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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 야구 (6)
채지원은 다음 타자로 나온 5번 타자 윤성진을 중견수 뜬공으로 잡아내며 1회를 마무리했다.
2회 초 상우 중학교의 수비.
다시 고영석이 마운드에 올라왔다.
“스트라이크!”
4번 타자인 이강현에게 137km/h의 직구를 던지며 최고의 컨디션을 과시했다.
고영석의 공식 최고 기록은 138km/h.
고작 1km/h밖에 차이나지 않는 공을 던지는 모습이었다.
그러한 기세를 바탕으로 이강현과 다음 타자까지 삼진으로 잡아냈다.
6번 타자는 고영석의 구위가 두려웠는지, 초구부터 높은 공을 쳐냈지만 좌익수가 잡아내며 두 번째 삼자범퇴로 마무리했다.
2회 말에는 상우 중학교도 주자가 나가지 못하며 공격이 종료됐다.
그렇게 한동안 투수전이 이어졌다.
경기는 4회로 접어들었고 양 팀의 선발투수는 여전히 마운드를 지키고 있었다.
다시 찾아온 내 두 번째 타석은 4회 말에 주자가 없는 1아웃의 상황이었다.
“스트라이크!”
초구는 몸쪽 꽉 찬 높은 볼. 137km/h로 오늘 최고 구속이었다.
1회에 2점 홈런을 맞은 코스에 다시 공을 던지며 자신감을 보여주는 모습이었다.
“타임.”
그 모습을 보고 심판에게 타임을 요청했다.
나에게 2점 홈런을 맞은 후에 단 한 명의 타자에게도 진루를 허용하지 않았던 채지원.
그런 상대의 좋은 흐름을 의식적으로라도 끊어줄 필요가 있었다.
배팅 장갑을 가다듬고 다시 타석에 들어섰다.
“스트라이크!”
채지원은 와인드업 후에 공을 던졌고, 두 번째 공은 바깥쪽에 꽉 차는 낮은 코스로 들어왔다.
이어서 세 번째 공도 같은 코스로 들어왔고 난 깔끔하게 밀어쳤다.
타구는 우중간 사이로 향했고 우익수와 중견수가 잡지 못하는 코스로 떨어졌다.
슬라이딩 없이 여유롭게 2루에 안착했다.
다음 타자는 5번인 윤성진. 득점권에서 채지원의 버릇을 알고 있는 선수였다.
최대한 상대 투수의 심기를 건드리기 위해서 과하게 리드폭을 벌렸다.
“세이프!”
채지원은 과한 리드를 하는 내가 거슬렸는지 계속해서 2루를 흘깃거렸고 견제구를 던졌다.
몸을 낮춰 좌우로 흔들며 채지원의 눈을 바라보던 나는 2루 베이스에 슬라이딩해 세이프 판정이 나왔다.
내 플레이가 자꾸 신경이 쓰이는지 윤성진에게 두 번의 투구가 모두 볼이 나왔다.
그리고 이어지는 세 번째 투구에서 살짝 웅크린 와인드업을 하자 난 3루로 달리기 시작했고, 윤성진은 몸쪽 높은 공을 가볍게 당겨쳤다.
공은 좌익수 앞에 떨어졌고 난 3루 베이스를 돌아서 홈으로 질주했다.
“세이프!”
좌익수가 바로 홈으로 송구했지만 헤드퍼스트 슬라이딩으로 득점에 성공했다.
홈 승부가 펼쳐지는 그사이에 윤성진은 2루까지 진루한 모습이었다.
이렇게 3:0. 이 1점은 장지 중학교 입장에서는 상당히 큰 실점이었다.
채지원은 실점 이후로 흔들렸는지 6번 타자인 정경원에게 또다시 안타를 허용하며 추가 실점을 했다.
7번 타자인 윤제광은 볼넷으로 살아나가며 1아웃에 1, 2루의 찬스가 다시 찾아왔다.
계속해서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주는 상대의 에이스 투수인 채지원은 결국 4회를 버티지 못하고 마운드를 내려왔다.
그 후로 장지 중학교는 투수가 여러 차례 바뀌었다.
하지만 바뀐 투수들은 상우 중학교의 타선을 견뎌내지 못하고 하나하나 무너져 내렸다.
고영석은 5회까지 무실점으로 1선발 투수의 역할을 충분히 해줬고, 다음 투수로 나온 신재원이 이강현에게 투런 홈런을 맞기는 했지만 2이닝을 잘 막아줬다.
최종 스코어는 8:2. 상우 중학교의 대통령배 전국대회 2연속 우승이었다.
대회 MVP는 중요한 상황마다 홈런을 치며 4번 타자의 역할을 제대로 해낸 내가 받게 되었다.
“다들 고생 많았다! 오늘은 상금으로 소고기 배 터지게 한번 먹어보자고. 기숙사 가서 다들 샤워하고 사복으로 갈아입고 6시까지 나와.”
“알겠습니다!”
작년에 최초로 대통령배를 우승한 상우 중학교. 그리고 올해는 연속 우승을 이뤄냈다.
유동기 감독은 이런 선수들을 자랑스러워하며 학교로 돌아가는 미니버스 안에서 회식을 약속했다.
미니버스가 학교 운동장에 도착하자마자 선수들은 신이 나서 기숙사로 달려갔고, 넓은 운동장에는 나와 유동기 감독만이 남아있었다.
“감독님.”
“넌 왜 애들 따라서 안가? 우리 강남이 체력 남아돌면 빡세게 스트레칭이나 할까?”
“이거···.”
“뭐야? 회식하는데 상금 모자라면 내 월급 보탤게. 중학교 감독 월급은 박봉이다 이거냐?”
난 대통령배 전국대회 MVP로 받은 상금 50만원이 담긴 봉투를 감독님께 건넸다.
사실 철없는 몇몇 선수들을 제외하고는 유동기 감독이 상금을 늘 장비에 쓴다는 사실을 모르는 선수는 없었다.
상금과 지원비는 늘 선수들의 장비를 구입하는 데만 사용하고 선수들 밥을 사줄 때는 자기 개인 카드를 썼으니깐.
이럴 때 보면 참 덜렁이였다.
하지만 회식에나 보태라고 내 MVP 상금을 드린 건 아니었다.
“이 상금 기부하는 곳에 같이 써주세요.”
“기부······. 어떻게 알았냐?”
“그냥 저번에 우연히 전화 듣고 알게 됐어요.”
“···그래. 네 이름으로 전해드리고 올게.”
KBO 5년 차 시절에 구단 선수들 전원이 보육원으로 봉사를 갔다 온 적이 있었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부끄럽지만 그때까지도 기부나 봉사에 대한 내 생각은 이랬다.
세금 감면을 위한 보여주기식 행동. 실제로 내 주변에 몇몇 선수들이 그러했다.
하지만 보육원 구석에 걸린 액자의 사진을 보고 생각이 달라졌다.
거기엔 유동기 감독이 걸려있었다.
“이 분은 누구에요?”
“아 그분은 저희 보육원에 많은 도움을 주시는 분이세요. 오신지 벌써 20년이 넘으셨네요.”
난 모르는 사람인 척 원장님에게 물어봤고 뜻밖의 이야기들을 들었다.
유동기 감독은 부상으로 2군에서 고생하던 선수 시절부터 그때까지 기부와 봉사활동을 해오고 있었다.
특히 선수 시절에는 매주 월요일마다 찾아와 아이들과 놀아주고 각종 잡일까지 도맡아 했다는 이야기였다.
그걸 듣고 나니 기부나 봉사에 대한 편협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사실이 정말 부끄러웠다.
그 후로 나도 적게나마 늘 기부 하는 삶을 살아왔고 시간이 날 때마다 봉사도 종종 참여했었다.
돌아온 삶에서 첫 MVP 상금은 꼭 기부하고 싶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저도 옷 갈아입고 내려오겠습니다.”
“그래. 얼른 다녀와라.”
유동기 감독에게 내 MVP 봉투를 손에 쥐여 드리고 기숙사로 향했다.
***
대통령배 전국대회 연속 우승 이후로 상우 중학교의 평가는 많이 달라졌다.
떠오르는 다크호스가 아닌 강호의 중학교로 평가받기 시작했다.
그러한 이유로 우리와 경기 전 상대 팀들은 더 세밀한 분석과 에이스 투수들을 내세우는 모습을 보여줬다.
하지만 그러한 견제에도 문체부 장관배 전국대회와 전국중학 야구선수권대회에서 우승과 준우승을 차지하며 좋은 결과를 냈다.
“넌 이번에도 참여할 거냐?”
“당연하죠. 작년에도 진짜 도움 많이 됐어요.”
“그래. 그러면 저번처럼 짐 챙겨서 기숙사로 와라.”
“알겠습니다.”
5개의 대회가 모두 끝이 나고 겨울방학 시즌이 되었다.
난 이번 겨울에도 유동기 감독이 지휘하는 특별 훈련에 참여하기로 했다.
혼자서도 할 수 있지만 적당한 강제성은 때로는 효율을 높여주기도 한다.
거기다가 유동기 감독은 본인이 지시한 훈련을 전부 소화하면 다른 부분은 일절 터치하지 않았다.
그래서 따로 개인 훈련을 하면서 몸을 만들기에도 좋았다.
이번 겨울 방학부터는 가벼운 웨이트 트레이닝도 내 훈련 루틴에 추가했다.
지금은 중학 야구 리그를 뛰고 있기에, 알루미늄 배트를 쓰지만 고교 야구부터는 나무 배트를 쓰게 된다.
그리고 나무 배트는 비거리가 최소 20m 이상은 떨어지니 어느 정도의 웨이트 트레이닝은 필요했다.
그렇게 겨울도 상우 중학교 기숙사에서 훈련에 매진하며 보내고 다시 봄이 찾아왔다.
2021년 16살의 내 몸은 예전보다 한층 더 좋아졌다.
키는 184cm에 몸무게는 82kg까지 찌웠다. 가벼운 웨이트가 상당히 효과가 있었다.
“다들 겨울 방학동안···”
유동기 감독은 이번 개학에도 반대편 벽을 찍고 오라는 말로 새 학기를 시작했다.
이번에도 1등으로 내가 유동기 감독 앞에 도착했다.
확실히 몸이 가벼워진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일까? 올해 대회에서는 도루 성공률이 더 높아졌다.
작년에는 11개를 시도해서 8개를 성공했었다.
하지만 올해는 첫 대회에서 벌써 5개 시도에 5번을 성공하며 100%의 성공률을 보여주고 있었다.
상우 중학교는 재작년과 작년에 모두 좋은 멤버들을 가지고 있었지만, 올해는 훨씬 좋은 전력이었다.
작년에 필승 계투조로 뛰던 신재원과 홍민우는 각각 구속이 3km/h, 4km/h나 올랐다.
거기에 애매한 3선발이라 평가받던 박재우는 완전히 폼이 오른 모습을 보여주며, 첫 대회 결승전인 지금 4.2이닝째 퍼펙트를 보여주고 있었다.
“스트라이크 아웃!”
오늘만 6번째 삼진을 기록하는 박재우가 마운드를 내려와 더그아웃 한편에 앉았다.
“재우야. 오늘 더 던지고 싶냐?”
“예. 오늘은 컨디션이 좋아서 더 던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혹시라도 감독님이 내려오라고 하면 바로 내려가겠습니다.”
“폼이나 릴리즈 포인트는 1회랑 똑같으니까 퍼펙트 깨질 때까지는 한번 던져봐.”
“감사합니다.”
선수들의 부상 방지를 가장 우선으로 삼는 유동기 감독.
하지만 전혀 기량이 떨어지지 않는 퍼펙트 상황에서 바꿀 정도로 융통성이 없지는 않았다.
박재우의 호투에도 경기는 0:0의 균형이 계속 이어졌다.
상대 투수인 김성환이 6회 초 마운드에 올라왔다.
신설 중학교로 작년에는 2학년 선수들로만 대회를 나왔던 송독 중학교.
하지만 올해는 선발 전원이 3학년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거기에 송독의 에이스 투수인 김성환의 공은 작년보다 훨씬 좋아졌다.
최고 구속이 141km/h가 찍히는 것은 둘째치고 무브먼트마저 훌륭했다.
비록 3명의 주자가 살아나갔지만, 그마저도 볼넷과 에러를 제외한다면 안타는 하나뿐이었다.
6회 초 상우 중학교의 타순은 1번 타자 이승민부터 시작됐다.
“세이프!”
이승민은 빗맞은 내야 땅볼을 쳐냈지만 빠른 달리기로 행운의 내야 안타를 만들어냈다.
2번 타자로 나선 조영원에게 유동기 감독은 번트를 지시했고 착실하게 임무를 수행해냈다.
1아웃 2루의 상황. 3번 타자 유경필이 타석에 들어섰다.
“스트라이크!”
139km/h. 득점권의 상황이 되자 김성환의 공은 6회에 또 빨라졌고 유경필은 삼진으로 물러났다.
그렇게 2아웃 2루의 찬스에서 내가 타석에 들어섰다.
오늘 김성환과의 상대 전적은 2타수 1안타.
상우 중학교의 유일한 안타는 4회 초에 내가 쳐낸 것이었다.
김성환이 초구를 던졌고 구속은 141km/h.
8강에서 본인의 최고 구속과 타이 기록인 공을 내게 던졌다.
2구는 몸쪽으로 날아왔고 난 타격했지만 아쉽게 폴대를 살짝 빗겨나가는 파울 홈런이었다.
하지만 김성환은 3구째에도 도망가지 않는 피칭을 보여주며 바깥쪽 꽉 차는 스트라이크를 던졌고 난 커트해냈다.
구속은 142km/h. 본인의 최고 기록을 다시 갱신해내는 공이었다.
이어지는 4구는 바깥쪽 스트라이크였지만 가운데로 살짝 몰리는 볼이었다.
난 이 공을 놓치지 않고 배트를 휘둘렀고 배트 정중앙에 정확하게 맞춰냈다.
밀어친 공은 우익수를 가뿐히 넘겨 담장을 넘어갔다.
난 배트를 던지고 검지로 하늘을 가리키며 홈으로 들어왔다.
“나이스 최강남!”
“믿고 있었다고!”
상우 중학교 선수들은 내가 홈 플레이트를 밟기도 전부터 찬사를 쏟아냈다.
0:0의 균형을 깨는 2점짜리 홈런.
첫 대회인 전국소년체육대회에서 상우 중학교가 0의 균형을 깨고 앞서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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