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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 야구 (2)
“그러니깐 우리 팀에 유격수로 들어오고 싶다?”
“네. 꼭 상우 중학교에 들어오고 싶습니다.”
“리틀야구 월드시리즈도 우승했다며? 거기다가 네가 대회 MVP였고. 근데 왜 굳이 우리 팀으로 오려고 하는데? 약한 팀이라 1학년부터 주전으로 뛸 수 있어서 그런 거니?”
유동기 감독은 내가 상우 중학교에 들어가고 싶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상당히 의아해했다.
어느 정도 이해는 갔다. 좋은 고등학교에 진학하기 위해서 일부러 약팀으로 가는 선수들이 종종 존재했으니.
“아니요. 주전으로 뛰면 당연히 좋지만 그런 이유만은 아닙니다. 저희 아버지가 유동기 선수 광팬이어서 꼭 이 중학교로 갔으면 좋겠다고 하셨거든요.”
“···그래? 그러면 와라.”
“감사합니다. 그러면 언제부터 오면 될까요?”
“내년 2월부터 신입생들 합숙 훈련 있으니깐 그때부터 와라.”
유동기 감독은 늘 칭찬에 약했다. 아빠 이야기를 하니 기분이 좋아졌는지 간단하게 입부를 허락했다.
물론 아빠가 유동기 감독의 선수 시절 광팬이기도 했고.
“유동기? 이글스에서 마무리로 뛴 그 유동기가 감독이라고? 괜찮네!”
“선수로서 기록은 별로였다며? 엄마는 네가 더 좋은 팀에서 뛰었으면 좋겠는데···.”
“고교야구 역사상 걔보다 뛰어난 애는 없었지. 감독이 혹사시켜서 날개가 꺾였으니, 자기 선수들은 또 잘 키울지 누가 알아?”
집으로 돌아와서 아빠와 엄마에게 이 소식을 전했더니, 아빠는 진심으로 좋아하셨다.
엄마는 약간 걱정하셨지만 그래도 내 선택을 응원해주셨다.
다음날부터는 다시 등교를 시작했다.
학교에 가니 뉴스까지 나온 나를 아이들이 신기해했지만 그것도 잠시뿐이었다.
역시 공부에는 흥미가 없었는지 수업 시간은 지루했고 난 미리 준비해온 악력기를 책상 서랍에 넣어서 운동하며 시간을 보냈다.
주말에는 문정 리틀야구에서 마지막 훈련을 마쳤다.
“다들 고생했다! 이제 누군가는 야구 중학교로 가고 다른 사람은 공부를 하겠지만 너넨 전부 문정 리틀야구 출신이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도록!”
“고생하셨습니다!”
“마지막으로 기념사진이나 하나 찍자.”
다 같이 모여서 웃으며 사진을 찍었다.
‘월드시리즈도 우승했으니 이제 신입부원들이 물밀 듯이 밀려오겠네.’
남기혁 감독은 그런 생각을 해서인지 미소가 숨겨지질 않았다.
***
“넌 어떻게 점점 빨라지냐. 너 의정부로 가기로 했다며?”
“응. 거기가 좋을 것 같아서. 넌 어디로 가기로 했어?”
“나도 아빠한테 너 따라서 가고 싶다고 했는데 그냥 근처로 다니래. 집 근처에 있는 장지로 갈 것 같아.”
“근처로 다니면 좋지. 이제 학교까지 전력질주로 가자.”
“오케이. 마지막 힘까지 다 써본다.”
나와 박병규는 겨울 방학까지 등하교 달리기를 함께 하며 체력을 길렀다.
박병규는 잠실에 있는 장지중학교에 진학해서 야구를 계속 한다는 이야기를 전해줬다.
겨울 방학 시즌이 시작되고 173cm였던 내 키는 175cm까지 자랐다.
아직은 성장기이기에 무거운 근력운동은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팔굽혀펴기와 성장 촉진에 좋은 줄넘기를 하며 겨울을 보냈다.
64kg였던 몸무게는 잘 먹고 열심히 운동하며 몸을 키워서 그런지 68kg까지 늘어났다.
그렇게 14살의 2월이 다가왔다.
“너네들이 올해 상우 중학교 야구부 신입생들이냐? 반갑다. 난 유동기 감독이라고 한다.”
“안녕하십니까!”
“그러면 신입생들한테 하는 단골 질문으로 시작해야겠네. 거기 키 큰놈! 네가 1루 주자고 팀원이 유격수 정면 땅볼을 쳤어. 이렇게 되면 병살타의 위기지? 그러면 넌 어떤 플레이를 해야 할까?”
“병살타를 당하지 않기 위해서 베이스 커버를 들어오는 2루수의 허벅지를 향해서 발을 높이 들고 슬라이딩합니다.”
“어휴··· 이럴 줄 알았어. 너 초등학교 야구부 출신이지?”
“그렇습니다!”
유동기 감독은 질렸다는 표정으로 손가락에 침을 바르며 신입생들의 차트를 넘겼다.
그리고 출신 학교들을 확인한 유동기는 신입생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오늘부터 그런 플레이는 모두 잊어라. 물론 파이팅의 문제긴 하지. 중요한 경기에서 그런 플레이는 팀의 사기를 올려주기도 하고. 그래도 애초에 방법이 틀렸어. 어이 최강남! 네가 말해봐.”
“애초에 병살타를 당하게 된 상황이 문제입니다. 희생 번트를 지시하지 않았다면 리드 폭을 늘려서 히트 앤드 런과 같은 플레이를 유기적으로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오··· 감독 6년 차인데 맞힌 애는 처음이네? 역시 주먹질로 스포츠뉴스 헤드라인에 걸린 애 답구만? 어쨌든 정답이다. 우리는 야구라는 스포츠를 완벽하게 이해하는 플레이를 한다. 선조치 후보고! 오케이?”
유동기 감독은 내가 정답을 맞힐지 몰랐는지 놀란 표정이었다.
물론 특유의 비아냥거림을 잊지 않기도 했다.
뭐··· 나도 이 질문이 두 번째이니 맞춘 거긴 했지만.
유동기 감독은 계속 설명을 이어갔다.
상우 중학교가 이상향으로 삼는 야구는 모두가 생각하며 유기적으로 플레이할 수 있는 머리로 하는 야구.
중학교 선수들이 완벽하게 이해하기에는 상당한 난이도가 있는 야구였다.
그리고 실제로 메이저리그에서도 선수들에게 요구하는 플레이기도 했다.
이 사실을 인지한 다른 중학교 야구 감독들은 거친 플레이와 파이팅을 요구했다.
때로는 선수들에게 희생을 강요하며 혹사를 시키기까지 했다.
그건 난이도도 낮고 좋은 결과를 만들 확률이 더 높았으니.
하지만 이러한 이유 때문이었을까?
당장 눈에 보이는 상우 중학교의 성적은 높지 않았지만, 출신 선수들은 졸업 후에 좋은 성적을 내며 승승장구했다.
실제로 작년과 올해 신인 드래프트에서 상우 중학교 출신들이 대거 상위 라운드에서 포함되기도 했다.
그러한 이유로 상우 중학교에 가면 프로가 될 수 있다는 소문이 학부모들을 중심으로 돌았고, 이 즈음부터 상우 중학교는 대회에서 강호는 아니지만 야구 명문으로 쳐주기 시작했다.
“뭐··· 일단은 이렇고 다들 짐 챙겨왔지?”
“그렇습니다!”
“목소리 하나는 커서 좋네. 그러면 기숙사에 짐 갖다 놓고 점심 먹고 오후 2시까지 모여. 오늘부터 훈련은 시작이니깐.”
“알겠습니다!”
그렇게 상우 중학교에서의 야구 생활이 시작됐다.
***
난 중학교 1학년부터 상우 중학교의 주전 유격수로 뛸 수 있었다.
전에 주전으로 뛰고 있던 3학년 남승주가 고등학교로 진학하고 공석인 유격수 자리였다.
작년까지 2루수를 하던 김현빈에게 맡겨야 하나 고민을 하던 유동기 감독.
그는 내게 유격수 수비를 몇 번 맡겨보더니 주전 로스터에 날 넣었다.
중학 야구는 성인 야구와 같은 규격의 경기장을 사용했다.
그러므로 중학교 선수들은 비교적 홈런이 적게 나오는 편이다.
9이닝이 아닌 7이닝으로 경기가 진행되고 1년에 5개의 대회가 열린다.
그 중에서 가장 먼저 열리는 대회는 전국소년 체육대회였다.
전국에 있는 100개의 중학교에서 예선을 거쳐 본선에 진출하는 16개의 팀을 선별해냈다.
상우 중학교는 당당히 예선을 통과해서 본선에 진출하게 되었다.
하지만 8강에서 중학 야구에서 늘 우승을 도맡아하는 남양주 중학교를 만났고 3:5로 아쉽게 패배했다.
전국소년 체육대회에서 예선과 본선에서의 내 기록은 3홈런 포함 14타수 9안타 2볼넷이었다.
비록 경기장은 컸지만 알루미늄 배트를 사용하는 중학 야구이기에 예상보다 더 좋은 비거리의 타구들이 많이 나왔다.
거기에 다른 대회의 주전들은 중학교 3학년이었다.
아무리 예전의 기억을 가지고 과거로 돌아왔지만 이 나이에서 2년의 격차는 생각보다 크게 느껴졌다.
두 번째 대회인 전국중학 야구선수권대회에서는 예선 탈락이라는 아쉬운 결과가 나왔다.
현재 상우 중학교에서의 가장 큰 문제점은 에이스 투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중학 야구에서 우승 기록은 크게 의미가 없기도 했고, 리틀야구 결승전에서 투수를 했던 나였지만 유동기 감독은 나를 투수로 쓸 생각은 없어 보였다.
나 역시도 투수를 하며 입었던 부상이 프로 생활 내내 발목을 잡았기에 굳이 먼저 언급을 하지도 않았다.
“새끼들 뭐 이리 기죽어있어? 예선에서 떨어져서 그래?”
“아닙니다!”
“2개 대회까지는 우리가 연습했던 유기적인 플레이들을 실전에서 연습할 기회라고 생각해. 우리는 3번째 대회인 대통령배 전국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노리면 되니깐. 알겠어?”
“알겠습니다!”
유동기 감독은 예선에서 풀이 죽어있던 우리에게 위로의 말을 던져줬다.
사실 유동기 감독은 6년 동안 단 한 번도 두 번째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적이 없었다.
가장 큰 이유는 일정에 있었다.
첫 번째 대회와 두 번째 대회의 일정은 겨우 1주일 차이였고 굳이 선수들에게 무리를 주면서까지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다.
그 이유로 두 번째 대회에서는 늘 후보인 1, 2학년들을 필두로 주전을 구성했다.
하지만 세 번째 대회인 대통령배 전국대회는 달랐다.
중학 야구에서 열리는 5개 중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불리는 대회였다.
9월에 열리는 그 대회에서는 나를 제외한 다른 주전 멤버들은 전부 3학년으로 꾸렸다.
첫 번째 대회에서 우리에게 탈락의 아픔을 줬던 남양주 중학교를 4강에서 4:1로 이기며 결승에 올라가게 되었다.
한 명의 독보적인 에이스 없이 여러 명의 3학년 투수들이 3, 2, 2이닝씩을 던져줬다.
상우 중학교의 최대 강점은 유동기 감독이 늘 가르치는 유기적인 플레이.
이 플레이에는 탄탄한 수비력이 바탕이 됨은 물론이고 야수들의 유연한 커버 플레이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이러한 기본기가 바탕이 되어서였을까?
계속되는 실점 위기를 무실점으로 버텨내는 상우 중학교였다.
그리고 6회 말에 나온 내 3점 홈런이 결승타가 되며 대통령배 전국대회에서 5:2로 우승을 하게 됐다.
상우 중학교 야구부 역사상 최초의 대통령배 우승이었다.
가장 중요한 대회인 대통령배를 우승하며 상우 중학교가 중학 야구의 강호로 인정받는 계기가 되었다.
나머지 두 개의 대회에서 준우승과 4강 탈락은 아쉬웠지만 경기 내용은 다른 팀들과는 확연히 달랐다.
대부분의 강팀들은 1, 2명의 에이스에 기대는 반면 상우 중학교는 어떤 선수의 혹사도 없이 모든 선수들을 고루 사용하며 얻어낸 결과였다.
“다들 올 한해 고생 많았다. 2달 동안은 대회도 없고 훈련 일정도 없으니 편하게 쉬도록. 그렇다고 담배 피우거나 오토바이 타는 새끼들은 없겠지?”
“그렇습니다!”
“그래. 무슨 일 생기면 바로 연락하고 내년 2월에 보자.”
1년의 일정이 끝나고 12월부터 2월까지는 대부분의 중학교들은 훈련이 없었다.
이 시기에 훈련을 하려면 전지훈련뿐이었는데 이 마저도 명문 고등학교 야구부의 재정에서만 가능했기에, 중학교는 대부분 훈련을 쉬는 시기였다.
“저기 감독님···.”
“어! 최강남이 무슨 일이야?”
“저도 선배들 훈련에 같이 참여해도 될까요?”
“괜찮겠어? 14살이 버티기엔 좀 힘들 텐데.”
“괜찮습니다.”
“그래. 그럼 너도 다음 주 월요일 8시까지 나와.”
“감사합니다!”
하지만 유동기 감독은 고등학교에 진학하는 중학교 3학년 선수들을 위해서 특별 훈련을 늘 진행했다.
대회에서 두각을 발휘한 선수들은 스카우트되어서 편하게 고등학교를 진학했지만 나머지는 그렇지 못했다.
그런 선수들이 명문 고등학교를 가려면 공개 테스트를 거쳐야했고 유동기는 본인의 일처럼 늘 신경써줬다.
일종의 입시 반 특별 교육.
그렇게 내 14살, 2019년도 끝이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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