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2
더블 A (2)
“뛰느라 고생했어. 이제 들어가서 쉬려고?”
“아니요. 어제 빨리 잠들어서 이제 스트레칭 후에 가볍게 타격 훈련하려고요.”
“독한 루틴이네. 오늘은 나도 너 루틴 따라서 같이 해도 돼?”
“그럼요.”
아침 5km 러닝.
중학교 때부터 이어왔던 버릇 같은 루틴이기도 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그날 하루는 늘 찝찝했으니.
그리고 포심 피칭머신에서 20구를 타격했다.
이건 다음날 경기가 있는 날에만 행하는 루틴이었다.
아무리 많은 변화구가 생겨도 결국 투수에게 가장 자신 있는 공은 포심.
마찬가지로 타자가 가장 쳐내야 할 공도 포심이라고 생각하는 나였기에, 늘 포심 타격 훈련만은 게을리하지 않았다.
타격 후에 가볍게 아침을 먹었다.
저녁에 빵과 샐러드는 영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적어도 아침에는 내게 있어서 최고의 식단이었다.
워낙 더부룩한 것을 좋아하지 않으니까.
“내일 경기 일정에 대해서 말해줄게요. 내일은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의 더블 A 팀인 이리 시울브즈와 붙게 될 겁니다. 주전 타자나 투수 정보에 대해서는 코치한테 물어보면 도움을 줄 겁니다. 상대도 원정이긴 하지만 고작 161마일(260km) 정도 밖에 움직이지 않으니, 컨디션이 크게 떨어지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내일 승리자는 우리가 될 수 있도록 열심히 해봅시다.”
트렌턴 선더의 오전 집합 시간은 10시였다.
페르디난드 감독은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선수들을 불러 모아서 내일 3연전을 붙게 될 팀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부드러운 목소리와 예의를 갖춘 언행.
하지만 정말 말이 많은 편이기는 했다.
그래도 뭐 싱글 A의 케니스 감독보다는 나은 것 같다.
“코치님. 내일 올라올 선발 투수의 스카우팅 리포트를 볼 수 있을까요? 최근 경기 영상이 있다면 더 좋습니다.”
“네가 이번에 올라온 16살 선수구나? 듣던대로 열정적이네. 반갑다! 나는 트렌턴 선더의 타격 코치를 맡고 있는 에디스라고 한다. 살짝 여성적인 이름이지? 왜냐하면 내가 이름을 받은···”
타격 코치인 에디스는 밝고 유쾌하며 친화력이 좋은 사람이었다.
첫 만남에 이름이 여성스러운 이유에 대해서로 시작해서 가족이 몇 명 있는지까지,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술술 대답해주는 모습이었다.
오전 훈련은 스트레칭 후에 가벼운 펑고로 시작됐다.
오후 일정은 자율 훈련으로 진행된다고 한다.
난 에디스에게 내일 선발로 나올 선수의 분석표와 영상을 받았다.
그것을 대가로 에디스의 대학 야구 생활과 마이너리그 생활을 듣기는 했지만 말이다.
“최! 이제 뭐 하려고?”
“점심 먹고 샤워부터 해야 할 것 같네요. 오후에는 당장 내일 선발 기록 분석하느라 다 보낼 것 같고요.”
“선발 분석? 스카우팅 리포트 읽는 거 말고 따로 하는 거야?”
“네. 저는 완벽하게 상대 선발 투수의 기록을 갖고 있지 않으면 불안하더라고요.”
“좋은 완벽주의네. 혹시 방해가 안 된다면 나도 같이 오늘 분석해도 될까?”
“그래요.”
새벽부터 함께 훈련을 했던 룸메이트 데이브.
하루 만에 상당히 친해진 것 같았다.
고기를 추가해서 점심을 먹고 방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타격 코치인 에디스가 준 자료를 바탕으로 내일 선발 투수인 험프리의 기록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좌완 파이어볼러 스타일로 최고 구속 95마일, 152km/h의 공을 던지는 스타일.
탈삼진율이 높았지만 WHIP(이닝당 출루 허용률)도 높은 전형적인 공격적인 투수였다.
던질 수 있는 구종은 결정구인 포심을 비롯해서 커브와 슬라이더.
하지만 커브와 슬라이더는 둘 다 메이저리그는 물론이고 더블 A에서도 평균치에 도달하지 못하는 평가.
말 그대로 포심 하나로만 더블 A에서 버티고 있는 투수였다.
뭐··· 20살이라는 어린 나이였으니, 부릴 수 있는 객기이기도 했고.
험프리가 가장 자신 있는 코스는 몸쪽 높은 포심.
전형적인 강속구 투수의 특징이기도 했다.
멘탈은 그리 좋지 않고 커맨드 역시 리그 평균 정도의 수준이라는 평가.
‘이 정도면 어려운 상대는 아니네.’
영상으로 확인한 투구폼이 역동적인 편이기는 했지만, 타이밍을 잡기에 까다로운 스타일은 아니었다.
수십 차례 영상을 돌려본 나는 책상에서 벌떡 일어났다.
“깜짝이야!”
“어? 옆에서 보고 있었어요?”
“원래 이렇게 매 경기 분석을 철저하게 해? 살면서 눈으로 본 분석표 중에서 가장 완벽해.”
“항상 이렇게 해서 이게 편하네요.”
“이제 뭐 하려고?”
“이제 피칭머신 가서 선발 투수 평균 구속에 맞춰서 포심 타격 좀 하다가 들어오려고요.”
“나도 같이 가도 될까?”
“그래요.”
옆에서 계속 감탄하던 룸메이트 데이브.
그는 내가 타격 훈련장으로 향할 때도 졸졸 따라왔다.
같이 키스톤 콤비로 뛰기도 하고, 같은 팀이 출루하면 나에게도 좋은 영향이 생긴다.
그리고 기왕이면 불편한 사이보다는 편한 사이가 나으니까 굳이 거절하지는 않았다.
따아아악―!
난 타격 훈련장에서 내일 선발인 험프리의 평균 구속인 93마일에 맞춰서 타격 훈련을 시작했다.
옆에서 데이브도 상당히 진지한 모습으로 훈련에 임하는 모습이었다.
가볍게 30구 타격으로 끝을 내고 저녁을 먹으러 식당으로 향했다.
오늘도 기본 제공되는 식단에다가 소고기를 추가해서 먹고 있었다.
“다들 주목! 내일 스쿼드 알려줄게. 식당 입구 문에다가 붙일 테니까 다들 보고 들어가.”
“알겠습니다!”
모든 선수들이 모여서 식사를 하고 있을 때 수석 코치인 알프레드가 소리쳤다.
식사를 다 마치고 확인하니 난 3번 타자 유격수로 배정되었다.
룸메이트인 데이브는 2번 타자에 2루수였다.
샤워를 마치고 일찍 잠에 들기 위해서 방으로 돌아왔다.
“긴장은 안 돼? 난 첫 경기 전날에 긴장해서 잠도 못 잤는데.”
“오늘 제가 한 분석과 여태까지 해왔던 훈련을 믿는 거죠. 열심히 했으니 내일은 좋은 결과가 따라오겠죠.”
“멋진 태도네. 난 내가 열심히 살아왔다고 자부했는데, 오늘 널 보니 새롭게 느끼는 게 많아. 고마워. 사실은 그동안 매너리즘에 좀 빠져있었던 것 같거든.”
“데이브도 내일 좋은 모습 보여줬으면 좋겠네요. 좋은 꿈 꿔요.”
“그래. 너도 잘 자.”
얼마 지나지 않아서 잠에 들었다.
그리고 오전 9시 알람에 눈을 떴다.
오늘 경기는 오후 1시였고 집합 시간은 오전 10시였다.
침대에 누워서 가벼운 스트레칭을 하고 일어나서 샤워를 했다.
가벼운 아침을 먹고 오전 11시부터 펑고를 비롯한 몸풀기를 시작했다.
“플레이 볼!”
그렇게 이리 시울브즈와의 1차전이 시작됐다.
오늘 트렌턴 선더의 선발 투수는 폴.
스카우팅 리포트에 의하면 다양한 구종을 던지는 무브먼트가 좋은 투수였다.
그런 투구 스타일로 범타, 특히나 내야 땅볼을 많이 유도하는 스타일이었다.
따악―!
1번 타자는 그런 폴의 2구인 체인지업을 타격했다.
상당히 빠른 타구가 나에게 향했다.
살짝 뒤로 물러서서 안정적으로 공을 잡아내고 여유 있게 1루로 공을 던졌다.
“아웃!”
선발 투수인 폴은 그런 내게 모자를 만지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
2번 타자는 3루수 땅볼.
3번 타자는 우익수 뜬공으로 아웃되며 삼자범퇴로 좋은 출발을 시작한 트렌턴 선더.
그 기세를 타서 1회 말 트렌턴 선더의 공격이 시작됐다.
1번 타자는 중견수를 맡고 있는 필리스.
상대 선발 투수는 예상대로 험프리가 마운드에 올라왔다.
“스트라이크!”
초구부터 좌타자의 몸쪽 높은 포심으로 카운트를 가져갔다.
오늘은 컨디션이 좋은지 초구부터 150km/h 가까이 찍히는 모습이었다.
따악―!
2구에 들어온 바깥쪽 커브에 배트를 휘두른 필리스.
“아웃!”
하지만 타구는 살짝 뜨면서 좌익수에게 잡혔다.
2번 타자는 어제 나와 함께 훈련을 했던 데이브.
우투 좌타를 치는 데이브.
그는 좌타석에 자리를 잡았다.
“볼!”
초구를 걸러내고 두 번째 공에 배트를 휘둘렀다.
따악―!
타구는 2유간을 가르며 여유롭게 1루에 안착하는 데이브.
“Strong Man! The Strongest Man! Choi! Gang! Nam!”
내 응원가와 함께 1아웃 1루에 내가 타석에 들어섰다.
더그아웃에서 특별한 지시사항은 없었기에, 바로 타격 자세에 들어갔다.
험프리는 짧은 세트 포지션 후에 초구를 던졌다.
“볼!”
바깥쪽으로 공 한 개는 빠지는 코스.
구속이 빠르기는 했지만 무브먼트가 특별하지는 않았다.
RPM(공 회전수)도 평균 이하의 투수.
거기다가 주자가 있어서 세트 포지션을 취하기 때문에 평소보다 구속이 살짝 느렸다.
“볼!”
2구는 낮게 떨어지는 커브.
존에서 상당히 빠졌기에 배트를 휘두르지 않고 지켜봤다.
‘왔다.’
3구는 분석에서 가장 자신감 있는 코스였던 몸쪽 높은 포심이 들어왔다.
난 그 공에 바로 배트를 휘둘렀다.
따아아악―!
스윗 스팟에 정확히 맞춰내며 손에 미세한 진동도 느껴지지 않았다.
타격과 동시에 마운드의 투수는 고개를 떨궜고, 좌익수는 따라갈 엄두조차 내지 못하며 공을 지켜봤다.
와아아―!
싱글 A에서보다 훨씬 많은 1,000명 정도의 관중들도 내 타격에 환호했다.
난 가볍게 배트를 던지고 1루로 달리며 타구를 지켜봤다.
타구는 좌측 담장을 훌쩍 지나며 스탠드 상단에 떨어졌다.
“나이스 홈런.”
“고마워요.”
홈 플레이트를 밟자 1루 주자에 있던 데이브가 반대편 손에 내 배트를 들고 주먹을 들며 기다렸다.
난 그런 데이브에게 내 주먹을 맞대며 함께 더그아웃으로 들어왔다.
“슈퍼 루키! 역시 넌 괴물이야!”
“나이스 배팅!”
“좋은 타격이었어!”
그리고 몇몇 선수들의 환호와 함께 축하해 주는 손이 내 헬멧과 머리에 쏟아졌다.
역시 탬파 타폰스의 더그아웃 분위기보다는 이런 환호가 훨씬 좋았다.
기록에서도 이런 분위기가 상당히 큰 작용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스턴 리그 1위를 지키고 있는 트렌턴 선더.
그리고 2위는 오늘 우리와 붙고 있는 이리 시울브즈였다.
“깔끔한 타격이었다. 어제 타격 코치한테 스카우팅 리포트를 받았다며? 좋은 태도에 좋은 결과였다.”
“감사합니다.”
페르디난드 감독도 내 플레이에 칭찬을 해주는 모습.
난 감사하다는 대답을 하며 벤치에 앉았다.
1회 말 트렌턴 선더가 내 홈런으로 2:0으로 앞서게 되었다.
***
[세상에! 싱글 A에서 5경기 6홈런을 기록한 슈퍼 루키 최강남 선수! 더블 A 데뷔전 첫 타석에서도 큼지막한 홈런을 하나 추가합니다!]
[정말 아름다운 타격! 94마일의 포심을 그대로 받아쳐서 넘기는 모습입니다. 정말 이 선수가 16살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따름이네요.]
[완벽한 타격으로 2:0으로 앞서나가게 된 트렌턴 선더. 오늘 경기를 승리한다면 2위와의 격차는 무려 3경기입니다.]
트렌턴 선더의 해설진은 오늘 데뷔한 루키의 홈런에 감탄사를 연발했다.
그것은 평소보다 많이 몰린 인터넷 시청자들도 마찬가지였다.
평소 뉴욕 양키스의 더블 A 시청자는 2,000명 정도.
하지만 오늘은 7,000명이 넘는 시청자들이 인터넷 방송을 찾았다.
그들의 정체는 최강남을 보기위해 싱글 A를 찾았던 시청자 4,000명과 더불어 다른 양키스의 팬들.
그들이 유망주의 화려한 데뷔에 환호하기 시작했다.
― 화끈하게 넘기네
ㄴ 포심 넘기는 것 하나는 진짜 도가 텄네
ㄴ 싱글 A에서는 확신 못 했는데 더블 A에서 이 정도면 메이저 올만 하겠다
ㄴ 더블 A에서 바로 메이저 콜업되는 경우가 있었나?
ㄴ 종종 있지 어린 유망주들은 그런 경우가 적기는 하지만
― 메이저고 뭐고 그냥 오늘 경기가 너무 재밌다
ㄴ 인정 지옥에서 데려온 좌완 파이어볼러의 공을 넘겨버리는 천재 루키!
ㄴ 파이어볼러 킬러네
ㄴ 더블 A 단독 1위라니 뉴욕 양키스의 미래는 밝으려나?
ㄴ 제발 우리도 우승 한 번만 해보자 13년 동안 우승컵 구경도 못 해봤네
야구에 둘째가라면 서러운 뉴욕 양키스의 팬들.
그들이 최강남의 홈런에 흥분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