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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15 야구 월드컵 (5)
내가 걷어 올린 공은 왼쪽 담장을 향해 쭉쭉 날아갔다.
좌익수가 공을 향해 달려가다가 이내 발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담장을 넘어가는 내 공을 멍하니 지켜보는 모습이었다.
“이걸 넘기네. 나이스 홈런!”
“진짜 특이한 버릇이네. 한종혁 코치님은 어떻게 알았지?”
“그러게. 나도 그래서 안타 쳤잖아.”
1루 주자인 박병규가 내가 홈에 들어서자 주먹을 갖다 댔고 난 그걸 맞받아쳤다.
3:2로 다시 승부를 뒤집는 역전 쓰리런.
이후 추가점은 나오지 않으며 1회 말 한국의 공격도 끝이 났다.
2회 초 한국의 수비. 선발인 유상현이 다시 마운드에 올라왔다.
내가 낸 3점이 든든해서인지 몸이 풀려서인지는 몰라도 두 타자 연속으로 삼진을 잡아냈다.
세 번째로 타석에 들어선 브라질 선수는 2번 타자인 투수 페르난이었다.
그는 유상현의 두 번째 공을 타격했고 타구는 내 쪽으로 느리게 굴러왔다.
평범하게 기다리면 아웃시키기 힘든 느린 타구였기에 앞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맨손으로 잡아 1루수인 조영원에게 빠르게 송구했다.
“아웃!”
아슬아슬한 타이밍으로 상대 투수인 페르난을 유격수 땅볼로 아웃시켰다.
“나이스 수비. 다음 타석도 기대할게.”
“다음 타석까지 저 투수가 버틸 수 있으려나?”
“글쎄··· 그래도 에이스인데 그렇게 빨리 무너지지는 않을 것 같은데.”
“상대 감독도 커브 던질 때 습관이 있는 거 알아채면 금방 교체될 것 같아.”
“그런가?”
유상현과 더그아웃으로 돌아가며 이야기를 나눴다.
우리가 상대 투수의 버릇을 알고 계속해서 커브만 노려서 타격하고 있으니, 브라질 더그아웃에서 눈치채기까지는 시간문제였다.
한국은 2회 말에도 페르난에게 1득점을 추가하며 4:2로 경기를 리드했다.
3회에 올라온 유상현은 볼넷을 하나 허용했지만 무실점으로 브라질의 타선을 틀어막았다.
3회 말 선두 타자는 3번 타자인 박병규의 타선부터 시작했다.
박병규는 2볼 1스트라이크에서 상대의 커브를 쳐내며 1루에 여유롭게 안착했다.
“타임!”
그때 브라질의 감독이 타임을 외치고 마운드로 올라왔다.
브라질의 감독은 투수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더니 다시 더그아웃으로 돌아갔다.
‘이렇게 되면 커브는 이제 노리기 힘들겠네.’
한국의 모든 득점이 페르난의 커브를 타격하며 나왔으니 상대 감독도 눈치챘을 것이다.
던질 때 습관이 노출된 것 같으니 이번 경기에서는 더 이상 커브를 던지지 말라는 지시를 내렸을 확률이 높다.
그렇다면 난 상대의 직구를 쳐내면 된다.
페르난이 좋은 투수로 자국에서 평가받았던 이유는 포심과 커브의 투구폼 차이가 거의 없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포심만 던질 수 있는 원 피치 스타일로 바뀐다면 그렇게 대단한 투수는 아니었다.
깡―!
1볼 1스트라이크에서 난 높은 공을 때려냈고 타구는 좌중간을 갈랐다.
“세이프!”
1루 주자였던 박병규는 홈으로 들어오고 난 3루에서 슬라이딩 승부 끝에 세이프 판정을 받았다.
5번 타자로 나선 조영원까지 페르난의 공을 쳐내며 1점을 추가 득점해서, 순식간에 경기는 6:2로 한국이 크게 앞서게 되었다.
페르난은 이후로도 두 개의 안타를 더 허용하며 마운드에서 내려오게 되었다.
한국은 바뀐 투수를 상대로 난타전을 이어갔고, 선발인 유상현과 다음 투수로 나온 홍민우는 좋은 피칭을 보여줬다.
경기는 9:3 한국의 승리. 2승 0패로 대만과 공동 1위가 되었다.
경기 MVP는 1회에 3점 홈런과 쐐기 솔로포를 뽑아내며 2개의 홈런을 쳐낸 내가 받았다.
“다들 고생 많았다. 한국은 이제 대만과 2승 0패로 8강 진출이 확정됐다. 하지만 조별 예선 1위로 올라가면 다른 조의 2위 팀과 경기를 할 수 있으니, 다음 경기인 대만까지 이겨보자.”
“알겠습니다!”
MVP 인터뷰를 마치고 더그아웃으로 돌아가니 정종현 감독이 모든 선수들을 불러 모아 이야기를 시작했다.
8강 진출도 중요했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조 1위였다.
당장 작년에도 조 2위로 8강에 올라갔지만 A조 1위인 쿠바를 만나면서 8강에서 떨어졌었다.
우승하려면 모든 팀을 이겨야 하는 것은 맞았지만 굳이 어려운 길을 골라서 갈 필요는 없었다.
“일단 버스 타고 이동하면서 이야기하자. 한종혁 코치가 말해줄 테니 다들 잘 듣고.”
“알겠습니다.”
모든 선수들이 미니버스에 타자 한종혁 코치가 입을 열었다.
“대만은 호주나 브라질이랑 다르게 더 객관적인 기록들이 많아. 자국 리그 영상들이 많이 남아있거든. 타격은 우리가 붙었던 다른 두 팀에 비해서 약하지만, 강력한 투수진을 바탕으로 적은 실점으로 1, 2경기를 이겼어.”
한종혁 코치의 말에 따르면 대만은 뚜렷한 약점이 없는 팀이라고 했다.
하지만 다르게 말하면 독보적인 강점이 없는 팀이기도 했다.
강한 투수진에 비해서 타자들의 기록은 평균 이하였고 실제로 1, 2경기 내용도 그러했다.
2경기에서 4실점밖에 하지 않았지만 득점 또한 6점뿐이었다.
한국의 1, 2경기 기록은 6실점에 무려 20득점.
거기다가 대만전 선발로 나설 투수는 한국의 에이스인 김성환이었다.
“그러므로 대만전에서 우리가 이길 수 있는 방법은 대만의 강력한 투수들을 뚫는 거야. 분석표는 확인했지? 대만의 선발 투수로 나설 왕우철의 피칭 스타일은 단순해. 2스트라이크까지 한쪽으로만 던지다가 마지막 공을 정반대로 꽂는 거야. 대회에서 이렇게 삼진을 잡아낸 비율이 무려 90%가 넘어.”
대만의 선발로 나서게 될 에이스 투수인 왕우철.
굉장히 단순하지만 자신감이 넘치는 투구 내용을 보여주는 투수였다.
평균 구속 130km/h 중반대에 최고 구속은 138km/h. 평균보다 살짝 빠른 수준이었다.
하지만 그의 강점은 다른 곳에 있었다.
스트라이크 존을 4분할해서 던질 수 있는 커맨드.
16살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완벽한 제구력을 가지고 있는 투수였다.
“하지만 이 투수를 마운드에서 끌어내렸다고 끝나는 게 아니야. 다음은 훨씬 까다로운 상대거든. 좌완 투수인데 포심과 커브를 던지는 투 피치 선수야. 최고 구속은 142km/h로 호주에서 붙었던 투수와 비슷하지만 커맨드는 훨씬 뛰어나.”
한종혁 코치에게 다음 투수로 나올 필승 계투조의 설명까지 듣자 미니버스는 호텔에 도착했다.
“그러니 내일은 방금 말했던 두 명의 투수를 공략하기 위한 훈련을 진행할 거야. 다들 밥 맛있게 먹고 오늘 경기 하느라 고생 많았다.”
“고생하셨습니다!”
한종혁 코치의 다정한 웃음과 함께 대만 투수들의 설명이 끝이 났고 멤버들은 다 같이 호텔 식당으로 향했다.
“대만 타자는 4번 타자인 송청쉬만 조심하면 다 할만할 것 같아. 상대는 투수 위주의 팀이니깐 네가 한 건 해줘라. 믿고 있을게.”
“긴장했어? 소심한 성격 다 바뀐 줄 알았는데 여전한가 보네.”
“미국이나 쿠바도 아니고 무슨 대만한테 긴장을 해. 그리고 옛날에는 소심한 게 아니라 차분한 거였지.”
“그래? 너무 차분해서 목소리가 들리지도 않던데.”
“장난치지 말고··· 어쨌든 대만전에 부탁할게.”
“부탁 안 해도 내가 잘 쳐줄 테니깐 부담 갖지 말고 던져.”
“그래. 고맙다.”
호텔 뷔페에서 음식을 고르며 김성환과 이야기를 나눴다.
다행히 긴장한 기색은 전혀 없어서 내일 경기는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밥을 다 먹고 나서 내 방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대만의 선발 투수로 나올 왕우철의 투구 패턴과 동영상을 보다가 잠에 들었다.
“오늘 훈련은 저번처럼 피칭머신 타격 훈련인데 조금 스타일이 달라. 왕우철의 패턴으로 연습할거야. 피칭머신 위치를 바꾸긴 번거로우니 타격할 때 위치를 바꿔가면서 연습해보자.”
“알겠습니다.”
다음날은 오전부터 러닝도 생략하고 간단한 스트레칭 후 타격 훈련에 들어갔다.
몸쪽이나 바깥쪽 둘 중 하나의 방향으로 2스트라이크까지 타자를 몰아세운 다음, 반대쪽 방향으로 삼진을 잡아내는 왕우철을 공략하기 위한 훈련이 계속 진행됐다.
“다들 고생 많았어. 오늘 푹 쉬고 내일은 오후 경기라서 30℃ 가까이 오를 테니깐 너무 껴입고 오지 말고.”
“고생하셨습니다!”
오전부터 시작한 훈련은 해가 지고 나서야 끝이 났다.
밥을 먹고 방으로 돌아와 스윙 훈련을 하다가 침대에 누웠다.
내일은 드디어 조별 예선 마지막 상대인 대만과의 경기 날.
투수가 평균을 훨씬 넘는 수준의 대만이었기에 내가 좋은 활약을 보인다면 해외 스카우터들의 눈에도 훨씬 들기 쉬울 것이다.
마지막까지 분석표를 보다가 잠이 몰려오자 책상에 내려놓고 침대에 누웠다.
***
“다들 긴장하지 말고 어제 훈련한 만큼만 오늘 경기에서 보여주자. 구호 한번 외치고 경기 시작하자.”
“한국! 한국! 한국!”
아침이 밝았고 경기장에는 한국과 대만의 선수들이 모였다.
상대의 선발은 예상대로 왕우철이 올라왔다.
한국이 1회 초 선공으로 경기가 시작됐다.
“스트라이크!”
왕우철은 초구는 132km/h.
그리 빠른 공은 아니었지만 커맨드에 자신이 있는 선수답게 바깥쪽에 꽉 차는 공을 던졌다.
두 번째 공도 역시나 바깥쪽. 3구는 몸쪽으로 들어왔고 1번 타자인 한기우는 밀어쳐서 안타를 만들어냈다.
2번 타자인 이승민은 번트로 한기우를 2루로 보내며 아웃됐다.
3번 타자로 들어선 박병규. 바깥쪽 초구를 지켜본 그는 두 번째 공으로 들어온 같은 코스의 공을 밀어쳤다.
하지만 아쉽게 2루수 정면으로 향하며 아웃. 그래도 2루 주자에 있던 한기우는 여유롭게 3루로 진루했다.
2아웃 3루의 찬스에서 내가 타석에 들어섰다.
“스트라이크!”
초구는 바깥쪽 높은 공이 들어왔다.
2스트라이크 이후에 몸쪽 공을 쳐내서 홈런을 노릴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2아웃 3루이니 다음 공이 바깥쪽으로 오면 치겠다는 생각을 하며 배트를 움켜쥐었다.
2구는 예상대로 또다시 바깥쪽 높은 공이 들어왔고 가볍게 밀어쳤다.
타구는 우익수 앞에 떨어졌고 3루 주자인 한기우는 여유롭게 홈으로 들어왔다.
다음 타자인 조영원은 삼진으로 물러났지만 내가 선취점을 따내며 1:0으로 기분 좋게 1회를 시작하는 한국이었다.
1회 말 한국의 선발 투수인 김성환이 마운드에 올라왔다.
“스트라이크!”
김성환의 초구는 137km/h. 컨디션이 괜찮아 보였다.
2구는 볼, 3구는 스트라이크를 던진 김성환은 4번째 와인드업을 시작했다.
“스트라이크 아웃!”
1번 타자를 139km/h의 몸쪽 직구로 삼진을 잡아내며 산뜻한 출발을 시작했다.
2번 타자는 2구 만에 중견수 뜬공으로 잡아내고 3번 타자인 투수 왕우철이 타석에 들어섰다.
한국의 아마추어 야구가 KBO와 가장 크게 다른 점은 투수가 타자까지 겸임한다는 것이다.
투수들끼리의 신경전은 타석에 선 상대 투수에게도 유효했다.
심지어 투수도 타격을 하는 메이저리그의 내셔널리그에서는 상대 투수가 타석에 들어서면 포심만 던지는 투수도 존재했다.
그만큼 각 투수들 간의 기 싸움은 그 경기의 승패를 좌우할 정도로 중요했다.
우리와 상대 둘 다 에이스 투수가 나온 지금은 더욱 기세가 중요한 상황이다.
김성환은 와인드업 후 초구를 던졌고 왕우철은 곧바로 타격했다.
타구는 2유간으로 빠질만한 코스였지만 타격과 동시에 반사적으로 난 타구 방향을 예측해서 이동했다.
그리고 슬라이딩 캐치로 땅볼 타구를 잡아낸 후 앉은 채로 1루로 공을 던졌다.
“아웃!”
대만의 삼자범퇴. 내 좋은 수비가 한국과 김성환의 기세를 제대로 끌어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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