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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글 A (1)
1:2로 지고 있는 상황에서 마지막 공격인 9회 초.
“로버슨! 체인지업만 노려요.”
“그래도 될까? 커터랑 포심이랑 커브도 있는데.”
“오늘 앞 타석에서 못했으니 범타로 유인할 확률이 높아요. 일단 2스트라이크 전까지는 체인지업만 노려요.”
“그래. 네 말대로 해볼게.”
포수 장비를 벗는 로버슨에게 귀띔해줬다.
오늘 유독 좋지 않은 타격을 보여주는 로버슨이니, 차라리 구종 하나를 노려서 치는 것이 훨씬 나을 것이다.
펄래스키 양키스의 9회 초 공격.
선두 타자는 2번 스미스부터 시작됐다.
상대 투수는 여전히 8회에 올라온 다니엘이 마운드를 지키고 있었다.
수준급의 체인지업과 커터를 던지며 범타로 처리하는 스타일의 투수인 다니엘.
따악―!
스미스는 그런 다니엘의 초구로 들어오는 커터를 깔끔하게 쳐냈다.
치기 전에 공과 코스를 예측해서 치는 게스 히터 스타일이 제대로 통했다.
타구는 좌중간을 가르는 큼지막한 대형 안타.
스미스는 여유롭게 2루에 안착했다.
다음 타석은 3번 타자인 로버슨.
그는 오늘 경기에서 2삼진, 1땅볼로 3타수 무안타.
3달 동안 치렀던 연습경기까지 포함해서 최악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스트라이크!”
그런 로버슨에게 다니엘은 초구로 커브를 던졌다.
따악―!
2구로는 체인지업이 들어왔고 로버슨은 깔끔하게 당겨 쳤다.
좌익수 앞에 떨어지는 안타.
워낙 빠른 타구였기에 2루에 있던 스미스는 홈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3루에 멈춰 섰다.
“Strong Man! The Strongest Man! Choi! Gang! Nam!”
노아웃 1, 3루의 상황.
경기장에 내 응원가가 울려 퍼졌다.
다니엘은 와인드업 후에 초구를 던졌다.
“스트라이크!”
여차하면 고의사구까지 예상했다.
하지만 다니엘은 초구부터 몸쪽 높은 코스의 포심.
거기다가 1루 주자인 로버슨이 2년 동안 도루가 0개라는 걸 증명하듯이 와인드업을 해서 던지는 모습이었다.
이런 상황을 보고 더그아웃은 로버슨에게 도루를 지시했다.
나는 알겠다는 사인을 하고 다시 타석에 들어섰다.
다니엘은 두 번째 투구 역시 와인드업을 하며 던졌다.
이번 공도 몸쪽으로 향했다.
스트라이크 존에서 공 한 개 빠지는 체인지업.
로버슨은 와인드업과 동시에 2루로 뛰었고 난 자리에 가만히 있었다.
포수는 그런 나에게 가로막혀서 2루로 던지지조차 못했다.
“심판! 이거 반칙 아닙니까?”
“아! 로버슨이 도루했구나. 처음 보는 장면이라 전혀 예상도 못 했네.”
“그게 말이 돼? 당연히 벤치에서 사인 나왔을 텐데!”
“거기까지. 딱히 방해하는 동작은 없었고 제자리에 가만히 있었어. 경기 진행한다.”
상대 포수는 그런 나에게 항의했지만, 난 태연하게 전혀 모른 척을 했다.
그 후에 심판의 제지로 다시 포수석에 쪼그려 앉았다.
카운트는 1-1로 아직은 여유가 있었다.
안타를 쳐도 2루 주자인 로버슨이 달리기가 느리니 들어오긴 힘들 것이다.
하지만 홈런을 노리다가 뜬공이 나와도 3루 주자인 스미스는 여유롭게 들어올 수 있는 달리기 속도를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큰 스윙을 하겠다는 생각을 갖고 다음 공을 기다렸다.
이번에도 상대 투수인 다니엘은 와인드업 후에 세 번째 공을 던졌다.
따악―!
스트라이크 존에서 살짝 벗어난 높은 공.
난 과감하게 배트를 휘둘러서 당겨 쳤다.
타구는 좌익수를 향해 높이 떴다.
좌익수는 낙하지점을 찾기 위해 한 걸음씩 뒤로 가기 시작했고 곧 펜스에 부딪혔다.
그런 좌익수의 등 뒤에 있는 펜스로 내 공은 넘어갔다.
좌측 펜스를 살짝 넘어가는 3점 홈런.
이번 타구는 넘어갔다는 확신이 없었기에, 전력 질주 중이었다.
2루 베이스를 밟기 직전에 타구가 넘어간 것을 확인하고 조금 속도를 늦췄다.
그리고 여유로운 속도로 홈 플레이트를 밟았다.
“슈퍼 루키. 결국 마지막 경기에도 넘겼네. 나도 네 충고 덕분에 안타 쳤어. 나이스 홈런.”
“제가 뭘 했다고. 로버슨이 잘 쳐서 안타 만들어낸 거죠.”
2루 주자인 로버슨이 내가 던진 배트를 들고 있는 반대 손으로 주먹을 갖다 댔다.
거기에 내 주먹을 맞대고 웃으며 함께 더그아웃으로 들어왔다.
“나이스 홈런!”
“역전이다!”
“믿고 있었다고!”
역시나 더그아웃으로 들어가자 내 헬멧과 등으로 축하세례가 쏟아졌다.
“슈퍼스타! 고맙다. 양키스 들어와서 첫 승리 투수해 보겠네.”
“글쎄요. 9회 말에 케이든이 잘 던져야 그렇겠죠?”
“아직도 내 공을 못 믿어? 난 너처럼 명예의 전당 혹은 그 이상이라고.”
“그 이야기 그만 좀 해요. 오늘만 몇 번째야.”
“재밌잖아. 난 언제 그런 인터뷰 기사 올라가려나.”
축하 세례를 받고 벤치에 앉자 케이든이 장난기 가득한 표정으로 말을 걸었다.
투수들은 워낙 예민해서 본인의 등판 날에는 말도 못 거는 선수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그런 기색 따위는 전혀 없어 보이는 케이든.
참 둔감한 투수였다.
내 3점 홈런으로 4:2로 앞서게 된 펄래스키 양키스.
그 이후로는 추가 득점을 내지 못하며 9회 초도 끝이 났다.
이제 엘리자베스턴 트윈스의 9회 말 공격.
오늘은 9회 말까지 공격 차례가 올지 예상하지 못했는지, 상당히 얼빠지는 표정으로 선두 타자가 올라왔다.
“스트라이크 아웃!”
“예쓰!”
케이든은 그런 선두 타자를 삼진으로 돌려세우며 첫 아웃 카운트를 잡아냈다.
딱―!
두 번째로 타석에 들어선 3번 타자는 초구부터 타격.
힘없는 타구가 내 방향으로 굴러왔다.
“아웃!”
난 앞으로 달려가며 맨손으로 잡아서 1루로 던져 아웃을 잡아냈다.
“슈퍼스타! 굿 디펜스!”
케이든은 그런 수비를 해낸 나에게 양손으로 박수를 쳤다.
글러브는 겨드랑이에 낀 채로.
진짜 타자였으면 매 경기 데드볼을 하나씩은 맞을법한 성격이었다.
2아웃에 주자가 없는 상황에 올라온 엘리자베스턴 트윈스의 4번 타자 콘라드.
그는 1-2로 몰린 카운트에서 케이든의 낙차 큰 커브를 타격했다.
뻗지 못하며 힘없이 뜬 타구.
중견수 찰스가 잡아내며 마지막 아웃 카운트까지 잡아냈다.
이렇게 펄래스키 양키스가 3연전을 모두 승리로 장식했다.
“다들 고생 많았다. 이번에 승격 후보라고 알려줬던 사람들은 전부 타격 코치인 존에게 가보도록.”
“고생하셨습니다!”
맨더슨 감독의 말에 나를 포함한 후보들은 존에게 갔다.
“하나, 둘··· 열셋. 다 왔네. 그러면 이제 싱글 A인 탬파 타폰스와 싱글 A- 팀으로 갈 선수들을 나눠서 불러줄게.”
“A-요? 전부 싱글 A로 가는 거 아니었나요?”
“중간에 케니스 감독 말이 바뀌어서 그렇게 됐어.”
존은 맨더슨 감독의 클립보드를 들고 선수들이 어디로 갈지 한 명씩 부르기 시작했다.
“최강남, 스티브, 케이든, 로버슨, 찰스, 스미스. 이렇게 6명이 이번에 싱글 A로 승격하게 됐어. 나머지 7명 중에서 싱글 A-인 찰스턴 리버독스로 갈 선수는···”
나머지 7명 중에서 4명이 A-로 승격.
나머지 3명은 계속해서 펄래스키 양키스에서 뛰게 되었다.
“다행이다. 이번에는 나도 싱글 A로 갈 수 있게 되었구나. 이번에도 못 가면 야구 관두고 가업 물려받을 생각까지 했어.”
“가업이 뭔데요?”
“부모님이 작은 식당 하시거든. 다행이네. 아직 도전할 수 있어서.”
“아직 어리잖아요. 너무 조급해하지 말아요.”
“스물셋 어리지. 근데 야구 선수로도 어린지는 잘 모르겠다.”
“무슨 승격 날에 한숨을 쉬어요. 이제부터 더 높이 올라가야죠.”
“그래야지. 나도 메이저리그에서 한번 뛰어보는 게 소원이거든.”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포수 포지션의 로버슨.
그의 어깨를 다독여주며 축하해줬다.
“그럼 우리 중에서 뉴욕 양키스의 싱글 A 밟아본 선수는 스티브뿐이네. 탬파 타폰스는 분위기가 어때? 감독은 괜찮아?”
감동적인 분위기를 깨는 말을 던진 사람은 베네수엘라 출신의 투수인 케이든.
하지만 모두가 궁금해하는 이야기였기에, 모두 스티브에게 고개를 돌렸다.
“시설이야 여기랑 비교도 안 되게 좋지. 분위기도 훨씬 괜찮고. 거기는 적지만 관중도 있고 해설도 있거든.”
“좋네! 그러면 딱히 조심할 건 없고?”
“있지. 탬파 타폰스의 감독 케니스. 완전 또라이거든.”
평소에 과격한 단어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 스티브.
그의 이야기에 모두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
“감독님. 오늘이 A-랑 R+에서 새로운 선수들 승격하는 날입니다. 혹시 따로 필요하신 거 있으십니까?”
“무슨 메이저리그 승격해? 뭘 준비까지 해. 그냥 대충 인사나 하고 끝내자.”
“알겠습니다. 그럼 평소처럼 별다른 준비하지 않겠습니다.”
케니스가 수석코치인 오스카에게 인상을 쓰며 대답했다.
그러자 오스카는 늘 있는 일이었던 것처럼 전혀 당황하지 않고, 조용히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뉴욕 양키스의 싱글 A 팀인 탬파 타폰스의 감독 케니스.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상위권 드래프트로 뉴욕 양키스에 입단한 유망주였다.
마이너리그로 온 첫 해에 더블 A와 트리플 A에서 압도적인 성적을 기록했다.
그리고 9월 확장 로스터를 통해서 메이저리그로 승격했다.
입단 첫 해에 메이저리그를 밟은 최고의 유망주.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음주운전, 일반인 폭행, 각종 스캔들까지.
두 번째 시즌부터 주전 2루수로 뛰던 그는 각종 사건사고에 늘 이름을 올리는 선수가 되었다.
워크 에씩(직업 정신)최악의 메이저리거.
언론은 늘 그의 이름을 거론했고 비슷한 시기에 슬럼프까지 찾아왔다.
그 후로 마이너리그에서 무려 8년.
8년이라는 시간 동안 다시 꿈의 무대라고 불리는 메이저리그로 승격되는 일은 없었다.
그리고 케니스는 마이너리그에서 쓸쓸하게 은퇴했다.
‘겨우 싱글 A가 무슨 대수라고 환영식까지 열어.’
그가 뛴 가장 낮은 마이너리그 무대는 더블 A.
하지만 오랜 마이너리그 생활 끝에 은퇴하고 뉴욕 양키스 프런트에서 제의한 일자리는 겨우 싱글 A의 감독이었다.
케니스의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었다.
모아놓은 돈이라고는 전혀 없고 늘 흥청망청 살았으니, 이 일을 하지 않는다면 당장 길거리에 나앉을 상황이었으니까.
그런 케니스가 싱글 A에서 올바른 코칭을 할 리가 없었다.
원색적인 비난. 그리고 가차 없는 질책.
그의 유일한 지도법은 이 두 가지뿐이었다.
선수들은 그런 케니스를 또라이, 정신병자 감독이라고 부르는 것까지 본인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케니스의 기준에서 그들은 재능 없는 패배자들이니.
잘하는 것과 잘 가르치는 것은 엄연히 다른 문제.
그럼에도 싱글 A인 탬파 타폰스에서 그가 4년째 살아남을 수 있는 이유는 단 한 가지였다.
그의 완벽한 선수 평가 리포트.
케니스의 진정한 장점은 재능 있는 선수들을 완벽하게 선별해내는 것이었다.
물론 재능 없는 선수들에게는 가차 없이 F word를 때려 박고는 했지만.
‘명예의 전당이라··· 어이가 없는 놈이네.’
많은 사건에 휘말리고 건방진 인터뷰로 늘 화제가 되었던 케니스.
하지만 그런 본인도 명예의 전당을 감히 언급해 본 적은 없었다.
메이저리그 선수들에게 그곳은 진정한 최종 목적지.
재능 있는 수많은 선수들도 감히 꿈도 꿀 수 없는 곳이었으니.
뉴욕 타임스 인터뷰는 그렇다 치고, 맨더슨 감독의 선수 평가 리포트에도 암묵적으로 명예의 전당이 언급되어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알려주지. 명예의 전당이 어떤 곳인지. 싱글 A가 얼마나 하찮은 곳인지.’
케니스는 오늘 승격되는 수많은 선수들 중에서 최연소 유망주라고 언론이 떠들어대는 최강남을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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