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역대급 홈런왕의 탄생-25화 (25/126)

# 25 - 3728754

#

U-15 야구 월드컵 (2)

“다들 각자 방에다가 짐 풀고 오늘 하루는 쉬어. 내일부터 시차 적응 겸 간단하게 훈련 시작할 거야.”

“알겠습니다.”

“1시간 후에 다 같이 호텔 1층 로비 식당에서 밥 먹을 거니깐 시간 맞춰서 내려오고.”

한국 대표 팀은 예선 첫 경기인 호주 경기 시작 일주일 전에 멕시코에 도착했다.

도착한 후 정종현 감독은 선수들에게 호텔 키를 나눠주며 이야기했다.

1인 1실의 호텔. 시설이 그렇게 좋지는 않았지만 이 정도면 아마추어치고 괜찮은 대우였다.

‘U-15··· 혹시 우승하지 못하더라도 좋은 기록을 내야 한다.’

가볍게 짐을 풀어놓고 침대에 앉아 가져온 배트와 글러브를 만지작거리며 생각했다.

예전에 우승했던 리틀야구 월드시리즈와는 느낌이 달랐다.

그 나이 때의 아이들은 피지컬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

하지만 만 15세 정도의 아이들은 인종별 격차가 가장 컸다.

특히 아메리카 쪽 아이들은 고교 야구를 거치지 않고, 바로 마이너리그로 스카우트되는 아이들도 있을 정도였다.

그 정도까지 바라지는 않았지만 당장의 목표는 4강이었다.

4강에 들고 내가 좋은 기록을 보여준다면 해외 스카우터들의 눈에 들기도 쉬울 것이다.

이번 대회에서 뭔가 해내야 한다는 부담감과 조급함이 목을 조여 오는 것만 같았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 가져온 배트를 잡았다.

닥치지도 않은 일을 고민해봤자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다.

일단은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된다.

배트를 수십 차례 휘두르니 온 몸이 땀에 흠뻑 젖고 머리가 조금 맑아졌다.

식사 집합 시간까지는 어느덧 30분이 남았다.

간단하게 샤워를 하고 로비로 향했다.

***

“감독님. 그러면 첫 경기 투수로는 누구를 내보내면 될까요?”

“예선 3경기 중에서 가장 까다로운 상대는 대만이니깐 첫 경기는 박재우로 내보내지.”

“브라질전이 상현이, 대만전을 성환이 내보내면 될까요?”

“일단은 1, 2경기에서 큰 위기가 안 오면 그렇게 하자고. 혹시 다른 투수들이 무너지면 성환이가 나올 상황이 올지도 모르니깐.”

“그럼 일단 그렇게 알고 있겠습니다.”

선수들을 각자의 숙소에서 쉴 수 있도록 배려해준 정종현 감독.

하지만 본인의 방에 한종혁 코치와 박승철 코치를 불러서 코앞에 닥친 예선전 대비를 시작했다.

당장 시합까지는 일주일밖에 남지 않았다.

거기다가 상대 몇 선수들은 영상은 찾을 수도 없어서, 각자의 리그 기록만 보고 대비해야 되는 상황이었다.

“감독님. 그러면 훈련은 어떻게 진행하면 될까요? 내일부터 펑고랑 타격 같은 실전 훈련으로 들어가면 될까요?”

“내일까지는 어린 애들이라 시차 적응도 힘들 거야. 오전에 가볍게 훈련하고 상대 분석부터 들어가자.”

“그럼 오늘은 푹 자기는 글렀네요. 제가 호주 투수들 기록 전부 분석해서 내일 드리겠습니다.”

“그러면 타자 쪽 기록은 제가 분석하겠습니다.”

“그래. 한 코치랑 박 코치가 고생 좀 해줘.”

정종현 감독이 생각하기에 예선전에서 가장 중요한 경기는 호주전이었다.

사실 예선 세 팀이야 비슷한 실력이었고 결과로만 따지면 3경기인 대만이 가장 위험한 상대였다.

하지만 해외 원정 경기는 선수들의 실력이 올라올 수 있도록 컨디션 관리가 가장 중요했다.

그리고 그 결과물이 첫 경기에서 나오기 마련이었다.

그래서 첫 경기인 호주전을 제물로 삼아 선수들의 컨디션과 사기를 최대치로 끌어올릴 생각을 하고 있었다.

“감독님. 식사 집합 시간 됐습니다.”

“벌써 1시간이 지났나? 그러면 일단 식당으로 가자고.”

정종현 감독과 코치 둘은 호텔 로비로 발걸음을 옮겼다.

***

“다들 밥 먹고 각자 방으로 들어가서 쉬어. 내일 아침 9시까지 전부 로비로 모이면 된다.”

“알겠습니다!”

감독님의 말에 선수들은 전부 호텔에서 제공하는 뷔페로 이동했다.

“우와. 이거 엄청 맛있겠는데? 저기 스테이크도 있어.”

“넌 여전하구나? 아직도 먹을 거 엄청 좋아하네.”

“그럼! 맞다. 우리 아빠가 요즘도 종종 너 얘기 하신다?”

“치킨 집은 아직도 하시려나?”

“응! 엄청 잘 돼서 가게도 큰 곳으로 옮겼어.”

박병규는 호텔 뷔페 음식에 신이 났는지 접시 한가득 음식들을 담으며 이야기했다.

“그래? 나중에 한번 놀러가야겠다.”

“언제든지 와. 너 오면 엄청 좋아할걸. 부모님이 선수 생활하는 거 반대하셨는데, 너 보고 마음이 바뀌셨거든.”

“나 덕분에? 왜?”

“예전에 네가 놀러왔을 때 손에 굳은살 많고 그랬잖아. 어린 나이인데 그렇게 꿈을 위해 노력할 줄 아는 남자가 되어야 된다고 하시면서, 엄마 반대에 무릅쓰고 아빠가 야구부 허락하신 거거든.”

“그래? 일단 먹고 얘기하자.”

박병규는 접시가 넘치도록 한가득 담은 음식을 입에 정신없이 넣으면서 이야기를 계속 이어갔다.

노력이라··· 그냥 난 궁금했었다.

내가 어린 나이부터 유격수로 뛰었다면 얼마나 성장 가능성이 있었을지.

그리고 이제 그 가능성을 시험해볼 때가 왔다.

선수들과 이야기하며 밥을 먹고 다시 방으로 돌아왔다.

소화도 할 겸 아까 다 못한 스윙 훈련을 하다가 침대에 쓰러져 지쳐 잠에 들었다.

다음 날은 오전에 가벼운 러닝과 스트레칭을 하며 보냈다.

그리고 오후부터는 호주 선수들의 기록들을 분석했다.

생각보다 상당히 세밀한 분석표와 코치님들의 다크서클을 보니 어젯밤의 노력들이 보이는 듯했다.

첫 경기인 호주는 투수에 기대기보다는 수비가 단단한 타격 위주의 팀이었다.

4팀이 1조가 되어 2팀만이 올라가는 본선에 자주 진출하는 팀이기도 했다.

호주의 에이스는 레오라는 투수였다.

최고 구속은 135km/h에 평균 구속 129km/h의 우완 정통파 스타일이었다.

이 정도면 한국 투수들보다 훨씬 느린 속도였지만, 그를 에이스 투수로 만들어준 것은 다양한 구종이었다.

이 역시 한국이 U-15에서 늘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한 이유기도 했다.

한국은 중학생 선수들이 성장에 방해가 될까 봐 변화구를 던지는 것에 반감이 크다.

하지만 레오는 직구를 비롯해서 커브와 슬라이더 무려 쓰리피치의 투수였다.

삼진 비율은 낮았지만 땅볼이 많은 것을 보아 무브먼트 또한 괜찮은 편일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 레오랑 비슷한 선수가 많은 미국이랑 내일 모레 연습경기를 가지기로 했어. 내일부터는 본격적인 훈련 시작하면서 최대한 감 끌어내자. 연습경기는 6회까지야. 승리에 집착하지는 말고 컨디션 끌어올리는 것에 가장 집중하자.”

“알겠습니다!”

오늘은 추가 훈련 없이 교육만으로 끝이 났다.

나는 호텔 방 안에서 배트를 휘두르며 최대한 감을 끌어올리다가 잠에 들었다.

다음 날부터는 런닝으로 하루가 시작됐다.

밥을 먹고 오전 훈련으로는 펑고와 타격 훈련이 이어졌다.

오후에는 투수들은 피칭 연습을 하고 타자들은 피칭 머신을 타격하며 최대한 컨디션을 끌어올렸다.

그렇게 또 빠르게 하루가 지나가고 미국과의 연습경기 날이 되었다.

“선발은 호주전에 나올 재우가 먼저 던지자. 2이닝 던지고 다른 투수들도 전부 1이닝씩 던질 테니깐 스트레칭 대충 하지 말고.”

“알겠습니다.”

미국과의 연습경기는 한국의 선공으로 시작됐다.

상대 선발로 나온 투수는 커브와 포심을 던지는 투 피치 선수였다.

1번 타자로 나선 한기우는 5구까지 끈질긴 승부를 이어갔다.

상대 투수는 6구로 커브를 던졌고 삼진으로 물러났다.

16살치고는 생각보다 낙차 큰 커브를 던지는 모습이었다.

2번 이승민은 초구를 바로 쳐내며 안타를 만들었다.

3번인 박병규의 희생번트로 2아웃 2루의 상황에 내가 올라왔다.

“오 네가 그 4번 타자구만. 너 이번 대회 긴장해야겠더라.”

“내가 왜?”

“작년에 이어서 올해도 나온 선수는 3명뿐이거든. 너랑 도미니카랑 쿠바에 한 명씩 있어. 거기다가 작년에 홈런도 3개나 쳤던데? 그때는 아무도 널 신경 안 썼으니깐 그럴 수 있지. 근데 아마 이번 대회 때는 하나도 못 칠걸?”

“커브나 던져봐. 바로 넘겨줄 테니깐.”

“글쎄··· 노린다고 칠 수 있는 공이 아닐 텐데.”

타석에 들어서자 상대 포수가 영어로 시비를 걸어왔다.

같은 조별 예선 팀도 아닌데 나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내 기록은 물론이고 영어를 자유롭게 쓸 수 있다는 것까지.

“스트라이크!”

“너무 빨라서 못 친 건가?”

상대의 초구는 바깥쪽으로 꽉 차는 낮은 스트라이크. 굳이 건드리지 않고 지켜봤다.

상대 포수는 그런 나를 보고 비아냥댔지만 내가 별 반응이 없자 입을 닫는 모습이었다.

2구와 3구는 살짝 높은 볼과 낮은 볼로 내 스윙을 유도했지만 걸러냈다.

네 번째 공은 가운데로 몰리는 커브가 들어왔고 힘껏 당겨쳤다.

정면으로 맞은 공은 좌중간 담장을 훌쩍 넘어갔다.

“신경 안 썼나보다? 첫 타석부터 홈런이네. 본선에서 나 안 만나게 기도 잘 하고.”

배트를 1루 쪽으로 집어 던지며 한마디 던져주고 베이스를 돌았다.

상대 포수는 입을 꾹 다물었지만 마스크 너머로 미간이 찌푸려진 게 보였다.

연습경기는 1회에 한국이 2점을 내며 시작됐다.

한국의 선발로는 올해 퍼펙트게임으로 대표 팀에 합류한 박재우가 마운드에 올라왔다.

초구는 136km/h. 생각보다 컨디션이 좋아 보이는 모습이었다.

박재우는 실투성 공을 던져서 솔로 홈런을 하나 맞았지만, 추가 실점을 하지 않고 2이닝을 잘 막아냈다.

3회 2아웃 1루에 내 타석이 다시 찾아왔다.

“이번에는 별말 안 하네? 그새 자신감이 줄었나 봐?”

“실투 하나 넘겨놓고 허세는 엄청 부리네.”

“잘 봐. 이런 건 허세가 아니고 자신감이라고 하는 거니깐.”

미국의 바뀐 투수는 좌완이었다. 초구는 바깥쪽에 꽉 차는 볼.

그 공을 바로 밀어쳐 담장을 직격하는 2루타를 때려내며 1타점을 추가했다.

2루에 슬라이딩 없이 편안하게 안착한 나는 미국의 포수를 양손 검지로 가리키며 세리머니까지 보여줬다.

미국은 무조건 본선에서 만날 수밖에 없는 팀이다.

그런 팀의 포수와 기 싸움에서 이기고 들어간다면 다음에 만날 때 훨씬 수월하게 치를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확실하게 상대 포수의 멘탈을 밟아줬다.

한국의 다음 투수로 나온 유상현은 1이닝을 1실점으로 막아냈다.

다음 투수인 김성환은 1이닝 무실점, 2삼진으로 완벽한 피칭을 보여줬다.

3:2로 비등비등한 경기가 계속 이어졌다.

3타점은 전부 내가 때려냈으니 이 정도면 컨디션은 한국 때와 비슷하게 올라온 것 같았다.

그리고 1아웃에 주자가 없는 상황에 3번째 내 타석이 돌아왔다.

상대 투수는 저번 이닝부터 4타자를 연속으로 삼진을 세우는 호투를 보여줬다.

“쟤가 우리 에이스야. 처음이랑 두 번째 타석에서는 운 좋게 얻어걸렸어도, 이번에는 절대 못 칠걸?”

“그 말 몇 번째냐? 앵무새냐?”

내 비아냥거림에 입을 꾹 다문 포수를 뒤로하고 타격 자세를 가다듬었다.

“스트라이크!”

상대 투수의 초구는 140km/h. 강속구에다가 제구도 어느 정도 되는지, 바깥쪽 꽉 차는 코스로 들어왔다.

“거봐. 손도 못 대겠지?”

“이게 미국 에이스면 너네 올해 우승은 글렀다.”

“···뭐?”

두 번째 공이 몸쪽 높은 곳으로 날아왔고 난 방망이를 그대로 휘둘렀다.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