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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틀야구 월드시리즈 (2)
아무리 상대가 중학교 선수들이라고 해도 여기는 리틀야구 경기장.
똥개도 자기 집 앞에서 반은 먹고 들어간다는데, 정식 야구 경기장에서 경기하는 중학교 선수들보다는 이 경기장의 크기에 익숙한 우리에게 더 유리한 점이 많았다.
그런 이유에서였을까?
14.02m의 짧은 거리에서 115km/h의 공을 뿌려대는 김성환에게 남양주 중학교의 2군 선수들은 맥을 추리지 못하고 있었다.
1번 타자는 중견수 뜬공. 2번 타자는 2루수 정면 땅볼에 이어서 3번 타자의 타구는 나에게 향했다.
나는 능숙하게 공을 잡아내서 1루로 던졌다.
“아웃!”
별 위기 없이 1회 초를 마무리했다.
1번 타자로 내가 타석에 들어섰다.
왜 1번 타자에 나를 넣었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이번 경기에서 나에게 원하는 모습이 있을 것이다.
평소보다 배트를 짧게 쥐고 상대 선발의 초구를 지켜봤다.
초구는 110km/h대의 직구가 한가운데로 들어왔다.
2번째 공은 스트라이크 존에서 공 한 개는 빠지는 바깥쪽 볼.
상대 투수는 3구로 존에서 조금 빠지는 커브를 던졌고 난 지켜봤다.
4구는 몸쪽 꽉 차는 직구. 이제부터 스트라이크 존을 조금 넓게 두고 커트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계속해서 상대의 공을 파울로 커트해내면서 7구까지 승부를 이끌었다.
8구는 가운데로 몰리는 직구. 실투를 가볍게 쳐내면서 안타로 1루에 안착했다.
***
―김성환 : 상대에 개의치 않고 본인의 공을 던질 수 있는 강심장. 강팀과의 경기에서 선발 1순위 투수.
선발투수로 나선 김성환은 중학교 강호 남양주를 상대로 3이닝 무실점으로 선방했다.
그런 김성환의 플레이가 김민수 코치의 노트북에 새롭게 추가됐다.
리틀야구 월드시리즈는 한국에서 열리는 대회와는 다르게 선발 투수가 4이닝까지 던질 수 있었다.
그래서 선발 투수의 능력이 다른 선수들에 비해서 매우 컸다.
지난 3년 동안 팀에서 뛰었던 선발 투수들 중에서 체력, 정신력, 구속 모두 가장 뛰어난 도농의 김성환.
이 정도면 주전 선발 투수로 낙점이다.
4회에는 문정의 유상현과 공릉의 이태환이 각각 1실점을 하며 1이닝씩을 책임져줬다.
크게 지지만 않는다면, 그래서 선수들의 사기가 올라가기만 해도 괜찮은 연습경기가 될 거라고 생각했던 김민수 코치.
하지만 감독인 한승원이 중학교 선수들을 상대로 연습경기를 잡은 이유를 점점 깨달을 수 있었다.
지금 서울/경기/인천지부 리틀야구는 웬만한 중학 야구팀보다 강한 멤버들이었다.
―최강남 : 상황에 따라 플레이를 변형하는 야구 지능이 매우 높음. 어느 포지션, 타순에 세워놔도 에이스의 역할을 충분히 해낼 수 있음. 전국 대회 결승전 투수로도 나선 경력이 있음. 투타 가능.
최강남은 1번 타자로 나선 1회에 안타로 살아나가서 득점으로 들어온 거에 모자라서, 2번째 타석에는 홈런을 날리며 에이스로서의 면모를 제대로 보여줬다.
3번째 타석부터는 다른 선수들과 교체되었지만 팀은 4:0의 점수를 4:2까지 지켜내는데 성공하며 연습경기를 승리로 장식했다.
그 외의 다른 모든 선수들까지 개개인의 기록을 작성하는 김민수 코치, 그 뒤로 한승원 감독이 모습을 드러냈다.
“어때? 우리가 이겼지?”
“예. 김성환이랑 최강남은 진짜 물건인 것 같습니다. 어디 다녀오셨습니까?”
“합숙 훈련 장소 찾고 있었지. 학부모들한테도 사전에 동의 구했으니 오늘부터 당장 시작해야지.”
“훈련 장소요? 여기 남양주에서 하는 거 아닙니까?”
“개 같은 협회에서 돈을 안주는데 어떻게 남양주에서 하냐? 지원금 줄어들어서 모자라. 이번에 대회 대전에서 열린다며? 그래서 대회 경기장 근처인 청주로 잡아놨지. 선수들 작성한 거 줘봐.”
“예. 여기 있습니다.”
김민수 코치는 방금까지 열심히 두들겨대던 노트북을 한승원 감독에게 건네줬다.
얼굴을 찡그리며 노트북을 바라보던 한승원.
잠시 후 만족한 듯 웃으며 이야기를 꺼냈다.
“그래. 이번 멤버들은 진짜 괜찮다니깐. 이번에 결승전도 가고 우승도 한번 해보자. 자네도 재계약해야 될 거 아냐?”
“아··· 그렇습니다. 그러면 선수들 전부 불러 모을까요?”
“그래. 이번 경기 피드백해 주고 30분 후에 버스가 운동장 정문으로 오는 것까지 전부 전달해.”
“네. 다녀오겠습니다.”
야구를 진심으로 사랑했지만 큰 부상으로 다시는 마운드에 설 수 없게 된 김민수 코치.
수소문 끝에 자기를 진심으로 아껴줬던 고등학교 감독이 있는 서울/경기/인천지부 리틀야구 팀의 코치로 들어왔다.
하지만 그곳에는 선수들을 아끼던 감독은 없고 협회와 다른 팀과의 정치질에만 집중하게 된 감독이 남아있었다.
한승원은 이전의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고 오로지 본인의 자리를 지키는 데에만 급급해 하는 모습이었다.
거기다가 김민수 본인도 여기서 일한 지 4년 차.
야구를 사랑하던 자기 자신도 어느덧 결과에만 집착하는 코치가 되어버렸다.
아무리 야구가 좋다지만 처자식까지 굶길 수는 없는 법이기에, 이번 리틀야구 월드시리즈는 정말로 중요한 대회였다.
‘다시 야구를 즐기며 볼 수는 없는 걸까?’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지만 고작 어린아이들에게 이런 내면을 비춰봤자 사기만 떨어질 뿐이다.
김민수 코치는 어색한 무표정으로 아이들을 집합시키고 입을 열었다.
***
“그렇게 해서 오늘 경기는 나쁘지 않았다. 30분 후에 경기장 앞으로 버스 올 테니까, 전부 짐 챙기고 버스 탈 준비 하도록.”
“네. 알겠습니다!”
저놈의 코치는 뭐가 그리 불만인지 좋은 이야기를 하면서도 죽상이었다.
뭐 상관없었다. 경기는 이겼고 내 플레이도 괜찮았으니.
특히 오늘 내 두 타석은 대회 때보다 더 좋았다.
첫 타석에서 커트를 하면서 확실히 깨달은 점은 내가 드디어 이 키에 맞는 완벽한 스윙을 찾았다는 것.
그리고 두 번째 타석에서는 상대의 커브를 골프 스윙 같은 각도로 걷어 올리며 담장을 넘겼다.
이 정도의 타격을 계속 보여줄 수 있다면 월드시리즈도 그리 어렵지는 않을 것이다.
“강남아. 너는 뭐 챙겨왔어?”
“난 그냥 옷이랑 양말. 왜 넌 특별한 거 챙겨왔어?”
“당연하지! 초콜릿이랑···”
같은 팀 출신이었던 박병규는 신이 나서 자기가 챙겨온 음식들을 읊기 시작했다.
그렇게 쓸데없는 이야기를 하고 있던 와중에 버스가 경기장 정문에 도착했다.
“다들 탔지? 왼쪽부터 차례로 번호 한번 외쳐봐.”
“하나, 둘 ··· 스물다섯. 번호 끝!”
“그래. 전부 벨트 하고 우리는 청주의 경기장에서 1주일 훈련 하고 대전에서 열리는 한국 선발전에 참가할거야. 한번만 설명할 테니 잘 들어라.”
리틀야구 월드시리즈 한국 선발전.
룰은 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른 점이라면 선발이 4이닝에 투구 제한은 없다는 정도?
이미 대진표는 뽑았던 상황이기에 우리는 정해진 팀과 싸우면 됐다.
서울/경기/인천지부는 대구/부산/경상지부와 맞붙는다.
그리고 반대편인 충청/강원지부와 제주/광주/전라지부 중 승자와 붙게 되는 단판 토너먼트.
“투수는 첫 경기엔 성환이가 선발로 나갈 거야. 다른 멤버들은 이번 훈련에서 선발과 후보를 결정할 테니 전부 집중하고, 다치지 않도록 잘해보자. 알겠어?”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25명의 예비 한국 대표 팀이 청주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청주에 도착한 후 1주일 동안의 훈련은 별다를 건 없었다.
기본적인 스트레칭, 그리고 달리기. 그 후에는 펑고를 비롯한 수비 훈련과 타격 훈련이 이어졌다.
이 중에서도 한승원 감독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건 타격 훈련이었는지, 타자들에게는 피칭머신 훈련도 이어졌다.
특히 나를 비롯한 클린업 트리오를 맡고 있는 타자들은 피칭머신 훈련이 남들보다 월등히 많았다.
그렇게 일주일 동안의 기초 훈련이 끝이 나고 대회 당일이 되었다.
“오늘이 우리의 공식 경기 첫날이다. 근데 여기서 지면 도전은 바로 끝이야. 다들 이 악물고 뛰어서 한국 대표로 미국 한번 가보자. 구호 한번 외치고 경기장 들어가자고.”
“한국! 한국! 한국!”
아직 한국 대표팀이 된 건 아니지만, 구호를 외치는 것만으로 됐다는 느낌이 물씬 풍겼다.
그리고 정말 지면 월드시리즈 진출은 물 건너가는 것이기도 했다.
“지면 끝이야. 다음은 없어!”
“이렇게 해서 선발전 뚫을 수 있겠어? 짐 싸들고 집으로 돌아갈래?”
1주일 동안의 훈련에서 감독과 코치는 늘 저런 말들을 입버릇 삼아 내뱉었다.
하지만 감독과 코치의 우승에 대한 열망이 상당히 큰 것은 마음에 들었다.
나 역시 리틀야구 월드시리즈 우승을 발판으로 커리어를 쌓아갈 계획이었으니깐.
“플레이 볼!”
경기는 대구/부산/경상의 선공으로 시작됐다.
상대 팀에는 대회 16강에서 만났던 동성 리틀야구 멤버들이 상당수 보였다.
우리의 선발로 나온 김성환은 마운드 위에서 초구를 던졌다.
구속은 117km/h. 역시 13살 아이답게 하루하루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김성환이었다.
김성환은 1번과 2번 타자들을 연이어 삼진을 잡아냈다.
3번 타자는 삼진을 당한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했는지 바깥쪽 공인 초구를 타격했고 공은 내 정면으로 빠르게 왔다.
난 자세를 낮춰 안정적으로 공을 잡아낸 후에 1루로 송구했다.
“아웃!”
이렇게 1회 초 상대의 공격이 삼자범퇴로 끝이 났다.
상대의 선발은 100km/h 중반의 구속을 던지는 좌완투수.
난 이번 경기에서 4번 타자로 게임에 나서게 됐다.
한승원 감독의 말에 의하면 상대 투수가 엄청나서 아무도 칠 수 없는 팀이 아니라면, 계속해서 내가 4번을 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 말은 월드시리즈에서 엄청난 투수가 공을 던지게 된다면 내가 1번을 치라는 뜻.
나에게 있어 많은 것들을 기대한다는 말이었다.
딱히 부담되는 말은 아니었다.
아무리 야구가 투수놀음이라고 할지라도 투수는 축구의 골키퍼와 같다.
지지 않을 수는 있지만 이길 수는 없다.
경기를 이기게 하는 것은 에이스 타자의 몫. 그 몫을 내게 준 한승원 감독이었다.
1주일 동안의 특훈이 효과가 있었는지 우리는 1번 타자인 전하성이 안타로 살아나갔다.
2번 타자인 선중필은 초구부터 번트 모션을 취했다.
1회부터 안정적으로 1점을 뽑고 시작하기를 원하는 한승원 감독.
그는 2번 타자인 선중필에게는 특히나 훈련 기간 동안 번트를 많이 연습시켰다.
그동안의 훈련에 보답이라도 하듯이 안정적인 번트로 주자를 2루에 보내는 선중필.
3번 타자로는 팀 내에서 유일한 중학교 1학년인 이강현이 올라왔다.
아직도 저번에 머리에 날렸던 공에 대한 앙금이 풀리지 않았는지 날 보면 늘 시선을 피하는 모습이었다.
이강현은 상대 투수의 2구를 밀어쳐서 좌익수 앞에 떨어지는 안타를 만들어냈다.
2루에 있던 주자는 3루에서 멈췄다.
원아웃 1, 3루 상황. 타석에 내가 들어섰다.
“스트라이크!”
평소처럼 초구를 지켜보면서 스윙 타이밍을 잡았다.
최근 며칠 동안 피칭머신으로 빠른 공을 하도 봐서 그런지 100km/h 중반의 공은 상당히 느려 보였다.
두 번째로 몸쪽 높은 직구가 오자 난 과감하게 배트를 휘둘렀고 내 타구는 왼쪽 담장을 훌쩍 넘어갔다.
비록 예전의 세리머니를 아는 사람은 별로 없었지만, 오른손 검지로 하늘을 가리키며 베이스를 돌아서 홈으로 들어왔다.
초반부터 기세를 잡는 쓰리런.
이렇게 월드시리즈로 향하는 첫 관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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