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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틀야구 월드시리즈 (8)
일본은 6회 말에 2점을 내며 따라왔지만 승부는 이미 너무 기울었다.
경기는 한국의 6:3 승리. 이렇게 한국은 인터내셔널 그룹 1위로 결승에 진출하게 되었다.
경기 MVP는 승부처에서 만루 홈런을 때려낸 내가 받게 되었다.
“안녕하세요! 리틀 월드시리즈의 팬 여러분들! 오늘은 경기에서 만루 홈런을 때려내며 인터내셔널 그룹 1위로 팀을 결승에 올린 최강남 선수와 인터뷰 진행해보겠습니다!”
“안녕하세요. 한국 대표 팀에서 4번을 치고 있는 최강남이라고 합니다.”
“저번 벤치 클리어링 사건 이후로 처음으로 MVP를 받게 되었는데, 혹시 그때 사건에 대해서 이야기해 주실 수 있을까요?”
“죄송합니다. 그때 사건에 대해서는 어떤 이야기든 해드릴 수가 없네요. 오늘 경기는 저를 포함해서 모든 한국 선수들이 최선의 플레이를 해준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네. 그렇다면···(중략)”
한승원 감독에게 저번 벤치 클리어링에 대해서는 웬만하면 이야기를 하지 말라는 언질을 받았다.
그래서 기자의 말에 대답해줄 수 없다는 의사를 강하게 어필했다.
기자는 아쉽다는 눈치였지만 다음 질문으로 넘어갔고, 한국의 15년 만의 결승 진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보았다.
난 이 질문에 영광스러운 기회라고 생각하고 우승으로 한국을 응원하는 많은 팬분들의 기대를 보답해주겠다는 말로 인터뷰를 마쳤다.
난 인터뷰를 마치고 더그아웃으로 돌아왔다.
***
인터내셔널 그룹에서 가장 골칫거리였던 일본을 이겨낸 한국 대표 팀.
그래서일까? 한승원 감독의 얼굴은 평소보다 훨씬 밝은 모습이었다.
이제 남은 경기는 미국 그룹 1위 팀인 애틀란틱의 뉴욕 엔드웰과의 한판 승부뿐이었다.
다행히 그동안의 예선에서는 2일마다 경기가 있던 것과는 다르게 4일의 여유가 있었다.
그 말은 오늘 올렸던 두 명의 투수는 물론이고 다른 선수들도 최상의 컨디션으로 경기를 뛰게 할 수 있다는 말이기도 했다.
“오늘 경기까지 이기느라 다들 고생 많았다. 이제 남은 팀은 미국뿐이야! 4일간의 여유가 있으니 내일 하루는 가볍게 훈련하고 좀 쉬도록 하자.”
“알겠습니다!”
“참고로 오늘 회식은 스테이크다.”
“나이스!”
협회에서 지원해준 3천만 원으로 재정에도 상당히 여유가 있는 한국 대표 팀이었다.
한승원 감독은 선수들을 미니버스에 태우고 경기장 근처에 있는 가장 좋은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선수들에게 스테이크를 배불리 먹이고 후식으로는 케이크까지 사 먹였다.
선수들은 호텔에 도착해 각자의 방으로 들어갔고 한승원 감독과 김민수 코치는 같은 방으로 향했다.
“감독님. 정말 다행이지 않습니까? 저희 재계약도 술술 잘 풀릴 것 같습니다.”
“재계약? 한국이 마지막에 우승한 게 20년도 더 됐어. 나도 이제 더 높은 자리로 가봐야지. 안 그러나 김 감독?”
“김, 김 감독이요?”
“자네도 이제 코치 생활한 지 어느덧 4년째잖아. 언제까지 코치만 할 거야? 이제 한국 리틀야구 지휘는 자네가 맡는 게 맞지.”
“맡겨만 주시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허허··· 그걸 내가 정하나? 이번 우리 결승전에서 결정되는 거지. 잠 안 오면 미국 대표 팀 기록이나 분석하다가 자자고.”
“알겠습니다!”
협회의 높은 자리나 더 괜찮은 감독직을 노리고 있던 한승원은 냉정하게 다음 상대인 미국의 예선 기록을 분석했다.
감독이 될 생각에 들뜬 마음을 주체할 수가 없는 김민수 코치 또한 그 옆에서 미국의 저번 경기 영상들을 찾아보는 모습이었다.
행복한 상상에 취해서일까?
그날 감독과 코치의 방은 새벽까지 불이 꺼지지 않았다.
***
미국에 온 후 처음으로 아침에 달리기를 뛰지 않았다.
오늘 훈련은 10시 시작이었기에 평소처럼 습관적으로 8시에 눈을 뜬 나는 다시 기분 좋게 잠들었다.
“강남아 일어나. 9시 50분이야.”
“응. 아 오늘 진짜 푹 잤다.”
룸메이트 김성환의 부름에 눈을 비비며 잠에서 깼다.
오늘의 훈련은 간단하게 진행됐다.
김성환과 유상현을 제외한 투수들은 가볍게 투구를 했고 나머지 타자들은 피칭머신으로 타격 연습을 했다.
그리고 마무리로 펑고와 주루 연습으로 훈련이 끝이 났다.
“오늘 훈련하느라 고생 많았어. 내일부터는 다시 아침 러닝으로 시작할 거야. 그리고 오후부터는 미국 예선 경기들 보면서 분석할 거니깐 오늘은 저녁 먹고 들어가서 푹 쉬어.”
“알겠습니다!”
이렇게 훈련이 끝나고 모두들 각자의 방으로 들어갔다.
“아마 미국이랑 경기 때도 선발이 나겠지?”
“그렇겠지. 왜? 어깨 아파?”
“아니. 그냥 미국이랑 붙는다고 하니 좀 긴장돼서.”
“미국이 일본보다 성적이 좋긴 해도 엄청나게 차이 나지는 않을 거야. 너무 걱정하진 마.”
“그래··· 난 자야겠다. 너도 얼른 자.”
“응.”
감정 표현이 거의 없는 김성환도 미국을 상대로 선발로 나설 생각을 하니 좀 긴장되는 모습이었다.
난 그런 김성환을 다독여주며 침대에 누워 눈을 감았다.
그리고 다음 날이 되었다.
평소처럼 아침부터 3km 러닝과 강도 높은 훈련이 진행됐다.
“이 선수가 미국 에이스 투수야.”
점심을 먹은 후 다 같이 모여 미국과의 경기 영상을 지켜봤다.
상대 투수의 구속은 평균 117km/h.
최고 구속은 120km/h. 구속으로만 보면 일본이나 대만 선수들과 별 차이가 없었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따로 있었다.
여태까지 한국이 상대한 투수는 우완이든 좌완이든 정통파 스타일이었다.
하지만 이번에 미국 대표 팀에서 선발로 나올 선수는 우완 사이드암.
일반적으로 사이드암 투수들은 같은 구속이라도 타자들이 더 빠르게 느껴져 대처가 어렵다.
거기다가 우리 팀의 대부분의 선수들은 우타석에서 투수와 승부하기에 더 그럴 것이다.
사이드암 투수를 거의 만나본 적이 없기에, 적응하기 힘든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우리에겐 아직 2일이 남았어. 내일 모레 경기잖아? 그리고 다행히 사이드암을 던질 수 있는 사람도 구했고 말이야.”
“그게 누구인가요?”
“바로 여기 있는 김민수 코치다. 선수 시절에 우완 사이드암 투수였거든.”
내 질문에 한승원 감독은 어깨를 으쓱하며 김민수 코치를 바라봤다.
김민수 코치는 헛기침을 몇 차례 하더니 입을 열었다.
“내가 어깨 부상으로 은퇴하긴 했어도 120km/h 공 정도는 이틀 동안 몇백 개는 던질 수 있어. 지금부터 내 공으로 오늘이랑 내일 모두 특훈이야.”
“알겠습니다.”
“일단 스트레칭하고 1번 타자부터 9번까지 차례로 올라와. 다른 선수들은 그다음에 연습하자.”
선수들과 김민수 코치는 가볍게 몸을 풀기 시작했다.
김민수 코치는 마운드에 올라가 오른팔을 빙빙 돌리며 마지막으로 가벼운 스트레칭을 하는 모습이었다.
“감독님이 포수 하시게요?”
“내가 왕년에는 1군 주전 포수였어. 나 아직 40대야. 창창할 나이라고.”
한승원 감독은 포수 마스크와 장비를 채우고 홈 플레이트 뒤쪽에 자리를 잡았다.
그렇게 감독과 코치까지 참여한 타격 훈련이 시작됐다.
오래 프로생활까지 해봤던 나는 사이드암에 익숙했기에 어려움 없이 공을 쳐 냈다.
하지만 클린업 트리오를 뛰고 있는 이강현과 박병규마저 쉽게 공을 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저녁 먹고 계속하자. 내일도 계속 타격 훈련만 할 거야. 김 코치 공이 눈에 익기만 하면 미국 투수 공은 훨씬 쉽게 칠 수 있을 거야. 저녁 먹고 씻고 7시까지 다시 운동장으로 집합해.”
“알겠습니다!”
한승원 감독의 말에 땀에 흠뻑 젖은 선수들은 식당으로 향했다.
“코치님 괜찮으세요?”
“당연히 괜찮지. 40대인 감독님도 하루 종일 공 잡아주시는데 30대인 내가 겨우 이 정도로 지치면 되나. 너도 얼른 밥 먹으러 갔다 오렴. 난 감독님이랑 갈 테니깐.”
“알겠습니다.”
난 옆에 앉아서 거칠게 숨을 고르는 김민수 코치가 걱정됐지만 멤버들을 따라서 식당으로 이동했다.
***
“감독님 안 힘드십니까? 포수 없이 그냥 던져도 전 괜찮습니다.”
“옛날 생각나고 좋네. 너 고등학교 시절에도 내가 공 종종 받아줬잖아. 공 안 던진 지 몇 년은 됐을 텐데, 아직도 컨트롤이 꽤 되네?”
“전력투구도 아니고 고작 120km/h 정도 캐치볼 수준이라서 되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저녁 먹고 훈련부터는 그냥 뒤에 그물 세워두고 던지겠습니다.”
“아니야. 내 미트 보고 계속 던져. 나름 볼 배합도 신경 쓰면서 리드하고 있으니깐. 경기까지 얼마 안 남았으니까 타자들도 최대한 실전이랑 비슷하게 훈련해야 하기도하고. 밥이나 먹으러 가자.”
“예. 알겠습니다.”
한승원 감독이 할 말을 다 하고 벤치에서 일어나자 따라 일어서는 김민수 코치였다.
저녁을 먹고도 훈련은 이어졌다.
여전히 마운드에는 김민수 코치가 서 있었고 포수에는 노장의 한승원 감독이 자리해있었다.
한승원 감독은 구장의 관리자에게 부탁해서 조명까지 켜고 야간훈련에 동참했다.
“다들 고생 많았다. 내일은 아침 먹고 9시부터 또 타격 훈련 할 테니 오늘은 다들 빨리 자도록.”
“알겠습니다!”
훈련을 마치고 지친 기색으로 호텔로 들어가는 아이들을 보고 한승원 감독은 김민수 코치에게 말을 꺼냈다.
“김 감독도 고생 많았네. 내일 하루만 더 힘내보자고.”
“감사합니다. 정말 감독님 밑에서 코치 생활을 결정한 게 제 인생 최고의 선택인 것 같습니다.”
“평소엔 그런 말 하지도 않더니··· 김 감독이라고 하니 술술 나오는구만?”
“감독님 그게 아니라···.”
“알아. 농담이야. 오랜만에 민수 공 받으니깐 나도 아직 살아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민수야 오늘 고생 많았다.”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십니까? 오래오래 건강하게 사셔서 야구 역사에 한 획을 그으셔야죠.”
“그러게. 정말 미국 상대로 우리가 우승하면 한 획을 긋긴 하겠네. 이제 들어가자고.”
“알겠습니다.”
그렇게 한승원 감독과 김민수 코치도 호텔로 발걸음을 옮겼다.
다음 날도 김민수 코치의 피칭 훈련은 계속됐다.
“오늘도 고생 많았다. 내일이 드디어 월드시리즈 결승전 날이다. 너무 긴장하지 말고 오늘 다들 빨리 자도록 해라.”
“네!”
오전부터 시작된 타격 훈련은 저녁 식사 시간이 돼서야 끝이 났다.
녹초가 된 한승원과 김민수도 저녁을 먹으러 호텔 식당으로 향했다.
그리고 드디어 미국과의 경기 당일이 되었다.
경기는 미국의 선공으로 시작됐다.
한국의 선발 투수로는 에이스 김성환이 마운드에 올라왔다.
3번 타자에게 펜스 상단을 맞추는 안타를 맞았지만, 4번 타자를 삼진으로 돌려세우며 무실점으로 1회 초를 막아내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리고 이어지는 한국의 공격. 상대 선발은 예상대로 사이드암 투수인 베넌이 올라왔다.
전하성과 선중필은 땅볼과 뜬공으로 아웃됐다.
하지만 3번 타자인 이강현이 우익수 앞 안타를 때려내며 훈련의 성과를 보여주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타석에는 한국의 4번 타자 최강남이 올라왔다.
“강남이 보면 너 고등학교 때 생각이 그렇게 나더라.”
“저 고등학교 때 말입니까?”
“너도 타격 엄청 잘했잖아. 부상으로 투수 관둘 때 내 말대로 타자로라도 전향해보지 그랬어?”
“에이··· 그래도 저 정도로 잘 치지는 않았습니다.”
“하긴 13살에 저 정도로 잘 치는 선수는 전 세계를 뒤져도 손에 꼽을 거야.”
“그래도 강남이 보면 즐겁지 않습니까? 코치 4년 만에 처음으로 결과에 집착하지 않고 야구를 즐기면서 보는 것 같습니다.”
“그건 그래. 나도 요즘은 좀 설레더라. 그놈의 협회랑 돈 문제로 말싸움하는 게 아니라 경기장에서 보여주는 거. 이게 야구인데 말이야.”
“맞습니다. 경기장에서 결과로 증명하는 게 야구의 진정한 매력이죠.”
현실의 문제에 치여서 어느덧 야구의 매력을 잊고 살게 된 한승원 감독과 김민수 코치.
그들에게 다시 야구의 매력을 일깨워준 최강남이 2아웃 1루에 타석에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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