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역대급 홈런왕의 탄생-41화 (4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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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 루키의 등장 (6)

“첫날부터 연습경기라니. 생각도 못 했는데.”

“그래도 우리에게도 기회가 오지 않을까? 그러니 유니폼도 줬을 테고.”

“유격수인 넌 몰라도 포수인 나는 힘들걸. 아직 투수들이랑 사인도 전혀 모르니 오늘은 못 뛸 거 같은데.”

다른 선수들보다 뒤늦게 합류한 나와 마이클은 가볍게 몸을 풀기 시작했다.

몸을 다 풀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미국 대학 야구 랭킹 8위의 강호인 버지니아 대학교의 학생들이 도착했다.

메이저리그에 올라가기 위해서 거쳐야 할 마이너리그는 총 7단계.

R, R+(루키 어드밴스드), A-(쇼트시즌 싱글A), A, A+(A 어드밴스드), AA(더블 A), AAA(트리플 A).

이 중에서 A-부터 트리플 A는 4월 1일부터 시즌이 시작된다.

시범경기 시즌이 코앞이니 당연히 오늘 버지니아 대학교와의 경기에는 참여하지 않는다.

하지만 루키와 루키 어드밴스드는 달랐다.

6월 초에 개막하고 8월 말까지 겨우 60경기의 일정인 두 리그.

그러므로 오늘 경기에 참여하는 선수들은 당연하게도 R, R+ 멤버들뿐이었다.

“오늘 경기에 뛸 선수들 스쿼드는 벽에 붙여뒀으니 전부 경기 전에 확인하도록. 그리고 오늘 소집된 모든 선수들은 언제든 교체해서 들어갈 수 있으니깐 전부 대기하고.”

“알겠습니다!”

오늘 경기에서 임시 감독을 맡은 찰스 맨더슨.

본인을 R+의 감독이라고 소개한 맨더슨은 3일 동안 모든 선수들에게 기회를 줄 것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버지니아 대학교와의 경기 시작까지 남은 시간은 1시간 30분.

“슈퍼 루키 둘! 반갑다. 나는 루키 리그에서 주전 포수와 주장을 맡고 있는 로버슨이야. 간단하게 루키 리그에 대해서 설명해줄게.”

몸을 다 풀고 잠시 벤치에 앉아있던 나와 마이클에게 로버슨이 다가왔다.

어린 나이에 리그에 합류한 우리를 슈퍼 루키라고 부른 그는 이런저런 설명을 이어갔다.

리그 일정이라든가, 몇 경기인지, 감독의 성격이나 코치들의 스타일.

뻔한 말들을 읊던 로버슨은 갑자기 표정이 바뀌더니 낮게 깔린 목소리로 마지막 말을 던졌다.

“선수들끼리는 루키 리그를 재능 없는 자들의 무덤이라고 부르지. 뭐··· 누군가에겐 이곳도 꿈의 무대일 수도 있겠지만, 결국 여기 있는 모든 선수들은 메이저리그가 목표거든. 이 중에서 1%도 그곳에 도달조차 못할 테니깐.”

“혹시 조심해야 될 것도 있을까요?”

그런 로버슨에게 마이클은 떨리는 목소리로 질문을 던졌다.

로버슨은 그런 마이클에게 웃어주며 친절하게 말을 이어갔다.

“부상. 난 작년에 사타구니 부상을 입고 다시 루키 리그로 돌아왔어. 그 외에는 경기장에서는 물론이고 밖에서도 개인플레이가 심하다는 것? 다들 잘 알고 있거든. 어차피 이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대부분은 10년 후에 야구와는 상관없는 인생을 살아간다는 사실을.”

로버슨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이야기했다.

그리고 한마디를 덧붙였다.

“그러니 야수들 간의 콜을 비롯한 좋은 팀플레이가 나올 리가 없지. 다들 하루라도 빨리 이 리그를 벗어나려고 발버둥 치거든. 어쨌든 지옥에 온 걸 환영한다. 슈퍼 루키들!”

“잘 부탁드립니다.”

“난 오늘 선발로 뛰어야 해서 이제 선발 투수랑 호흡 맞추러 가봐야겠다. 언제든 궁금한 거 있으면 눈치 보지 말고 물어봐. 난 너네처럼 재능 있는 슈퍼 루키들이 좋거든.”

마지막까지 웃음을 잃지 않으며 시종일관 친절한 태도를 유지하던 로버슨은 그렇게 자리를 떠났다.

“우리끼리 캐치볼이라도 간단히 할까?”

“그래. 어느 정도 각오는 했는데 역시 여기는 쉽지 않겠네.”

로버슨의 이야기를 듣고 한껏 풀이 죽어있는 마이클.

그런 마이클을 다독이며 난 글러브를 집어 들었다.

***

“감독님. 버지니아 선수들도 준비 다 끝났답니다.”

“그래. 그러면 이제 경기 시작하자고.”

“알겠습니다.”

오늘 임시 감독을 맡은 맨더슨. 그의 대답에 타격 코치는 선수들을 불러 모았다.

“다들 오늘 경기에서 좋은 플레이 기대하겠다. 특히 부상을 입지 않도록 각별히 신경 써주도록.”

“알겠습니다!”

선수들이 모이자 맨더슨 감독은 간단한 격려와 함께 부상을 강조했다.

R+의 감독으로 뛰고 있는 맨더슨.

당연하게도 그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역할은 좋은 선수들을 선별해내서 상위 리그로 보내는 것이었다.

물론 승리도 중요하고 루키 리그를 우승하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선수들에게 굳이 지는 습관을 만들어줄 이유는 전혀 없었으니.

하지만 말 그대로 루키 리그의 우승은 아무 의미가 없다.

거기에다가 루키 리그는 관객조차 없었다.

리그 중에도 관객석은 50석 정도가 평균이었다.

그마저도 선수들의 가족이나 애인 등 지인을 제외하면 10명 내외.

입장료가 없으니 할 일 없는 동네 백수들이 앉아서 캔맥주나 홀짝이며 대충 시간이나 때우다가, 경기가 끝나기도 전에 자리를 떠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이렇듯 루키 리그에서 우승을 진심으로 바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감독, 코치, 선수, 심지어 관중들까지도.

오늘 경기에 뛰는 모든 선수들의 목표는 단 하나.

바로 재능 없는 선수들의 무덤이라고 불리는 루키 리그를 벗어나는 것.

모든 선수들이 그런 각오로 경기를 뛰며 좋은 모습을 보여주려 노력하니, 당연히 부상은 비일비재한 일이었다.

그러니 맨더슨은 언제나 경기 시작 전에 부상을 강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플레이 볼!”

심판의 콜로 오늘의 경기가 시작됐다.

상대는 대학 야구 랭킹 8위의 강호인 버지니아 대학교.

하지만 맨더슨은 별다른 걱정은 하지 않았다.

어차피 루키 리그에조차 진입하지 못하거나 큰 계약금의 허황된 꿈만 바라는 선수들이 진학하는 야구 대학교.

말 그대로 오늘 선수들의 컨디션 측정을 위한 연습경기일 뿐이었다.

맨더슨은 평소처럼 클립보드와 펜을 집어 들었다.

2022년에 어울리지 않는 고리타분한 물건들.

그의 성격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기도 했다.

오늘의 선발 투수로 나온 로젠. 최고 구속 151km/h를 던지는 올해 19살의 투수였다.

하지만 루키 리그에 있는 선수들은 모두 하나씩 치명적인 단점을 보유하고 있기 마련.

로젠의 최대 단점은 바로 끔찍한 커맨드.

상위리그 투수들처럼 스트라이크 존을 나눠서 던지기는커녕 존에 아예 넣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렇다고 새가슴은 전혀 아니었다.

오히려 대담한 편이었다. 그렇기에 더 문제가 컸다.

전형적인 제구력이 안 되는 투수.

“스트라이크 아웃!”

하지만 아직 어린 나이였고 몇 번 경험하지 못한 그에게 프로의 겨울은 너무나도 길었다.

재능 있는 유망주들이 새로운 선수로 탈바꿈하는 모습.

10년 가까이 루키의 감독을 수행했던 맨더슨은 이런 변화를 많이 봐왔기에 그다지 놀라지 않았다.

‘로젠은 곧 A-로 보내도 되겠네.’

그저 클립보드에 로젠의 새로운 장점을 기록할 뿐.

작년까지는 포수가 점프 캐치를 해도 못 잡을 코스로도 공을 던졌지만, 올해는 그래도 실투를 포수가 잡을 수 있는 위치로 공을 던졌다.

좋은 평가를 받은 로젠은 삼자범퇴로 1회 초에 좋은 피칭으로 마운드를 내려왔다.

1회 말의 공격에서는 선두 타자인 케빈이 볼넷을 골라냈지만 2번 타자인 에이든이 병살타를 치며 찬물을 끼얹었다.

오늘 유격수로 선발 출장한 에이든.

그는 루키에서도 불안한 수비를 가지고 있었지만 타격만큼은 더블 A에 올려놔도 될 정도로 좋은 타자였다.

하지만 첫 타석부터 아쉬운 타격을 보여줬다.

이어서 올라온 3번 타자마저 뜬공 아웃.

1회 말 루키 팀의 공격도 삼자범퇴로 끝이 났다.

선발로 나온 로젠은 괜찮은 모습을 보여주며 4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아냈다.

감독인 맨더슨은 투수 코치를 시켜서 그런 로젠을 바꿔줬다.

아무리 5, 6부 리그라고 불리는 루키 리그였지만 선수 혹사만큼은 절대 허용하지 않는 맨더슨이었다.

그러한 이유로 10년 넘게 좋은 평가를 받으며 이 자리에 있는 것이기도 했다.

팽팽한 0:0의 경기는 4회 말 타석에 들어선 루키 팀의 4번 타자 포수 로버슨에 의해 깨졌다.

1아웃에 주자 없는 상황에 올라온 로버슨은 상대 투수의 공을 힘껏 당겨쳐서 좌중간 담장을 넘기는 홈런을 때려냈다.

“굿 플레이!”

홈런에도 늘 조용한 분위기의 루키의 더그아웃.

가끔 끝내기 홈런에나 나올법한 환호에 맨더슨은 뒤를 돌아봤다.

거기에는 오늘 양키스로 입단한 16살짜리 꼬맹이 최강남이 입가에 두 손을 모아 소리를 지르는 모습이 보였다.

‘귀엽네. 한창 그럴 때지.’

더그아웃에 있는 다른 선수들도 맨더슨과 비슷한 눈빛으로 최강남을 바라봤다.

지금은 앉아서 클립보드에 조용히 기록만 하던 맨더슨도 자기 팀 선수의 홈런에 홈 플레이트로 뛰쳐나가던 시절도 있었으니깐.

난타전이 예상되었던 버지니아 대학교와의 1차전은 예상외로 투수전으로 흘러갔다.

아무래도 1선발로 나온 버지니아 대학교의 데이비스가 오늘 잘 긁히는 날임이 분명했다.

루키 리그 팀은 6회 말에 1번 타자 케빈이 안타를 치며 출루했다.

다음 타자는 유격수로 뛰고 있는 2번 에이든.

하지만 에이든은 첫 타석 병살타에 이어 두 번째 타석은 터무니없는 스윙 삼진으로 컨디션이 좋지 않아 보였다.

유격수로 뛸 수 있는 선수는 무려 6명이나 되었기에 대타를 고민하던 맨더슨의 눈에 최강남이 들어왔다.

“타임!”

다른 선수들과는 달리 완전히 경기에 집중하며 지켜보는 눈빛.

거기다가 3년 80만 달러로 영입되어 프런트에서 주목하는 유망주라고 언질까지 내려왔다.

아까 그 환호까지 더불어서 현재 맨더슨의 머릿속에 각인된 유격수는 최강남.

노아웃 1루의 상황에 최강남이 대타로 타석에 들어섰다.

***

나와 마이클은 더그아웃 한편에 앉아서 경기를 지켜보고 있었다.

별다른 잡담 없이 쥐 죽은 듯 조용한 더그아웃의 분위기.

확실히 메이저리그나 잠깐의 부상 때문에 내려갔던 트리플 A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였다.

그런 상황에 아까 우리에게 조언을 해줬던 포수 로버슨이 홈런을 쳤다.

난 그 홈런을 보고 일어서서 크게 환호했다.

“미쳤어? 갑자기 무슨 환호야. 차가운 분위기 좀 봐. 공기도 얼어붙겠다.”

“알 게 뭐야. 로버슨이 홈런 쳤는데. 그리고 경기는 이기면 좋지.”

마이클은 당황하며 그런 내 행동을 말렸지만 난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로버슨에게 환호를 보냈다.

더그아웃에는 잠깐의 정적이 이어졌지만 다른 선수들도 로버슨의 홈런을 축하하듯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로버슨 좋은 타격!”

“나이스 홈런!”

내 환호를 시작으로 더그아웃의 경직된 분위기도 조금은 풀렸다.

이후로는 이런 분위기를 유지하며 경기가 이어졌다.

“최강남! 대타 들어갈 준비해.”

그리고 내게도 기회가 찾아왔다.

“슈퍼 루키. 홈런이라도 하나 치고 와. 내가 아까 너처럼 환호해 줄 테니깐.”

“환호만 말고 홈 플레이트로 달려와 줘요.”

“그래. 데뷔 타석 홈런이라도 쳐낸다면 내가 특별히 홈으로 달려가 주지.”

로버슨은 나의 긴장을 풀어주려는 듯 농담을 건넸고 나도 농담으로 받아쳤다.

그렇게 노아웃 1루의 상황에 대타로 내가 타석에 들어서게 됐다.

투수는 로버슨에게 솔로 홈런을 맞았지만 아직도 마운드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데이비스.

포심과 커브와 슬라이더를 던지는 쓰리 피치 스타일의 투수였다.

슬라이더는 구속이 느린 포심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밋밋하다고 아까 타격코치가 선수들에게 이야기했었다.

‘포심과 커브.’

이 두 가지 공만을 머릿속에 담아두고 준비를 마쳤다.

데이비스는 와인드업 후에 초구를 던졌고 실투성 공인지 가운데로 몰리는 코스였다.

난 초구에 그대로 배트를 휘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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