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역대급 홈런왕의 탄생-33화 (33/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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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15 야구 월드컵 (10)

“내가 던지라고 안했어.”

“닥쳐!”

포수인 라멜은 내가 달려들자 변명을 하며 일어섰다.

난 그런 라멜의 보호장구를 피해서 왼쪽과 오른쪽 옆구리에 훅을 한 대씩 갈겨줬다.

“거기까지. 빈볼이라 투수와 타자 둘 다 경고로 넘어가지만 그 이상은 퇴장이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투수에게 달려가려는 내 오른쪽 팔을 심판이 잡으며 저지했다.

양 팀의 모든 선수들이 그라운드로 달려왔고 잠시 뒤엉켰지만 별 탈 없이 각자 더그아웃으로 다시 돌아갔다.

“진짜 내가 던지라고 안했어. 난 바깥쪽 체인지업 사인 내렸다고.”

“내가 빈볼 던지라고 하는 포수 말을 믿겠냐?”

“정말이야. 이건 루이스의 독단적인 판단이야.”

한차례의 소동이 끝이 나고 다시 타석에 자리를 잡으니, 라멜이 포수석에 쪼그려 앉기 전에 변명을 하는 모습이었다.

난 그 말을 듣고 마운드에 있는 상대 투수인 루이스를 쳐다봤다.

‘저 새끼가.’

루이스는 입꼬리를 살짝 올리고 눈썹을 치켜들며 날 쳐다봤다.

야구란 스포츠는 원래 복수에 메커니즘이 맞춰져 있다.

홈스틸이나 배트 플립 같은 불문율을 어기는 플레이에는 빈볼을 던지고 벤치클리어링이 나온다.

그리고 그런 복수 행위에 또 복수를 하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야구의 매력.

[한차례의 소동이 끝나고 다시 경기가 재개될 조짐이 보입니다. 남문철 해설위원님. 아마추어 야구에서 벤치클리어링이 흔하게 있는 일은 아니죠?]

[그렇습니다. 하지만 아예 없는 일은 아니죠. 국내에서는 아마야구협회에서 해당 선수의 출장 정지는 물론 정도에 따라서 학교 측에도 대회 출전 금지를 주고 있지만, 작년에만 중학 야구와 고교 야구에서 한 차례씩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혈기 왕성한 어린 선수들이라 종종 이런 일이 생기는 것 같네요. 경기가 재개되고 다시 타석에 최강남 선수가 들어섭니다. 아! 쿠바의 투수인 루이스를 향해 홈런 예고 제스처를 선보이는 최강남!]

타석에 들어선 나는 왼손으로만 배트를 들어 왼쪽 담장을 가리켰다.

그리고 오른손으로 왼쪽 가슴을 두 차례 두들기고 씩 웃으며 상대 투수인 루이스를 바라봤다.

루이스는 그런 나를 보고 열이 받았는지 날 노려보더니 와인드업을 시작했다.

[주자 없는 2아웃 한국의 4번 타자 최강남 선수가 두 번째 공을 맞이합니다. 아! 상당히 바깥쪽으로 빠지는 공이네요.]

[구속은 145km/h로 본인의 최고 기록을 경신했지만 공이 너무 빠졌죠?]

[그렇습니다. 아무래도 홈런 예고를 보고 상당히 흥분한 것 같은 피칭을 보여주네요.]

두 번째 공은 바깥쪽으로 상당히 빠지는 높은 공이 들어왔다.

난 이런 흐름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 바로 공을 기다리는 타격 준비 자세를 취했고, 루이스도 곧바로 공을 던졌다.

“타임!”

무슨 공을 던지려 했는지는 몰라도 원바운드의 똥볼이 날아왔고, 포수인 라멜은 그 공을 받자마자 타임을 외치고 마운드로 달려갔다.

둘은 마운드에서 잠시 동안 이야기를 나누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서 라멜이 마운드를 걸어서 내려왔다.

“3볼인데 볼넷으로 도망가자고 다독였냐? 쿠바 에이스도 시시하네.”

“아니. 몸쪽 높은 포심으로 던지라고 했어. 루이스 공은 최고고 넌 절대 못 친다고.”

포수인 라멜에게 비아냥대니 좋은 정보를 얻었다.

포심을 노리며 네 번째 공을 맞이했다.

[3-0에서 맞이하는 네 번째 볼. 최강남 선수가 배트를 휘두르지만 아쉽게 맞춰내지 못하며 헛스윙으로 3-1의 카운트가 됩니다.]

[지금 볼은 체인지업이었죠? 포심과 체인지업의 구분이 전혀 안 되는 나이답지 않은 좋은 피칭을 보여주는 쿠바의 투수입니다.]

바깥쪽 꽉 차는 체인지업. 알려준 것과 정반대의 정보였지만 별다른 내색은 하지 않았다.

오히려 투수인 루이스를 보며 활짝 웃어줬다.

상대는 고작 16살짜리 투수. 좋은 실력을 가졌다 하더라도 좋은 멘탈을 가지기는 힘든 나이다.

그런 투수에게 비웃는 듯한 표정을 지어주면 결과는 뻔했다.

‘드디어 왔네.’

3-1의 카운트. 쿠바의 에이스인 루이스는 본인의 가장 자신 있는 공인 몸쪽 높은 코스로 던졌다.

그리고 난 그 공을 힘껏 당겨쳤다.

[큽니다! 쭉쭉 뻗어나가는 볼! 최강남 선수가 아마추어 야구 최강국 쿠바의 에이스인 루이스의 공을 넘깁니다! 146km/h 최고 속력의 공을 넘기며 2:0을 만드는 한국의 최강남!]

[지금 타구가 담장을 넘어서 경기장 밖으로 나간 것 같거든요? 네. 영상으로 확인하니 장외 홈런입니다! 4회 말 공격에서 장외 홈런을 쳐내며 한국에게 있어서 중요한 1점을 추가해냅니다!]

“너네도 여기서 끝이네. 다음에 기회 되면 보자고.”

잠시 타구를 지켜본 나는 라멜에게 안부 인사를 던지고 천천히 베이스를 돌기 시작했다.

오른손 검지를 하늘로 쭉 뻗고 빙빙 돌리며 1루 베이스를 밟고 2루로 향하자, 마운드에서 뜨거운 시선이 느껴졌다.

홈런을 맞은 루이스가 고개를 돌려 베이스를 돌고 있는 나를 계속 노려봤다.

“불만 있냐? 뭘 그렇게 노려봐. 아니꼬우면 달려와. 패줄 테니깐.”

난 그런 루이스를 향해 소리치며 천천히 베이스를 돌았다.

루이스는 몇 년 후에 메이저리그 필승 계투조로 뛰게 된다.

비록 20대 후반에 도핑 관련 문제로 메이저리그에서 퇴출당하였기에, 저번 생에는 나와 붙지 못했다.

하지만 이번 생에는 오늘 이후로도 몇 차례 더 붙을 일이 있을 것이기에, 확실히 루이스의 기를 죽여줬다.

루이스와 난 끝까지 서로를 노려보며 베이스를 돌았다.

“나이스 홈런!”

난 끝까지 노려보다가 홈 플레이트를 밟았다.

그리고 같은 멤버들의 찬사를 받으며 더그아웃으로 돌아갔다.

***

“저건 너무 과한 거 아닌가요? 다음 타석에도 빈볼 맞겠네요.”

“아니. 빈볼 맞을 일도 없고 저 투수가 다음 타석까지 버틸 일도 없을걸.”

제임스의 말에 커너는 반박하며 새로운 캔맥주를 하나 깠다.

흘러넘치는 거품을 한입 마신 그는 다시 말을 이어갔다.

“진짜 미친놈들은 티가 나거든. 저런 애들한테 웬만한 선수들은 기가 죽어서 다음에 만나면 눈만 마주쳐도 오금이 지릴걸?”

“그래도 저렇게 선수 생활하면 트러블메이커라도 되는 거 아닙니까?”

“팬들은 경기장에서 저러는 애들을 사랑하지. 경기장 밖에서 저렇게 하는 새끼들이 트러블메이커 취급을 받는 거고.”

한때 열렬한 야구팬이었던 커너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지어졌다.

“그런데 한국의 저 선발 투수에게 제의하는 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제임스는 이상한 느낌을 감지하고 분위기를 바꿔보려 다른 질문을 던졌다.

“저 정도면 나쁘지 않지. 멘탈도 괜찮고 구속도 커맨드도 좋은 편이고.”

“그런데 왜 저 선수는 제의 대상에 안 넣으셨습니까? 저 정도면 루이스와 비교했을 때 전혀 밀리지 않는 것 같은데요.”

“돈이 될 선수가 아니야.”

“예?”

“저 정도로 던지는 투수들은 널렸지. 너는 내가 왜 이 경기에서 최강남이랑 루이스만 원했는지 알아?”

“예선전에서 좋은 기록을 보여줘서?”

제임스의 어리숙한 대답에 커너는 피식 웃더니 맥주를 한 모금 마시고 말을 이어갔다.

“고작 16살짜리 어린애들이야. 저 선수들에게 메이저리그 구단주들이 바라는 건 당장의 좋은 모습이 아니라고. 실링이 높은 선수를 원하는 거야.”

“잠재력 말하는 거죠? 어떻게 그걸 구분하죠?”

“말 그대로야. ‘저것만 고치면 좋을 텐데.’라는 선수를 고치는 것이 ‘저것만 있으면 좋을 텐데.’의 선수를 고르는 것보다 훨씬 가치 있는 선택이거든.”

5회 초 쿠바의 공격이 안타를 두 개 쳐냈지만 무실점으로 끝나는 것을 지켜본 제임스는 다시 의문이 생겼다.

“한국의 선발은 특별한 무언가가 없다는 뜻이네요. 반면에 쿠바의 루이스는 단점도 있지만 특출난 장점이 있고요. 그렇다면 최강남의 단점은 뭐죠?”

“가끔 그게 안 보이는 선수들이 있지. 그걸 우리 같은 스카우트들은 돈이 되는 선수라고 불러.”

“그러면 팬들은 뭐라고 부르죠?”

“글쎄··· 레전드, 캡틴, 에이스 그런 것들? 뭐 각자 부르고 싶은 대로 부르겠지. 슬슬 우리도 일할 준비 해야겠네. 서류 챙겨서 내려와.”

“알겠습니다.”

캔 맥주를 다 마신 커너는 자리에서 일어났고 제임스는 서류 가방을 챙겨서 부랴부랴 그의 뒤를 따라갔다.

***

4회 말 한국의 공격에서는 5번 타자 조영원이 안타를 쳤지만 아쉽게 추가 득점을 내지 못하며 끝이 났다.

5회 초 쿠바의 공격은 2아웃 주자 1, 3루에 상대의 안타성 타구를 내가 점프 캐치로 잡아내며 무실점으로 막아냈다.

“재원이 불펜가서 몸 풀어.”

“알겠습니다.”

실점은 하지 않았지만 김성환이 조금씩 제구가 안 되는 모습을 보고 정종현 감독은 불펜을 가동시켰다.

결승전인 미국에서 김성환이 나올 수도 있기에, 어느 정도 승리를 확신한 상황에서 나오는 교체이기도 했다.

5회 말 한국은 하위 타선인 7번 타자 안정현부터 공격을 시작했다.

끈질긴 승부 끝에 볼넷으로 진루하는 안정현. 8번 이기우는 그런 안정현을 번트로 2루로 안전하게 보냈다.

다음 타자로 타석에 올라온 9번 김성환의 안타로 추가 득점을 하며 3:0.

그 후로 계속해서 안타들이 쏟아지며 루이스는 5회를 버티지 못하고 마운드에서 내려왔다.

바뀐 투수에게 2점을 더 추가하며 5:0의 상황에 6회 초부터는 신재원이 마운드를 지켰다.

한번 불이 붙기 시작한 한국의 타선은 6회 말에도 3득점을 추가하며 쐐기를 박았다.

신재원은 2이닝 2실점 끝에 쿠바의 타선을 나쁘지 않게 막아내며 8:2로 한국의 결승 진출을 도왔다.

[마지막 아웃 카운트는 최강남 선수가 잡아서 1루에 송구! 아웃입니다!]

[네. 이렇게 한국은 1996년도 이후로 처음으로 U-15 결승전에 진출하게 되었죠?]

[그렇습니다. 이런 역사적인 순간을 중계하게 된 저희와 함께 지켜본 MBS 스포츠 팬 여러분들. 저희는 결승전에서 뵙겠습니다!]

한국의 4강전 MVP는 내가 받게 되었다.

내 세 번째 타석과 네 번째 타석은 사실상 고의사구로 1루에 걸어 나갔기에, 오늘 기록은 4타석 2타수 2안타 1홈런을 기록했다.

“3일 후에 미국과 맞붙게 되는데요. 최강남 선수가 예선전에서 한 인터뷰 대상이었던, 미국의 4번 타자 마이클 선수와의 대결이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이 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딱히 신경 쓰지는 않고 있습니다. 어차피 제가 이길 거고, 마이클 선수는 아무것도 보여주지 못하고 미국으로 돌아갈 테니까요.”

MVP 인터뷰에서 나는 자신감 있는 태도로 일관하며 기자의 질문에 친절하게 답해줬다.

“네. 자신감 있는 인터뷰네요. 최강남 선수가 오늘도 홈런을 하나 추가하며 7개의 홈런. 그리고 미국의 마이클 선수가 6개의 홈런을 치며 홈런왕 경쟁도 U-15 야구 월드컵을 지켜보는 팬들의 하나의 관심사가 될 것 같습니다. 인터뷰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친절하게 인터뷰를 마치고 더그아웃으로 돌아가던 그때 누군가 나를 불렀다.

“미스터 최!”

저번에 날 찾아왔던 커너 코퍼레이션의 제임스.

그리고 그 옆에는 예전에 봤을 때보다 조금 앳된 커너도 함께 있었다.

“무슨 일이죠?”

난 그런 커너와 제임스에게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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