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역대급 홈런왕의 탄생-20화 (2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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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 야구 (3)

‘생각보다 오래 버티네. 1달도 못 버틸 줄 알았는데.’

오늘도 모든 훈련들을 꾸역꾸역 버텨낸 최강남을 보고 유동기 감독은 생각했다.

사실 그동안 14살, 15살 선수들이 훈련에 참여한 것은 처음이 아니었다.

하지만 대부분은 2주도 못 버티고 나가떨어졌다.

심지어는 고등학교 공개 테스트가 코앞인 16살의 선수들도 종종 연습을 버티지 못하고 그만두기도 했다.

“못 버티겠어? 그러면 때려 쳐. 야구가 장난이야?”

물론 그 이면에는 유동기의 거친 언행의 영향도 상당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최강남은 다른 어린 선수들과는 달랐다.

유동기의 빽빽한 훈련 일정도 전부 소화하는 것은 물론이고, 본인의 자체 훈련 루틴까지도 꼬박꼬박 행동한지 어느덧 1달이 넘어갔다.

‘운동량이 과해 보이긴 해도 부상 걱정은 없겠네. 뭐··· 그거면 됐지.’

매일 10km의 달리기와 피칭머신 타격 연습은 모든 선수들에게 할당된 기본 훈련이었다.

투수들에겐 투구, 야수들에겐 펑고를 통한 수비훈련까지.

이야기만 들었을 때는 상당히 부상의 위험이 커 보이는 훈련 일정이다.

하지만 유동기 감독은 훈련 사이사이에 늘 스트레칭과 충분한 휴식 시간을 제공했고, 한겨울의 추위에 부상당하지는 않을까 하는 심정으로 따뜻한 코코아까지 챙겨주며 선수들을 훈련시켰다.

거기에 최강남은 한술 더 떠 추가 타격 훈련을 했지만, 스트레칭과 휴식 시간을 챙기는 모습을 보니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어 보였다.

그렇게 선수들에겐 지옥과도 같은 훈련 일정으로 겨울이 순식간에 지나갔고 봄이 찾아왔다.

***

2020년 15살이 되었다.

작년 이맘때의 키는 175cm에 68kg였지만, 이제는 179cm에 74kg.

비슷한 또래에서는 상당히 큰 키와 덩치가 완성됐다.

“다들 겨울 방학동안 잘 지냈어?”

“그렇습니다!”

“그러면 겨울에 쌓인 지방 불태우러 가야지! 저기 반대편 벽 찍고 와라. 선착순 5명 실시!”

“실시!”

유동기 감독의 개학 날 레퍼토리는 늘 똑같았다.

난 이 상황을 예측했기에 모이기 전 뒤편에서 이미 스트레칭까지 마치고 왔다.

40여명 정도의 선수들이 일제히 달리기 시작했고 내가 가장 먼저 반환점인 벽을 찍고 유동기 감독에게 달려갔다.

“오케이. 최강남 1등! 둘, 셋, 넷, 다섯. 나머지는 다시 뛰어. 이번엔 3명!”

여기 있는 모든 선수들 중에서 겨울 훈련에 참가한 사람은 나뿐이었다.

그래서였을까? 다른 선수들에 비해 상당히 빠른 속도로 선두로 들어왔다.

“어이 최강남이!”

“예. 감독님.”

“너 이번에 U-15 야구 월드컵에서 멤버로 검토 중이라던데 괜찮아?”

“물론입니다. 기회만 주신다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럼 올해 두 번째 대회는 못 뛰겠네. 다른 유격수 뽑아야 하니깐 네가 틈틈이 수비라도 알려줘.”

“알겠습니다!”

U-15 야구 월드컵.

많은 야구팬들은 한국이 U-15 야구 월드컵을 중요시하지 않는 편이라고 알고 있다.

하지만 실상은 달랐다.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게 아니라 우승하기 힘든 것이었다.

서양인은 동양인에 비해 성장 속도가 상당히 빠르다.

그리고 그 차이가 가장 두드러지게 나는 구간이 만 15세.

야구도 대부분의 스포츠들처럼 피지컬이 상당히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다.

그렇기에 한국을 비롯한 많은 동양의 나라에서 U-15 야구 월드컵에서 좋은 성적을 내기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 예시로 동양에서의 우승은 89, 90년의 일본과 96년 대한민국뿐이었다.

그마저도 89년은 일본의 홈이었기에 이를 제외한다면 겨우 두 차례.

하지만 내게 U-15 야구 월드컵의 중요성은 매우 컸다.

중학교는 유동기의 가르침이 필요해서 한국의 상우 중학교로 진학했지만 고등학교 문제는 완전히 이야기가 달랐다.

모든 선수들에게 공평한 기회를 제공하는 유동기 감독과는 다르게 고등학교 야구는 결과가 전부이다.

내가 1학년부터 주전을 뛰는 것을 확신할 수도 없을뿐더러, 뛴다고 하더라도 선배들의 텃세를 굳이 느껴가며 뛸 필요가 전혀 없었다.

그렇기에 고등학교는 미국으로 진학을 희망하는 나에게 있어서, U-15 야구 월드컵은 정말 중요한 기회였다.

거기다 이제 15살. 올해뿐만 아니라 내년에도 좋은 기록을 보여줘서 스카우트들의 눈에 들기만 하면 됐다.

“전국소년 체육대회 예선이 내일부터 시작이다. 이 새끼들 무슨 이렇게 긴장을 했어? 걱정하지 말고 연습한 대로만 대회에서 보여줘라. 할 수 있지?”

“그렇습니다!”

봄 방학을 지나 3월 개학 시즌까지 지나고 어느덧 4월이 됐다.

내일이 전국소년 체육대회 예선전 첫날.

작년에는 아쉽게 8강에서 떨어졌지만 올해는 작년보다 멤버들이 훨씬 좋았다.

작년에 나와 함께 신입생으로 들어온 투수인 홍민우와 신재원의 기량이 엄청 상승했고, 3학년 선발진들의 구위 또한 나쁘지 않았다.

거기에 상우 중학교의 단점으로 여겨지던 에이스 투수의 부재도 어느 정도 해결됐다.

작년에 2학년이었던 필승 계투조의 고영석이 3학년이 되며 중학 야구에서는 손에 꼽히는 에이스 투수로 성장했다.

상우 중학교는 이러한 선수들을 바탕으로 예선을 가볍게 뚫으며 본선에 진출했다.

8강에서 중학 야구 전통의 강호인 남양주 중학교를 가볍게 격파하고 무난하게 결승전에 진출했다.

“오늘이 대망의 결승전이다. 상우 중학교의 전국소년 체육대회 우승은 4년 전이 마지막이다. 하지만 그때 멤버보다 지금이 훨씬 강하다고 확신할 수 있어. 누가 전국 최고의 팀인지 오늘 보여주고 와라. 구호 한번 외치고 가자.”

“상우! 상우! 상우!”

상대는 늘 대회 4강권에 올라오는 광주제일 중학교.

선발로 나온 상우의 에이스 고영석은 오늘 4이닝 무실점으로 완벽한 투구를 보여줬다.

거기에 계투로 나온 신재원까지 2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아냈다.

하지만 상대 투수로 나온 김한수 역시 만만치 않은 투구를 보여줬고 경기는 투수전으로 이어졌다.

6회 말. 세 번째 타석에 올라온 내가 2점 홈런을 쏘아 올리며 0:0의 팽팽한 균형이 깨졌다.

2:0으로 상우 중학교가 앞서는 상황에 나온 홍민우.

홍민우는 1이닝을 1실점으로 막아냈고 2:1로 상우 중학교가 전국소년 체육대회의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이 새끼들 내가 너네 사고 칠 줄 알았다! 오늘은 마시자고! 물론 나만 맥주고 너희는 탄산으로 시켜라.”

“감사합니다!”

유동기 감독은 오랜만에 전국소년 체육대회에서의 우승이 신이 났는지, 본인의 사비까지 털어서 선수들에게 소고기를 사줬다.

상우 중학교의 선수들은 모두 우승의 기쁨을 만끽하며 기분 좋게 배를 채웠다.

***

“15살? 16살로 꽉꽉 채워도 늘 4강 근처를 못 가는데 15살로 괜찮겠어?”

“감독님. 나이가 문제가 아닙니다. 작년 기록은 물론이고 올해 첫 대회에서만 5홈런 포함 23타수 15안타 3볼넷을 기록한 선수입니다. 이 선수면 올해 죽음의 조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음··· 박 코치 자네 생각은 어때?”

“저도 동의하는 내용입니다. 거기다가 179cm면 다른 선수들에 비해 왜소한 체형도 아니고요.”

“그래. 그러면 데려가 보자고. 아무리 죽음의 조여도 해볼 수 있는데 까지는 해봐야지.”

올해 U-15 야구 월드컵의 감독을 맡게 된 정종현 감독은 고민이 많았다.

16국에서 참여하는 야구 월드컵은 4개의 나라가 한 조로 구성되어서 예선전을 치른다.

각 조에서 두 나라만 선발되기에 부담감이 그리 크지는 않은 예선전이었지만 올해는 상황이 달랐다.

같은 조에 들어가게 된 나라는 미국, 도미니카 공화국과 중국.

중국은 비교적 약팀이었기에 괜찮았지만 문제는 다른 두 팀이었다.

쿠바와 함께 최강으로 불리는 미국. 거기에 늘 4강권에 들어가는 나라인 도미니카 공화국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그렇기에 선수 선발에 있어서 누구보다 회의적일 수밖에 없는 정종현 감독이었다.

하지만 좀처럼 선수들에게 긍정적인 평가를 하지 않는 박승철 코치까지 15살인 최강남을 대표 팀에 합류시켜야 한다는 의견을 내비쳤다.

타자들의 잠재력을 높게 평가하는 한종혁 코치는 말할 것도 없이 무조건 데려가야 한다고 입이 닳도록 이야기했다.

결국 정종현 감독은 15살인 최강남을 제외한 나머지 멤버들 모두를 16살로 채워서 U-15 야구 월드컵 한국 대표 팀 멤버를 구성했다.

얼마 시간이 지나지 않아서 멤버들을 소집했고 이번 개최국인 멕시코로 향했다.

첫 경기는 이 조에서 가장 강한 팀인 미국이었다.

“쟤 데려오기 잘했네. 15살인데도 전혀 안 꿇리네.”

“그렇죠? 기록으로만 봤을 때는 4번에 넣어도 본인의 역할을 해낼 수 있는 선수일 겁니다.”

“다음 경기부터 4번에 넣어.”

“알겠습니다.”

어릴 때는 1년의 차이가 매우 크다.

그렇기에 15살의 최강남보다는 16살의 선수들을 데려와야 한다고 생각했던 정종현 감독.

경기 전까지도 최강남이 못 미더운 정종현 감독이었지만 오늘 미국과의 경기를 보며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다.

경기는 비록 선발 투수가 초반부터 무너지며 일방적이었다.

하지만 최강남이 보여주는 플레이는 생각을 바꿔놓기에 충분했다.

첫 타석부터 펜스를 원 바운드로 맞추는 3루타를 쳐내더니, 두 번째 타석은 솔로 홈런까지 때려냈다.

거기다가 안정적인 수비로 안타성 타구들을 잡아내는 모습까지 보여줬다.

아쉽게 첫 경기는 3:8로 패배했지만, 두 번째 경기인 중국을 6:1로 승리하며 1승 1패의 결과를 만들어낸 한국.

남은 경기는 도미니카 공화국과의 경기뿐이었다.

미국은 도미니카 공화국을 상대로도 이기고 중국과의 경기만이 남아있었다.

이렇게 되면 정말 큰 이변이 생기지 않는 한 미국은 3승으로 조 1위로 올라갈 것이다.

그렇다면 조 2위로 올라갈 팀은 이번 경기에서 가려진다.

“플레이 볼!”

그렇게 한국과 도미니카 공화국의 경기가 시작됐다.

경기는 당초 예상과는 다르게 투수전으로 흘러갔다.

한국의 선발로 나선 김요한이 평소보다 좋은 컨디션으로 공을 던져줬고 3회까지 무실점으로 잘 막아냈다.

하지만 4회에 솔로 홈런을 내주며 도미니카 공화국이 한국을 상대로 1:0으로 앞서기 시작했다.

경기는 이후로도 큰 위기 없이 진행됐고 6회 말 한국의 공격 차례였다.

하지만 6회에 올라온 상대 투수는 전형적인 좌완 파이어볼러 스타일.

무려 143km/h의 직구를 던지며 한국의 타자들을 요리했고 앞선 두 타자를 모두 삼진으로 처리했다.

그리고 2아웃에 주자 없이 타석에 들어선 최강남.

오늘 2타수 1안타를 기록 중이었기에 컨디션은 나빠 보이지 않는 모습이었다.

‘제발 하나만 넘겨주라. 부탁이다.’

초조한 정종현 감독을 필두로 더그아웃에는 적막만이 흘렀고 최강남은 초구를 휘둘렀다.

하지만 빗맞은 공은 1루수를 향했다.

다행히 공은 파울 담장을 살짝 넘어가며 1루수가 잡아내지 못했다.

이어서 2구는 바깥쪽으로 살짝 빠지는 볼.

투수는 3구를 던졌고 몸 쪽으로 향하는 볼을 최강남이 힘껏 당겨쳤다.

“그렇지!”

이 타격을 본 정종현은 벌떡 일어나서 소리치며 타구를 지켜봤고, 더그아웃의 다른 선수들도 모두 자리에서 일어났다.

최강남은 베이스를 돌기 시작했고 2루 베이스를 밟고 난 후부터는 오른손을 번쩍 들며 홈 플레이트로 들어왔다.

그의 검지는 하늘을 가리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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