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역대급 홈런왕의 탄생-31화 (31/126)

# 31 - 3743851

#

U-15 야구 월드컵 (8)

“박재우 선수가 멕시코의 1번과 2번 타자를 삼진으로 돌려세우는데 이어서 3번 타자를 땅볼로 유도해내며 삼자범퇴를 이끌어냅니다.”

“네. 상당히 좋은 페이스인데요. 한국이 기분 좋게 1회 말 공격에 들어섭니다.”

1회 초 한국의 좋은 수비에 남문철 해설위원과 이승범 캐스터는 덩달아 들뜬 목소리로 해설을 이어나갔다.

“1번 타자 한기우 선수가 멕시코의 선발 투수 마르틴의 2구를 타격합니다. 3유간으로 향하는 타구! 유격수가 잡아내지 못하며 1루로 진루합니다.”

“한기우 선수는 도루 성공률이 상당히 높거든요? 상대 투수가 굉장히 신경이 쓰일 겁니다.”

“말씀드린 순간 한기우 선수가 2루에 도루 시도! 성공하면서 노아웃 2루의 상황입니다.”

“2번 타자 이승민이 당겨친 공은 3루수 쪽으로 향합니다. 아! 상대 3루수인 호르헤의 실책으로 노아웃 1, 3루의 찬스에 3번 타자 박병규가 올라옵니다.”

“사실 두 번의 타구 모두 수비수가 충분히 잡아낼 만한 공이었거든요? 이렇게 되면 상대 투수는 흔들릴 수밖에 없죠. 야수를 믿지 못하는 투수는 누구보다 불안정한 상태거든요.”

“예상대로 멕시코의 마르틴이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주며 3번 타자 박병규 선수가 볼넷으로 1루로 걸어 나갑니다.”

1회 말부터 노아웃 만루의 엄청난 기회.

거기에 가장 많은 자료를 준비했던 4번 타자 최강남이 타석에 들어서자 스튜디오는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노아웃 만루의 찬스에서 한국의 4번 타자 최강남 선수가 타석에 들어섭니다.”

“이 선수가 예선 성적이 엄청나거든요? 12타수 10안타에 4홈런. 장타율이 무려 2.0이 넘어가는 엄청난 기록을 가지고 있습니다.”

“기록뿐만 아니라 커리어도 동나이대 최고의 선수입니다. 아마추어 야구를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이 선수의 이름이 낯설지 않을 겁니다. 3년 전 리틀야구 월드시리즈 우승을 이끌었던 MVP 최강남 선수. 바로 그 선수가 노아웃 만루에 마르틴과의 승부를 시작합니다.”

***

‘예상보다 훨씬 흔들리고 있네.’

한종혁 코치의 베스트 시나리오는 4회에 상대 선발인 마르틴을 마운드에서 끌어내리는 것이었다.

하지만 1회부터 상대 야수의 실책으로 상당히 흔들리는 모습이었다.

우우우―

개최국인 멕시코답게 관중석은 대부분 현지 사람들로 가득 찼다.

그리고 그들은 만루의 상황에 타석에 들어선 나에게 일제히 야유를 시작했다.

마르틴은 야유를 듣고 뭔가 굳게 마음이라도 먹은 듯이 비장한 표정으로 와인드업을 시작했다.

초구는 141km/h의 볼. 주자가 있는데도 와인드업을 하는 모습.

전형적인 라틴아메리카 스타일의 공격적인 투구 패턴이었다.

제구는 그다지 좋지 않은 투수이니 굳이 존에 걸치는 공을 칠 필요는 없다.

카운트가 몰리기 전까지는 지켜본다는 마음가짐으로 다음 공을 기다렸다.

다음 공은 142km/h의 포심이 공 한 개 차이로 빠지는 코스에 들어왔다.

여유 있게 볼을 골라냈다.

“스트라이크!”

2-0에서 맞이하는 3번째 공은 존에 살짝 걸쳐서 들어왔다.

구속은 무려 143km/h. 본인의 최고 속력과 타이기록을 던지며 안간힘을 쓰고 있는 마르틴이었다.

4번째 공은 가슴 높이까지 오는 높은 볼이었다.

구속은 144km/h로 본인의 최고 기록을 갱신했지만 흥분했는지 제구는 들쑥날쑥한 투구가 이어졌다.

마르틴은 방금 던진 공이 본인의 마음에 들지 않는지, 마운드의 흙을 거칠게 몇 번 발로 걷어차더니 다시 와인드업에 들어갔다.

3-1의 상황이니 스트라이크를 잡을 생각밖에 없을 것이다.

거기에 나는 아직 스윙을 한 번도 하지 않았고 투수는 본인의 최고 구속을 갱신 중이니, 자신감 있게 이번 공을 가운데에 집어넣을 것이다.

예상대로 존 한 가운데로 공이 들어왔고 배트를 휘둘렀다.

[최강남 선수가 마르틴의 5구를 타격했습니다. 공은 쭉쭉! 쭉쭉 뻗어나가며 좌중간 담장을 훌쩍 넘기는 홈런! 1회 말 한국이 최강남의 만루 홈런으로 4:0으로 앞서가기 시작합니다.]

[방금 마르틴 선수의 구속이 무려 145km/h였습니다. 이번 대회 최고 구속이 나왔는데 그 공을 전혀 거리낌 없이 쳐내는 모습입니다!]

[그렇습니다. 16살 선수가 145km/h를 던지는 것도 놀랍지만, 배트가 밀리지 않고 그 공을 쳐내는 것도 놀랍네요. 최강남 선수의 놀라운 기록은 8강에서도 이어지는 모습입니다!]

깡―!

상당히 빠른 강속구였지만 완벽한 타이밍에 공을 당겨쳤다.

중견수가 끝까지 따라가는 모습이지만 점프 캐치를 시도도 못할 정도로 비거리가 큰 대형 만루 홈런이었다.

배트를 집어던지고 여유롭게 1루로 향했다.

우우우―

1루 베이스를 밟고 2루로 향하자 야유 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난 그런 멕시코 관객들에게 오른손 검지를 빙빙 돌리며 관중석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전보다 조금 천천히 베이스를 돌았다.

야유 소리가 더 커지기 시작했지만 별로 개의치 않았다.

이미 KBO와 MLB에서 수많은 경기를 치르며 너무나 많이 경험해봤던 일이었으니깐.

그리고 그러한 상황에서 난 언제나 청개구리 스타일이었다.

야유 소리가 커질수록 세리머니도 과해지고 상대를 농락하는 제스처도 커졌다.

이러한 성격 때문에 벤치클리어링도 많았고 고의적인 데드볼도 빈번했다.

‘뭐 어쩌라고.’

팬들은 즐거워하고 난 스트레스 안 받고.

이게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선택이었다.

“만루 홈런 뭐냐고!”

“나이스 홈런!”

홈 플레이트를 밟고 동료들의 환호를 들으며 더그아웃으로 돌아갔다.

한번 불이 붙은 한국의 방망이는 꺼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만루 홈런 이후 타석에 들어선 5번 타자 조영원은 우중간을 가르는 큼지막한 2루타를 때려냈다.

6번 타자 포수인 김용섭은 2루에 나가 있는 조영원을 안타 하나로 홈으로 불러들였다.

당초 4회에 끌어내리려는 전략보다 훨씬 빠른 2회에 마르틴을 강판시켰다.

한국의 타선은 계속해서 터져주며 매회 득점을 올렸고 난 2회에 3점 홈런을 하나 더 추가했다.

한국의 선발 투수인 박재우는 5이닝을 2실점으로 잘 막아냈다.

뒤이어 올라온 유지환은 2이닝을 2실점으로 막아냈고 한국의 타선은 꾸준히 타격을 하며 점수를 추가했다.

최종 스코어는 12:4. 한국은 필승 계투들이 불펜 피칭조차 하지 않았다.

MVP는 오늘 경기에만 2홈런을 쳐낸 내가 받게 되었다.

만루 홈런과 쓰리런. 그리고 1타점 적시타까지 때려내며 12점 중 8점의 타점을 기록했다.

그리고 그런 초반의 기세를 한국은 단 한 차례도 꺾이지 않고 계속 끌어가며 8강을 편하게 승리했다.

그런 경기 내용에 대한 인터뷰를 마치고 다시 더그아웃으로 돌아가려고 하는 그때 누군가 나를 불렀다.

“미스터 최! 잠깐 이야기 좀 할 수 있을까요?”

“네. 어디 방송국이세요?”

“아니요. 기자는 아니고 커너 코퍼레이션에서 일하고 있는 제임스라고 합니다. 다름 아니고 최강남 선수에게 중학교 졸업 후에 미국 진출을 제안 드리려고 하는데 이야기 괜찮으세요?”

“아니요. 됐어요.”

***

평소와 전혀 다른 대답에 제임스는 몹시 당황했다.

어린 유망주들에게 미국 진출을 제안하면 반응은 딱 두 가지뿐이었다.

“정말요? 제가 어떤 팀으로 들어갈 수 있을까요?”

라던가.

“이미 계약되어있습니다.”

라는 반응.

하지만 최강남은 둘 다 아니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른 코퍼레이션과 계약이 되어있냐고 물었지만 아니라는 답변과 함께 한국의 더그아웃으로 돌아가는 모습이었다.

당황한 제임스는 일단 휴대폰을 꺼내 커너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선수는 뭐래? 조건은 까다로웠어?”

“아니요. 그냥 거절입니다.”

“벌써 다른 쪽에서 제의 왔대? 하긴 워낙 기록이 괜찮아서 눈독 들이고 있는 스카우터가 많으려나.”

“아니요. 계약은 안했답니다. 그런데 그냥 안 하겠다는 말과 함께 돌아갔습니다.”

“오케이. 무슨 말인지 이해했어. 내가 4강 끝나고 직접 가야겠네. 고생했어.”

“무슨 뜻인지 말해주실 수 있나요? 이해가 안 되네요.”

“뭘 무슨 뜻이야. 나보고 직접 안 오면 계약 이야기 할 생각도 없다는 거지. 생각보다 당돌한 꼬맹이네.”

“알겠습니다. 다른 제의 끝마치고 미국으로 돌아가겠습니다.”

“겨우 4강까지 2일 후인데 그냥 거기 있어.”

굉장히 장난기 많은 커너였지만 평소와는 다르게 상당히 가라앉은 목소리였다.

신입사원인 제임스는 그런 커너의 목소리에 당황했지만 전화는 이미 끊어진 후였다.

‘다음 제의 대상이 미국의 마이클.’

일단은 본인이 할 수 있는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제임스는 발걸음을 옮겼다.

***

“오늘 경기 하느라 고생 많았다. 오늘은 투수들이 많이 체력을 비축했으니 4강에서 다들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도록.”

“알겠습니다!”

내가 더그아웃에 돌아오자 감독님이 이야기를 시작하셨다.

“선발은 성환이로 할게. 위기 때 상현이가 계투로 나올 수도 있어. 그런 상황이 아니면 결승전에서 선발을 상현이가 맡을 거야.”

“알겠습니다.”

“그래. 그러면 일단 호텔로 가자.”

정종현 감독의 말에 유상현은 아쉽다는 표정이었지만 순순히 대답했다.

감독 입장에서도 어쩔 수 없는 결정이긴 했다. 한국의 4강 상대는 쿠바.

작년에도 한국을 8강의 벽에서 넘어지게 만든 아마추어 야구 최강국이었다.

“뭘 그렇게 실망했어? 내가 쿠바 이기고 결승전 보내줄게.”

“그런 거 아니야. 그냥 아쉬워서.”

“사람들은 그런 경우를 실망했다고 하지? 컨디션 관리나 잘해. 결승전 선발로 나오려면.”

“그래. 한국이 이겼으면 좋겠다···.”

상당히 실망한 기색이 역력한 유상현을 다독여주며 미니버스에 앉았다.

‘좀 건방지게 보였으려나?’

버스에 앉아 호텔로 향하며 아까 제의를 거절한 것을 생각했다.

커너 코퍼레이션. 몇 년 후에는 보라스 코퍼레이션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최고의 스카우트 기업이 된다.

실제로 나도 KBO에서 12년 선수 생활을 한 후에 MLB에 진출했을 때 커너 코퍼레이션을 이용했으니깐.

하지만 지금은 대회 중이었다. 대회 중에는 웬만하면 컨택은 자제하는 것이 내 승리 루틴 중 하나였으니.

거기에 예전과는 다르게 커너 본인이 오지도 않았다.

대기업이 된 후로도 직접 본인이 제의를 하고 다녔던 브라이트 커너.

거물급 선수들은 물론이고 본인이 가치 있게 생각하는 선수들은 유망주조차도 비행기를 타고 직접 날아가는 스카우터였다.

애초에 나에게는 별 기대 안 하고 제의했을 확률도 상당히 있었으니, 굳이 설레발은 치지 않기로 했다.

‘뭐··· U-15 우승하면 다른 코퍼레이션 제의도 몇 개 들어오겠지.’

처음에는 미국 고등학교로 진학을 희망했지만 생각보다 몸의 성장이 빨랐다.

그리고 애매한 재능을 가진 자들의 무덤이라고 불리는 루키 리그가 궁금하기도 했다.

고등학교 졸업 후에 더블A에서 시작하는 것도 나쁘진 않았다.

하지만 예전 동료의 말처럼 루키부터 시작하는 메이저리거의 낭만.

경험해보지 못한 다른 도전도 괜찮을 것 같았다.

“다들 오늘 고생 많았어. 밥 먹고 푹 쉬고 내일 쿠바 분석해서 알려줄게.”

“고생하셨습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버스는 금방 호텔에 도착했다.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