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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키 어드밴스드 리그 (4)
“그냥 해본 소리인데. 어제 데뷔한 루키 맞냐? 괴물 아니고?”
“또 홈런 쳤으니 오늘 밥은 제가 살게요. 뭐 먹을지 고민은 했어요?”
“그래도 나이가 있는데 슈퍼 루키한테 얻어먹을 수는 없지. 내가 백투백 홈런 치고 밥 사주마. 뭐 먹을지는 느긋하게 벤치에 앉아서 고민하고 있어.”
“진짜 이번엔 기대할게요.”
내 배트를 들고 있다가 건네주는 로버슨.
살짝 당황한 표정의 그에게 너스레를 떨며 이야기했고, 로버슨은 이내 자신감 있는 표정으로 바뀌더니 타석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그는 상대 투수인 안토니의 2구를 타격하며 솔로 홈런을 쳐냈다.
경기를 7:0으로 만드는 백투백홈런.
“포볼!”
안토니는 5번 타자인 루크에게 스트레이트 볼넷을 주며 흔들렸다.
“타임!”
그리고 쓸쓸하게 마운드를 내려갔다.
안토니에 이어서 마운드에 올라온 투수는 케니스.
더블 A 출신이지만 어깨 부상으로 작년에 R+로 내려온 케니스는 2아웃 1루의 위기를 유격수 땅볼로 처리하며 길고 긴 2회 말을 끝냈다.
7:0의 압도적인 상황에 올라온 로젠은 본인의 공식 경기 최고의 피칭을 보여줬다.
6이닝 3실점. 그건 로젠이 작년에 고등학교를 졸업 후에 마이너리그로 온 후에 첫 공식 경기 퀄리티스타트 페이스였다.
난 이후 타석에서 2루타 하나와 볼넷 하나를 추가했다.
마지막 타석에서 건드린 체인지업은 아쉽게 유격수 땅볼로 아웃됐다.
7회 초에 올라온 마틴은 2이닝을 1실점으로 잘 막아냈다.
9:4로 펄래스키 양키스가 압도적으로 앞서고 있는 상황.
9회 초 마운드에는 마무리 투수인 케이든이 올라왔다.
세이브 요건이 충족되지는 않았지만, 어차피 여기는 루키 리그다.
루키 리그에서의 세이브 따위는 그다지 큰 의미가 없었다.
말 그대로 상위 리그로 올라갈 수 있는 기록이 훨씬 중요했다.
이를테면 방어율이나 피안타율 정도.
“예쓰!”
그런 걸 아는지 모르는지 마운드 위의 저 철부지는 첫 타자를 삼진으로 잡고 크게 환호했다.
“슈퍼 루키 굿 플레이!”
두 번째 타자의 평범한 유격수 땅볼.
내가 아웃을 처리하자 날 양손으로 가리키며 찬사를 보냈다.
뭐··· 기분은 좋았다. 살짝 부담이 돼서 그렇지.
마지막 타자의 타구는 내야로 높이 떴다.
2루수와 유격수 사이에 뜬 공을 내가 콜 플레이 후에 가볍게 잡아냈다.
“헤이 슈퍼 루키. 오늘은 너한테 밥 좀 얻어먹나 했더니, 2개를 잡으면 내가 사야 되나 고민되잖아.”
“전 오늘 백투백 쳐낸 로버슨한테 얻어먹기로 해서. 후식은 제가 살게요.”
“로버슨? 나도 로버슨이랑 이야기 좀 해보고 올게!”
플라이를 잡아낸 내 어깨에 팔을 올리고 같이 더그아웃으로 들어오던 케이든은 포수인 로버슨에게 달려갔다.
올해 20살의 투수. 참 나잇값 못하는 스타일이었지만 밉지는 않았다.
결국 로버슨이 밥을 사기로 했다며 신이난 케이든.
사실 루키 팀의 선수들은 연봉이 평범한 알바보다도 못한 수준이었기에, 구단 측에서 무상으로 제공하는 딱딱한 식빵에 잼이나 먹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이 선수들은 다년계약으로 묶여서 루키 치고 괜찮은 연봉을 받는 선수들.
거기에다가 부상이나 구설수로 인해서 잠시 루키에 머무르고 있었기에 비교적 늘 호화로운 저녁을 먹을 수 있는 것이기도 했다.
몇몇이 일행에 추가되어 함께 2차전도 승리로 장식하고 경기장 근처의 식당으로 향했다.
“뭐야? 누가 계산했어?”
“내가 했지. 오늘 펄래스키로 오고 공식적인 첫 무실점 호투였잖아?”
“너 생각보다는 괜찮은 애였구나?”
밥값은 잠시 화장실에 다녀온다는 케이든이 지불했다.
로버슨은 그런 케이든에게 엄지를 치켜세웠다.
“오늘 후식은 제가 살게요.”
“역시 80만 달러 슈퍼 루키! 남자는 통이 커야지.”
그리고 난 후식으로 커피와 케이크를 선수들에게 샀다.
케이든은 행복한 표정으로 당근 케이크를 먹어 치웠다.
이렇게 프린스턴 레이스와의 2차전 날도 끝이 났다.
***
프린스턴 레이스와의 3차전은 초반부터 승부가 났다.
오늘 펄래스키 양키스의 선발은 레슬리.
그는 3이닝 동안 6실점을 하며 완벽하게 무너졌다.
그렇게 놀랄만한 일은 아니었다.
아무리 위대한 투수라도 언제나 완벽한 투구를 보여줄 수는 없으니.
하물며 여기는 루키 어드밴스드.
거기다가 1, 2차전 선발로 나왔던 스티브, 로젠과는 다르게 상위 리그 경험이 없는 레슬리.
데뷔전에서 대량 실점을 하며 무너져도 그러려니 할법한 일이었다.
나는 3차전에서는 홈런은 없었지만 2루타 하나와 볼넷 하나를 추가했다.
경기는 3:9로 패배하며 프린스턴 레이스와의 3차전은 2승 1패로 끝이 났다.
“내일부터는 테네시 주에서 경기가 있으니 각자 짐 챙겨서 버스에 타도록.”
“알겠습니다.”
오늘 경기가 이전 경기만큼 만족스럽지 않았는지 맨더슨 감독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다.
아무리 상위 리그로 보낼 선수들을 테스트하는 루키 어드밴스드 리그였지만, 패배를 좋아하는 감독은 없으니.
우리는 홈에서의 3연전을 마치고 버스에 탑승했다.
다음 상대는 엘리자베스턴 트윈스.
아메리칸 리그 중부지구에 소속되어 있는 미네소타 트윈스의 루키 어드밴스드 팀이다.
뉴욕 양키스에게 안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는 미네소타 트윈스.
포스트시즌에 13연패를 당했기에 본인들은 라이벌 의식까지 가지고 있을 만했다.
물론 뉴욕 양키스는 별다른 신경을 쓰고 있지는 않았다.
다행히 엘리자베스턴 트윈스의 홈구장인 테네시 주는 다른 팀에 비해 거리가 그리 멀지는 않았다.
그 거리가 553마일, 889km인 것은 한국과는 전혀 다른 문제긴 했지만.
프린스턴 레이스와의 3차전이 끝나고 버스를 타서 9시간 30분을 달려와서 겨우 도착했다.
중간에 잠깐 1시간을 쉬었다고 했지만 깊게 잠에 빠져들어서 전혀 몰랐다.
“다들 한 번씩 깼는데 넌 전혀 안 깨던데? 하긴 적응하면 좋지. 마이너리그는 경기장보다 버스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다는 우스갯소리도 있으니.”
“저는 원래 버스에서 잘 자는 편이어서요. 뭐 이정도면 동네 버스보다는 낫네요.”
“그런 싸구려 버스랑 비교하는 건 좀 그렇지. 메이저리거들은 비행기 타고 이동한다던데. 난 언제 비행기 타보려나.”
버스에서 편하게 잠을 자는 날 보고 신기한 듯이 로버슨은 이야기했다.
한국의 야구 선수들은 버스에서 정말 많은 시간을 보낸다.
KBO에서만 10년을 넘게 버스를 타며 선수 생활을 했으니, 웬만한 호텔보다 버스에서 자는 게 한때는 편하다고 느낄 정도였다.
“슈퍼 루키 방은 어때? 펄래스키 양키스에 있을 때가 좋았지?”
“밤에 코 고는 사람은 없을 테니 잠은 편하게 자겠네요.”
“내가 코를 곤다고? 다들 나보고 소녀처럼 얌전하게 잔다던데.”
1인 1실의 방 배정 후에 짐을 두고 로비로 나오니 로버슨이 말을 걸었다.
난 그런 로버슨에게 장난을 쳤고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받는 모습이다.
저런 근육을 두고 그런 끔찍한 말을 하다니.
“내가 예전에 같은 방 써서 아는데 코를 좀 고는 편이긴 하지.”
“그래도 메리는 나한테 그런 말 한 적 전혀 없었는데.”
“그래. 그런 적은 없겠지. 조용히 헤어졌지.”
“코를 골아서가 아니고 그냥 성격 차이였어.”
“좋은 사람이었네. 마지막까지 배려하며 헤어지는 걸 보니.”
그와 작년에도 같이 루키 어드밴스드에서 뛰었던 찰스의 농담에 로버슨은 사뭇 진지해진 표정으로 다시 나에게 물어봤다.
“정말 코 많이 고니?”
“아 농담이에요. 조금 골아요. 덩치만 보면 곰인데 뭘 그렇게 걱정해요.”
“그냥··· 메리가 혹시나 그래서일까?”
“됐어요. 아침이나 간단히 먹으러 가요.”
곧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침울해하는 로버슨의 어깨를 두드리며 무상으로 제공하는 식당으로 향했다.
남자가 우는 것도 질색이지만 저렇게 덩치 큰 남자는 더더욱 싫다.
솔직히 저 근육 덩어리가 운다고 생각하면 기괴할 것 같긴 하다.
펄래스키 양키스에서 무상으로 제공하는 식빵에 땅콩 버터 잼을 발라먹었다.
그리고 아주 부실한 샐러드도 함께 곁들며 간식 같은 아침 식사도 마쳤다.
“지금 새벽 5시니깐 잠시 휴식 후에 10시부터 가볍게 몸 풀자.”
“알겠습니다.”
수비 코치인 로버트의 이야기에 모두들 각자의 방으로 흩어졌다.
난 9시에 알람을 맞추고 침대에 누웠다.
탄력이라고는 전혀 없는 매트리스에 누워서 잠깐 눈을 감았다.
***
“맨더슨! 지금 전화 괜찮지?”
“괜찮습니다. 무슨 일인가요? 지금 테네시라 현지 시간으로 8시 23분이라 살짝 피곤하긴 하네요.”
“미안해. 워낙 급한 일이라서.”
선수들과 같은 싸구려 침대에서 잠깐 눈을 감았던 펄래스키 양키스의 감독 맨더슨.
그는 요란한 컬러링 소리에 잠에서 깨 전화를 받았다.
“파티에 초대하려고.”
“네?”
“농담이야. 우리 사이에 무슨 일로 전화하겠어? 당연히 선수 승격 문제지.”
싱글 A의 감독을 맡고 있는 케니스.
A+(클래스 A 어드밴스드)가 없는 뉴욕 양키스에게는 A 리그에서 가장 높은 감독이기도 했다.
“아침부터 전화해서 미안해. 근데 우리도 이번에 더블 A 부탁으로 8명이나 올렸거든. 선수들이 너무 모자라서 지금 원정경기 끝나고 6명 정도만 올려줬으면 좋겠는데.”
“쇼트시즌은 연락해봤어요?”
“A-? 당연히 연락했지. 거기서 3명 도와주기로 했어. 거기도 더블 A로 4명이나 승격 시켰더라고. 페르디난드가 더블 A의 역사를 갈아치울 계획인가 보네.”
뉴욕 양키스의 더블 A 팀인 트렌턴 선더 감독을 맡고 있는 페르디난드.
높은 자리로 올라가고 싶다는 출세 욕망이 상당한 그를 케니스는 비꼬며 이야기했다.
“설마요. 더블 A에서 무슨 대단한 기록을 세운다고. 그쪽도 트리플 A에 지원하다 보니 적어진 거겠죠. 확장 로스터가 3달도 안 남았으니 트리플 A쪽도 상당히 바쁠 시기잖아요?”
“말이 그렇다는 거지. 어쨌든 우리 쪽에 필요한 인원은 투수, 내야수 셋이랑 외야수, 포수 하나야. 내야수는 키스톤 콤비인 유격수 하나랑 2루수가 두 명 필요해.”
승격은 선수들의 엄청난 실력으로 올라갈 때도 있었지만, 대체로 이런 식으로 TO(인원 편성표)가 비어있을 때 올라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당장 2루수를 둘이나 보내는 것은 너무 많았다.
“그렇게 많이요? 저희도 2루수는 자원이 많지는 않아서요.”
“2루수는 지금 아예 후보가 없어. 더블 A에서 2명이나 데려갔거든. 이제 부상이라도 당하면 근처 리틀야구에서 아이스크림이라도 이적료로 지불하면서 데려와야 될 판국이야.”
“알겠어요. 이번 원정 경기 끝나고 명단 보낼게요.”
“고마워. 올해 시즌 끝나면 같이 술이나 한잔하자고!”
맨더슨은 한숨을 쉬며 전화를 끊었다.
뭐 별수 있겠는가. 인력이 모자라면 일단 상위 리그부터 채우는 것이 당연히 우선이었다.
유격수 하나와 2루수 둘, 투수 셋과 외야수 포수 각 한 명씩.
맨더슨은 그동안 연습경기와 프린스턴 3연전 모두를 상세하게 적어놓은 클립보드를 인상을 쓰며 자세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떤 선수들을 싱글 A로 보내야 할지 고민했다.
잠시 동안의 고민을 한 맨더슨은 이어서 클립보드를 다음 페이지로 넘겨서 승격 후보인 선수들의 명단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투수에 4명, 포수에 2명, 외야수 2명에 2루수는 3명을 적은 맨더슨.
그리고 잠깐 고민을 한 그는 다시 클립보드에 뭔가를 작성했다.
클립보드의 유격수 자리에는 한 명의 이름만이 적혀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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