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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틀야구 월드시리즈 (3)
“이렇게 되면 성환이를 조금 빨리 내리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요?”
“5점 차이로 벌어지면 바로 내려. 다음 상대는 충청/강원지부가 올라올 테니, 지금 상대보다 더 힘들 거야. 다음 경기도 생각해야지.”
“예. 그러면 다른 선수들은 교체 안 해도 될까요?”
“특별한 일 생기지 않는 한 바꾸지 말자. 명심해.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첫 번째는 경기를 이기는 거야.”
“알겠습니다.”
초반부터 터진 최강남의 쓰리런으로 3:0으로 앞서가게 된 서울/경기/인천지부.
이렇게 큰 점수 차로 게임이 진행되면 선발인 김성환의 체력을 아껴서 다음 경기를 대비하는 것이 훨씬 좋은 판단이다.
한승원 감독과 김민수 코치 역시 그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여기는 단 한판만 져도 끝나는 토너먼트. 그렇기에 신중한 한승원 감독은 5점 차에 교체를 지시했다.
다행히도 한번 잡은 기세를 놓치지 않았다.
5번인 박병규와 6번인 김성환이 안타를 치며 상대 선발 투수는 1아웃도 잡지 못하고 더그아웃으로 물러났다.
이제 공격 타순은 하위타선. 바뀐 투수를 상대로 아웃을 두 개 먹었지만, 다행히 9번인 김동훈이 안타를 쳐내며 주자 두 명을 모두 홈으로 불러들였다.
1회 말부터 점수는 5:0. 압도적으로 벌어지기 시작했다.
“감독님. 이렇게 되면 바꿀까요?”
“음··· 그래도 2이닝까지는 별일 없으면 던지게 하자. 생각보다 더 잘 쳐주네.”
“예. 그러면 3회 초에 바꾸겠습니다.”
이후에도 경기는 원사이드로 흘러갔다.
선발인 김성환은 2이닝을 무실점으로 마무리했고 다음 투수로는 정승준에게 2이닝, 강지헌에게 1이닝을 맡겼다.
정승준은 1실점, 강지헌은 무실점으로 마운드를 안정적으로 지켜주는 모습을 보여줬다.
타선에서는 최강남의 밀어친 2루타와 박병규의 홈런이 추가되면서 폭발했다.
‘정말 이 기세면 우승도 남의 일은 아니겠는데?’
아무리 그래도 상대도 선발전을 위한 베스트 멤버였는데 상대가 안 되는 모습에 헛웃음이 나는 김민수 코치였다.
경기는 계속해서 일방적으로 흘러갔다.
5회 9:1 콜드 게임으로 선발전 첫 경기가 끝이 났다.
“다들 고생 많았다. 2일 후에 최종 선발전 경기에서 이기고 미국으로 가자!”
“한국! 한국! 한국!”
경기가 끝난 당일은 휴식을 하였지만 다음 날에는 또 훈련이 시작되었다.
이번에도 한승원 감독의 명을 받은 김민수 코치는 클린업트리오에게 피칭머신 훈련을 중점적으로 진행했다.
그렇게 이틀의 시간이 흐르고 경기 당일이 되었다.
두 번째 경기는 제주/광주/전라지부를 이기고 온 충청/강원지부.
선발 투수로는 또 다시 김성환이 올라왔다.
1회 초 서울/경기/인천지부의 선공으로 경기가 시작됐다.
상대는 전국 대회 명문 팀인 세정 리틀야구의 주전 멤버들로 대부분 채워져 있었다.
그에 반해 여기는 각 팀의 에이스들로 채워져 있기에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생각하는 한승원 감독.
이번에도 1번 타자인 전하성이 안타로 살아나갔다.
약속된 플레이대로 2번 타자인 선중필은 번트.
3번인 이강현이 아쉽게 유격수 땅볼로 물러났지만, 4번 타자인 최강남이 2루타를 쳐주며 선취점을 따냈다.
그 후로는 상대의 선발인 이윤승과 김성환의 투수전이 계속되었다.
1:0으로 이어지는 스코어는 3회 초에 균열이 일어났다.
2아웃에 주자가 없는 상황에 올라온 4번 타자 최강남이 솔로 홈런을 치며 2:0으로 앞서가게 되었다.
김성환은 4이닝을 무실점으로 마무리해줬고 다음 투수로는 유상현이 올라왔다.
유상현은 2이닝을 1실점으로 잘 막아내며 서울/경기/인천지부의 2:1 승리를 견인했다.
아슬아슬한 경기였는지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한승원 감독.
그는 선수들을 모두 불러 모았다.
“오늘 경기 이기느라 다들 고생 많았다. 이제 우리는 한국 대표로 미국으로 건너갈 거야. 3일 후에 출국해서 다음 주부터 경기이니 전부 집에서 푹 쉬었다가 보자고!”
“예. 알겠습니다!”
선발전을 승리로 거둔 한승원 감독과 김민수 코치는 주최 측에서 마련한 기자회견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그들의 눈에 겨우 2명의 기자가 보였다.
“감독님. 이번 한국 대표 팀의 목표는 어떻게 되십니까?”
“당연히 월드시리즈 우승입니다. 저와 코치 그리고 선수들 모두가 이 목표 하나만 바라보고 경기를 뛰고 있습니다.”
“최근 몇 년간 일본에 패한 것은 물론이고 예선전 통과 경험조차 없는데 가능하다고 보십니까?”
기자의 날카로운 질문에 한승원 감독은 잠깐 표정이 일그러졌지만 이내 평온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당연하죠. 이번 한국 대표 팀은 역대 최고의 팀으로 평가받게 될 겁니다.”
“인터뷰 감사합니다.”
겨우 두 명만이 질문을 던지는 기자회견이었기에 빠르게 끝이 났다.
“뭐? 예선전 통과 경험조차 없는데 가능하다고 보십니까? 저게 기자가 할 소리냐? 진짜 어이가 없어 가지고. 기자는 겨우 2명 왔네. 아무리 우리가 3년 동안 대회에서 예선 탈락했다고 해도 말이야.”
“그래도 다행히 선발전은 이기지 않았습니까? 저희 멤버는 정말 제가 코치로 임했던 4년 중에서 가장 좋은 것 같습니다.”
“당연하지. 우리 재계약이 걸렸어. 이번 월드시리즈는 최소한 결승은 가서 협회 놈들이랑 기자들 콧대 좀 제대로 꺾어주자고.”
“예. 저는 감독님만 믿겠습니다.”
최근 몇 년 중에 가장 꼼꼼하게 선수들을 뽑았던 한승원 감독.
이번만큼은 정말 예선을 뚫어서 결승으로 그리고 우승까지도 자신이 있었다.
그렇게 서울/경기/인천지부의 팀은 한국 대표 팀으로 리틀야구 월드시리즈에 나가게 되었다.
그날 인터넷에는 이런 기사가 올라왔다.
[서울/경기/인천지부 리틀 월드시리즈 대표 팀으로 선발]
― 이번 대표 팀은 역대 최고의 팀입니다. 그러므로 우승은 당연하니 당당하게 트로피를 들고 오겠습니다. 한승원 감독의 힘찬 포부. 과연 결과는?
― 한국이 우승했던 적이 있었나?
ㄴ 10년 전쯤에 한번 했을걸?
ㄴ 그래도 애기들 야구 하는 거 보면 힐링 되지 않냐?
ㄴ ㄹㅇ 가끔 챙겨보는데 진짜 귀여움
― 본선 올라오면 챙겨본다
ㄴ 본선이 아니라 예선 후에 바로 결승이야
ㄴ 그럼 결승 가면 본다!
ㄴ ㅋㅋㅋ 예선 통과는 그래도 힘들걸? 피지컬 차이가 좀 나잖아
온갖 비방글과 인신공격이 난무하는 야구 기사의 댓글이지만, 유일하게 응원의 댓글만 달리는 나이.
청소년 국대를 비롯해서 수많은 10대 야구선수들에 대한 기사들에는 늘 자비로운 야구팬들이었다.
뭐··· 모든 선수가 그 10대를 거쳐서 지금의 프로 선수가 된 거긴 하지만 말이다.
이렇게 야구팬들에게 눈도장을 찍어낸 한국 대표 팀이었다.
***
“아빠! 저 왔어요!”
“우리 아들 왔어? 선발전은 어떻게 됐어?”
“두 경기 모두 이기고 저희가 올라가게 됐어요.”
“엄마가 오늘 곰탕 끓였어. 얼른 씻고 와서 먹어.”
“알겠어요.”
선발전이 끝나고 출국까지는 3일이 남았다.
나는 집에 와서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면서 오늘 경기를 되돌아봤다.
3타수 2안타 1홈런. 세 번째 타석에서 바깥쪽 공을 밀어쳤지만 담장 앞의 우익수에게 잡히고 말았다.
아직은 완벽하게 성장하지 않은 몸이니 밀어서 담장을 넘기기에는 근력이 살짝 모자랐다.
대신 허리 코어를 기반으로 당겨서 치는 공들은 전부 담장을 훌쩍 넘기는 모습이 많이 나왔다.
‘이대로면 월드시리즈에서 바깥쪽 공이 많이 들어오겠는데?’
물론 상대 투수들도 아직은 제구력이 완벽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바깥쪽 공을 커트하면서 상대의 실투나 몸쪽 공을 기다리는 것도 나쁜 선택은 아니었다.
하지만 리틀야구 특성상 바깥쪽 담장은 70m 안팎.
성인 경기장을 밀어 넘기기에는 근력이 월등히 모자랐지만, 리틀야구는 연습만 완벽하게 되어있다면 충분히 넘길만한 거리였다.
거기에 굳이 상대도 쉽게 알아차릴 내 약점을 보완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어때? 곰탕은 먹을 만해? 오늘 너 온다고 엄마가 6시간 동안 끓인 거야.”
“진짜 맛있어요. 다음에도 끓여주세요.”
“우리 강남이 용돈은 필요 없니? 아빠가 용돈 좀 줄까?”
“사실 조금 필요해요. 주시면 감사히 받겠습니다.”
오랜만에 집에 찾아온 아들에게 웃으며 친절하게 대해주는 부모님.
용돈이라··· 당장 내일부터 배팅장에 가서 바깥쪽 공을 밀어치는 연습을 하려면 어느 정도 돈은 필요했다.
아빠는 생전 돈 이야기를 하지 않던 내가 용돈이 필요하다는 말을 듣더니, 호탕하게 웃으시며 5만 원짜리 2장을 건네셨다.
난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며 용돈을 받았다.
밥을 먹고 방으로 돌아와서 쉬려는데 전화가 울렸다.
“강남아! 내일 뭐해?”
“나? 내일 배팅장 가려고 했는데.”
“그러면 같이 갔다가 저녁 같이 먹을래? 우리 아빠가 너 엄청 보고 싶어 하셔. 우리 가게에서 치킨 먹자!”
“그래. 그러면 내일 11시에 배팅장 앞에서 보자.”
“알겠어. 내일 봐.”
혼자 연습하는 것도 적적하기도 하니, 내일 하루는 같은 팀 멤버인 박병규와 훈련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
거기다가 매일 훈련마다 치킨의 맛에 대해서 일장연설을 늘어놓는 박병규.
박병규네 아버님이 하시는 가게인 치킨집의 맛이 궁금하기도 했다.
그렇게 다음 날에는 박병규와 함께 배팅장에서 밀어치는 연습을 시작했다.
배팅장의 협소한 타석이지만 가장 바깥쪽에 위치해서 타격하면 모든 공을 밀어 칠만한 각도가 나왔다.
첫날은 무려 3만 원어치, 천 원당 공 15개니 450개의 타격을 3시간 동안 연습했다.
“이제 우리 가게 가서 치킨 먹자. 여기 근처야.”
그리고 박병규의 손에 이끌려서 가게로 향했다.
“강남이 왔구나? 나는 병규 아빠야. 반갑다.”
“안녕하세요. 병규랑 같은 팀에서 뛰고 있는 최강남이라고 합니다.”
“아휴. 말 많이 들었어. 병규가 네 덕분에 5kg나 빠졌어. 매일 같이 달리기 하는 게 도움이 많이 되나 봐. 고맙다. 오늘 치킨은 공짜로 듬뿍 줄 테니 먹고 모자라면 이야기하고.”
“감사합니다.”
나와 박병규는 나온 치킨 2마리를 정신없이 뜯기 시작했다.
치킨을 다 먹고 가게에 걸린 TV로 프로야구 하이라이트를 보고 있던 그때, 아버지인 박종수가 갑자기 내 손을 보며 이야기했다.
“그런데 넌 굳은살이 엄청 많네?”
“아··· 배팅 훈련 하다가 그렇게 됐나 봐요.”
“멋있네. 너처럼 열정적인 애들이 커서 저렇게 TV에 나오는 선수가 되려나···? 아이고, 주문 들어왔네. 재밌게 놀다 가라.”
손에 굳은살? 그동안 전혀 의식하지 않고 있었는데 처음으로 내 손을 바라봤다.
과거로 돌아온 지난 한달 동안 바뀐 키와 체형에 맞는 스윙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평일에도 훈련이 없는 날에는 늘 배팅장에서 공을 치며 하루를 끝냈다.
거기에 대표 팀에 들어가서는 매일같이 피칭머신을 상대로 스윙했으니, 13살짜리 손이 버틸 여력이 없었을 것이다.
멍하니 내 손에 잡힌 굳은살들을 바라보고 있는데 전화가 울렸다.
“여보세요? 아··· 알겠어요. 금방 들어갈게요.”
“누구신데? 부모님?”
“응. 이제 들어오래. 난 이제 가봐야겠다. 아버님. 전 들어가 볼게요. 치킨 맛있었어요!”
“그래. 너도 조심히 들어가라. 다음에 오면 또 치킨 튀겨줄게!”
난 그렇게 인사를 하고 가게 밖으로 나섰다.
그리고 집이 아닌 배팅장으로 향했다. 만 원짜리 지폐를 전부 동전으로 교환했다.
‘아까 밀어치는 감각도 어느 정도 깨우친 것 같으니 만 원어치만 더 하고 들어가야겠다.’
고등학교 시절. 그리고 프로에서도 내 별명은 언제나 독종이었다.
늘 최고라 불리는 자리에 있었지만 계속해서 자세를 가다듬고 연습에 박차를 가했다.
이번 리틀야구 월드시리즈에는 정말 대단한 친구들이 많이 나올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보다 난 더 많은 땀방울을 흘려왔다고 자부할 수 있다.
그게 내가 늘 최고라고 불리는 이유였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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