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역대급 홈런왕의 탄생-12화 (1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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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틀야구 월드시리즈 (4)

드디어 미국 출국 날이 되었다.

옷과 속옷 그리고 각종 생필품들을 챙겨서 인천공항으로 향했다.

공항에 도착하니 대부분의 인원이 이미 모여 있었다.

“강남아! 왔어?”

“빨리 왔네? 나도 집합 시간 20분 전에 도착한 건데.”

“설레서 기다릴 수가 있나. 나 미국 처음 가는 거거든. 넌 가본 적 있어?”

“나도 미국은 처음이야.”

“아 너무 기대된다. 햄버거도 꼭 먹어봐야지.”

설레는지 입에서 미소가 떠나지 않는 박병규가 햄버거 이야기를 하며 입맛을 다셨다.

나도 정말 기대되긴 했다.

난 이 나이대에 최고의 선수들과 경기가 기대된다는 것이 다르긴 했지만.

메이저리그에서 경기까지 했던 나지만 이 나이엔 미국이 처음이었다.

처음으로 비행기를 타본 것도 U-18 야구 국가 대표 팀 때였으니.

10분정도 더 기다리니 다른 인원들도 모두 모였다.

그러자 한승원 감독이 모두를 불렀다.

“다들 왔지? 우리는 대회가 열리는 LA 근처의 호텔을 지원받았어. 짐 챙겨서 체크인하러 들어가자. 주변에 멤버들 잘 챙기고 혹시 무슨 일 있으면 나나 민수 코치한테 이야기하고.”

“알겠습니다!”

수하물을 부치고 미리 발급받은 여권을 내밀고 게이트를 지나서 비행기 안으로 들어갔다.

비행기에 타기 직전 갑자기 옆에 있던 박병규가 신발을 벗기 시작했다.

“너 뭐 하는 거야?”

“뭐하긴? 신발 벗지.”

“강남아 얘 좀 봐. 비행기 타기 전에 신발 벗어야 한다고··· 이미 벗었어!”

“너넨 왜 신발 안 벗냐? 아빠가 벗고 타야 된다고 했는데.”

“너희 아빠가 장난치신 거야. 아! 신발 신고 얼른 타.”

박병규의 아빠인 박종수가 아들에게 농담을 했나보다.

그걸 본 유상현은 질색을 하며 얼른 신발을 신으라고 재촉했다.

약간의 소동이 일어났지만 별일 없이 전부 비행기에 탔다.

비행기는 경유 없이 LA로 향했고 기내식을 먹고 창밖을 바라보던 아이들은 하나둘 잠에 들기 시작했다.

‘우리가 이길 수 있을까? 벌써 전 세계의 많은 선수들과 경기를 해보네.’

과거로 돌아온 지 한 달 반. 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을 스쳤지만 나도 이내 눈이 감겼다.

“도착했다! 다들 일어나!”

그리고 김민수 코치의 말에 다들 잠에서 깼다.

호텔 방은 2인 1실로 구성되어 있었다.

뭐··· 시설을 봤을 때 호텔보다 모텔에 가깝기는 했지만.

13살짜리 선수들에게 이 정도면 특급호텔이나 다름없었다.

내 룸메이트는 선발로 뛰고 있는 김성환이었다.

“시차 적응 때문에 오늘은 훈련 없이 쉴 거다. 내일부터 훈련 시작할 테니까 전부 오늘 밤에 잠 안 와도 최대한 자도록 하고. 질문 있는 사람?”

“혹시 대회가 끝나면 미국 여행도 하나요?”

“우승하면 1주일 동안 계획이 있어. 우승 못 하면 모르겠다.”

호텔에 도착한건 한밤중이었기에 모두들 각자의 방으로 돌아갔다.

씻고 잘 준비를 하는데 룸메이트인 김성환이 말을 걸었다.

“저번에 고맙다.”

“응? 뭐가?”

“내가 실투 던졌을 때 네가 잘 잡아줘서 무실점으로 버텼잖아.”

원래도 별로 말이 없어 보이는 김성환.

아직까지 같은 팀으로 뛰면서 한마디도 안 해봤는데 무뚝뚝한 말투에 웃음이 났다.

“뭐야. 무슨 같은 팀끼리 쑥스럽게 그런 말을 해?”

“내가 말주변이 별로 없어서. 나 이제 자볼게.”

“그래. 다음 경기도 잘 부탁해.”

살짝 당황스러웠지만 먼저 잠에 드는 김성환.

나는 하나 따로 받은 알루미늄 배트로 스윙 연습을 하다가 침대에 누웠다.

평범한 호텔 치고는 상당히 부드러운 매트리스가 느껴졌다.

그날 밤은 편하게 잠에 들었다.

훈련은 다음날 아침부터 시작됐다.

밥을 먹기 전 3km 러닝. 그리고 경기장 적응을 위해서 가벼운 펑고를 했다.

미국에서도 클린업 트리오에게는 피칭머신으로 타격 훈련을 꼼꼼하게 시키는 한승원 감독.

이강현과 나와 박병규는 다른 선수들이 추가로 펑고를 받을 때 피칭머신의 공을 쳤다.

“내일은 미국 사우스 이스트 우승 팀인 뉴욕, 스케넥터디 팀이랑 연습경기 잡혀있어. 다들 몸 잘 풀고 안 다치고 잘해보자.”

“알겠습니다!”

인터내셔널 그룹 8팀과 미국 그룹 8팀 중 1위 팀만이 결승전에 오르기에, 대부분의 팀들은 상대 그룹과 맞붙을 일이 없었다.

그래서 대회 개최 전에는 다른 그룹 팀들과 연습경기를 많이들 한다고 한다.

다음날 스케넥터디와 연습경기에서는 투수는 1이닝씩, 타자는 1타석씩 뛰면서 모두가 경기 감각을 올렸다.

경기는 5회에 4:5 패배. 김성환은 팀 내 3번째 투수로 나서서 무실점으로 선방했고, 나는 펜스를 맞추는 3루타를 때려냈다.

양쪽 팀 모두 선수들의 컨디션을 끌어올리는 것에 집중했기에, 승패와 상관없는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었다.

그렇게 며칠이 흘렀다.

아침마다 하는 달리기와 각종 훈련에 나를 비롯한 선수들은 다들 정상 컨디션으로 돌아왔다.

처음에는 110km/h였던 피칭머신의 속도는 120km/h으로 늘어났지만 대부분의 공을 맞춰내는 클린업 트리오 선수들이었다.

이제 2일 후에 대회 개최이기에 오늘은 최종 컨디션 체크.

작년 우승팀이었던 캘리포니아, 헌팅턴비치와 5회 연습경기를 가졌다.

“오늘은 상현이 실전 감각 좀 올려야 하니깐 선발투수로 상현이가 뛸 거야. 성환이는 개막전에 뛰어야 되니깐 1이닝만 중간에 던지자.”

“알겠습니다.”

선발로는 유상현이 등판해서 3이닝을 2실점으로 막아냈고 타선이 꽤 잘 쳐주며 6:5 승리.

김성환은 1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아냈다.

물론 상대도 우리도 전력으로 모든 힘을 보여주지는 않았다.

대회 개최 하루 전날. 우리는 평소처럼 훈련을 하며 최고의 컨디션으로 경기를 하기 위한 준비를 모두 마쳤다.

“내가 미국을 상대로 잘 던질 수 있을까?”

“당연하지. 연습경기에서 무실점으로 막았잖아. 그리고 일단 미국이랑 붙으려면 예선부터 통과해야지.”

“네가 홈런 치면 나도 같이 세리머니 해도 돼?”

“응······? 검지로 하늘 가리키는 거?”

“응. 나도 해보고 싶더라.”

“그래. 너 하고 싶은 대로 해.”

“고마워. 나 잘게.”

그리고 같은 룸메이트인 김성환과도 조금은 친해진 것 같다.

워낙 무뚝뚝해서 원체 말이 없기는 했지만.

날이 밝았고 그렇게 대회 개최 당일이 되었다.

누구와 붙을지는 이미 알고 있어서 팀마다 사전 교육도 간단히 받았지만, 대진표는 오늘 제비뽑기를 통해서 결정된다.

한승원 감독은 대진표 제비뽑기를 위해 단상에 올라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모든 감독들이 뽑은 결과가 일정표를 만들어냈다.

인터내셔널 그룹 한국 일정표

1경기 vs 멕시코

2경기 vs 호주

3경기 vs 도미니카 공화국

4경기 vs 대만

5경기 vs 네덜란드

6경기 vs 캐나다

7경기 vs 일본

인터내셔널 그룹에서 조 1위로 결승에 가장 많이 진출한 3팀은 멕시코, 일본, 대만이었다.

그 중 한 팀인 멕시코와 첫 경기를 하게 되었다.

어차피 월드시리즈에 올라온 모든 팀들은 충분히 강했으니, 누구와 만나도 까다로웠을 것이다.

그리고 8팀 중 결승에 올라갈 수 있는, 예선을 통과하는 팀은 단 하나였기에 어차피 모두가 이겨야 할 상대이기도 했다.

“우리는 멕시코랑 첫 경기를 붙게 됐다. 이번 선발은 성환이가 던질 거야. 이 팀은 타격 중심의 팀이야.”

멕시코는 투수진은 평범했지만 미국과 견주어볼 만한 강한 타자들이 있는 팀.

슬러거들이 많은 전형적인 공격적인 팀이었다.

이 경기는 선발인 김성환이 얼마나 막아주느냐에 따라 달렸다.

경기장이 8곳이나 되었기에 동시 다발적으로 경기가 진행됐다.

“플레이 볼!”

그건 멕시코와 붙는 우리도 마찬가지였다.

멕시코의 선공으로 경기가 시작됐다.

선발 투수로 나온 김성환은 마운드에서 초구를 던졌다.

구속은 118km/h. 점점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김성환이었다.

“스트라이크 아웃!”

3구째에는 120km/h을 던지며 첫 타자를 삼진으로 돌려세웠다.

115km/h의 체감속도가 150km/h에 육박하는 리틀야구.

성인 야구에서는 156km/h 정도의 직구가 포수 미트에 꽂히니 상대 타자들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스트라이크 아웃!”

그런 강속구를 바탕으로 2번 타자도 삼진으로 잡아냈다.

순식간에 두 명의 타자를 삼진으로 돌려세우고 3번 타자가 타석에 들어섰다.

사전 교육에서 가장 요주의 타자라고 들은 페르난도.

그가 타석에 들어섰다.

초구에는 헛스윙을 했지만 두 번째 타석에서는 강습 타구를 때렸다.

충분히 2유간 빠질만한 코스였지만 내가 원바운드 된 공을 다이빙 캐치로 잡아냈다.

공을 잡아내고 오른쪽 무릎을 바닥에 붙인 채 바로 1루로 공을 던졌다.

“아웃!”

이렇게 강타자들이 즐비한 멕시코를 삼자범퇴로 1회가 끝이 났다.

“강남 나이스.”

“너도 오늘 공 좋은데?”

김성환은 소심하게 엄지를 치켜세웠고 나는 그런 모습에 웃으며 칭찬을 건넸다.

상대 투수는 3번 타자를 치던 페르난도가 마운드에 올라왔다.

초구는 117km/h. 상당히 빠른 공이었다.

하긴 월드시리즈에 나온 모든 팀들은 자국내 1위 리틀야구 팀이었다.

이 정도 공을 던지는 선발투수가 있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했다.

1번 타자로 나선 중견수 전하성은 2구째를 타격했지만 3루수 땅볼로 물러났다.

2번인 선중필은 삼진. 3번으로 이강현이 타석에 들어섰다.

늘 자체 청백전에서 김성환의 공을 쳐 냈던 선수 중 한 명이었기에, 약간의 기대를 걸었다.

초구는 한 가운데의 스트라이크. 지켜보는 이강현이었다.

다행히 공이 잘 보이는 듯 2볼을 가려내며 카운트는 2볼 1스트라이크.

4구를 타격해서 중견수 앞 안타를 만들어냈다.

2아웃 1루에 4번 타자인 내가 타석에 들어섰다.

상대의 초구는 바깥쪽 스트라이크.

카운트가 몰리지도 않은 초구이기에 굳이 건드리지 않았다.

두 번째 공을 던졌고 이번에도 바깥쪽 스트라이크가 들어왔다.

아무래도 상대 쪽에서 예전 결과들 분석을 열심히 한 것 같았다.

다음 공은 바깥으로 살짝 빠지는 볼.

카운트는 1볼 2스트라이크가 되었다.

4구도 바깥쪽 꽉 차는 스트라이크가 날아왔고 그대로 밀어 쳤다.

배팅장에서만 1500개를 쳤던 코스에 공이 날아왔고 1500번의 스윙 중 가장 완벽한 각도로 휘둘렀다.

맞는 순간 느낄 수 있었다. 이 청량한 알루미늄 배트의 소리.

손끝에 진동 하나 느껴지지 않는 완벽한 타격.

보지 않아도 이 타구는 넘어갔다.

메이저리그에서 했다면 다음 타석에서 빈볼을 맞을 정도의 배트 플립.

누구든 이런 완벽한 타격을 하면 고의가 아닌 몸이 저절로 반응하는 자연스러운 행동이었다.

베이스를 돌기 시작했고 1루에서 2루로 향하던 그때 더그아웃에서 함성소리가 들려왔다.

공이 담장을 넘어간 걸 환호하는 멤버들.

난 묵묵히 베이스를 돌고 홈 플레이트를 밟았다. 그리고 앞을 바라봤다.

감독님과 코치님을 포함한 더그아웃의 모든 인원들이 나와 있는 모습이 보였다.

웃으며 검지를 하늘로 들었고 소심한 김성환도 데드볼의 앙금이 풀렸는지 모르는 이강현까지 같은 행동을 취했다.

경기는 2:0. 한국이 멕시코를 상대로 앞서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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