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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 루키의 등장 (8)
“축하한다. 난 루키 리그부터 시작하게 됐어.”
“너도 곧 올라오겠지. R+에서 보자.”
같이 양키스에 입단하게 된 마이클은 루키 리그부터 시작하게 되었다.
난 이번 버지니아 대학 3연전에서 주전으로 나왔던 선수들과 함께 R+의 홈 구장인 버지니아 주 펄래스키로 향했다.
“다들 루키 어드밴스드에 온 걸 환영한다. 나는 저번에 이야기 한 것처럼 이곳의 감독을 맡고 있는 찰스 맨더슨이라고 한다.”
“난 타격 코치를 맡고 있는 존이다.”
“난 수비 코치를 맡은 로버트라고 해.”
감독인 맨더슨이 간단히 소개를 하자 존과 로버트도 이어서 입을 열었다.
“간단하게 이야기하지. 우리의 목표는 승리다. 하지만 리그 우승보다 중요한 건 상위 리그로 승격하는 거라는 걸 모두들 알고 있겠지?”
“예스!”
“하지만 본인만 올라가겠다는 생각으로 튀려고 노력하는 선수는 상위 리그에서도 필요하지 않다. 여기는 말 그대로 루키, 가장 기본적인 기술들을 배우고 숙련하는 곳이지. 우리는 안정적으로 완벽하게 이기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렇게 되면 이미 자네들은 상위 리그로 승격하고 없겠지만.”
감독인 맨더슨은 이후로 기본적인 수비와 타격의 중요성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러고 보니 코치는 타격과 수비 둘뿐이었다.
그 이상이 필요해지는 순간 상위 리그로 보낸다는 뜻이다.
“슈퍼 루키! 내가 감독님한테 부탁해서 같은 방으로 배정해달라고 했어. 싫지는 않지?”
“예. 괜찮습니다.”
“그래! 7월까지 잘 지내보자고!”
“7월이요?”
“당연하지. 여기서 평생 뛸 거야? 여기 있는 모든 선수들은 리그 개막 한 달 안에 위로 올라가기를 희망한다고. 그 기간이 지나면 곧 싱글 A 리그도 끝나버리거든. 그렇다고 너무 무리해서 부상이라도 당하면 곤란해.”
나와 같은 방을 쓰게 된 로버슨.
그는 포수와 동시에 R+의 주장을 역임하고 있기도 했다.
“시즌은 6월에 시작이라던데 그러면 앞으로 3달 정도는 기본 훈련만 하는 건가요?”
“공식 기록이 6월부터지. 모든 루키 리그 팀들은 3월부터 비공식 연습경기를 수없이 뛰게 되지. 1주에 최소 한 팀과는 경기가 잡혀있고 3연전을 치르니깐.”
내 질문에 로버슨은 친절하게 웃으며 이야기해줬다.
그리고 나와 로버슨이 함께 생활할 숙소도 보여줬다.
실전도 뛰어가며 기본기에 집중하는 리그.
확실히 메이저리그의 유망주 육성 시스템은 체계적인 편이었다.
물론 숙소가 시설이 좀 낙후되긴 했지만, 쥐가 나올 정도로 형편없지는 않았다.
“이 정도면 시설도 괜찮지? 물론 원정경기는 싸구려 모텔에서 묵긴 하지만 홈 숙소는 다른 팀과 수준이 다르지.”
양키스로 오기 이전에 다른 팀의 루키로 6개월을 뛰었다던 로버슨은 숙소의 매트리스를 손으로 두드리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싸구려 매트리스는 별다른 탄력을 보여주지는 않았다.
“로버슨! 맥주나 한잔하러 갈까? 슈퍼 루키도 있네? 너도 같이 가자.”
“얘는 이제 16살이야. 술은 됐고 기념 파티 의미로 간단히 밥이나 먹고 오자고.”
“뭐? 16살? 로젠보다도 3살이 어리네.”
케이든이 노크도 없이 방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다.
얘도 그렇고 로버슨도 그렇고 여기서 내 별명은 슈퍼 루키로 완전히 굳혀진 듯했다.
버지니아 대학과의 경기에서 마무리로 1, 3경기를 뛰었던 케이든.
삼진을 잡은 후에 글러브로 박수를 치며 환호하고 볼넷을 주면 스파이크로 마운드의 흙을 벅벅 긁으며 욕을 하는 투수.
전형적인 중남미 스타일인데다가 영어 발음도 굉장히 어색했다.
“아직 술은 힘들겠네요. 제가 생각보다 많이 어려서.”
“뭐야? 에스파냐어도 할 줄 알아? 포수인 로버슨도 못해서 타임 외치고 마운드 올라와서 매번 calm down(진정해)만 외치다 내려가는데.”
“여기 오기 전에 3달 동안 쿠바 선수랑 같이 트레이닝 센터에 있었거든요.”
“3달? 언어 천재네. 난 베네수엘라 출신이다. 반갑다.”
내가 스페인어로 이야기를 하자 케이든은 굉장히 반가워하며 오른손을 내밀었다.
난 그런 케이든에게 웃으며 악수를 건넸다.
스페인어를 아무도 못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했다.
루키 리그에서 스페인어를 쓰는 선수들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중남미 선수들은 자국 리그에서 괜찮은 기록을 가지고 메이저리그를 도전하는 선수들이 대부분이니깐.
그런 면에서 케이든은 굉장히 도전적인 남자였다.
베네수엘라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미국으로 건너와서 선별 테스트를 통과하고 이곳으로 왔으니.
케이든의 말에 따르면 미국으로 온 두 번째 해에 A+까지 올라가며 본인의 능력을 증명했지만, 음주로 인해서 방출되었다고 한다.
뭐··· 더 정확히 말하자면 스페인어를 제대로 쓸 줄 아는 선수가 하나도 없었다고.
미국은 만 21세가 되어서야 술을 마실 수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고 한다.
베네수엘라는 만 18세부터 술을 마실 수 있어서, 고교 선수 시절에는 좋은 피칭 후에 감독이 술을 사주는 것이 본인의 일종의 루틴이었다고까지 했으니.
그래서 21세가 넘은 지금은 맥주를 자주 마시러 다닌다고 한다.
스페인어를 아무도 할 줄 몰라서 늘 외로웠다는 케이든.
덕분에 앞으로 상당히 재밌으면서도 피곤할 것 같다.
***
버지니아 대학교와의 3연전이 끝나고 하루의 휴식 후에 다시 훈련에 돌입했다.
“나이스 수비 스트롱!”
수비 코치는 5번의 펑고를 모두 안정적으로 받아낸 나에게 칭찬을 해주었다.
스트롱이라고 불리는 것은 좀 민망했지만.
난 펄래스키 양키스에서 주전 유격수로 낙점받았다.
수비력은 물론이고 타격도 그전까지 주전 유격수로 뛰었던 에이든보다 훨씬 뛰어난 모습을 보여줬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한 주를 훈련으로 마치고 다음 주에는 프린스턴 레이스와의 3연전이 잡혀있었다.
뉴욕 양키스와 같은 동부지구인 탬파베이 레이스의 루키 팀.
메이저리그에서 손꼽히는 가난한 구단인 탬파베이.
그런 탬파베이의 생존 전략은 유망주를 잘 키워내는 것이었다.
돈이 없는 만큼 유망주를 키워내는 것에는 자신이 있는 팀.
그것은 루키 리그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타임!”
탬파베이의 루키 팀인 프린스턴.
그들은 3회까진 점수를 내지 못했다.
하지만 4회부터는 펄래스키 양키스의 떠오르는 신예인 선발 투수 로젠의 공을 두드렸다.
그리고 포수인 로버슨은 그런 로젠을 위로해주러 마운드로 올라갔다.
로젠은 그 후에 안타를 하나 더 맞았지만 다음 타구를 내가 아웃처리하며 4회 초도 끝이 났다.
“쉽지 않네. 공은 빠르고 제구도 나쁘지 않은데.”
“그러게요. 148km/h가 느린 공은 아닌데요.”
“92마일이 148km/h였나? 특이하네. 여기서는 대부분 마일로 이야기하는데.”
“한국에서는 시속으로 불러서 그런가. 저절로 계산이 되더라고요.”
“그래? 어쨌든 슈퍼 루키! 좋은 모습 보여주라고!”
4안타를 맞으며 2실점을 했던 4회 초 수비도 끝이 나고, 포수 장비를 벗는 로버슨이 소리쳤다.
난 그런 로버슨에게 대답 대신 웃어 보이며 대기타석으로 걸어갔다.
상대 투수는 4회에도 여전히 매튜가 올라왔다.
1회에 내가 골라낸 볼넷을 제외하면 여전히 노히트 노런을 유지중인 모습.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얼마 안 된 매튜는 탬파베이에서 최고 유망주 취급을 받는 투수였다.
고교를 갓 졸업한 선수에게 2년에 50만 달러.
메이저리그 30구단 중에서 가장 적은 페이롤을 보유하고 있는 탬파베이에서 역대 가장 큰 금액을 쓴 유망주였다.
펄래스키 양키스의 2번 타자는 스미스.
나와 키스톤 콤비를 이루고 있는 2루수로 뛰고 있었다.
“스트라이크 아웃!”
그는 루키 치고는 비교적 안정적인 수비를 보여줬지만 타격은 처참한 수준이었다.
본인이 원하는 구종과 코스로 오지 못한다면 치지 못하는 전형적인 예측 타격을 하는 타자.
2스트라이크 상황에서 자신이 원하는 공이 오지 않았는지, 배트를 휘두르지도 않고 삼진으로 물러났다.
그렇게 1아웃 주자 없는 상황의 4회 말.
내가 타석에 올라왔다.
***
연습경기 시작 1시간 전. 맨더슨은 스쿼드를 존에게 건네주며 벽에 붙이라고 했다.
참 시대와 맞지 않는 스타일이라고 존은 생각하며 스쿼드를 살펴보다 의문이 생겼다.
“감독님. 왜 최강남 선수를 3번 타자로 기용하십니까? 전에 유격수였던 에이든처럼 2번 타자로 쓰거나 아예 장타를 예상하면 6번 타자가 낫지 않겠습니까?”
“왜 2번이 낫다고 생각하나?”
“작전 수행 능력도 상당히 좋다고 생각합니다. 선구안도 나쁘지 않고요.”
펄래스키 양키스의 타격 코치인 존은 감독인 맨더슨에게 몹시 궁금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물어봤다.
이러한 의문도 맨더슨이 늘 수평적인 구조를 강조하기에, 쉽게 물어볼 수 있는 것이기도 했다.
“이번 버지니아 연습경기 최강남 기록이 어떻다고 생각하나?”
“이번이 첫 시즌이라고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좋은 기록이죠. 홈런만 2개에 볼넷도 2개 골라내며 선구안도 괜찮고요. 특히 결대로 밀어치는 타격이 정말 훌륭합니다.”
“그래. 큰 한방을 쳐줘야 되는 순간과 짧은 스윙을 가져가며 기회를 만들어야 되는 타이밍을 아는 루키는 거의 없지. 이 리그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노련한 스타일이야.”
“그래도 첫 경기인데 바로 3번 타자로 기용하는 건 부담이 크지 않을까요?”
“그러니 시험해보는 거지. 싱글 A에서 뛰어도 어울릴만한 선수인지.”
맨더슨은 본인의 클립보드에 무언가를 작성하며 존에게 대답해줬다.
존은 무언가를 더 이야기하려다가 하고 싶은 말을 삼켰다.
‘설마 이제 겨우 16살짜리 루키인데.’
싱글 A는 5군으로 분류 받는 리그.
하지만 전혀 만만히 볼만한 곳이 아니었다.
고졸 1년차가 싱글 A에서 주전으로 뛰게 되면 초특급 유망주.
고졸 3년차가 주전으로 뛰어도 상위권 유망주로 주목받게 되는 리그였다.
심지어는 싱글 A를 밟지도 못하고 다른 나라의 리그로 가는 유망주들도 많았다.
하물며 최강남은 겨우 16살이었다.
최근 16살 어린 나이에 계약 후에 메이저리그에 안착한 선수들의 이야기가 몇몇 들려왔다.
그 이후로 많은 팀들은 U-15에서 좋은 모습을 펼친 선수들을 영입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래도 대부분은 루키나 루키 어드밴스드에서 최소 1년은 보내기는 마련이었다.
하지만 이제 연습경기를, 그것도 버지니아 대학교와의 3연전을 치른 게 고작이었다.
‘맨더슨 감독의 눈은 어긋난 적이 없었는데. 오늘 경기는 유심히 지켜봐야겠네.’
경기가 시작되고 존은 평소처럼 선수들의 타격만이 아닌 최강남의 수비까지 집중하며 지켜봤다.
언젠간 맨더슨의 자리가 자기의 것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수비는 흠잡을 곳 없이 훌륭했다.
1번 타자가 쳐낸 공은 2유간으로 느리게 굴러갔다.
프린스턴 레이스의 1번 타자인 중견수 닉.
그는 빠른 발을 자랑하는 2년 차 R+의 주전이어서 수비 코치인 로버트가 강조했던 인물이기도 했다.
최강남은 슬라이딩으로 잡아내면 세이프가 될 코스의 타구를 미리 예측 지점으로 이동해서 안정적으로 잡아내며 아웃을 만들어냈다.
1회 말 펄래스키 양키스의 공격.
1번 타자인 중견수 찰스는 3구를 타격했다.
유격수 땅볼로 물러났다.
하지만 가운데로 몰리는 실투성 공이었기에 나쁘지 않은 타격이었다.
2번 타자인 2루수 스미스는 2구를 타격했다.
역시 가운데로 몰리는 공이었고 중견수 뜬공으로 물러났다.
3번 타자는 맨더슨 감독이 주목하는 타자인 최강남.
그는 9구까지의 끈질긴 승부 끝에 볼넷으로 1루로 진루했다.
그리고 4번 타자인 포수 로버슨에게 뭐라 속삭이고 1루로 뛰어갔다.
로버슨은 2구를 잘 쳐냈지만 아쉽게 펜스 앞에서 중견수 뜬공으로 1회 말 공격이 끝이 났다.
아쉬워하는 표정으로 더그아웃으로 들어와 포수 장비를 차는 로버슨에게 존은 조심히 다가가서 물어봤다.
“최강남이 아까 뭐라고 속삭이던데. 무슨 이야기 했어?”
“안 그래도 장비 차고 말씀드리려고 했습니다. 매튜 저 자식 공에 이상한 장난을 칩니다. 찰스와 스미스가 아웃당한 공 모두 느린 포심입니다.”
“느린 포심? 완급 조절을 한다고?”
“예. 슈퍼 루키가··· 아니지. 최강남 선수가 1, 2번 타자가 타격했던 공이 평소보다 3마일 정도 느려서 끝까지 확인해봤는데 확실하답니다. 초구보다 살짝 느리게 타이밍을 잡았는데 아쉽게 못 넘겼네요.”
“그래. 다른 타자들한테는 내가 알려줄게.”
타격 코치인 존은 이제야 맨더슨 감독이 최강남을 높게 평가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맨더슨이 선수들에게 늘 강조하는 안정적으로 완벽하게 이기는 법.
저 16살 루키는 어린 나이임에도 야구의 본질을 꿰뚫는 모습이었다.
진정한 슈퍼 루키의 등장이었다.
따악―!
그리고 그 슈퍼 루키가 노히트 노런을 기록 중인 매튜의 공을 타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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