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역대급 홈런왕의 탄생-27화 (27/126)

# 27 - 3734335

#

U-15 야구 월드컵 (4)

“스트라이크!”

상대 투수가 초구를 던졌고 아까보다 더 빨라진 공이었다.

전광판에 뜬 구속은 무려 143km/h.

3번 타자로 나선 박병규가 공을 건드리지도 못하고 삼진을 당할만한 구위였다.

잠시 배터박스 밖으로 나와서 배팅 장갑을 풀었다가 다시 꼈다.

코치님이 주신 분석표를 봤을 때 저 투수의 최대 약점은 제구력.

실제로 앞서 삼진을 당한 박병규가 휘두른 2개의 공도 가만히 두면 볼 판정을 받는 코스였다.

가운데로 몰리는 실투가 아니라면 투 스트라이크까지는 지켜볼 생각을 하며 다시 타석에 들어섰다.

예상대로 2개 연속 스트라이크 존을 벗어난 공이 들어왔다.

2볼 1스트라이크에서 맞이하는 4번째 공.

바깥쪽 스트라이크 존에 걸치는 공이 들어왔고 심판은 별 반응이 없었다.

스트라이크로 잡아줘도 할 말이 없을 애매한 공이었지만 행운까지 따라줬다.

만루의 상황이기에 다음 공이 볼이라면 밀어내기로 1점을 추가하게 된다.

그것이 상대 투수의 머릿속을 복잡하게 하는지 굉장히 패닉에 빠진 표정이었다.

‘한 가운데냐? 도망가는 볼이냐?’

이런 상황에서 커맨드가 좋지 않은 투수가 고를 수 있는 선택지는 두 개뿐.

마운드에 오른 상대는 1루 주자를 흘깃 바라보더니 곧이어 공을 던졌다.

‘됐다!’

상대 투수는 존 한가운데로 몰리는 공을 던졌고 난 일말의 고민도 없이 배트를 휘둘렀다.

“깡―!”

너무나 깔끔한 스윙에 정확하게 맞은 타구.

알루미늄 배트에서는 너무나 맑고 청량한 소리가 들렸다.

전광판에는 오늘 경기 최고 구속인 145km/h가 찍혀있었다.

완벽한 각도로 당겨친 공은 중력의 영향도 받지 않는다는 듯이 쭉쭉 뻗어나갔다.

상대 투수와 내야수들은 맞자마자 홈런임을 직감했는지, 타구를 돌아보지도 않고 고개를 떨구는 모습이었다.

공은 담장을 넘어서도 멈추지 않고 경기장 밖으로 넘어갔다.

배트를 집어 던지고 베이스를 돌기 시작했다.

평소처럼 오른손 검지를 하늘로 가리키는 세리머니도 잊지 않았다.

“와 어떻게 하다 하다 장외 홈런까지 치냐? 넌 진짜 괴물이다.”

“내가 넘기고 온댔지? 4회에는 긴장하지 말고 네 실력대로 잘 던져.”

“그래. 내가 지금부터라도 퍼펙트로 꼭 막아본다.”

홈으로 들어오자 3루 주자였던 박재우가 내 배트를 들고 오른손을 번쩍 들었다.

박재우의 아까보다 훨씬 밝은 표정에 난 웃으며 격하게 하이파이브를 쳤다.

“좋은 홈런이었다. 최강남 잘했다.”

“감사합니다.”

칭찬에 인색한 정종현 감독도 만족스러웠는지 직접 홈까지 마중을 나와 있었다.

2:3의 상황에서 역전 장외 만루 홈런.

경기는 순식간에 6:3이 되었다.

한국은 추가점을 내지 못하고 3회 말 공격이 끝이 났지만 분위기는 완전히 이쪽으로 넘어왔다.

4회에도 마운드에 올라온 박재우는 2루타를 하나 맞았지만 무실점으로 막아냈다.

4회 말 한국의 공격에서는 포수인 김용섭이 승기를 완전히 굳히는 솔로 홈런까지 쳐냈다.

7:3으로 한국이 앞선 상황에 5회에도 올라온 박재우는 삼자범퇴를 잡으며 좋은 피칭을 보여줬다.

5회 말 한국의 공격. 1아웃 2루에 내 타석이 돌아왔다.

하지만 상대 투수는 아까 맞은 만루 홈런의 충격이 가시지 않은 상태였다.

완전히 도망가는 피칭을 보여주면서 던진 네 개의 공 모두 존에서 엄청 벗어났다.

볼넷으로 1아웃 1, 2루의 상황.

5번 타자로 나선 1루수 조영원은 담장을 원바운드로 때리는 2루타를 쳐냈다.

상대 투수를 괴롭히기 위해 리드 폭을 넓게 가져가던 나까지 홈으로 들어오며 스코어는 9:3.

호주의 선발과 필승 계투조까지 끌어내리며 완벽하게 격파해냈다.

6회 초부터는 신재원이 2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아내며 좋은 피칭을 보여줬다.

한국은 6회에도 바뀐 투수에게 2점을 추가하며 11:3으로 대승을 거뒀다.

1경기 MVP는 만루 홈런을 때려낸 내가 받게 되었다.

“강남아. MVP 인터뷰 하고 더그아웃으로 돌아와. 통역은 필요 없지?”

“괜찮습니다. 인터뷰 하고 오겠습니다.”

U-15 야구 월드컵 통역 겸 코치를 하고 있는 박승철 코치가 내게 물었다.

박승철 코치는 마이너리그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하고 메이저리그를 거쳐서 KBO에서 은퇴했다.

그렇기에 영어는 현지인 수준이었다.

하지만 내 영어 실력 역시 통역이 필요 없는 수준이다.

난 괜찮다는 이야기를 하며 MVP 인터뷰를 하러 갔다.

“안녕하세요. 오늘은 이번 경기에서 만루 홈런 그것도 장외 홈런을 때려낸 한국의 4번 타자 최강남 선수와 인터뷰 진행해보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한국에서 유격수로 뛰고 있는 최강남이라고 합니다.”

“오늘 경기 공수에서 모두 엄청 좋은 모습을 보여주시며 한국이 이겼습니다. 경기의 중심에 최강남 선수가 있었다고 생각되는데 특별한 비결이 있으셨을까요?”

“아무래도 감독님과 코치님들의 분석이 상당히 크게 작용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어떤 한 선수가 제게 많은 동기 부여를 시켜줬죠.”

“어떤 선수인지 물어봐도 될까요?”

“멕시코에 도착한 후 첫 연습경기에서 만났던 미국의 마이클 선수입니다. 이번 대회에서 저한테 홈런 한 방도 못 치고 짐을 싸서 한국으로 돌아가게 될 거라고 하더라고요. 그 말이 상당히 동기부여가 됐던 것 같습니다.”

“하하. 이 말은 미국에게 있어서 선전포고와도 같겠네요. 오늘 인터뷰는 이걸로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예전에 우승했던 리틀야구 월드시리즈 인터뷰에서는 겸손한 모습으로 일관했다.

하지만 U-15에서는 어떻게든 해외 스카우터들의 눈에 들어야 되기에, 어느 정도의 이슈도 필요했다.

짐을 싸서 한국으로 돌아가라는 말까지는 안했지만 기자들을 위해 스토리텔링까지 완벽하게 만들어서 인터뷰를 끝냈다.

뭐··· 이번 대회에서 홈런 한 방 못 칠 거라면서 열받게 했던 건 맞으니깐. 지가 어쩔 거야.

“감독님 인터뷰 끝났습니다.”

“그래. 그러면 이제 다들 호텔로 가자. 오늘 경기 고생 많았다.”

“고생하셨습니다!”

내가 더그아웃에 도착하자 한국 대표 팀은 미니버스로 발걸음을 옮겼다.

“감독님. 선수들에게 다음 상대인 브라질에 대해서 한마디 해도 되겠습니까?”

“그렇게 해.”

“브라질은 호주보다 타격에 강한 팀이야. 에이스 투수 한 명에 의존하는 팀인데 1경기인 대만전에서는 안 나왔어. 대만이 조 1위를 하면 자기네가 2등으로 올라가겠다는 생각이겠지. 이런 애들한테 질 거야?”

“아닙니다!”

“그래. 우리가 얘네 이기고 대만까지 이기고 조 1위로 올라가 보자고! 저번에 준 분석표에 피칭 스타일 전부 기록해놨어. 오늘은 전부 그거 분석하다가 자. 내일은 그 투수 공략할 수 있는 훈련으로 준비했어.”

“알겠습니다.”

미니버스가 출발하기 전 한종혁 코치는 감독님의 양해를 꺼내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한종혁 코치는 이야기하다가 흥분했는지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했다.

선수들에게는 한없이 따뜻하고 늘 ‘할 수 있어’라는 말을 달고 사는 한종혁 코치.

하지만 상대 팀 분석에 있어서는 누구보다 독하게 단점만을 파고드는 성격이었다.

‘진짜 재능 있는 코치네.’

처음 한종혁 코치에게 분석표를 받고 든 생각이었다.

KBO에서 받았던 분석표를 뛰어넘는 것은 물론이고 메이저리그와도 비등한 수준이었다.

그 분석표 덕분에 오늘 수비와 공격에서 모두 좋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버스 기사가 도착했고 버스는 호텔로 향했다.

***

“식사 맛있게 하셨습니까?”

“응. 자네도 맛있게 먹었어?”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 분석표는 둘이서 나눠서 만든 건가?”

“아닙니다. 한 코치가 일을 나누자 해서 제가 투수와 타자 기록들을 전부 수집하고 종합 분석표는 한 코치가 만들었습니다. 왜 그러십니까?”

“자네도 보면서 느끼지 않았나? 상당히 잘 만들었던데.”

“저도 보면서 감탄했습니다. 이 정도면 프로 팀 분석 코치로 가도 손색이 없을 것 같습니다.”

박승철 코치의 말에 정종현 감독은 복도 중간에 멈춰 서서, 잠깐 생각에 잠기는 듯하더니 다시 말을 이어갔다.

“자네도 그렇고 한 코치도 그렇고 U-15에 남아있기는 너무 아까운 인재야. 이번 대회에서 좋은 기록 거두면 협회에 정식으로 안건 올려보겠네.”

“그렇게만 해주시면 정말 감사합니다!”

“그런데 그 분석표대로 정말 브라질의 투수가 그런 버릇을 갖고 있나?”

“그렇습니다. 저도 깜짝 놀랐습니다.”

“그러면 2경기도 분석 덕분에 쉽게 가져갈 수 있겠네.”

“그렇습니다. 선수들이 분명 좋은 결과를 가져올 겁니다.”

정종현 감독과 박승철 코치는 승리를 확신하는 표정으로 함께 웃으며 엘리베이터에 탔다.

***

호주전이 지난 다음날 러닝과 스트레칭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그리고 한종혁 코치가 가져온 커브 피칭머신으로 모든 타자들이 타격 연습을 시작했다.

‘그런 버릇을 가지고 있었다니.’

약간 의심이 갔지만 첫 경기에서 한종혁 코치의 분석표는 전부 적중했다.

거기에다 아까 투수의 버릇까지 동영상으로 확인하고 나서, 다른 선수들도 별말 없이 훈련에만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오전부터 이어진 커브 타격 훈련은 해가 지고 나서야 끝이 났다.

“오늘 다들 훈련하느라 고생이 많았어. 저녁 맛있게 먹고 내일 아침 9시에 보자.”

“고생하셨습니다!”

선수들은 호텔로 돌아와 저녁을 먹고 각자의 방으로 들어갔다.

난 잠들기 직전까지 분석표를 보다가 쥔 채로 잠에 들었다.

다음 날 아침 9시에 선수 전원은 호텔 로비로 모였다.

그리고 미니버스를 타고 경기장으로 향했다.

“오늘은 엊그제랑 다르게 오전 시합이니깐 좀 추울 수 있어. 경기하다 더우면 옷 바꿔 입어.”

“알겠습니다.”

어제 흥분하던 한종혁 코치는 어디 갔는지 다시 친절하고 부드러운 사람으로 돌아왔다.

한종혁 코치의 말대로 멕시코의 날씨는 한국과는 많이 달랐다.

최저 기온이 11℃에 최고 기온은 30℃가 넘어가는 일교차가 큰 날씨였다.

타자들은 크게 상관없지만 투수들에게는 아주 최악의 날씨를 가지고 있었다.

불펜 피칭을 비롯해서 매 회마다 다른 온도에서 던진다는 건, 둔감한 선수들에게도 몸으로 느껴지는 상황이니깐.

그래서일까? 브라질전 선발로 나온 유상현은 1회부터 2실점을 하며 부진한 투구 내용을 보여줬다.

2아웃 만루의 위기에서 상대 8번 타자가 잘 때려낸 공은 다행히 1루수인 조영원에게 직선타로 아웃되며 길었던 1회 초가 끝이 났다.

상대 투수는 예상대로 브라질의 에이스 투수인 페르난이 올라왔다.

페르난은 우완 정통파로 포심과 커브를 던지는 투 피치 투수였다.

1번 타자로 나선 한기우는 페르난의 2구를 밀어쳐 좌익수 앞 안타로 살아나갔다.

2번 타자인 이승민은 희생번트를 대서 한기우를 2루로 보내며 아웃.

1아웃 2루의 찬스에서 3번 타자 박병규가 올라왔다.

“스트라이크!”

페르난은 박병규에게 초구로 137km/h의 직구를 던졌다.

그리고 이어서 2구는 커브가 날아왔고 박병규가 중견수 앞 안타를 때려내며 1아웃 1, 3루에 내가 타석에 들어섰다.

상대의 초구는 139km/h의 직구. 존에 걸치는 좋은 공이었기에 굳이 건드리지 않았다.

이후로 두 개의 공은 유인하는 바깥쪽 코스의 포심이었지만 잘 걸러냈다.

수크레는 네 번째 공을 준비했고 입이 아까보다 살짝 벌어졌었다.

‘이번엔 커브.’

한종혁 코치의 분석표에 따르면 포심을 던질 때 이를 악물고 던지는 습관 때문에 커브를 던질 때에는 입이 살짝 벌어진다고 쓰여 있었다.

앞서 나온 타자인 박병규도 그 버릇을 보고 커브를 타격해서 살아나갔다.

그리고 페르난은 포심에 비해 커브의 숙련도가 떨어져서 가운데로 몰리는 공이 자주 나왔다.

페르난이 네 번째 공을 던졌고 역시나 커브. 거기다가 가운데로 몰리는 공이었다.

“깡―!”

난 그 공을 그대로 걷어 올렸다.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