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6 - 3753221
#
슈퍼 루키의 등장 (1)
[유지환의 초구는 142km/h. 괜찮은 공을 던지는 모습입니다.]
[유지환 선수의 강점은 좋은 체인지업이거든요? 맞춰 잡는 스타일로는 한국에서 최고라고 손꼽히는 투수입니다.]
[미국의 3번 타자로 나선 루크가 유지환의 2구를 타격! 3루수인 박병규가 안전하게 잡아내서 1루로 송구하며 아웃을 잡아냅니다.]
루크가 아웃되고 다음으로는 4번 타자인 마이클이 타석에 들어섰다.
그는 초구에 방망이를 힘차게 휘둘렀고 타구는 3루수 정면으로 향했다.
강습 타구에 박병규는 잡아내지 못하며 뒤로 빠지는 타구.
하지만 내가 마이클을 의식해서 후방수비를 하고 있었기에 충분히 잡을만한 코스였다.
[박병규가 잡아내지 못한 공을 최강남이 리버스 캐치로 잡아내서 1루로 점프 송구! 아웃입니다!]
[정말 환상적인 수비가 나왔죠? 아주 좋은 호수비를 펼치며 아웃을 잡아냅니다.]
이어서 올라온 5번 타자를 중견수 뜬공으로 잡아내며 미국의 클린업트리오 타선이 삼자범퇴로 물러났다.
한국의 6회 말 공격은 2번 타자인 한기우부터 시작했다.
한기우는 2구를 타격했지만 중견수 뜬공으로 아쉽게 물러났다.
이어서 타석에 올라온 이승민과 박병규는 둘 다 삼진으로 물러났다.
[루크가 두 타자를 모두 삼진으로 돌려세우며 오늘 11탈삼진을 잡아내는 모습입니다.]
[투구 수가 94구입니다. 슬슬 미국도 투수 교체가 있겠죠?]
[7회 초 미국의 공격. 마운드는 6회에 좋은 모습을 보여준 유지환 선수가 다시 올라옵니다.]
“타임!”
유지환은 2아웃을 잘 잡아냈지만 8번 타자에게 실투를 던져 2루타를 맞았다.
그걸 본 정종현 감독은 바로 타임을 외치고 유지환을 김성환으로 바꿨다.
[여기서 김성환 선수가 올라옵니다. 명실상부 한국의 최고 에이스 투수죠?]
[그렇습니다. 4강에서 선발로 나왔지만 3일을 쉬었으니 컨디션은 나쁘지 않을 겁니다.]
[삼진 아웃! 김성환이 위기의 7회 초를 잘 막아내며 이제 정규이닝 마지막 공격인 7회 말로 들어갑니다.]
7회에도 미국의 투수로는 여전히 루크가 마운드를 지켰다.
하지만 6회에 모든 전력을 쏟아부어서일까?
그동안 잘 조절되던 제구가 조금씩 무너지기 시작했다.
5번 타자인 조영원은 그런 루크의 실투를 쳐내며 1루로 진루했다.
[김용섭의 번트로 1루 주자인 조영원이 안전하게 2루로 진루합니다.]
[7번 안정현이 중견수 앞에 떨어지는 안타! 하지만 타구가 강했기에 조영원은 홈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3루에 멈춥니다.]
[고의사구 작전으로 만루를 채우네요. 1아웃 만루의 상황에 9번 타자 투수 김성환이 올라옵니다.]
그리고 루크는 그런 상황에서 와인드업을 하며 전력투구를 시작했다.
[삼진 아웃으로 물러나는 김성환. 루크가 148km/h의 공을 던지며 7회에도 지치지 않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렇게 되면 2아웃 만루에서 최강남 선수가 타석에 들어서게 되죠?]
[그렇습니다. 정말 영화 같은 순간이네요. 7회 말 2아웃 만루 3:3의 상황에서 한국의 해결사 최강남과 미국의 에이스 로버트 루크가 마지막 맞대결을 펼칩니다.]
“스트라이크!”
초구는 148km/h의 공이 들어왔다.
바깥쪽 존에 꽉 차는 공이었기에 굳이 건드리지 않고 흘려보냈다.
2구는 슬라이더. 몸쪽에 붙였다가 데드볼이라도 나온다면 바로 경기가 끝나는 상황이었기에, 부담이 됐는지 바깥쪽으로 상당히 빠지는 볼이었다.
‘드디어 왔다.’
루크는 세 번째 공을 와인드업 후 힘차게 던졌고 가운데로 몰리는 공.
15번에 한 번꼴로 나오는 실투가 이 중요한 순간에 나왔다.
깡―!
난 일말의 고민도 없이 배트를 휘둘렀고 당겨친 공은 좌중간으로 쭉쭉 뻗어나갔다.
[최강남 선수가 당겨서 쳐낸 공은 외야로 쭉쭉 뻗어나갑니다! 중견수와 좌익수는 모두 따라가기를 포기한 모습입니다.]
[쭉쭉! 쭉쭉 뻗어서 담장을 넘어갔어요! 최강남 선수가 마지막 정규 이닝인 7회 말에 만루 홈런을 쳐냅니다. 7:3 짜릿한 역전 승리로 U-15 야구 월드컵의 최종 우승을 대한민국이 거머쥐게 됩니다!]
맞는 순간 나와 마운드에 서있는 루크 모두 홈런임을 직감했다.
루크는 공을 돌아볼 생각도 하지 않고 고개를 떨궜고 난 배트를 던지고 뒤돌아서 마이클을 슬쩍 바라봤다.
쪼그려 앉은 마이클 역시 고개를 푹 떨구고 있는 모습.
난 별말 없이 배트를 던지고 베이스를 돌기 시작했다.
당연히 오른손을 하늘로 쭉 뻗고 검지는 하늘을 가리킨 채로.
2루 베이스를 지나 3루로 향하자 감독님과 코치님을 포함한 모든 더그아웃의 선수들이 물병을 들고 뛰쳐나오는 게 보였다.
그리고 홈 플레이트를 밟자 각자의 손에 쥐어진 물이 모두 내게 쏟아졌다.
“나이스 만루 홈런!”
“우승이다!”
짜릿한 끝내기 역전 만루 홈런. 난 그 순간을 충분히 만끽했다.
“감독님! 이리오세요!”
“난 됐다.”
“애들아 잡아!”
그리고 우승 기념 헹가래가 시작됐다.
누구보다 무뚝뚝한 정종현 감독은 정중하게 거절했지만 선수들은 고작 16살.
혈기 왕성한 나이의 선수들은 그런 감독을 들쳐메고 헹가래를 시작했다.
코치님 둘까지 헹가래가 끝나고 멤버들은 내게 달려왔고 곧 내 몸이 하늘로 붕 떴다.
[대한민국이 최강남 선수의 7회 말 역전 홈런으로 25년 만의 U-15 야구 월드컵 우승을 확정 짓습니다!]
[거기다가 최강남 선수가 하나의 홈런을 결승전에서 추가하며 9홈런으로 2위인 미국의 마이클을 따돌리고 단독 홈런왕까지 획득합니다!]
[우리 16살의 어린 태극전사 선수들! 모두 너무나 자랑스럽습니다. 여태까지 긴 여정을 함께 지켜봐 준 MBS 스포츠 팬 여러분들도 감사합니다. 이것으로 중계를 마치겠습니다.]
헹가래가 끝나자 짐을 챙겨서 떠날 준비를 하는 미국 팀의 멤버들이 보였다.
“고생했다. 재밌는 경기였어.”
“그때 내가 홈런 한 개도 못 칠 거라고 했던 거는 취소다. 다음에 다른 경기에서 보자.”
“그래. 내가 했던 이야기들 마음속에 담아두지 말라고 인사하러 왔어.”
“나 쿨한 사람이야. 어쨌든 우승 축하한다.”
식당에서 여러 번 마주치며 은근히 미운 정이 든 마이클에게 악수를 건넸고, 예상외로 흔쾌히 마이클은 그 손을 잡았다.
“다음에 보자. 넌 왠지 미국에서 볼 것만 같다.”
“그래. 너도 공 던지느라 고생했어.”
그 모습을 지켜본 옆에 있던 선발 투수 로버트 루크.
그가 먼저 말을 꺼내며 오른손을 건넸고 난 그와도 악수를 했다.
그렇게 한국이 21세기에 들어서 처음으로 U-15 야구 월드컵 정상에 서게 됐다.
***
“이걸 한국이 이기네요. 이렇게 되면 최강남과 로버트 루크의 대결은 최강남의 압승이네요.”
“그러게. 4타수 3안타 1홈런이라. 이렇게 압도적으로 이길 줄은 몰랐는데.”
관중석에서 경기를 처음부터 지켜본 제임스와 커너는 기뻐 날뛰는 한국의 선수들을 보며 이야기했다.
“MVP 인터뷰 끝나고 제의하면 될까요?”
“아니. 내가 어제 한국의 감독이랑 전화해서 따로 양해 구했어. 조금 있다가 저녁 먹고 호텔 로비에서 따로 이야기 할 시간을 주겠다고 하더라고.”
“알겠습니다. 그러면 이제 저희도 맛있는 거 먹으러 가나요?”
“그래. 그리고 제의할 때 쓸 계약서 내용 좀 수정하자고.”
커너는 말을 마치고 일어났고 제임스도 서류 가방을 챙겨 그의 뒤를 따라갔다.
***
“다들 고생 많았다! 오늘 저녁은 내가 랍스터로 쏠 테니까 다들 마음껏 먹도록!”
“감사합니다!”
MVP 인터뷰를 마치고 더그아웃으로 돌아가자 무뚝뚝한 정종현 감독의 입에서 미소가 사라지지 않는 모습이었다.
다 같이 모여 음식을 맛있게 먹고 있던 그때 한종혁 코치가 나를 불렀다.
“강남아. 잠깐 나올 수 있어?”
“네. 무슨 일이세요?”
음식점 밖으로 나오자 한종혁 코치가 본인의 일이라도 되는 듯 기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이번에 널 스카우트하고 싶어 하는 코퍼레이션이 있어. 어쩌면 어린 나이지만 미국에서 야구를 할 수도 있을 것 같아!”
“커너 코퍼레이션 인가요?”
“맞아. 알고 있었구나? 오늘 저녁 8시에 호텔 로비에서 이야기하고 싶다길래, 내가 그러라고 했는데 괜찮니?”
“네.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래. 꼭 잘 됐으면 좋겠다. 넌 꼭 잘 될 거야. 내가 선수 보는 눈이 좀 있잖니?”
선수들에게 다정한 한종혁 코치.
그는 내가 계약을 한다는 것이 본인의 일이라도 된다는 듯이 함께 기뻐해주는 모습이었다.
그런 한종혁 코치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고 다시 식당으로 들어갔다.
저녁을 먹고 방으로 돌아오니 7시. 인터넷을 켜서 내 기사들을 훑어봤다.
대부분 좋은 내용과 댓글들이었다.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샤워를 하고 호텔 로비로 향했다.
“최강남 선수! 여기입니다.”
“네.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 많으셨어요.”
“아이고 아닙니다. 우승 축하합니다.”
“감사합니다.”
축하 인사와 함께 커너는 본론을 꺼내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간단히 말하자면 이러했다.
내 생일이 3월 10일이고 메이저리그의 가장 아래에 있는 루키 리그는 만 16세 이상부터 경기에 뛸 수 있다.
고등학교로 진학해서 야구를 하는 것도 좋지만, 본인과 함께 메이저리그에 도전해보는 것이 어떠냐는 이야기였다.
“저희는 최강남 선수를 꼭 영입하고 싶습니다. 한국의 중학교 졸업 후에 훈련할 장소는 당연히 저희 회사 측에서 전부 제공할 겁니다. 최고 수준의 시설들로 구비되어있으니 훈련에 있어서 전혀 지장은 없을 겁니다.”
“미국에서 뛰는 거야 당연히 좋긴 하지만 절 영입할 팀이 있을까요? 나이가 어려서 메이저리그 구단에서 영입을 할지 걱정이네요.”
“최강남 선수의 U-15 활약을 보고 많은 구단이 관심을 가질 겁니다. 실제로도 저희는 작년에만 4명의 16세 선수 계약을 성공시켰습니다. 아직 그 선수들이 메이저리그까지 올라가지는 못했지만 한 명의 선수는 벌써 더블 A까지 올라갔습니다.”
어린 나이부터 프로 무대를 밟는다는 것은 장점도 많았지만 단점도 분명했다.
그중 가장 큰 단점은 아무래도 적은 금액으로 장기간 묶일 위험이 있다는 것.
“실례가 안 된다면 혹시 그 선수들 계약 내용에 대해서 알 수 있을까요?”
“법적 상 계약서는 타인에게 노출할 수 없습니다. 궁금하신 게 어떤 건지 물어봐도 될까요?”
“알겠습니다. 다른 건 아니고 선수들의 계약 기간이랑 계약금이 궁금해서요.”
“아! 그건 기사로도 나오는 공식적인 수치라 괜찮습니다. 기간은 모두 3년으로 동일합니다. 계약금은 선수마다 다르지만 가장 낮은 금액이 10만 달러였습니다.”
커너는 미리 준비해온 기사들을 보여주며 연봉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계속해서 선수들의 계약 금액에 대해서 이야기하던 커너는 갑자기 말을 멈추더니 진지한 눈으로 날 바라봤다.
“최강남 선수라면 3년 100만 달러도 충분히 가능성 있는 액수입니다. 이건 16살의 나이에서 받을 수 있는 최고의 대우일 겁니다. 진정한 슈퍼 루키의 등장이죠.”
슈퍼 루키라··· 기분 나쁘지 않은 커너의 표현에 웃음이 나왔다.
계약서를 꼼꼼하게 살펴보고 사인을 했다.
아직 미성년자였기에 임시 계약서였지만 부모님은 내 선택을 존중해 줄 것이니 크게 걱정되지는 않았다.
“저희 코퍼레이션에 들어오게 된 걸 환영합니다. 슈퍼 루키.”
“잘 부탁드려요.”
그렇게 멕시코에서의 마지막 밤. 난 커너 코퍼레이션에 들어가게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