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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15 야구 월드컵 (3)
상대 투수의 몸쪽 높은 공을 그대로 당겨쳤다.
“깡!”
경쾌한 알루미늄 배트 소리가 경기장을 울렸다.
정확하게 배트 중앙에 맞춰내며 손에 미세한 진동조차 느껴지지 않는 완벽한 클린히트였다.
배트를 던지고 1루 베이스 방향으로 뛰며 타구를 지켜봤다.
공은 왼쪽 담장을 훌쩍 넘어가는 모습이었다.
“내 이름은 마이클이다. 다음에 본선에서 보면 네 기록을 확실하게 연구해서 안타 하나 못 치게 할 거야.”
“기대할게. 오늘처럼 시시하면 실망한다?”
베이스를 돌고 홈 플레이트를 밟자 상대 포수인 마이클이 입을 열었다.
난 어깨를 으쓱하며 답해주고 더그아웃으로 돌아갔다.
상대는 마이클의 솔로 홈런이 더해졌지만, 양 팀 다 추가점은 나오지 않으면서 경기는 4:3 한국의 승리로 끝이 났다.
“오늘 경기하느라 고생 많았다. 승패보다는 해외에서의 첫 경기이다 보니, 컨디션을 찾는데 집중하라고 했는데 다들 잘해준 것 같아서 고맙다. 오늘은 저녁 먹고 푹 쉬고 내일 아침에 보자고.”
“고생하셨습니다!”
정종현 감독은 경기 내용이 무척이나 만족스러웠는지 잇몸이 드러나게 웃으며 말했다.
“대회에서 홈런 몇 번 맞아봤을 때도 느꼈지만, 넌 역시 다르네. 쟤네들 중에서도 메이저리거가 나올 텐데. 리틀 때도 그랬지만 지금은 경외심까지 들려고 하네.”
“실투를 노려서 넘긴 거지. 운이 좋았어.”
“그래도 4:3으로 이겼는데 4점을 너 혼자 쳤어. 내가 선발로 나올 때도 꼭 그렇게 쳐줘.”
“그래. 내가 다 넘길 테니깐 마음 편하게 던져라.”
다 같이 호텔 식당으로 향하는 길.
오늘 1이닝 무실점을 던진 김성환과 경기에 대해 떠들며 걸어갔다.
오늘 저녁으로 준비된 호텔 식사 역시 어제처럼 진수성찬이었다.
“어제는 스테이크더니, 오늘은 랍스타네?”
“랍스타가 아니고 터. 그리고 천천히 좀 먹어. 너 체하겠다.”
“괜찮아. 난 소화 엄청 잘 시키거든. 아빠가 그랬는데 위가 튼튼한 게 최고의 복이라더라.”
“그래. 안 체하고 잘 먹으면 됐지.”
유상현과 박병규는 3년 만에 만나도 똑같이 티격태격하며 밥을 먹기 시작했다.
난 옆에서 그걸 보며 웃으며 함께 밥을 먹었다.
맛있게 먹고 있는데 문득 옆에서 시선이 느껴져서 돌아보니 미국의 포수 마이클이 노려보고 있었다.
“맛있게 먹어라.”
“어···? 너도.”
그런 마이클에게 웃으며 인사를 해줬다.
기 싸움은 그라운드에서면 충분했다.
경기장에서 벗어나면 전부 16살짜리 꼬맹이들이니, 쓸데없는 곳에 힘을 뺄 필요는 전혀 없었다.
멤버들과 함께 저녁을 먹고 방으로 향했다.
오늘은 별도의 스윙 훈련 대신에 코치님이 주신 호주전 상대 투수 레오의 기록과 타자들의 기록을 분석하다 잠에 들었다.
다음날부터는 다시 호주전에 대비한 훈련들이 이어졌다.
감독님은 변화구 구종을 던질 수 있는 피칭머신을 가져오셨고, 타자들은 변화구에 익숙해지기 위해 엄청난 훈련을 이어갔다.
“다들 훈련하느라 고생 많았다. 내일은 한국의 예선 첫 경기다. 우리의 노력이 결과로 나올 수 있도록 다 같이 열심히 해보자.”
“알겠습니다!”
순식간에 며칠이 지나가고 드디어 내일이 예선 첫 경기 날.
정종현 감독은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선수들을 다독여주며 이야기했다.
‘내일부터 정말 시작이구나.’
저녁을 먹고 방으로 돌아와 침대에 누웠다.
그리고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곧 잠에 들었다.
***
드디어 예선 첫 경기인 호주와의 경기 날이 되었다.
하지만 경기는 정종현 감독의 생각대로 전혀 흘러가지 않았다.
선발 투수로 나선 박재우의 공은 나쁘지 않았다.
초구로는 133km/h를 던졌고 컨트롤도 평소와 비교했을 때 훨씬 괜찮은 편이었다.
하지만 1회부터 볼넷과 안타로 주자를 내보내더니 3점 홈런을 맞아버리며 흔들리는 모습이었다.
거기에다 1회 말 한국의 공격은 삼자범퇴로 물러나며 점수를 내지 못했다.
“재원아! 불펜 가서 몸 풀고 있어.”
“알겠습니다.”
정종현 감독은 2회부터 계투인 신재원을 등판시킬 준비까지 하고 있었다.
3실점 후에 유격수인 최강남과 중견수 한기우의 좋은 수비로 1회를 막아냈지만, 2회에 또 다시 연속 안타를 허용하며 1아웃 1, 2루의 위기가 찾아왔다.
‘제발 이번 위기는 무실점으로 막아줘라.’
더그아웃에서 경기를 지켜보는 정종현 감독은 종교를 믿지는 않았지만 기도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초구부터 상당히 빠지는 볼을 던지는 박재우.
포수인 김용섭이 블로킹을 하지 않았다면 2, 3루의 위기가 될뻔한 상황이었다.
2일 간격으로 경기가 있기에 첫 경기부터 불펜을 풀가동한다면 다음 경기에서 부담감이 더 커질 것이니, 일단은 선발인 박재우를 믿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박재우는 두 번째 공을 던졌고 가운데로 몰리는 실투였다.
상대 타자는 그 실투를 놓치지 않고 타격했다.
2유간으로 충분히 빠질만한 타구. 하지만 유격수인 최강남이 다이빙 캐치로 땅볼을 잡아냈다.
최강남은 엎어진 상태에서 오른손으로 글러브 안에 있는 공을 꺼내 2루수에게 토스했다.
2루수인 안정현은 공을 잡아서 2루 베이스에 태그. 그리고 1루로 던졌다.
“아웃!”
교과서에 나올법한 완벽한 643 병살타. 한국이 1사 1, 2루의 위기를 벗어났다.
‘후··· 불안하긴 하지만 재우를 내리지 말고 조금만 더 지켜보자.’
큰 위기를 벗어난 정종현 감독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
“나이스 수비! 고맙다. 내가 더 잘 던져야 했는데.”
“어깨에 힘이 너무 들어갔어. 외국인이어도 다 똑같아. 한 달 전에 결승전이라고 생각하고 마음 편하게 던져. 퍼펙트까지 했으면서 왜 이렇게 쫄았어.”
“너무 긴장했나 봐. 미안해.”
“네가 우리 팀 1선발로 나왔잖아. 긴장하지 말고 해. 내가 점수 내줄테니깐.”
좋은 수비를 하고 더그아웃으로 돌아가는 길에 선발 투수인 박재우가 글러브를 낀 왼손을 내밀었다.
난 박재우가 내민 글러브를 글러브로 맞대면서 긴장 풀라는 의미로 어깨를 두드려줬다.
2회 말 한국의 공격은 4번 타자인 내 타선부터 시작했다.
상대 투수로는 우리가 예상한 대로 레오가 나왔다.
하지만 생각보다 커브와 슬라이더의 궤적이 좋았고 1회 한국의 공격은 삼자범퇴로 끝이 났다.
삼진은 없었지만 세 타자 모두 땅볼로 물러났다.
일단은 공을 지켜봐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타석에 들어섰다.
“스트라이크!”
초구로는 몸쪽에 꽉 차는 슬라이더가 들어왔다.
타석에 들어서니 더그아웃에서 보는 것보다 더 휘어서 들어온다는 것이 느껴졌다.
우완 투수였기에 우타석에 들어선 나에게는 꽤나 부담감이 느껴지는 슬라이더였다.
물론 프로들의 슬라이더에 비할 바는 못됐지만 마운드에 서 있는 상대는 겨우 16살이었다.
확실히 나이에 비해서 좋은 궤적의 변화구를 던지는 투수였다.
‘1회에 삼자범퇴를 당할 만 했네.’
변화구에 익숙하지 않은 한국의 선수들에게는 많이 낯선 공이었을 것이다.
2구는 바깥쪽으로 살짝 빠지는 커브가 날아왔지만 스윙을 참아냈다.
3구는 초구와 같은 몸쪽 슬라이더가 날아왔고 그대로 당겨쳤다.
‘넘어가라.’
배트를 던지고 1루로 전속력으로 달려가며 타구를 바라봤다.
하지만 타구는 원바운드로 담장을 두드렸고 난 여유롭게 2루에 서서 들어왔다.
상당히 잘 맞췄다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무브먼트가 좋아서 끝까지 당겨내는 힘이 살짝 모자랐다.
노아웃에 주자는 2루. 한국의 5번 타자인 1루수 조영원이 타석에 들어섰다.
상우 중학교에서 대표 팀으로 영입된 선수로 키는 176cm의 평균 신장이었지만, 타격에 강한 왼손잡이 타자였다.
초구로 바깥쪽의 커브를 지켜본 그는 두 번째 타구로 들어오는 몸쪽 직구를 당겨쳤다.
파울 라인에 걸쳐서 떨어지는 라인드라이브성 타구.
조영원은 여유롭게 2루에 안착했고 나는 홈으로 들어왔다.
경기는 이제 3:1. 6번 타자인 김용섭이 타석에 들어섰다.
상대 투수인 레오의 슬라이더를 쳐냈지만 아쉽게 2루 정면으로 향했다.
하지만 주자인 조영원은 3루까지 진루하며 희생타나 다름없는 아웃이었다.
7번으로 타석에 들어선 안정현이 중견수 플라이를 쳐냈고 조영원이 들어오며 1점을 추가했다.
이후로는 점수를 내지 못했지만 3:2면 충분히 따라잡을 만한 점수 차였다.
“점수 내줘서 고맙다. 긴장 좀 풀린 것 같아. 이번엔 잘 던져볼게.”
“긴장하지 마. 전국소년체육대회 결승전이랑 비슷한 상대니깐.”
“그래. 이번에는 잘 던져볼게.”
3회 초 한국의 수비. 투수는 바뀌지 않고 선발인 박재우가 다시 마운드에 올라왔다.
“스트라이크!”
초구는 135km/h. 1회보다 오히려 더 좋은 공을 던지고 있는 박재우였다.
“스트라이크 아웃!”
2구는 살짝 빠지는 볼이었지만 3구와 4구를 모두 몸쪽으로 집어넣으며 삼진까지 잡아냈다.
다음 타자의 타격은 좌익수 앞에 떨어지는 안타성 타구였지만, 평소보다 조금 뒤에 자리 잡은 내가 제자리에서 뛰어올라 글러브를 낀 왼손을 뻗었다.
상대의 5번 타자인 맥스는 기록상 좌익수 앞에 떨어지는 안타가 많았다.
그래서 평소보다 조금 뒤로 자리를 잡은 수비가 완벽하게 통했다.
“아웃!”
타구는 다행히 글러브 안으로 들어왔고 아웃을 하나 더 추가했다.
2아웃에 주자는 없는 상황. 박재우는 다음 타자를 중견수 플라이로 잡아내며 3회를 무실점으로 마무리했다.
“나이스 피칭!”
“그 타구는 어떻게 잡았대? 절대 못 잡을 코스였는데.”
“코치님이 주신 분석표 덕분이지. 4회에도 잘 부탁한다.”
“그래. 혹시 네 타석이 오면 홈런 한 번만 쳐주라.”
“3회 선두타자가 너잖아? 네가 홈런 치면 되겠다.”
“하··· 저 공을 내가 칠 수 있으려나.”
상우 중학교 시절에도 박재우는 타격에 재능을 보이는 투수는 아니었다.
그런 박재우의 우울한 표정에 난 웃으며 어깨를 툭 치고 더그아웃으로 돌아갔다.
한국의 3회 말 공격은 투수인 박재우의 타석부터 시작했다.
1구와 2구로 던진 커브와 슬라이더에 크게 헛스윙을 했다.
상대 투수인 레오는 3구로 가운데로 몰리는 슬라이더를 던졌고 박재우는 그걸 쳐냈다.
아주 평범한 유격수 땅볼 코스. 하지만 타구도 확인하지 않고 미친 듯이 1루로 달리는 모습이었다.
“세이프!”
상대 유격수는 잡아서 1루에 던졌지만 악송구였고 1루수는 공을 잡기 위해서 베이스에서 발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행운이 따라주며 노아웃 1루에 1번 타자인 한기우가 타석에 들어섰다.
한기우는 초구부터 기습 번트를 댔다.
3루 방향으로 완벽한 코스였고 3루수는 맨손으로 잡아서 1루에 던졌지만 세이프 판정이 나왔다.
역시 한국 중학 야구에서 가장 달리기가 빠른 한기우다운 스피드였다.
상대 투수는 연이은 실책성 플레이로 타자가 살아나간 것에 당황했는지 연달아 볼을 던지기 시작했다.
2번 타자인 이승민은 볼넷으로 1루로 걸어갔다.
“타임!”
노아웃 만루의 상황에 3번 타자인 박병규가 타석에 들어서자 호주 감독이 투수를 교체했다.
바뀐 투수는 아까부터 불펜에서 몸을 풀고 있던 선수였다.
새로 올라온 투수는 초구를 던졌고 구속은 무려 142km/h.
말 그대로 지옥에서도 데려온다는 좌완 파이어볼러였다.
“스트라이크 아웃!”
초구를 지켜본 박병규는 두 번째와 세 번째 공에 힘차게 배트를 휘둘렀지만 스치지도 못하고 삼진으로 물러났다.
“강남아 미안하다. 내가 희생 플라이라도 쳤어야 했는데. 네가 점수 좀 내주라. 부탁해.”
“나만 믿어. 내가 넘기고 올 테니깐.”
삼진으로 기가 죽은 박병규의 왼쪽 어깨에 손을 올리고 위로를 건넸다.
그리고 2:3으로 지고 있는 1아웃 만루의 상황에 내가 타석에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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