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역대급 홈런왕의 탄생-29화 (29/126)

# 29 - 3738815

#

U-15 야구 월드컵 (6)

2회 초 한국의 타선은 포수인 6번 김용섭부터 시작했다.

“스트라이크 아웃!”

왕우철은 비록 1회에 실점했지만 2회에는 선두 타자를 삼진으로 잡아내며 자기의 기량을 뽐냈다.

7번 타자인 2루수 안정현은 2구를 타격했지만 평범한 유격수 땅볼로 물러났다.

“스트라이크 아웃!”

다음으로 타석에 들어선 8번 이기우까지 삼진으로 잡아내며, 삼자범퇴로 2회 초 한국의 공격이 끝이 났다.

2회 말 마운드에 올라온 김성환은 대만의 4번 타자인 송청쉬에게 2루타를 하나 맞았지만 무실점으로 잘 막아냈다.

3회에도 투수전이 계속되며 양 팀은 점수가 나지 않았다.

기회는 4회 초에 다시 찾아왔다.

4회 선두 타자로 나선 박병규가 왕우철의 3구를 타격해서 우익수 앞에 떨어지는 안타로 살아나갔다.

노아웃 주자 1루에 내 타석이 다시 돌아왔다.

“스트라이크!”

상대의 초구는 136km/h의 바깥쪽에 꽉 차는 공.

3이닝을 던졌음에도 여전히 제구가 잘 되는 모습이었다.

한종혁 코치의 분석대로라면 2번째 공은 바깥쪽에 다시 들어올 확률이 높을 테니 바깥쪽 공을 기다렸다.

“스트라이크!”

하지만 예상과 다르게 왕우철의 두 번째 공은 몸쪽 높은 코스였다.

이렇게 되면 분석은 별 의미가 없어진다.

코스를 노리지 않고 스트라이크 존을 평소보다 넓게 의식하며 배트를 움켜쥐었다.

실투성 공이 날아왔고 배트를 휘둘렀지만 공의 궤적이 휘었다.

‘커브?’

궤적이 휘는걸 보고 최대한 오른쪽 팔꿈치를 몸쪽으로 당기며 배트를 휘둘렀다.

타이밍은 매우 늦었지만 공에 배트를 맞춰내는 데는 성공했다.

다행히 공은 우측 담장을 넘어가는 파울로 1루수가 쫓아갔지만 잡히지 않았다.

‘삼진 안 당한 게 어디야.’

한숨을 쉬며 배터박스 밖으로 나와 호흡을 가다듬고 다시 타석에 들어섰다.

한종혁 코치가 준 투구 분석지에 커브는 없었다.

4회까지 아껴둔 비장의 무기를 나에게 던진 왕우철.

이렇게 되면 분석표는 아무 의미가 없어졌으니 본능적인 직감만을 믿고 상대의 네 번째 공을 기다렸다.

왕우철은 다시 한번 내게 커브를 던졌고 난 그대로 당겨쳤다.

하지만 살짝 빗맞은 볼. 운 좋게도 공은 유격수와 좌익수 중견수 사이에 떨어지는 텍사스 안타가 되었다.

노아웃 1, 2루의 상황에 5번 타자인 조영원은 정종현 감독의 사인을 받고 희생번트를 갖다 댔고, 작전을 완벽하게 수행하며 주자들은 진루했다.

1아웃 2, 3루의 찬스. 하지만 6번 김용섭과 7번 안정현이 모두 삼진으로 물러나며 또다시 무득점으로 한국의 공격이 마무리됐다.

“스트라이크 아웃!”

4회 말 다시 마운드로 올라온 김성환은 두 타자를 연속으로 삼진으로 잡아냈다.

다음 타석은 대만의 4번 타자인 송청쉬.

2스트라이크를 먼저 잡아냈지만 3구에 가운데로 몰리는 실투성 공을 던졌다.

깡―!

대만의 유일한 홈런 타자인 송청쉬는 그 공을 놓치지 않았다.

솔로 홈런을 맞으며 경기는 다시 원점이 되었다.

다음으로 타석에 올라온 대만의 5번 타자는 김성환이 초구로 던진 몸쪽 공을 당겨쳤다.

타구는 내 쪽으로 향했고 안정적으로 공을 잡아낸 나는 1루에 던지며 4회 말 대만의 공격을 종료시켰다.

“하··· 카운트도 잘 잡았는데 너무 조급하게 던져서 맞아버렸네.”

“잘했어. 이제 동점인데 뭐. 우리가 다시 점수 내면 되지.”

“나도 최대한 잘 던져볼게. 부탁해.”

“부담감 갖지 마. 지금도 충분히 잘 던지고 있어.”

홈런을 맞아낸 자신의 플레이를 자책하는 김성환을 위로해주며 더그아웃으로 걸어갔다.

4이닝 1실점을 한 투수를 누가 원망할 수 있을까?

오히려 4회 초에 1아웃 2, 3루의 기회를 살리지 못한 것이 김성환의 어깨를 더 무겁게 만들었을 것이다.

이렇게 한국은 1:1의 상황으로 5회를 맞이했다.

***

“감독님 지환이 불펜에서 대기시킬까요?”

“지환이랑 재원이 둘 다 불펜에서 몸 풀라고 해.”

“알겠습니다. 지환아, 재원아 불펜가서 몸 풀어라.”

“알겠습니다!”

더그아웃에 앉아서 팔짱을 끼고 경기를 보고 있는 정종현 감독은 생각이 많아졌다.

5회에 1:1의 상황이라면 언제든 경기가 일방적인 방향으로 흘러가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그래서 1경기인 호주전에서 2이닝을 던진 신재원까지 몸을 풀라고 지시를 내렸다.

이미 본선 진출은 확정지었지만 2위로 본선에 진출하게 된다면, 대만을 제외하고 붙어야 할 3팀이 너무나도 강했다.

미국, 쿠바, 도미니카 공화국 중 하나와 8강에서 붙게 된다.

그럴 바엔 차라리 이번 경기에서 많은 투수들을 내보내는 것이 체력 분배에 더 유리하다고 생각하는 정종현 감독이었다.

하위 타선인 8번부터 시작한 5회 초 한국의 공격은 예상대로 삼자범퇴로 끝이 났다.

‘득점권 위기만 되어도 성환이는 바꿀 수밖에 없겠네. 조금만 더 버텨줘라.’

아무리 계투들이 많아도 한국에서 가장 좋은 공을 던지는 투수는 김성환.

그가 맞기 시작한다면 다른 계투들도 막아내기는 힘들 것이다.

지금 상황에서 정종현 감독이 할 수 있는 일은 조용히 경기를 지켜보는 것뿐이었다.

***

‘생각보다 훨씬 잘 던져주네.’

6번 타자부터 시작된 대만의 5회 말 공격.

첫 타자의 타구는 내가 점프 캐치로 안타성 타구를 잡아냈다.

김성환은 이어서 올라온 7번과 8번을 각각 중견수 뜬공과 삼진으로 잡아내며 삼자범퇴로 5회를 마무리했다.

구위가 조금 떨어지기는 했어도 여전히 한국의 에이스다운 피칭을 보여주고 있었다.

아무래도 투수전으로 이어진다면 최근에 실점을 했던 김성환이 훨씬 부담이 클 텐데, 그런 우려를 완전히 잠재우는 모습이었다.

“강남아 부탁한다. 너만 믿을게.”

“내가 이번 타석에서 꼭 점수 내볼게.”

상당히 지친 기색이 역력한 김성환이 내게 말을 건넸고 난 그가 바라는 대답을 해줬다.

이번에 찾아오는 6회 초 공격에 꼭 점수를 내서 김성환의 어깨에 가득한 부담감을 조금 덜어주고 싶었으니.

6회 초 한국의 공격은 2번 타자인 이승민부터 시작했다.

상대 투수는 6회에도 여전히 마운드를 지키고 있는 왕우철이었다.

“스트라이크 아웃!”

제구력은 조금 떨어졌지만 구위는 여전한 왕우철은 커브로 선두 타자를 삼진으로 돌려세웠다.

다음으로 타석에 들어선 박병규. 오늘 경기에서 안타가 있는 3명의 타자 중 한 명이었다.

그는 왕우철의 2구를 잘 당겨쳤지만 아쉽게 펜스 앞에서 좌익수에게 잡히며 더그아웃으로 물러났다.

이렇게 2아웃에 주자는 없는 상황. 내가 세 번째 타자로 타석에 들어섰다.

구속은 1회와 별 차이가 없지만 4회부터 점점 제구력이 떨어지고 있는 왕우철.

몸쪽 높은 공이나 가운데로 몰리는 코스를 타격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첫 번째 공을 기다렸다.

“스트라이크!”

바깥쪽 낮은 꽉 차는 코스. 초구는 상당히 좋은 공이 들어왔고 난 지켜봤다.

2구와 3구는 높은 코스의 빠지는 볼.

2볼 1스트라이크에서 왕우철은 4번째 공을 던지기 위해 와인드업을 시작했다.

네 번째 공은 정 가운데로 몰리는 실투가 들어왔고 일말의 고민도 없이 배트를 휘둘러 타격했다.

깡―!

타격과 동시에 넘어갔다는 확신이 들었다.

배트를 던지고 천천히 1루 베이스로 향하며 타구를 지켜봤다.

내가 쳐낸 공은 쭉쭉 뻗어나가 좌중간 담장을 훌쩍 넘겼다.

오른손을 번쩍 들며 베이스를 돌았다. 당연히 검지는 핀 채로.

“고맙다. 너라면 넘길 줄 알고 있었어.”

“걱정 말고 던져. 쟤네는 네 공 절대 못 쳐.”

“그래. 잘 던져볼게.”

홈 플레이트를 밟고 가장 먼저 더그아웃에서 달려온 김성환과 주먹을 맞댔다.

“나이스 홈런!”

“역시 최강남이다!”

그 후로 모든 선수들의 환호를 받으며 더그아웃으로 돌아갔다.

“고생 많았다. 오늘 좋은 모습 여러 번 보여주는구나.”

“감사합니다.”

더그아웃에서는 정종현 감독을 비롯한 두 명의 코치님들도 오른손 엄지를 번쩍 들었다.

난 정중하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며 벤치에 앉았다.

다음 타자인 조영원의 타구는 중견수에게 잡혔지만, 경기는 2:1로 한국이 앞서가게 되었다.

6회 말 다시 마운드에 올라온 김성환은 젖 먹던 힘까지 다 뽑아내는 투구를 보여줬다.

구속은 138km/h. 1회와 비교해도 나쁘지 않은 공이었다.

김성환은 삼진 하나와 땅볼 두 개로 6회를 마무리 지었다.

7회 대만의 투수는 계투 에이스인 좌완 파이어볼러로 바뀌었고 한국의 타자들은 삼자범퇴로 아무도 진루하지 못했다.

하지만 내가 쳐낸 홈런 덕분에 아까보다 여유가 생긴 한국 대표 팀이었다.

7회 말 한국의 마운드는 신재원이 올라왔고 안타를 하나 맞았지만 무실점으로 잘 막아냈다.

2:1 한국의 승리. 이로써 한국은 D조 1위로 8강에 올라가게 되었다.

홈런 포함 3타수 3안타 2타점을 치게 된 내가 대만전 MVP를 받게 되었다.

“최강남 선수! 혹시 인터뷰 괜찮을까요?”

“네. 괜찮습니다.”

MVP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한국인 기자가 내게 말을 걸었다.

“MBS의 채나영 기자입니다. 이번에 예선 3경기에서만 4홈런을 쳐내며 한국의 본선 진출에 주축이 되셨는데, 본선에 임하는 각오 한마디만 부탁드립니다.”

“저뿐만 아니라 다른 선수들이나 투수들의 좋은 플레이가 컸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감독님과 코치님의 분석 또한 엄청난 도움이 됐고요.”

“호주전 첫 경기가 끝나고 했던 인터뷰가 현재 한국에서 굉장히 화제입니다. 알고 계셨나요?”

“아니요. 전혀 몰랐습니다.”

“혹시 미국의 포수인 마이클 선수에게도 한마디 괜찮으실까요?”

“아마 4강이나 결승전에서 만날 거라고 생각하는데 딱히 의식은 하고 있지 않습니다. 어차피 그런 선수의 리드로는 제 타격을 막아낼 수 없을 테니까요.”

“인터뷰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MBS의 채나영 기자는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 인터뷰를 마쳤다.

“감독님 강남이도 왔습니다.”

“그래. 그러면 이제 이야기 시작할게. 일단 오늘 경기하느라 정말 고생들 많았다. 우리는 예선 1위로 진출했으니 다른 2위 팀들과 8강에서 붙게 될 거야. 오늘 저녁에 대진표 추첨 있는 건 알지?”

“그렇습니다!”

“우리는 비교적 여유롭게 8강을 준비할 수 있을 거야. 대진표가 오늘 결정되면 내일부터 상대에 맞는 훈련 시작하자.”

“알겠습니다!”

정종현 감독은 말이 끝나자 미리 대기해있던 미니버스에 올라탔고, 뒤이어 코치와 선수들도 탑승했다.

모두가 탄 미니버스는 평소처럼 호텔을 향해 출발했다.

***

“이번에 야구 월드컵 유망주들 다 체크했어?”

“그렇습니다. 전부 여기 있습니다.”

커너 코퍼레이션의 신입 직원인 제임스는 사장을 맡고 있는 커너에게 자신 있게 기록표를 내밀었다.

보라스 코퍼레이션처럼 엄청난 계약들은 아니었지만 상당한 실적을 내고 있는 커너.

그는 제임스가 가져온 기록표들을 미간을 찌푸리며 하나하나 확인하고 있다.

대부분 U-18에서 좋은 기록을 냈던 선수들이었다.

“뭐야? 15살짜리는 왜 껴있어?”

“보스. 이번에 U-15에서 뛰고 있는 동양인 유망주인데 성적이 상당합니다. 거기에 신체 조건도 좋고 OPS또한 훌륭합니다. 어쩌면 제2의 로날드 아쿠나 주니어가 될지도 모릅니다.”

“그 정도라고?”

커너는 기록표에 별표가 되어 따로 표시되어있는 최강남이라는 선수의 기록을 자세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