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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틀야구 월드시리즈 (1)
정진의 2번 타자가 타석에 들어섰다.
초구를 지켜본 그는 2구째에 번트 모션을 다시 취했다.
하지만 내 수비를 의식해서인지 몸쪽 공을 무리하게 1루로 보내려다 파울.
쓰리 번트 아웃을 의식했는지 번트를 포기하고 타격 폼으로 바꿔서 스윙을 해봤지만 삼진으로 물러났다.
2번 타자가 카운트가 몰려서 스윙 삼진을 당한 걸 의식했는지, 3번 타자는 초구부터 번트를 갖다 댔다.
이번 번트도 3루 쪽으로 향했고 내가 가볍게 잡아내서 1루로 공을 던졌다.
“아웃!”
이렇게 정진의 1회 초 공격이 허망하게 끝이 났다.
우리의 타선은 1회 말부터 터지기 시작했다.
1번과 2번 타자인 채종현, 이주혁이 연달아 안타를 치며 살아나갔다.
그리고 3번인 박병규는 2루타를 치며 선취점을 따냈다.
거기에 내가 상대 투수의 느린 공을 그대로 받아쳐서 홈런을 넘겼다.
상대는 정말로 번트 원툴의 팀이었는지 이후 타격에서도 번트 아니면 삼진을 당하는 기이한 결과가 쏟아졌다.
투수의 수준과 수비 역시 우리가 결승까지 오면서 맞붙었던 다른 팀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약한 모습을 보여줬다.
정말 리틀야구의 수비가 약하다는 걸 간파해내서 번트 하나로만 올라온 팀이었다.
문정 리틀야구는 그런 정진을 상대로 타격과 수비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
나와 박병규가 홈런을 쳤고 다른 타자들 역시 배트를 무자비하게 휘두르기 시작했다.
선발 투수인 유상현은 3이닝을 무실점으로 잘 던져줬고, 결승전에 마무리 투수로 나오게 된 5학년 임현철도 2이닝을 무실점으로 잘 막아줬다.
경기는 8:0 문정의 5회 콜드승. 이렇게 생각보다는 싱겁게 리틀야구 전국 대회를 우승으로 마무리 지었다.
대회가 끝나자마자 그 자리에서 시상식이 진행됐다.
문정 리틀야구의 우승으로 트로피와 100만원의 상금. 그리고 각종 야구 장비들이 부상으로 주어졌다.
“춘천 리틀야구 전국 대회 MVP는······. 문정 리틀야구의 최강남입니다!”
난 당당하게 대회 MVP를 수상하게 되었다. 상금 30만원과 조그마한 트로피.
이것들을 손에 들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
“여보. 우리 강남이가 MVP 수상했어요!”
“그러게? 난 가서 사진 한 장 찍어주고 올게.”
오늘도 연차를 내고 온 최강남의 아버지 최일락.
아들이 MVP를 받는 모습을 사진 찍어주고 있던 그때, 휴대폰이 울렸다.
―리틀야구 월드시리즈 서울/경기/인천 감독인 한승원입니다. 아드님을 선수로 선발하고 싶은데 전화 괜찮으신가요?
월드시리즈···? 리틀야구에도 그런 게 있나 하며 고개를 갸우뚱한 최일락이었지만, 사진을 두어 장 찍고 문자가 온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네. 저는 서울/경기/인천 지부 감독을 맡고 있는 한승원입니다. 다름 아니고 최강남 선수를 주전 유격수로 기용하고 싶어서요. 확인차 전화드렸습니다.”
“세계대회 말씀하시는 건가요? 리틀야구에도 그런 게 있나요?”
한승원 감독의 말은 이러했다.
리틀야구 월드시리즈는 크게 두 개의 그룹으로 나누어져 있다.
미국을 제외한 인터내셔널(국제) 그룹. 이 그룹에는 리틀야구가 활성화되어 있는 8개 나라의 우승팀 하나만이 참가할 수 있다.
그리고 반대편에 있는 미국 그룹. 리틀야구가 활성화되어 있는 미국 전역을 8개로 나눠, 각 지역별 우승 팀이 나오게 된다.
그리고 이 두 개 그룹 1등 팀이 결승전으로 나와 최종 우승팀을 가리게 된다.
8장의 시드중 하나를 가지고 있는 한국은 나가기 위해서는 선발전을 이겨내야 했다.
서울/경기/인천, 제주/광주/전라, 충청/강원, 대구/부산/경상.
이 4개 지부 중에서 승리하는 하나의 지부만이 한국을 대표해서 월드시리즈에 나가게 된다.
“아들과 상의해보고 결정해도 될까요? 저 혼자 결정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닌 것 같아서요.”
“네. 참석 가능하다는 연락을 문자로 해주시면, 저희 쪽에서 일정과 장소 문자로 보내드리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전화를 끊고 트로피를 들며 웃고 있는 아들인 최강남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최일락.
그에겐 이런 의문이 들었다.
‘메이저리그에 가고 싶다고 했는데··· 정말 세계무대에서도 실력이 통할까?’
***
“다른 선수는 전부 연락 해봤어?”
“예. 다들 긍정적인 대답이었는데 한 선수 부모님만 좀 부정적인 상황입니다.”
“누군데?”
“신림의 이강현입니다.”
“연락처 줘봐.”
벌써 4년째 서울/경기/인천 지부 감독을 맡고 있는 한승원.
선발전이 시작되기 전에 선수들 영입에는 도가 튼 그였다.
“여보세요. 저는······ 오케이. 이강현도 영입 됐어. 이제 다 해결된 거지?”
“예. 방금 최강남 부모님도 대회 참여하겠다고 문자 왔습니다.”
“오케이. 진행시켜.”
“네. 알겠습니다.”
한승원 감독의 말에 김민수 코치는 훈련 장소와 일시가 담긴 문자를 학부모 전원에게 전송했다.
***
계획대로 리틀야구 월드시리즈 멤버로 영입됐다.
내가 과거로 돌아와서 계획한 첫 번째 목표는 리틀야구 월드시리즈 우승.
그리고 예전에 진학한 중학교 야구를 거쳐서 U-15에서 좋은 인상을 남기고 미국으로 가는 것이었다.
중학교에서의 선수 생활은 좋은 기억이 많았지만, 고등학교는 정반대였다.
틈만 나면 뇌물을 요구하는 감독부터 내리 갈굼을 조장하는 코치진.
그 코치들 덕분에 선후배간의 기합이나 부조리도 많았고 그로 인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던 나였다.
거기다가 내가 메이저리그로 뛸 당시 같은 팀 소속이었던 클라크는 늘 이렇게 이야기했다.
“다른 리그 뛰고 온 친구들은 낭만이 없다니깐? 루키부터 싱글, 더블, 트리플 A찍고 온 애들은 절박함이 있다고.”
뭐··· 그 이유만은 아니지만 한 번쯤 뛰어보고 싶긴 했다.
한국에서 12년을 뛰고 메이저로 넘어간 나로서는 잠깐의 DL(부상자 명단)에 들었을 때를 제외하고는 2부 리그는 제대로 경험하지도 못했으니.
그래서 첫 번째 목표인 리틀야구 월드시리즈 우승을 하기 위해 훈련장소인 경기도 남양주로 예정 시간보다 빨리 도착했다.
“어?”
처음으로 도착한 줄 알았는데 그곳에는 뜻밖의 인물이 먼저 와서 스트레칭을 하고 있었다.
신림 리틀야구의 이강현. 나와는 연습경기에서 말싸움과 빈볼 설전까지 벌였던 선수였다.
“형이라고 불러도 되죠? 저번에는 미안했어요.”
“···어? 그래.”
하지만 먼저 웃으며 악수를 건넸다.
그때는 적이었지만 같은 팀이 된 이제는 굳이 쓸데없는 신경전을 펼칠 필요가 없었다.
이강현도 형이라 부르며 살갑게 먼저 손을 내미는 내 모습에 당황한 듯 했지만 이내 악수를 받아들였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나자 다른 많은 선수들이 경기장을 채우기 시작했다.
그 중에는 익숙한 얼굴도 몇 보였다.
나에게 116km/h의 공을 던졌던 도농의 김성환도 자리해 있었다.
“강남아! 벌써 왔네?”
“응 아까 도착해있었어. 너네는 같이 오는 거야?”
“응. 상현이네 부모님이 태워주셨거든. 너도 같이 오지.”
“난 아빠 출근 시간에 맞춰서 그냥 조금 더 빨리 왔어.”
문정에서 영입된 선수는 세 명이었다.
투수로는 유상현, 야수로는 나와 3루를 뛰던 박병규였다.
“다들 모여라! 나는 서울/경기/인천 지부 코치를 맡은 김민수라고 한다.”
계획되어있던 모든 선수들이 모이자 코치인 김민수가 이야기를 꺼냈다.
“김성환이 누구지?”
“접니다.”
“그래. 오늘 선발은 너다.”
직접 대회까지 쫓아다니며 모든 선수들의 얼굴을 외우고 있는 김민수였지만, 일부러 퉁명스럽게 이야기했다.
“선발이요?”
“오늘은 남양주 중학교와의 경기에서 선발과 후보를 결정할 거다. 선발 스쿼드는 여기 종이에 쓰여 있으니 전부 보고 가도록 하고, 몸 풀 시간은 1시간이다.”
코치인 김민수는 본인의 말만 하고 자리를 떠났다.
벽에 붙은 종이에는 나와 박병규, 이강현 모두 선발 멤버로 지정되어 있었다.
‘길들이기라도 하는 건가?’
주변을 둘러보자 다들 당황한 듯 굳어있는 모습. 하지만 난 개의치 않으며 몸을 풀기 시작했다.
***
“감독님. 이런 식으로 진행해도 괜찮을까요? 혹시 다치기라도 한다면······.”
“걱정하지 마. 어차피 책임은 내가 다 지니깐.”
3년째 서울/경기/인천지부를 선발전에서 승리해서 한국 대표로 출전시킨 한승원 감독.
하지만 단 한 번도 조 1위로 결승전에 진출하지는 못했다.
그 이유를 단순히 피지컬 차이라고 하기에는 일본이 있었다.
평균 키가 더 작은 일본은 매년 예선 1위를 도맡아하기는 물론이고 종종 우승하는 모습까지 보여줬다.
아무리 일본이 리틀야구부터 인프라가 훌륭하다고는 하지만, 실력 면에서 그렇게 큰 차이가 나지는 않았다.
한승원 감독이 생각하기에 한국이 매년 예선에서 떨어지는 이유는 단 하나.
그것은 실력의 차이도 피지컬의 차이도 아닌 마음가짐이었다.
지난 3년간 선수들은 너무 기가 죽어있었다.
대부분의 선수들은 처음 보는 외국인 선수들의 거친 플레이를 보고 주눅이 들기 일쑤였다.
일본은 해외 팀과도 자주 연습경기를 갖기 때문에 외국인 선수들에게 익숙하다.
하지만 한국은 매년 6학년들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외국인 선수들과 경기를 붙기에 긴장해서 나오는 실수들이 많았다.
그리고 그러한 실수들이 모여서 3년 연속 예선 패배를 만들어냈다.
오늘 중학야구 강호라 불리는 남양주 중학교와 연습경기를 잡은 이유도 하나였다.
아무리 선발이 아닌 중학교 1, 2학년 후보들일지라도 이기긴 힘들 것이다.
그런 상황이어도 주눅 들지 않는 패기. 그걸 넘어서는 무심한 강심장 선수들을 선별해낼 필요가 있었다.
“저거 봐. 이런 상황에도 태연한 강심장 선수들이 있다니깐.”
“그렇네요. 저 선수는 진짜 나이에 비해 침착한 것 같네요.”
한승원과 김민수는 이런 상황에서도 태연하게 몸을 풀고 있는 최강남을 바라보며 말했다.
“저런 애가 필요해. 홈런 타자? 에이스 투수? 3년 동안 그런 애들이 없었어? 큰 대회에서 승패를 좌우하는 건 저런 강심장들이라고.”
“그러면 경기는 어떻게 하면 될까요?”
“내가 박감독한테 말해놨어. 딱 5회만 진행할거야. 지금 선발 선수들은 4회에 전부 바꿔서 모든 선수들 경기 뛰게 하고 특이사항들 전부 기입해서 보내.”
“네. 알겠습니다.”
코치인 김민수는 남양주 중학교 박정필 감독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경기가 시작됐다.
물론 선수들이 부상당하지 않게 조심해달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그렇게 서울/경기/인천지부 팀과 남양주 중학교의 연습경기가 시작됐다.
선발 투수인 김성환은 컨디션이 좋은지 괜찮은 연습구를 던지는 모습이었다.
‘이 선수는··· 홈런이나 안타, 실책에 실점을 해도 다음 타자에게 전혀 기세에서 밀리지 않는 케이스.’
전형적인 한승원 감독이 찾던 선발투수의 상이었다.
그렇다면 자기보다 나이도 많고 덩치도 훨씬 큰 중학교 선수들에게는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
거기다가 김민수 코치의 개인적인 관심사는 하나 더 있었다.
‘최강남··· 쟤는 긴장 하지 않고 실력을 보여줄 수 있으려나?’
좀처럼 선수들에 대해서 칭찬하지 않는 한승원 감독이 저 선수는 꼭 데리고 와야 된다고 입이 닳도록 이야기했었다.
“플레이 볼!”
연습경기가 시작됐고 코치인 김민수는 숨죽이며 경기를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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