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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15 야구 월드컵 (7)
“성장 가능성도 충분하고 피지컬도 당장 선수로 뛰어도 괜찮겠네.”
“그렇죠? 상당히 괜찮은 선수입니다. 실제로도 16살에 계약해서 루키를 거쳐 메이저에 올라온 선수들도 꽤 있고요.”
“한번 제의라도 해보자. 이 정도면 특급 유망주 타이틀 달면 프로 구단들도 눈독 들일만 해.”
“그러면 한국이 대회 탈락하고 제의하면 될까요?”
“아니.”
“그러면 언제 제의할까요?”
“8강 끝나고 현장에서 제의해. 여기 쓰인 특징으로 자유로운 영어도 구사 가능하다며.”
“하지만···.”
너무나도 당당한 커너의 태도에 제임스는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아무리 직속상관의 명령이지만 제의 대상은 고작 15살짜리 아이였다.
혹여나 본인의 언행이 어린 선수의 평정심을 무너트려 대회에서 안 좋은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었다.
그래서 제임스가 대답을 하지 못하고 눈치를 보자 커너는 웃으며 이야기했다.
“제임스. 여기가 무슨 꼬맹이들 학예회인 줄 알아? 그 정도 부담도 못 이겨내는 선수면 메이저는커녕 트리플 A도 못 가보고 바로 방출이야.”
“아··· 그렇습니다.”
“프로는 나이가 어리다고, 유망주라고 존중받는 게 아니야. 부담감을 이겨내고 결과로 증명하는 직업이라고. 우리는 그 과정에서 본인의 가치를, 즉 연봉을 올려서 받아내는 사람들이야. 무슨 말인지 알겠어?”
“예. 그러면 8강이 끝나고 바로 제의 해보겠습니다.”
커너의 화려한 언변에 제임스는 본인의 생각이 짧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수긍했다.
‘물론 프로 구단에는 8강 경기가 끝나고 제의를 했다는 걸 보여줘서 강심장을 가졌다는 것도 어필하겠지만.’
어린 유망주들의 상품 가치는 언제나 무궁무진하다.
하지만 그들의 가장 큰 약점은 바로 프로 무대에서의 긴장.
특히나 데뷔전에서 긴장과 부담은 유망주들에게 트라우마가 되어 몇 년의 긴 슬럼프를 겪게 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한 이유로 아무리 훌륭한 유망주라도 트리플 A에서 1, 2년을 담금질하고 내보내는 게 메이저리그의 관례 중 하나였다.
하지만 커너는 메이저리그의 관계자가 아닌 상품을 파는 일종의 장사꾼이었다.
부담감을 이겨내는 강심장 유망주야말로 진정한 가치가 있는 보석, 즉 프로 구단에게 괜찮은 금액을 받을 수 있는 선수였다.
커너는 팔짱을 끼고 최강남의 가치가 얼마나 될지 속으로 어림잡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한국이 U-15에서 최대한 오래 살아남아서 좋은 기록을 만들어달라고.
***
“아··· 멕시코네.”
“그래도 뭐 멕시코면 나쁘지는 않지.”
“조별 2위 팀 중에서 제일 까다로운 거 아니야?”
“최근에 4강에 올라온 적은 없었으니깐 해볼 만할 것 같은데.”
“그래도 개최국이랑 8강은 좀 까다롭다. 조별 1위로 통과했는데.”
“코치님 오신다!”
호텔에서 제공하는 저녁을 먹고 선수들과 모여 U-15 야구 월드컵 조 추첨을 지켜봤다.
우리의 상대는 멕시코. 평소라면 크게 걱정할 건 없는 팀이었지만 올해 대회는 멕시코에서 열렸다.
거기에다가 멕시코의 일교차는 20℃가 넘는 날씨이기에, 홈에서의 이점 또한 다른 나라에서 열린 것보다 컸다.
“다들 우리 상대가 멕시코인 거 확인했지?”
“그렇습니다.”
“그래. 오늘 푹 쉬고 내일모레 경기니깐 내일 멕시코 전력 분석해서 알려줄게.”
“고생하셨습니다.”
한종혁 코치는 걱정이 많아 보이는 선수들을 다독이며 각자의 방으로 돌려보냈다.
‘쉽게 생각했던 8강도 간단하게 이기기는 힘들겠네.’
그런 생각을 하며 내 방으로 들어와 침대에 누웠다.
한국과 멕시코는 전력상 한국이 압도적인 우위에 있었다.
하지만 야구는 모른다.
미국, 베네수엘라, 일본과 같은 조에 속하게 된 멕시코.
이 죽음의 조에서 베네수엘라와 일본을 제치고 2위로 올라오게 된 건 멕시코였다.
홈그라운드라는 이점도 있었지만 베네수엘라와 일본은 그것만으로 이길 수 있는 상대는 아니다.
그 특이점을 한종혁 코치가 알아내길 바라며 잠에 들었다.
***
[한국 U-15 야구 월드컵 대표 팀 본선 진출!]
― 호주, 브라질, 대만을 꺾고 한국 대표 팀이 조 1위로 예선에 진출하게 되었습니다.
그 중심에는 유격수이자 4번 타자인 최강남 선수의 4홈런이 있었는데요. 최강남 선수와 만나서 한 인터뷰의 전문입니다.
(중략)
― 8강 멕시코면 4강도 충분히 가겠네
ㄴ 멕시코 개최 대회라 그게 되려나?
ㄴ 예선전 인터넷 중계로 챙겨봤는데 우승도 노려볼만하다
ㄴ 야알못이냐? 한국이 U-18도 아니고 U-15를 어떻게 우승해? 애초에 우승해본 적이 없는데
ㄴ 있긴 해 96년도라 본 사람이 없어서 그렇지
― 최강남.. 왜 이렇게 이름이 낯설지가 않지
ㄴ 얘 걔잖아 3년 전에 미국에서 리틀야구 우승시켰던 에이스 타자
ㄴ 아니 그 꼬맹이가 벌써 16살이 됐냐? 그럼 3년이 흘렀다는 거네 시간 진짜 빠르다
ㄴ 꼬맹이 제발 잘 커서 부산으로 와서 우승 한번만 해주라
ㄴ 으휴 청소년 국대 기사까지 와서 난리네
ㄴ 그니깐 애한테 무슨 저주를 내리는 거냐 ㅋㅋㅋ
― 그래도 기왕 올라간 거 우승까지 했으면 좋겠네 20년도 더 됐으면
ㄴ 인정 MBS에서 TV 독점 중계한다는데 난 챙겨보려고
ㄴ 청소년 국대가 보는 재미는 있지 ㅋㅋ
“한 코치 이거 봤어?”
“네. 아무래도 최강남 선수가 보면 좀 힘들 것 같아서 따로 이야기는 안 할 계획입니다.”
“그래. 아무리 국가대표여도 고작 16살인데 심리적으로 지칠 거야. 굳이 언급하지 말자.”
“알겠습니다.”
오전 6시 30분. 선수들 집합 전에 미리 만난 한종혁 코치와 박승철 코치는 휴대폰으로 확인한 뉴스 기사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대체적으로 최강남과 한국 대표 팀에 대한 호의적인 반응이 많았다.
당연했다. 야구팬들이 워낙 극성인 건 맞지만 프로 구단 한정이었으니.
오히려 청소년 대표 팀들에게는 대체로 후한 반응이었다.
이따금씩 본인 팀으로 오라는 저주 아닌 저주를 내리는 극성팬들만 제외하면.
“그나저나 멕시코 전력 분석은 잘 됐어?”
“예. 박 코치님이 보내주신 자료 덕분에 훨씬 수월하게 정리 잘 됐습니다. 한번 확인해 보시겠습니까?”
한종혁 코치는 박승철 코치에게 잠깐의 쪽잠을 제외하고는 밤새 공들여 작성했던 분석표를 건네줬다.
“괜찮네. 이거면 한국이 4강 가기에는 충분하겠다.”
분석표를 훑어본 박승철 코치는 활짝 웃으며 이야기했다.
***
‘생각보다 기사 깔끔하게 잘 썼네.’
어제 인터뷰 한 MBS의 채나영 기자의 기사를 보며 생각했다.
겸손하지만 자신감 넘치는 그런 모습으로 보이기를 원했는데, 그런 부분을 정확하게 충족 시켜주는 모습이 상당히 만족스러웠다.
간단하게 샤워를 마치고 집합 시간인 오전 9시에 호텔 로비로 나갔다.
“아침 먹고 경기장으로 가서 멕시코에 대한 간단한 설명 듣고 훈련 시작할 거야. 맛있게들 먹어.”
“알겠습니다!”
한종혁 코치가 다정한 말투로 오늘의 계획에 대해 말해줬다.
눈 아래 다크서클이 상당한 걸 보니 밤새 분석표를 만들었던 것 같았다.
아침을 에그 타르트와 베이컨으로 가볍게 먹고 미니버스를 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모든 선수들이 버스에 탑승했고 경기장으로 출발했다.
“이제 멕시코를 이길 수 있는 방법이랑 오늘 훈련에 대해 간략히 설명해 줄게.”
“알겠습니다!”
한종혁 코치의 말에 의하면 멕시코의 강점은 강한 선발과 타격감이 물이 오른 타자들이었다.
하지만 불안정한 수비를 가지고 있는 팀이었다.
특히 유격수와 3루수의 예선 3경기 동안 실책이 무려 7개였다.
“그래서 우리는 웬만하면 유격수와 3루수 쪽으로 타격하는 공격을 보여줄 거야. 상대 선발 투수로는 2경기 베네수엘라전에서 나왔던 마르틴이 나올 거야. 구종은 포심 하나밖에 없지만 파워풀한 스타일의 투수야.”
한국과의 경기에서 선발로 나올 멕시코의 마르틴은 143km/h의 최고 구속을 가지고 있는 투수였다.
단점은 이닝이 이어질수록 제구가 점점 안 된다는 것이었다.
예선전에서는 5이닝까지는 2실점으로 막아냈지만 6회에만 3실점을 내며 강판 당했다.
멕시코의 타선은 그전부터 많은 점수를 내고 있었기에 승리투수가 됐지만 좋은 투구 내용은 아니었다.
멕시코는 두 명의 선발투수와 그보다 구위가 떨어지는 계투들로 투수진이 이루어졌으니 선발을 제외하고는 고민할 것이 없었다.
그렇게 한국 대표 팀의 훈련이 시작됐다.
“기우야! 더 밀어쳐서 웬만하면 3유간 빠지는 코스로 쳐내야 해. 네가 1번 타자에 발도 가장 빠르니깐 상대 투수 멘탈을 흔들려면 무조건 나가야 해.”
“알겠습니다.”
야구에서 1번 타자의 진루는 매우 중요하다.
특히 8강전은 다른 경기보다 그 필요성이 컸다.
멕시코의 선발인 마르틴은 멘탈이 약한 편이었고 야수들의 에러로 주자가 살아나갔을 때 평소보다 의식을 더 많이 하는 편이었다.
중학 야구에서도 가장 발이 빠른 한기우가 살아나가 투수를 흔들어준다면 예상보다 빠르게 마르틴을 강판시킬 수 있다는 전략.
그래서 특히나 1번인 한기우는 다른 타자들보다 피칭머신 앞에서 오랜 시간 동안 훈련을 받았다.
대부분의 선수들이 3유간 방향의 타구를 쳐내는 훈련을 받았다.
하지만 나를 비롯한 클린업트리오에게 한종혁 코치는 평소처럼 외야로 쳐내는 장타를 요구했다.
어찌 보면 당연했다.
상대의 수비가 미흡한 곳에 집중해서 타격을 하는 것도 우리에게 주자를 쌓아주기 위한 이유였으니깐.
“고생 많았다. 오늘 저녁 먹고 푹 쉬고 내일 좋은 모습으로 4강 올라가자.”
“고생하셨습니다!”
오전부터 시작된 타격 훈련은 해가 지고 나서야 끝이 났다.
이제 남은 것은 멕시코와의 8강전뿐이었다.
***
“좋은 아침입니다.”
“오셨어요?”
“네. 중계 준비는 많이 하셨나요?”
“예. 30분 전부터 도착해서 검토 중이었습니다.”
MBS의 야구 해설위원인 전직 야구선수 남문철과 캐스터인 이승범 아나운서가 평일 오후 12시 30분부터 스튜디오에 나와 있었다.
평일에는 야구 중계가 오후 6시 30분에 시작이었기에 프로 야구는 아니었다.
“안녕하십니까. MBS 스포츠의 시청자 여러분들 오늘 해설을 맡은 남문철.”
“캐스터 이승범입니다. 오늘은 U-15 야구 월드컵 한국 대표 팀이 본선에 진출하게 되었죠?”
“그렇습니다. 8강 상대로 개최국인 멕시코와 붙게 된 한국 대표 팀입니다.”
“한국의 선발 투수로는 박재우 선수가 마운드에 올라왔습니다. 이 선수는 어떤 선수죠?”
“굉장히 매력적인 피칭을 보여주는 선수입니다. 특히 국내 마지막 대회였던 전국소년체육대회에서 7이닝 퍼펙트를 보여줬는데요. 오늘의 투구 역시 기대가 되네요.”
“네. 말씀드린 순간 박재우 선수가 초구를 던졌습니다. 구속은 138km/h. 상당히 괜찮은 공이네요.”
“오늘 멕시코의 막강한 타선을 두고 박재우 선수가 어떤 피칭을 보여주느냐가 중요한 키포인트가 되겠습니다.”
MBS의 TV 생중계로 한국과 멕시코의 8강전 경기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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