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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 야구 (4)
“넌 진짜 괴물이냐?”
“백투백 홈런 기대해도 되죠?”
“글쎄다··· 저 공을 내가 칠 수 있으려나.”
홈 플레이트로 들어오며 5번 타자인 이강현과 하이파이브를 나눴다.
그리고 홈 플레이트까지 마중 나온 팀원들의 격려를 받으며 같이 더그아웃으로 돌아갔다.
리틀야구 월드시리즈에서 같은 팀으로 뛰었던 이강현.
이강현의 부모님은 결국 선수가 되고 싶다는 아들의 부탁을 허락하셨고, 박병규와 같은 장지 중학교로 진학했다.
그리고 이강현은 그곳에서 4번 타자로 활약하며 U-15 야구 월드컵에 선발됐다.
내가 첫 경기인 미국과의 시합에서 6번으로 배정받았을 때, 한국 대표 팀의 4번 타자는 이강현이었다.
두 번째 경기인 중국전부터는 4번 타자로 내가 들어섰기에 5번으로 밀려난 이강현.
하지만 186cm까지 자란 키에서 나오는 파워는 몇 번 타자에 있든 여전했다.
상대 투수는 나에게 동점 홈런을 맞아서 당황했는지, 초구부터 존 한가운데 실투를 던졌다.
그리고 이강현은 놓치지 않고 과감하게 배트를 휘둘렀다.
내가 지난 1년을 치열하게 보냈던 것처럼 이강현 역시 지난 1년을 헛되이 보내지 않았을 것이다.
비록 대회에서 마주칠 일은 없었지만, 장지 중학교도 늘 대회에서 나쁘지 않은 성적을 기록했으니깐.
그리고 이번 스윙은 그의 1년 동안의 노력이 보이는 듯 깔끔하고 완벽했다.
힘껏 당겨 친 공은 우측 담장을 넘어가는 백투백 홈런을 만들어냈다.
“봤지? 다시는 내 머리로 공 던지지 마라.”
“저 이제 투수 안 하는 거 알잖아요. 그리고 대체 그 이야기는 언제까지 할 거예요?”
“내 아들한테도 할 거다.”
그의 어이없는 농담에 나는 헛웃음이 나왔다.
하긴 이런 농담도 꽤나 사이가 친해졌기에 할 수 있었다.
한국은 6회 말에 기적처럼 나온 백투백 홈런으로 2:1로 앞서며, 마지막 수비인 7회 초에 들어갔다.
한국의 마무리로 나온 황재현은 좋은 투구를 보여주며 무실점으로 3아웃을 잡아냈다.
그렇게 한국은 죽음의 조라고 불렸던 C조에서 2위로 살아남으며 본선으로 올라갔다.
8강부터는 토너먼트였기에 한국을 포함한 본선에 진출한 8개의 팀들이 제비뽑기로 조를 결정했다.
8강 한국의 상대는 쿠바.
U-15 야구 월드컵 최다 우승국이자 아마추어 야구 최강국이라고 불리는 나라였다.
1회 초 내 투런포로 앞서가는 한국이었지만 쿠바의 반격은 너무나도 거셌다.
1회 말 2점을 득점하며 2:2로 따라온 쿠바 대표 팀.
그 후로도 쿠바의 득점은 계속되었고 한국의 타선은 주자를 홈으로 불러들이지 못했다.
난 두 번째 타석에서 바깥쪽 높은 공을 밀어 쳤지만, 아쉽게 우익수에게 잡히는 뜬공으로 물러났다.
6회 초에 맞이한 세 번째 타석에는 2루타를 쳐냈고, 이강현의 안타로 홈으로 들어왔다.
하지만 더 이상 추가점은 나오지 않았고 승부를 뒤집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최종 스코어는 3:9. 쿠바의 벽은 너무나도 높았다.
“아쉽네. 힘들 줄은 알았는데 너랑 같은 팀이면 왠지 이번 대회도 우승할 것만 같았는데.”
“고생했어요. 올해 국내 대회에서 봬요.”
“그래. 기회가 생기면 또 볼 수 있겠지.”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이강현과 미리 작별 인사를 나눴다.
아쉽지만 이렇게 내 15살 U-15 야구 월드컵은 끝이 났다.
“강남아!”
“네. 감독님.”
공항에 도착해서 짐을 받고 집으로 향하던 그 순간 정종현 감독이 날 불러 세웠다.
“내년에 U-15에서 다시 보자? 그동안 몸 관리 잘하고 있어. 기대하고 있을게.”
“예. 고생하셨습니다.”
나를 제외한 모든 멤버들은 16살.
하지만 난 15살이었기에 아직 한 번의 기회가 더 있었다.
그래도 씁쓸한 마음은 지울 수가 없었다.
그렇게 아쉬움을 남기고 집으로 향했다.
***
“우리 아들 왔어? 그동안 경기 치르느라 고생했어.”
“8강에서 아쉽게 떨어졌어요.”
“알아. 엄마가 인터넷 스포츠 뉴스까지 뒤져가면서 다 확인해봤지. 상대가 너무 강팀이더라.”
“아빠는요?”
“곧 오셔. 샤워부터 하고 와.”
따뜻한 물로 샤워를 끝내니 아빠도 퇴근하고 소파에 앉아 계셨다.
“우리 아들! 아빠랑 저녁 먹게 얼른 머리 말리고 와.”
“네. 잠깐이면 돼요.”
머리를 말리고 가족과 오랜만에 함께 저녁식사를 했다.
오랜만에 가족과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니 그동안 받았던 스트레스가 다 풀리는 것만 같았다.
그렇게 길었던 하루도 끝이 났다.
다음 날부터는 다시 상우 중학교에 등교해 훈련에 참여했다.
내가 U-15 야구 월드컵에 참가하는 동안 대회에 참가했던 상우 중학교.
주전 선수들 대신 후보를 앞세워 참가한 학교스포츠클럽 야구 대회에서 4강 진출이라는 나쁘지 않은 기록을 만들어냈다.
이제 다음 대회는 2달 정도가 남은 대통령배 전국대회였다.
상우 중학교 야구부 최초의 대통령배 우승을 했던 것이 작년 대회였다.
그렇기에 이번에는 예선전을 거치는 게 아닌 디펜딩 챔피언으로 바로 본선으로 직행할 수 있는 티켓을 얻었다.
“이번에는 우리가 도전자의 위치가 아닌 왕좌의 자리에서 상대와 승부를 겨룬다. 모두들 2달 동안 노력해서 다시 한번 우승에 도전해보자!”
“알겠습니다.”
“이 새끼들 대답 소리 봐라. 걱정돼? 내가 2달 동안 지옥처럼 굴려줄게. 우승해보자!”
“알겠습니다!”
선수들은 확신이 들지 않는지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리고 유동기 감독은 그런 선수들에게 반강제적으로 용기를 북돋아 줬다.
사실 대통령배를 두 번 연속 우승한 팀은 전국에서도 드물었다.
그리고 그러한 팀들은 중학 야구의 강호 팀이라고 불렸다.
첫 우승에 이어서 연속 우승까지 노리는 상우 중학교의 감독과 선수들.
상우 중학교도 이렇게 강호의 자리에 도전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
***
“벌써 지쳤어? 왜 더우니깐 좀 쉬고 싶나 봐? 그러면 야구 때려치우고 평생 쉬어!”
“아닙니다! 할 수 있습니다!”
여름의 열기가 다 가시지 않은 초가을 직전의 날씨.
오늘도 유동기 감독은 선수들에게 본인만의 터프한 훈련 방식을 보여주고 있었다.
물론 훈련이 끝나면 파스를 직접 발라주며 아이스크림을 사는 것까지 잊지 않는 모습이었다.
시간은 빠르게 지나갔다. 매일매일 실전과도 같은 고된 훈련과 반복되는 일정.
시간이 빠르게 지나갈 수밖에 없는 최고의 조건이기도 했다.
2일 전 8강에서 만난 송천 중학교를 가볍게 5:1로 격파해냈다.
그리고 내일은 대통령배 야구대회 4강 경기 날이다.
4강 상대는 송독 중학교.
상대의 에이스 투수는 리틀야구 월드시리즈 출신 김성환이었다.
남양주 출신이었기에 당연히 모두가 강호라고 불리는 남양주 중학교로 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송독 중학교의 감독인 박준범은 김성환에게 여러 가지 장점을 내세우며 스카우트에 성공했다.
신설 중학교이기 때문에 훨씬 좋은 시설은 기본이었고, 작년에는 1학년만 모집했기에 모든 선수들의 주전 보장까지 장담한 박준범 감독이었다.
전국의 리틀야구와 초등학교 에이스 선수들의 상당수가 송독 중학교로 갔고 올해 그 주전들은 2학년이 되었다.
그러한 송독 중학교는 3학년들이 대거 포진한 다른 중학교들과의 경쟁력에서도 전혀 밀리지 않았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최고 구속 138km/h를 던지는 에이스 김성환이 있었다.
“강남아! 오랜만이다. 잘 지냈어?”
“2년 만에 얼굴 보네. 너는 잘 지냈어?”
“그럼. 나는 잘 지냈지. 난 너 소식 종종 뉴스에서 봤는데. 어쨌든 오늘 경기 잘 해보자.”
대회 때는 상대 선수들과의 간단한 인사와 악수 후 경기가 시작된다.
예전의 소심한 모습은 온데간데없는 김성환이 밝은 모습으로 악수를 위해 손을 내밀었다.
프로 선수 시절의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는 모습은 이맘때쯤 만들어졌나 보다.
그렇게 악수를 마치고 더그아웃으로 돌아와 글러브를 끼고 유격수 자리로 향했다.
“플레이 볼!”
1회 초 송독 중학교의 공격으로 경기가 시작됐다.
상우 중학교는 2일 후에 있을 경기에 3학년 에이스 투수인 고영석을 내보낼 계획이었다.
그래서 오늘은 2선발 투수인 3학년 이상훈이 마운드에 올라왔다.
초구는 131km/h. 나쁘지 않은 공이었다.
첫 타자를 중견수 뜬공으로 잡아낸 이상훈은 두 번째 타자를 삼진으로 잡아냈다.
이어서 상대한 3번 타자 김성환.
김성환은 이상훈의 초구를 당겨쳤고 공은 내 쪽으로 향했다.
여유롭게 자세를 낮춰 공을 잡아낸 나는 1루로 던졌다.
그렇게 삼자범퇴로 송독의 공격은 끝이 났다.
1회 말 상우 중학교의 공격.
상대 선발 투수인 김성환이 마운드에 올라왔고 힘차게 초구를 던졌다.
구속은 133km/h. 빠른 공이긴 했지만 아예 못 칠 공은 아니었다.
하지만 1번 타자인 전광혁과 2번 오병훈이 둘 다 삼진으로 타석에서 물러났다.
3번인 박지훈의 타격은 유격수 정면으로 향하는 땅볼.
상우 중학교도 삼자범퇴로 이닝이 끝났다.
마운드에는 다시 이상훈이 올라갔고 송독의 4번 타자인 김찬오가 5구의 승부 끝에 안타를 쳐냈다.
하지만 5번 타자에게 병살타를 유도해내고, 다음 타자는 삼진으로 돌려세우며 다시 한번 삼자범퇴로 이닝을 마무리하는 이상훈이었다.
2회 말 상우 중학교의 공격. 첫 타자로 내가 타석에 들어섰다.
‘이래서 다들 못 친 거였구나.’
상우 중학교가 1회에 삼자범퇴를 당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거기다가 올해의 상우 중학교는 전국의 중학교 야구부 중 최강 타선을 자랑하기도 했다.
그 예로 김성환에게 당한 1회 말 삼자범퇴가 올해 공식 경기에서 첫 기록이었다.
하지만 직접 타석에 들어서서 김성환의 공을 보니, 앞서 무기력하게 더그아웃으로 돌아간 타자들이 이해가 됐다.
KBO에서 15승 선발투수였던 김성환의 최대 장점은 구속이 아닌 무브먼트였다.
최고 구속은 151km/h였지만 무브먼트가 훌륭한 투수.
쉽게 말해서 볼 끝이 더러운 선수였다.
리틀야구 시절에는 구속만 빨랐다면 지금은 무브먼트까지 갖춘 공을 던지고 있었다.
물론 선수 시절에는 비할 바가 못 되지만, 중학교 선수들을 상대하기에는 충분했다.
“스트라이크!”
초구에 이어서 2구도 스트라이크가 들어왔다.
카운트가 몰렸기에 바깥쪽에 꽉 차게 들어온 3번째 공에 방망이를 휘둘렀다.
깔끔하게 밀어서 쳐낸 공은 배트 정중앙에 정확히 맞았지만, 아쉽게도 펜스 코앞에서 우익수에게 잡히고 말았다.
이후로 경기는 완벽하게 투수전으로 이어졌다.
이상훈은 안타를 맞기도 했지만 다음 타자를 범타로 처리시키며, 한 명의 타자도 홈 플레이트를 밟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김성환은 3회까지 9명의 타자에게 모두 아웃카운트를 잡아내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공이 눈에 익어서일까?
두 번째 타석에 들어선 3번 박지훈이 2유간 빠지는 안타를 쳐내며 1루에 안착했다.
그리고 다음 타석은 4번 타자인 나였다.
2아웃 1루의 상황에 내가 타석에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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