줬는데. 저 새끼 내가 확실하게 죽여줄게.”

평소에는 느긋하고 여유롭지만, 등판일에는 유독 예민해지는 타입인 선발 투수 스티브.

그가 먼저 와서 내게 이유를 물었고 내 대답에 같이 화를 내면서 어깨를 두드려줬다.

감독인 페르디난드는 우리의 대화를 듣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암묵적 동의.

그렇게 트렌턴 선더의 더그아웃에 침묵이 흘렀다.

6:1로 앞서는 노아웃 1루의 상황.

하지만 후속 타자들이 점수를 내지 못하며 5회 말은 끝이 났다.

“스트라이크 아웃!”

6회 초에 마운드에 올라온 스티브.

그는 선두 타자를 삼진으로 돌려세웠다.

다음 타자는 아까 나와 시비가 붙었던 자콥.

“히트 바이 피치!”

스티브는 초구부터 자콥의 등에다가 95마일의 포심을 던졌다.

152km/h로 오늘 최고 구속을 상대의 등에 뿌린 스티브.

그는 사과의 제스처 없이 제자리에 가만히 서서 자콥을 노려봤다.

그라운드가 다시 싸해졌다.

양 팀의 더그아웃에서는 선수들이 경기장으로 뛰쳐나올 준비를 하고 있었다.

자콥 역시 그런 스티브를 노려보다가 배트를 던지고 1루로 향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헬멧을 집어 던졌다.

그리고 방향을 바꿔 투수인 스티브에게 달려왔다.

그와 동시에 이미 글러브를 벗은 나도 스티브에게 달려갔다.

자콥보다 먼저 도착한 나는 선발 투수인 스티브 앞으로 막아섰다.

선발인 스티브를 당연히 보호해야 하고, 날 위해 빈볼을 던져준 호의였다.

아니, 그전에 자콥의 저 턱주가리를 날려주고 싶었다.

자콥은 그런 내게 오른쪽 주먹을 날렸고 난 왼쪽 아래로 움직이며 피했다.

그리고 왼손으로 자콥의 옆구리에 훅을 날렸다.

이어서 다음 동작으로 오른손 스트레이트를 자콥의 턱에 뻗었다.

퍽―

내 주먹에 턱주가리를 정통으로 맞은 자콥은 잠시 휘청이더니 그대로 앞으로 꼬꾸라졌다.

그와 동시에 우리 팀과 상대 팀의 선수들이 그라운드에 도착했다.

날 향해서 주먹을 휘두르는 상대 선수들.

백스텝으로 피하며 두 명의 선수에게 추가로 턱에 주먹을 꽂았다.

“퇴장!”

그렇게 나를 비롯한 몇몇이 경기장에서 퇴장당했다.

자콥은 퇴장을 당하지는 않았다.

내 주먹을 맞고 그로기 상태에 빠져서 들것에 실려 나갔으니.

뭐··· 사건의 전말을 들으면 저 친구도 징계를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

[스티브! 자콥의 등에 95마일의 포심을 꽂으며 최강남 선수의 복수를 보여주네요.]

[이게 동료죠. 아까 2루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루키 어드밴스드부터 같이 생활했던 두 선수거든요. 동료애가 강할 겁니다.]

[자콥은 스티브를 잠깐 노려보더니 이내 1루로 향합니다. 아! 그러다가 투수인 스티브에게 달려옵니다.]

해설진은 기 싸움이 어느 정도 있을 것이라고는 예측했다.

하지만 주먹싸움으로 펼쳐질지는 예상하지 못했기에, 당황해서 목소리가 커졌다.

그래도 두 명의 해설 중에서 한 명은 복싱 중계를 했던 크랙슨.

그의 전직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최강남이 그런 스티브의 앞으로 달려 나와서 자콥의 주먹을 피합니다.]

[라이트 훅을 왼쪽으로 피한 최강남이 자콥의 라이트 바디에 레프트 훅! 그리고 라이트 스트레이트를 정통으로 맞춰냅니다. 자콥 그로기 상태죠? 다운! 이어서 들어오는 다른 선수들의 주먹을 최강남 선수가 백스텝으로 현란하게 피하는 무빙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뻗는 라이트 잽! 두 명의 선수가 다시 다운됩니다!]

[···네. 많은 선수들이 뒤엉키고 심판의 중재로 현재 상황이 끝이 납니다.]

― 심판 해설 뭐야

ㄴ 예전에 복싱 해설도 했던 심판인데 모르냐?

ㄴ 색달라서 재밌네

― 이러면 스트롱 맨 징계 받는 거 아니냐?

ㄴ 앞뒤 상황은 봐야 할 것 같긴 한데 일단 약한 징계라도 받을 듯

ㄴ 가볍게 받았으면 좋겠네

ㄴ 그래도 착하고 못하는 애는 양키스에 필요 없어

ㄴ 인정 그놈의 착한 유망주 이제 그만 보고 싶다

― 당연히 특급 유망주면 벤치 클리어링도 잘해야지

ㄴ 벤치 클리어링이 얼마나 중요한데

ㄴ 그래 앞으로 잘하는 루키면 시비 거는 놈들이 얼마나 많을 텐데

ㄴ 맞지 본인의 자리는 본인이 지켜야지

ㄴ Strong Man(독재자)이 괜히 스트롱 맨이야? 그라운드 위의 독재자는 벤치 클리어링은 기본이지

***

트렌턴 선더에서는 나와 타격 코치인 에디스, 그리고 감독인 페르디난드가 퇴장당했다.

에디스는 나를 향해 주먹을 날리는 선수들에게 같이 주먹을 날렸다.

생각보다 의리있는 근육쟁이였다.

페르디난드 감독은 나의 퇴장에 대해서 심판에게 강하게 항의했고 그 사유로 같이 경기장에서 쫓겨났다.

“최.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인종차별 발언에 참는다면 그건 메이저리그 자격 박탈이나 다름없으니까. 내가 트리플 A에서 있을 때는 말이야···”

“에디스 코치. 거기까지만 하고 일단은 경기 봅시다.”

“알겠습니다.”

말 많은 코치와 침착하고 예의바른 감독.

그들이 날 위해 싸워줬다는 것이 매우 감사했다.

그렇게 우리는 라커룸 한편에 마련된 TV로 남은 경기를 지켜봤다.

“최강남 선수. 너무 걱정하지는 말아요. 오늘 사건은 이유가 있었으니, 제가 최대한 해명을 할 계획입니다.”

“감사합니다.”

페르디난드 감독은 나에게 진심 어린 위로를 해줬고, 난 거기에 감사를 표했다.

그리고 우리는 별말 없이 TV로 경기를 시청했다.

스티브는 8회까지 이리 시울브즈에게 추가 실점 없이 막아냈다.

9회에 올라온 타미는 1실점을 하며 마지막 1이닝을 책임졌다.

트렌턴 선더는 타선에서 1점을 추가로 뽑아냈고, 경기는 7:2 승리를 거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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