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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15 야구 월드컵 (1)
내 홈런 이후로 추가점은 나오지 않고 6회 초가 마무리됐다.
하지만 경기는 이제 2:0. 상우 중학교가 오랜 침묵을 깨고 리드하기 시작했다.
5이닝을 퍼펙트로 막아낸 박재우는 6회 말에도 마운드에 올라왔다.
“스트라이크 아웃!”
박재우는 두 번째 타석을 맞는 상대의 7번 타자를 삼진으로 잡으며 순조로운 출발을 시작했다.
이어서 타석에 들어선 8번 타자는 초구를 때려냈고 힘없는 땅볼이 나에게 굴러왔다.
“아웃!”
난 여유롭게 공을 잡아내서 1루에 던지며 아웃 카운트를 올렸다.
중학 야구는 7회까지 이기에 이제 퍼펙트까지는 겨우 4아웃이 남아있었다.
“스트라이크 아웃!”
박재우는 9번 타자에게 3구로 몸쪽 직구를 던지며 삼진을 하나 더 추가했다.
6이닝 퍼펙트에 삼진은 무려 8개를 잡아내며 박재우는 당당하게 마운드를 내려왔다.
6회 말 상우 중학교의 공격은 하위 타선이었고 상대의 투수는 김성환에서 서민규로 바뀌었다.
서민규는 안타를 하나 맞았지만 무실점으로 6회를 잘 막아내는 모습이었다.
이제 우리가 탈 없이 막아낸다면 마지막 수비인 7회 초가 되었다.
박재우는 퍼펙트게임이라는 대기록을 세우기 위해 7회에도 마운드를 지켰다.
상대인 송독 중학교는 1번부터 시작하는 상위타선.
초구는 바깥으로 살짝 빠지는 볼을 던졌다.
구속은 130km/h. 구속과 제구력 모두 1회에 비해 상당히 떨어졌다.
하지만 퍼펙트게임은 투수 혼자만의 기록은 아니었다.
에러 하나 없이 모든 수비를 완벽하게 해낸 야수들의 몫도 있었으니.
1번 타자의 잘 맞춘 타구를 우익수인 이승민은 다이빙 캐치까지 하며 잡아냈다.
2번 타자는 평범한 중견수 뜬공으로 타석에서 물러났다.
이제 퍼펙트게임까지 남은 아웃 카운트는 단 하나.
지친 기색이 역력한 박재우는 와인드업을 시작했고 상대 3번 타자로 나선 투수 서민규에게 초구를 던졌다.
우타석에 들어선 서민규는 가운데로 몰린 실투성 공을 완벽하게 당겨쳤다.
3유간으로 빠질만한 코스. 3루수인 유경필은 다이빙을 하며 있는 힘껏 손을 뻗었지만 공은 뒤로 빠지고 말았다.
하지만 그 뒤에는 타격과 동시에 타구의 방향을 예측해서 달리고 있던 내가 있었다.
달려가던 나는 글러브를 낀 왼손을 뻗었고 글러브 안으로 공이 쏙 들어왔다.
역동작으로 공을 잡아내고 점프를 하며 1루로 공을 힘껏 던졌다.
말 그대로 환상적인 역동작 점프 스로우.
결승전에서 퍼펙트게임을 당하기 싫었는지 상대의 3번 타자인 서민규는 전속력으로 1루로 달렸다.
베이스를 밞음과 거의 동시에 1루수 조영원의 글러브로 내가 던진 공이 들어왔다.
잠깐의 정적이 흘렀고 경기장의 모든 사람들은 일제히 1루심을 바라봤다.
“아웃!”
1초 정도의 고민을 하던 1루심은 아웃을 선언하며 주먹을 앞으로 거칠게 내질렀다.
그렇게 경기는 2:0으로 끝이 났다.
“고맙다. 너 아니었으면 퍼펙트 깨질 뻔했네. 6회까진 버틸만했는데 7회는 진짜 힘들더라고.”
“고생했다. 네가 잘 던진 게 컸지. 다른 선수들도 수비 잘해줬고.”
“홈런으로 점수 내준 것도 컸지. 그거 아니었으면 연장 갔을 텐데, 8회까지는 절대 못 던질 것 같다. 고마워. 살면서 퍼펙트게임은 처음 해보네.”
“고마우면 MVP 인터뷰 때 내 이야기 꼭 하고.”
“그래. 무조건 할게.”
오늘 경기 퍼펙트게임으로 7회까지 마운드를 지켜낸 박재우는 나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건넸다.
거기에 난 농담을 던지며 축하해준다는 말을 덧붙였다.
올해 처음으로 나온 퍼펙트게임에 힘입어 대회 MVP는 박재우가 받아냈다.
농담이었는데 박재우는 수상소감에 내 이름을 언급해서 조금 당황하긴 했지만 말이다.
그렇게 상우 중학교는 2021년의 첫 대회인 전국소년체육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
“박재우가 올해 첫 퍼펙트게임을 결국 해내네요.”
“저 정도면 선발 나머지 한자리는 박재우한테 주는 게 맞겠네.”
“그래도 완벽한 투구를 보여준 건 한 경기가 고작인데 대표 팀으로 영입해도 될까요?”
“쟤네 16살이야.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하루 만에 급변해도 충분히 이해가 될 나이라고.”
“그것보다도 유상현을 데려오는 게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방어율이나 구속은 나쁘지 않지만 중학 야구 3년 동안 최고기록이 겨우 4강이었습니다.”
U-15 야구 월드컵 한국 대표 팀 감독을 맡고 있는 정종현은 오늘 박승철 코치를 데리고 경기를 관람 왔다.
이번 대회인 전국소년체육대회가 U-15 전에 선수들의 경기를 직접 볼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으니.
“그 최고기록인 4강에서 6이닝 무실점으로 막아냈잖아. 불펜이 불을 질러서 떨어진 거지.”
“그건 그렇지만··· 아무래도 해외에서 하는 경기인데, 큰 대회 경험이 있는 선수들을 데리고 가는 것이 맞지 않겠습니까?”
대회 중에는 선수들의 잠재력을 높게 평가하고 장점을 잘 찾아내는 한종혁 코치의 멘탈 케어가 돋보였다.
하지만 경기를 직관할 때는 냉정하게 단점만을 짚어내는 박승철 코치를 데리고 다니는 정종현 감독이었다.
대표 팀에는 장점이 많은 선수보다 단점이 적은 선수들이 더 필요했으니깐.
“큰 대회? 예를 들어서?”
“아무리 그래도 결승전은 밟아본 선수를 선발 투수로 세워야 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거기다가 유상현은 대통령배는 최고 기록이 8강입니다.”
문정 리틀야구에서 에이스 투수를 맡은 유상현은 중학교 리그에서는 전혀 힘을 쓰지 못하고 있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잘 던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팀원들이 제 몫을 전혀 해내지 못해서 늘 본선에서 탈락하기 일쑤였다.
말 그대로 약팀의 소년가장 투수.
잠실에서 살던 유상현은 부모님의 직장 때문에 강원도 원주로 이사 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근처의 학교인 상지 중학교로 진학했다.
어느 중학교에 데려다놔도 1선발급 투수인 유상현을 필두로 최초로 본선 진출까지 해낸 상지 중학교.
하지만 투수 한명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그리고 그런 유상현을 대표 팀에 뽑으려는 정종현 감독이 이해가 되지 않는 박승철 코치였다.
“나도 자네도 올해가 대표 팀 마지막 계약이지?”
“그렇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꼭 좋은 결과를 내고 싶습니다. 유상현이 큰 대회에서 실수라도 한다면 한국은 바로 탈락일 겁니다.”
“혹시 리틀야구 월드시리즈에서 한국이 우승했던 거 기억해?”
“당연히 기억합니다. 그때··· 아!”
“올해 걔네들이 전부 16살이 돼. 시간 참 빠르지? 큰 대회 경험이 없는 건 이 정도로 됐고, 사실 다른 이유는 없잖아? 구속, 제구력, 멘탈 다 괜찮지. 특히 멘탈 쪽은 이번 투수들 중에서 최고지. 한 경기에 에러가 2개씩은 나는 팀에서 꿋꿋이 던졌으니.”
“감독님 말씀 이해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아니야. 내가 너 코치로 뽑은 이유가 바로 그 부정적인 성격 때문이지. 같은 팀일 땐 아주 쥐어박고 싶었는데.”
대학 야구 시절이 생각나는지 정종현 감독은 박승철 코치의 머리에 꿀밤을 때리는 시늉을 했다.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이렇게 U-15 야구 월드컵 대표 팀 멤버 구성이 끝났다.
***
“첫 대회부터 좋은 결과를 내느라 다들 고생 많았다.”
“고생하셨습니다!”
“오늘 샤워하고 고기나 먹고 놀아라. 이번 주 주말까지는 훈련 없다. 다들 쉬도록!”
“감사합니다!”
“새끼들 좋아 하기는. 웃는 놈들 다 얼굴 외웠어. 다음 주에 빡세게 달려보자고. 그리고 중3들은 전부 남아봐.”
대회가 끝이 나고 미니버스가 운동장에 도착하자 유동기 감독은 입을 열었다.
“너네들 중에 이번에 U-15 야구 월드컵에 뽑히는 선수들이 많을 거야. 괜히 상우 중학교 성적 걱정한다고 거절하거나 그딴 짓 하지 말고. 너네 없어도 잘 굴러가니깐.”
“알겠습니다.”
U-15 야구 월드컵. 작년에는 8강에서 쿠바를 만나 아쉽게 떨어졌지만, 마지막 기회가 남아있었다.
이제 나도 16살이 되었기에 고등학교 진학을 걱정해야 되는 상황이다.
한국으로 진학은 전혀 생각이 없는 나였기에 U-15는 내게 더욱 중요했다.
며칠이 지나고 U-15 야구 월드컵 명단이 각 학교에 발표됐다.
최근에 대회에서 우승을 휩쓸고 있는 상우 중학교에서 가장 많은 선수들을 배출해냈다.
나와 선발 투수인 박재우를 비롯해서 필승 계투를 맡고 있는 신재원과 홍민우.
거기다가 야수로는 1루수 조영원과 우익수 이승민까지 총 6명이나 뽑히게 되었다.
다른 선수들 명단을 보니 익숙한 이름들이 많이 보였다.
김성환과 유상현, 남양주 중학교 에이스 투수인 유지환, 중학 야구에서 가장 달리기가 빠른 중견수 한기우까지.
다들 한 번씩은 대회에서 만난 구면이었다.
올해 U-15 야구 월드컵은 멕시코에서 개최를 맡기로 했다.
대표 팀 명단이 발표되고 며칠 되지 않아서 선수 전원을 소집했다.
“다들 반갑다. 난 이번 U-15 야구 월드컵 대표 팀 감독을 맡은 정종현이라고 한다. 한국은 96년도 이후로 우승한 적이 없다. 그렇지만 올해는 우승을 목표로 달려보자고.”
“알겠습니다!”
감독을 맡은 정종현이 가볍게 대회의 룰을 설명해줬다.
작년과 비교했을 때 달라진 건 없었다. 예선전 대진표는 어제 나왔기에 다들 알고 있는 모습이었다.
이번 한국 예선전 대진표는 호주와 브라질, 대만이었다.
작년 예선에 비해 크게 부담이 없는 상대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오랜만이다. 다들 잘 지냈어? 특히 강남이는 대회에서 한 번도 못 본 것 같네.”
“우리야 잘 지냈지. 넌 강원도로 이사 갔다며.”
“아빠 직장 때문에 어쩔 수 없었지. 그래도 오랜만에 모이니깐 되게 3년 전 생각난다.”
3년 만에 만난 유상현과도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3년 전에 리틀야구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했을 때 아무도 우리의 우승을 예상하지 못했다.
지금도 달라진 건 없다. 한국 아마추어 야구는 특히 U-15에서는 죽을 쑤고 있었으니.
하지만 야구는 아무도 모른다.
시간이 흐르는 게 아닌 마지막 이닝이 끝나고 나서야 결과가 결정되는 매력적인 스포츠니깐.
“한 코치. 애들 다 왔어?”
“그렇습니다. 이제 출발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며칠 후에 대표 팀 멤버들은 짐을 챙겨서 인천 공항으로 도착했다.
공항에는 우리를 취재하기 위해 기다리는 기자 몇 명이 보였다.
“이번에 U-15에 한국 대표 팀의 목표가 어떻게 됩니까?”
“저희의 목표는 당연히 우승입니다. 다른 결과는 생각도 안하고 있습니다.”
“한국이 우승을 못한지 어느덧 25년이나 되었습니다. 현실적으로 가능하다고 생각하시나요?”
“당연합니다. 야구는 끝날 때까지 모르는 거니깐요.”
기자의 공격적인 질문에도 편안한 표정으로 하나하나 답변을 해주는 정종현 감독이었다.
“이번엔 선수들에게 묻겠습니다. 3년 전에 리틀야구 월드시리즈에서 우승을 했던 최강남 선수가 작년에 이어서 이번에도 대표 팀에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각오 한마디만 말씀해주시죠.”
“좋은 경기 펼쳐서 좋은 결과 가지고 한국으로 돌아오겠습니다.”
굳이 공격적인 모습까지 보여줄 필요는 없었으니, 겸손하게 인터뷰를 마쳤다.
그리고 멕시코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날 한국의 인터넷에는 이런 기사가 실렸다.
[U-15 야구 월드컵 한국 대표 팀의 목표는 우승. 과연 언더독의 반란을 일으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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