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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15 야구 월드컵 (12)
“스트라이크!”
초구와 같은 바깥쪽 꽉 차는 147km/h가 한 번 더 들어왔다.
“그동안 봤던 공들이랑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빠르지? 저게 네가 저번에 말한 미국의 진정한 에이스다.”
“안친 거랑 못 친 거도 구분 못 하냐? 눈이 있으면 전광판에 내가 몇 번 타자인지 확인해봐라.”
“2스트라이크로 몰리고 있으면서도 허세는. 자신 있으면 쳐보던가.”
그런 나를 보며 포수인 마이클은 뒤에서 중얼거렸다.
한마디만 던져주고 다음 말은 가볍게 무시하며 세 번째 공을 기다렸다.
[0-2에서 맞이하는 세 번째 공! 슬라이더를 맞춰내지만 아쉽게 파울 담장을 넘어갑니다.]
[구속이 134km/h의 슬라이더. 공의 궤적도 상당히 좋은 모습이네요.]
[그렇습니다. 미국 중학 야구에서 올해에만 36이닝 1실점. 방어율 0.25에 피홈런은 하나도 없는 선수거든요?]
[궤적도 궤적이지만 무브먼트도 상당히 좋은 선수입니다. 그런 루크가 최강남 선수에게 네 번째 공을 던집니다!]
***
‘얘는 대체 정체가 뭐야?’
미국의 포수인 마이클은 최강남이 2스트라이크까지 몰렸으니, 금방 삼진으로 물러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기에 충분했다.
로버트 루크는 일주일을 쉬었고 오늘 공은 그가 멕시코에 입국 후에 연습 투구를 포함해도 가장 완벽했다.
하지만 벌써 루크는 8개의 공을 던졌다.
최강남은 2개의 볼을 걸러내고 4개의 공을 파울로 커트해냈다.
‘이번에는 몸쪽 슬라이더.’
마이클은 마운드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투수에게 다음 사인을 내렸다.
하지만 루크는 좌우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오늘 경기에서 첫 사인 거부.
그런 루크에게 마이클은 몸쪽 높은 공을 던지라는 사인으로 변경했다.
마음에 들었는지 고개를 끄덕이고 와인드업을 취한 루크는 최강남에게 몸쪽 공을 던졌다.
깡―!
최강남은 그 공을 때려냈고 마이클은 일어서서 황급히 포수 마스크를 집어 던지고 타구를 바라봤다.
타구는 왼쪽 담장을 향해 쭉쭉 날아갔다.
***
[최강남 선수가 루크의 8번째 공을 쳐냅니다! 타구는 쭉쭉 뻗어나가서 담장 넘어가나요?]
[아! 아쉽게 담장 상단에 맞고 튀어나오면서 2루에 여유롭게 안착합니다.]
[네. 아무래도 상당히 강습 타구였고 펜스에 맞고 튀어나오자마자 중계 플레이가 이어졌기에 2루타로 끝이 나는 모습이네요.]
[하지만 0:2로 한국이 뒤처지고 있는 1회 말. 선두 타자인 최강남 선수가 2루타를 쳐내며 노아웃 2루에 2번 타자인 한기우 선수가 올라옵니다.]
날 제외한 선수들은 모두 타순이 하나씩 밀렸다.
그렇기에 빠른 달리기가 장점인 1번 타자 한기우가 2번으로 출전했다.
1루 코치의 작전은 번트. 기습 번트를 지시하는 사인이 내려왔다.
리드폭을 넓게 잡으며 상대 투수의 신경을 긁어줬다.
계속해서 2루를 의식하던 루크는 초구를 던졌고 한기우는 3루 방향으로 완벽하게 번트를 성공시켰다.
[한기우 선수의 초구는··· 아! 기습 번트입니다.]
[3루 방향으로 잘 갖다 댔죠? 최강남 선수는 여유롭게 3루로 안착. 그리고 1루에서 세이프! 한기우 선수가 기습 번트를 완벽하게 성공시키며 노아웃 1, 3루의 찬스를 맞이한 한국입니다.]
[지금은 더그아웃에서 작전이 나온 것 같은데 상당히 좋은 타이밍이었죠?]
[그렇습니다. 정종현 감독의 작전이 완벽하게 통했죠. 그리고 이 상황을 만든 건 최강남 선수가 1번 타자로 나와서 9구까지 끌어가는 승부였죠.]
[그렇습니다. 루크의 집중력이 상당히 흐트러진 걸 완벽하게 간파해낸 한국 대표 팀입니다. 이런 좋은 흐름을 타고 3번 타자 이승민 선수가 타석에 들어섭니다.]
이승민은 2구인 슬라이더를 타격했다.
아무래도 좌타자인 이승민에게는 슬라이더의 궤적이 크더라도 바깥쪽에서 휘어서 오는 볼이었기에 타격이 훨씬 쉬웠다.
[이승민이 깔끔하게 밀어친 안타는 좌익수 앞에 떨어지며 3루 주자인 최강남 선수를 홈으로 불러들입니다.]
[한국이 1점을 따라가며 1:2. 거기에다가 노아웃 1, 2루의 찬스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타석엔 4번 타자 박병규 선수가 올라옵니다.]
“나이스!”
더그아웃으로 들어가자 한국의 선발인 유상현이 오른손을 번쩍 들었고 하이파이브를 치며 벤치에 앉았다.
한국의 불펜에는 1회 말인 벌써 신재원과 유지환이 몸을 풀고 있었다.
당연했다. 결승전이었기에 양 팀 모두 모든 것을 쏟아부으며 싸워야 했다.
박병규는 2루수 땅볼을 쳐냈지만 타구가 느리게 굴러가며 본인만 아웃됐다.
1아웃 2, 3루에 올라온 5번 타자 조영원이 중견수 뜬공을 쳐내며 1점을 추가 득점했다.
“스트라이크 아웃!”
루크는 6번 타자로 올라온 포수 김용섭을 147km/h 삼진으로 잡아내며 1회를 끝냈다.
2회 초 한국의 마운드에는 선발인 유상현이 다시 올라왔다.
선두 타자는 6번 타자인 윌리엄. 그다음부터는 하위 타선이었기에 부담이 적은 2회였다.
8번 타자에게 안타를 하나 허용했지만 무실점으로 잘 막아냈다.
2회 말 한국의 공격은 몸이 제대로 풀린 루크가 2명의 타자를 연속 삼진으로 잡아냈다.
9번 유상현까지 땅볼로 잡아내며 삼자범퇴로 마무리되었다.
“타임!”
3회 초에 유상현은 두 명의 타자를 범타로 잘 처리해냈지만 3번 타자로 올라온 루크에게 솔로 홈런을 맞았다.
다음 타자는 4번 타자인 마이클.
정종현 감독은 마운드로 올라와 유상현을 다독여주며 투수를 교체했다.
[한국의 바뀐 투수로는 신재원이 마운드에 올라옵니다. 이 선수는 이번 U-15에서 나쁘지 않은 기록을 가지고 있죠?]
[그렇습니다. 7이닝 2실점을 던지며 위기 상황에서 한국의 마운드를 잘 지켜내며 자기의 몫을 톡톡히 해내고 있는 선수입니다.]
마이클은 신재원의 두 번째 공을 쳐냈지만 중견수 한기우가 끝까지 따라가서 펜스 앞에서 잡아내며 3회 초 미국의 공격도 끝이 났다.
[3회 말 한국의 선두 타자로 1번 타자인 최강남 선수가 올라옵니다.]
[미국이 3회 초에 1득점에 성공하며 2:3으로 뒤처진 상황이지만, 1회 말에도 이런 찬스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준 최강남 선수였죠?]
[그렇습니다. 한국의 위기 상황에서는 늘 좋은 모습을 보여줬던 해결사 최강남 선수. 그 선수가 로버트 루크와의 두 번째 대결에 들어갑니다.]
1회 말에는 루크가 많은 공을 던질 수 있도록 끈질긴 승부를 보여줬다.
그러면서 한종혁 코치가 말한 15번의 한 번 정도 들어오는 실투를 기다렸다.
하지만 내 첫 타석에는 실투가 나오지 않았다.
오늘 루크가 던진 실투는 단 두 개.
이승민이 쳐낸 안타와 김용섭이 삼진당한 마지막 공뿐이었다.
“스트라이크!”
공을 4개나 지켜보며 기다렸지만 들어오지 않았다.
[오늘 최강남 선수가 평소보다 많은 공을 지켜보고 있네요.]
[그렇습니다. 아무래도 1번 타자로 나선 이유가 있겠죠? 2-2에서 5번째 공을 맞이하는 최강남. 밀어친 공이 라인 안으로 들어오면서 2루를 돌아 3루에 안착합니다!]
존으로 들어올 만한 바깥쪽 슬라이더를 결대로 밀어쳤다.
“세이프!”
빠르게 굴러간 타구는 우익수가 잡아내지 못하며 펜스까지 굴러갔고 난 3루에서 슬라이딩으로 살아남았다.
[노아웃 3루의 찬스. 외야로 날리는 타구 하나만 쳐내도 동점으로 따라갈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루크의 세 번째 공. 아··· 한기우 선수가 스윙으로 삼진으로 물러납니다.]
하지만 루크는 그런 나를 홈으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와인드업을 하며 전력투구를 시작했다.
한기우에게 던진 마지막 공은 148km/h.
대회 최고 기록의 공을 던져내며 삼진을 잡아냈다.
거기다가 4강에서 내 홈스틸을 견제라도 하는 듯이 계속해서 3루를 의식하다가 공을 던졌기에, 홈스틸을 시도할 수 있는 타이밍도 전혀 나오지 않고 있다.
[타석에는 3번 타자 이승민 선수가 타석에 들어섭니다. 전 타석에는 좌익수 앞에 떨어지는 안타를 쳐내며 오늘 좋은 컨디션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스윙! 하지만 공을 맞추지 못했습니다.]
[로버트 루크 선수가 초구로 무려 148km/h를 던졌습니다. 이렇게 되면 체력적으로 부담이 상당하겠죠?]
[그렇습니다. 아무래도 16살 투수이니 오래 공을 던질 수는 없겠죠. 이승민 선수의 2구 타격!]
[멀리 뻗지 못하고 좌익수가 앞으로 달려오며 공을 잡아냅니다. 아! 최강남 선수가 홈으로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좌익수가 바로 홈으로 던지며 홈 승부!]
얕은 좌익수 플라이였기에 평소라면 홈으로 들어오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 루크의 공은 점점 좋아지고 있었기에, 다음 타자인 박병규도 안타를 때려내기는 힘들 상황.
그래서 무리하게 태그 업을 하며 홈으로 달려갔다.
홈 플레이트로 슬라이딩하기 직전에 마이클이 공을 잡아냈다.
홈을 막고 있는 마이클의 렉가드(무릎 보호대)로 발을 높이 들어 슬라이딩했다.
‘아 늦었다.’
하지만 포수인 마이클이 넘어지며 날 먼저 글러브로 태그 했다.
“세이프!”
[심판의 판정은 세이프! 마이클 선수가 태그 과정에서 공을 놓쳤습니다.]
[지금 최강남 선수의 슬라이딩이 굉장히 좋았습니다.]
[그렇습니다. 미국의 포수인 마이클이 공을 잡으며 홈을 막고 있었으니 아주 정당한 태클이었죠. 최강남의 환상적인 태클로 한국이 1점을 추가하며 미국과 3:3 동점을 만들어냅니다!]
“이런 식으로 하겠다 이거지?”
“네가 홈을 막지를 말던가.”
“심판! 이거 태클이 너무 깊은 거 아니에요?”
“정당한 태클이었다.”
내 태클에 마이클은 심판에게 항의했지만, 득점으로 인정되며 다시 3:3. 경기는 원점으로 돌아갔다.
“좋은 태그 업이었어. 고생했다.”
“감사합니다.”
무뚝뚝한 정종현 감독은 직접 홈까지 나와서 내 어깨를 두드려주고, 함께 더그아웃으로 들어갔다.
[4구! 스윙 삼진으로 물러나는 박병규 선수입니다.]
[하지만 한국이 3회에도 1점을 추가하며 야구 최강국 미국과의 3:3 균형을 이어갑니다.]
이후로는 투수전이 이어졌다.
4회와 5회에도 등판한 신재원은 안타를 하나 맞았지만 다른 타자를 범타로 잘 처리해내며 무실점으로 막아냈다.
루크는 6명의 타자 중 삼진을 4개나 잡으며 한 명의 타자도 진루를 허락하지 않는 완벽한 투구를 보여줬다.
그 4개의 삼진 중에는 내가 당한 것도 하나 포함되어 있었다.
3번째 타석에도 최대한 공을 많이 보다가 몸쪽 꽉 차는 높은 직구에 삼진을 당하고 말았다.
날 삼진으로 돌려세운 공의 구속은 150km/h. 정말 16살이라고 믿기지 않는 괴물 같은 투수였다.
하지만 5회까지 투구 수가 80개가 넘어가는 루크.
그 중에서 나에게 던진 공은 19개였다.
아무리 미국이 강한 불펜을 보유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루크 급의 투수는 한 명도 없었다.
슬슬 체력적인 한계가 느껴질 것이고 바뀐 투수에게 홈런을 쳐서 경기를 끝내면 된다.
‘그러니 슬슬 마운드에서 내려와라.’
6회 초 미국의 공격. 선두타자로 타석에 들어서는 로버트 루크를 보며 생각했다.
한국의 마운드에는 6회에 바뀐 유지환이 로진백을 어루만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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