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1
더블 A (1)
“환영합니다. 전 트렌턴 선더의 수석코치인 알프레드라고 합니다. 일단 감독님께 인사를 드리러 가죠.”
버스가 뉴저지 주의 트렌턴에 도착했다.
수석코치인 알프레드가 입구로 마중을 나왔고 우리는 그를 따라갔다.
감독실로 향하는 중에 경기장이 한눈에 들어왔다.
암 & 해머 파크를 홈구장으로 삼고 있는 트렌턴 선더.
뉴욕 양키스의 홈구장인 양키 스타디움보다도 작았다.
나와 같은 타자에게는 유리한 구장이었지만, 투수들에게는 지옥이라고 불리는 트렌턴 선더의 홈 경기였다.
“다들 오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전 감독을 맡고 있는 페르디난드라고 합니다. 혹시 질문 있으신가요?”
감독실에 도착하자 페르디난드가 의자에서 일어서며 이야기했다.
다들 눈치를 보며 별말을 하지 않고 있는 분위기.
나는 그다지 궁금한 것은 없었기에 가만히 있었다.
“없다면 이야기를 듣고 질문하셔도 괜찮습니다. 일단 여러분들은 내일부터 열리는 3일간의 원정경기에서 제외될 예정입니다. 기존의 선수들로도 여유가 충분하거든요. 하루 쉬고 이어지는 3일 동안의 홈경기에서 본인의 기량을 마음껏 뽐내주시면 됩니다.”
버스에서 말한 스티브의 말처럼 선수들 혹사 부분에 있어서는 확실하게 관리를 해주는 모습이었다.
그때 케이든이 한 가지 질문을 던졌다.
“그렇다면 숙소는 어떻게 배정되나요?”
“좋은 질문입니다. 마음 같아서는 여러분을 그대로 배치하고 싶지만, 현재 숙소가 거의 꽉 찬 상태이다 보니 비어있는 자리에 들어갈 수밖에 없는 현실이네요. 이미 숙소 배정은 끝났으니, 이야기가 끝나고 코치인 알프레드의 안내 받으면 됩니다. 다른 질문 더 있나요?”
잠깐의 침묵.
페르디난드 감독은 그런 우리를 보고 다시 입을 열었다.
“현재 선발 투수는 7명으로 구성되어 있고 다른 포지션의 선수들 또한 많습니다. 기본적으로 혹사를 방지하고 부상에 있어서 대비하는 방식으로 운영되죠. 물론 선발로 기용되고 상위 리그로 승격하기에는 본인의 피나는 노력이 있어야 가능하겠죠. 어쨌든 트렌턴 선더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다들 행운을 빌죠.”
“감사합니다.”
논리정연한 설명으로 할 말을 없게 만드는 스타일의 감독.
선수인 나는 저런 스타일이 오히려 좋았지만, 왜 탬파 타폰스의 코치들이 치를 떨었는지는 대충 이해할 것 같았다.
상사로 만나면 좀 피곤할 것 같긴 했다.
“숙소는 이렇게 쓰시면 됩니다. 식사는 아까 그 식당에서 하시면 되고 따로 궁금한 점이 있다면 질문해주시면 됩니다.”
본인을 수석코치라고 소개한 알프레드는 각자의 방으로 소개해주고 자리를 떠났다.
내 룸메이트는 데이브라는 이름을 가진 선수였다.
간단하게 샤워를 마치고 다시 방으로 돌아오니 데이브가 침대에 앉아 있었다.
“반가워요. 전 이번에 승격한 최강남이라고 합니다.”
“네가 그 16살 타자냐?”
“네. 기사 봤어요?”
“그럼 너랑 내가 키스톤 콤비겠네. 난 너처럼 나이가 어리지 않아서 여유롭지 않으니 실전에서 방해만 하지 말아줘.”
상당히 까칠한 데이브.
그래도 케이든처럼 시끄러운 스타일은 아니라서 조용히 방을 쓸 수 있을 것 같아서 좋긴 했다.
별 대답을 하지 않고 시간에 맞춰서 숙소 로비로 나갔다.
“최! 네 룸메이트는 어때? 나는 도미니카 공화국 출신의 타자야. 덕분에 이번에도 스페인어로 대화가 돼서 즐거울 것 같네.”
“그냥 좀 까칠하던데요? 뭐··· 별 신경은 안 써요. 조용해서 좋네요.”
“저기 로버슨이랑 스티브도 오네. 일단 밥이나 먹으러 가자고!”
숙소 옆에 마련되어 있는 식당.
여긴 그래도 탬파 타폰스보다 사정이 좋았다.
식빵과 잼과 샐러드가 무상 제공인 것은 똑같았지만, 돈을 지불하면 각종 고기들을 먹을 수 있는 환경은 마련되어 있었다.
아무래도 더블 A는 받는 연봉이 훨씬 여유가 있으니 이런 식당을 별도로 만들어둔 것 같았다.
내가 더블 A로 승격한다는 기사를 보고 커너에게 문자가 왔었다.
내 연봉이 이제 월 1,700달러로 올라갈 것이니 조금 더 여유로워질 것이라고 말이다.
계약 조건이 승격할 때마다 리그 최저 연봉을 받기로 했었으니, 그리 놀라운 정보는 아니었다.
장비 값이나 식비를 제외하면 딱히 남는 돈이 생길 정도의 연봉도 아니었고.
그렇게 첫날은 식당에서 비교적 저렴하게 파는 고기와 빵으로 저녁을 해결했다.
다음 날 경기장은 매우 한산했다.
어제 더블 A로 승격한 넷을 제외하고는 전부 원정경기를 떠났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최! 오늘 나랑 간단하게 1:1이나 해볼까?”
“괜찮겠어요? 얼마 전에도 공 던져놓고.”
“겨우 10구 던졌어. 2일이면 회복으로 충분하지.”
“그러면 내가 공 잡을게.”
선수들과 가볍게 러닝을 하고 스트레칭을 했다.
그때 케이든이 나와 대결을 제의했다.
나도 실전 감각을 올리면 당연히 좋았으니, 흔쾌히 대결에 응했다.
포수는 로버슨이 봐주고 2일 전에 선발을 던졌던 스티브는 심판을 봐주기로 했다.
펑―!
케이든은 포수를 보기로 한 로버슨에게 공을 던지며 몸을 풀기 시작했다.
후웅―!
나도 옆에서 배트를 휘두르며 잠시 떨어졌던 타격 감각을 올렸다.
“가볍게 5타석만 하자고.”
“알겠어요.”
케이든은 특유의 큰 동작의 와인드업 후에 초구를 던졌다.
“볼!”
스티브는 어디서 주워왔는지 보호 장구까지 끼고 로버슨의 뒤에서 열심히 심판을 보는 모습.
초구로 들어온 슬라이더는 스트라이크 존에서 상당히 빠졌기에 굳이 건드리지 않았다.
따아아악―!
그리고 2구로 들어온 바깥쪽 낙차 큰 커브를 그대로 걷어 올렸다.
굳이 스티브가 안타, 아웃 판정을 내리지는 않았다.
오른쪽 담장을 훌쩍 넘어갔으니.
아무래도 작은 경기장이니 확실히 타자에게 있어서 유리한 면은 있었다.
케이든은 그 타구를 보고 별 말없이 다음 공을 던지기 위한 와인드업을 시작했다.
초구로 들어온 몸쪽 포심에 난 바로 배트를 휘둘렀다.
따아아악―!
“2루타!”
“이게 어떻게 2루타야? 우익수가 충분히 잡았지.”
“더블 A 우익수였으면 못 잡는 타구였어.”
“평생 더블 A에서 뛸 거야? 당연히 메이저리그 우익수 기준이지.”
스티브는 2루타 판정, 케이든은 우익수 플라이라고 우기는 모습에 내가 이야기했다.
“그냥 아웃으로 하죠.”
“그냥 아웃이 아니라 진짜로도 아웃이지!”
“그래요. 그렇게 해요.”
그 후로 3번의 타석에서 난 홈런 하나와 펜스를 때려내는 타구 하나를 추가했다.
마지막 타석은 우익수 플라이.
그래도 5타수 3안타 2홈런으로 괜찮은 타격감을 보여줬다.
“슈퍼스타.”
“네?”
“대뜸 이런 이야기 의미 없긴 하지만, 너랑 같은 팀 된 거 다행인 것 같다. 적으로 만났으면 끔찍했겠네.”
“자신감 없는 모습 안 어울려요. 케이든은 늘 뻔뻔한 게 자기 모습 같은데.”
“그냥 처음엔 즐거웠는데, 세 번째 타석부터는 숨이 턱 막히더라. 너랑 붙는 투수들은 다 이런 기분이었으려나.”
“글쎄요? 그랬으려나.”
겨우 5타석 승부에 상당히 진이 빠진 듯한 케이든.
그의 어깨를 두드려주고 웃으며 트레이닝 센터로 향했다.
따악―!
그리고 피칭머신을 앞에 두고 타격 훈련을 계속해서 이어갔다.
포심, 커브, 슬라이더 20구씩.
총 60구의 타격을 마치고 마무리 스트레칭 후에 첫날 훈련이 끝이 났다.
둘째 날과 셋째 날 역시 비슷한 루틴의 훈련이 이어졌다.
셋째 날 훈련이 다 끝이 나고 샤워 후에 잠들기 직전에 룸메이트인 데이브가 들어왔다.
굳이 서로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침묵의 시간이 흘렀고 내가 먼저 잠에 들었다.
내일도 새벽부터 러닝으로 하루를 시작해야 하니까.
***
트렌턴 선더에서 뛰고 있는 데이브는 올해로 24살의 2루수였다.
미국 고교야구를 졸업했지만 마땅히 본인을 불러주는 팀은 없었다.
그런 데이브는 대학 진학 대신에 공개 테스트를 거쳐서 뉴욕 양키스의 루키 팀에 들어오게 되었다.
루키 어드밴스를 거쳐서 싱글 A까지 진출했던 데이브.
그리고 끝없는 노력 끝에 더블 A인 트렌턴 선더까지 진출에 성공했다.
그런 트렌턴 선더에 말 그대로 슈퍼 루키가 들어왔다.
나이는 고작 16살. 거기에 본인과 키스톤 콤비를 이루는 유격수 포지션이었다.
데이브는 그런 최강남이 마음에 들 리가 없었다.
루키 후보 선수부터 시작했던 본인의 노력이 전부 한없이 높은 재능 앞에서 무너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으니.
그래서 첫날에도 그런 열등감 때문에 까칠하게 대했다.
‘그래도 너무했나? 내가 처음에 왔을 때 같은 룸메이트였던 선수는 친절하게 가르쳐줬는데.’
1,500km가 떨어진 원정 경기장으로 향하는 버스에서 잠시 그런 생각도 들었지만 이내 없어졌다.
남을 걱정하면서 보내기에는 본인의 나이가 너무 많아졌다.
아무리 더블 A의 평균 나이가 24.4세라 해도 현실적으로 메이저리그 승격이 가능한 나이는 20대 후반.
약 4년이 지난다면 해외 리그의 용병 말고는 프로 1군 무대에서 뛰는 것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거기다가 더블 A에서 무려 3년을 보낸 데이브.
최강남처럼 어리지는 않았지만 10대 선수들을 많이 지켜봤다.
그들은 하나같이 건방졌고 본인의 재능을 뽐내며 워크에씩(work ethic)또한 최악인 경우가 많았다.
어차피 본인들은 이곳에 어울리지 않는 금방 올라간다는 마인드.
그런 마인드가 끔찍하게 싫은 데이브이기도 했다.
그래서 원정을 뛰고 숙소로 다시 돌아왔을 때도 굳이 먼저 입을 열지는 않았다.
잠깐의 침묵에 이어서 샤워를 하러 갔고 돌아오니 최강남은 이미 잠에 들었다.
‘다른 어린 선수들처럼 자기 자랑하느라 시끄럽지는 않아서 좋네.’
지잉―
새벽에 울리는 잠깐의 진동.
밤귀가 밝은 데이브는 인상을 쓰며 잠에서 깼고 진동은 1초를 채 가지 않고 끝났다.
그리고 반대편 침대에 있는 최강남이 조용하게 일어나서 밖으로 나갔다.
평소였다면 그냥 다시 누워서 잠에 들었을 테지만, 며칠 전에 온 루키 아닌가.
누워서 5분가량 고민을 하던 데이브도 침대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경기장으로 향한 그는 뜻밖의 모습에 깜짝 놀랐다.
새벽 6시에 경기장에서 뛰는 루키라니.
어쩌면 건방진 초특급 유망주는 본인의 머릿속에서 만들어낸 편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반성했다.
이렇게 열정적인 유망주를 그동안 봐왔던 다른 어린 선수들과 비교했다는 것을.
잠깐의 고민을 하던 데이브는 최강남에게 말을 걸었다.
***
“저기··· 내가 뭐라고 부르면 될까?”
“어? 그냥 편하게 최라고 부르세요. 혹시 저 때문에 잠에서 깬 거면 미안해요.”
“그래. 최. 며칠 전에 예민하게 반응해서 미안해.”
“원정 경기 직전이었잖아요. 그럴 수 있죠. 제가 루틴을 방해한 거일 수도 있고.”
“그런 건 아니고 그냥 오해가 있었어. 앞으로 궁금한 게 있으면 다 물어봐도 돼.”
데이브는 상당히 머쓱한 표정으로 새벽부터 달리기를 하는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궁금한 거라면 당연히 있었다.
“내일 경기하는 팀이요. 그리고 예상되는 선발 투수의 이름이랑 스카우팅 리포트가 필요해요. 영상도 구할 수 있으면 좋고요.”
“팀은 아는데 선발 투수가 누가 나올지는 아직 모르겠네. 아마 타격 코치가 오늘 오전에 이야기해 줄 거야.”
“감사합니다. 저번에 들어서 키스톤 콤비로 알고 있는데, 앞으로 잘해보죠.”
“그래. 나도 잘 부탁해.”
데이브는 민망한 표정으로 오른손을 건넸고 난 그의 손을 맞잡았다.
생각보다 더블 A에서의 생활도 순조롭게 진행될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