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역대급 홈런왕의 탄생-8화 (8/126)

# 8 - 3694500

#

리틀야구 전국 대회 (5)

내 홈런으로 2회 말 1:0으로 앞서게 된 문정 리틀야구. 상대 투수는 당황했는지 다음 타자인 유상현에게도 안타를 얻어맞았다.

착실하게 아웃 카운트를 쌓아주는 세정의 내야 수비였지만, 문정의 타선도 만만치 않았다.

결국 1점을 더 내며 2:0의 스코어에 3회 초 내가 다시 마운드로 올라왔다.

상대 타자들은 리드 당하는 경기가 처음이었는지, 마음이 조급해져서 계속 내 초구를 건드렸다.

그리고 그 초구들은 내야 땅볼과 외야 뜬공 아웃. 별 위기 없이 3회 초가 끝이 났다.

“다음 투수는 상현이가 던지자. 강남이가 상현이 대신 유격수로 들어가면 돼.”

“네. 그렇게 할게요.”

불펜으로 가서 가볍게 몸을 푸는 유상현. 3회 말 공격은 2번 타자인 이주혁부터 시작됐다.

2번째 타석이라 공이 눈에 익었는지 좌익수 앞 안타로 1루에 살아나갔다.

다음은 3번 박병규의 타석. 침착하게 빠지는 공을 거르며 신중하게 승부를 이어갔다.

5구째에 가운데로 몰린 공을 쳐낸 박병규. 공은 빗맞았는지 중견수, 좌익수, 유격수 쪽으로 떴다.

하지만 아무도 잡을 수 없는 애매한 코스로 떨어졌다.

말 그대로 행운의 텍사스 안타. 그렇게 노아웃 1, 2루에 내가 타석에 들어섰다.

“타임!”

세정의 감독인 이선웅이 올라와 투수 교체를 요청했다.

펑―! 새로 올라온 투수가 연습구를 던졌다.

세정의 2번째 투수는 좌완으로 던지는 상당한 강속구 투수였다.

일단 초구를 지켜봤다. 초구는 스트라이크 존을 살짝 벗어나는 볼.

전광판에서 나타난 구속은 111km/h. 리틀야구 기준으로 지옥에서도 데려온다는 좌완 파이어볼러였다.

아마도 결승전에서 선발로 내보내기 위해서 아끼는 카드였을 것이다.

2번째 공은 바깥쪽에 꽉 차는 직구.

“스트라이크!”

첫 타석부터 홈런을 친 나를 견제하는 투구 내용을 보여줬다.

하지만 고작 13살짜리 투수. 언제까지 제구가 완벽할 수는 없다.

거기다가 이 투수에게 점수를 내면 세정은 완벽하게 흔들릴 것이다.

“스트라이크!”

다음 공도 바깥쪽에 꽉 차는 스트라이크를 던지는 상대 투수였다.

난 심판에게 잠시 타임을 외치고 배팅 장갑을 가다듬었다.

이제는 스트라이크 존을 조금 넓게 보고 커트를 하면서 실투를 칠 생각으로 타석에 임해야 한다.

연이어 들어오는 2개의 스트라이크를 커트해내고 하나의 볼을 골라냈다.

카운트는 2볼 2스트라이크. 상대 투수의 약간 언짢은 표정이 보였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무표정하게 다음 투구를 기다렸다.

투수는 다음 공으로 높은 실투를 던졌다. 이 코스면 충분히 담장을 넘길 수 있다.

배트를 스윙하던 그때, 공이 휘어서 아래로 떨어졌다.

‘커브?’

정석적인 커브. 2스트라이크의 상황이기 때문에 여기서 헛스윙은 바로 삼진이다.

오른쪽 팔꿈치를 최대한 내 몸쪽으로 잡아당겨서 걷어 올리는 스윙으로 궤적을 바꿨다.

다행히 배트 정중앙에 공을 맞춰냈다. 배트를 집어던지고 타구를 바라보며 1루로 정신없이 달렸다.

타구는 아쉽게도 펜스를 넘어가지 못하고 펜스 상단에 맞으며 떨어졌다.

나는 2루에 여유롭게 안착했고 1루 주자와 2루 주자는 홈으로 들어왔다.

진심으로 기쁜 마음에 두 주먹을 번쩍 들었다. 그리고 곧바로 내렸다.

리틀야구에서 2루타를 치고 진심으로 기뻐하는 프로선수라니. 조금 추했나?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뭐 어때.

방금 같은 상황은 웬만한 프로들도 삼진을 당했을 것이다.

난 당당하게 우리 팀의 더그아웃을 바라보며 검지를 들었고, 1루에서 힘겹게 홈으로 전력질주로 들어온 박병규가 날 바라보며 검지를 들었다.

이렇게 문정은 4:0으로 강력한 우승 후보, 세정을 압도하기 시작했다.

***

세정 리틀야구의 감독인 이선웅은 진심으로 당황했다. 2회 말 최강남의 홈런은 우연이었다고 생각했으니.

하지만 방금 2루타는 달랐다.

아직 어린 투수의 어깨에 좋지 않을 게 분명했기에, 알려주기만 하고 올해 한 번도 실전에서 사용하지 않았던 커브.

그 커브를 처음으로 사용했고 완벽하게 휘어 들어갔다. 그리고 최강남은 그걸 쳐냈다.

스코어는 0:4. 3회 말이었지만 꽤 큰 점수 차로 벌어졌다.

다행히 팀의 에이스인 김경호는 개의치 않고 다음 타자들을 아웃으로 돌려세우며 3회를 마무리했다.

그리고 돌아온 세정의 4회 초. 이선웅 감독은 자리에서 일어나 직접 사인까지 해가며 공격을 지도했지만 점수를 내지 못했다.

김경호는 계속해서 무실점으로 호투해줬지만 팀의 타선은 평소처럼 터져주지 못했다.

5회 말에는 최강남을 고의사구로 걸러냈지만, 이미 승부는 기울었다.

6회 초에 들어서고 나서야 타선이 점수를 내줬지만 늦어버린 상황.

결과는 2:4 세정 리틀야구의 패배. 이선웅 감독의 4년 연속 결승 진출이라는 기록은 오늘 끝이 났다.

‘한국 야구에 대단한 놈이 하나 나오겠네.’

씁쓸하게 4강 탈락으로 대전으로 돌아가게 된 이선웅 감독은 다시 한번 최강남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

“오늘 저녁은 소고기다!”

“나이스! 감독님 사랑해요!”

수많은 난관을 헤쳐나가며 기적적으로 결승에 진출하게 된 문정 리틀야구.

자기가 지도하는 팀의 첫 결승 진출에 누구보다 들뜬 남기혁 감독이었다.

그래서 오늘은 경기가 끝나자마자 모든 멤버들을 근처의 식당으로 데리고 왔다.

“맛있게들 먹어라.”

“감사합니다!”

정신없이 허겁지겁 먹고 있는 아이들을 보며 미소가 절로 지어지는 남기혁이었다.

그때 남기혁의 휴대폰이 울렸고 잠깐 밖으로 빠져나와 전화를 받았다.

“어. 한수 왜 전화했어?”

“결승 올라갔다며? 축하한다. 문정이 결승을 가는 걸 다보네.”

“당연히 신림이 결승 올라올 줄 알았는데. 아쉽게 됐네.”

남기혁 감독의 고교 동창인 신림 리틀야구의 김한수 감독.

고등학교 시절의 우정을 지금까지 이어왔기에 연습 경기도 자주 붙었던 두 팀이었다.

두 사람 모두 짧은 프로 생활 후에 꽤나 길게 감독 생활을 해왔지만, 결승전에서 두 팀이 맞붙은 적은 없었다.

물론 문정이 결승전에 가본 적이 없는 게 이유긴 했지만.

“그러게. 그건 그렇고 상대 팀인 정진 리틀야구 이야기는 들었어?”

“아니. 내일부터 기록들 찾아봐야지.”

“다 필요 없어. 예전 기록이랑 완전 플레이가 달라. 그쪽 감독 아주 이를 갈고 나왔더라고.”

“왜? 중학교 1학년들로 꽉꽉 채워서 나왔나?”

“아니. 무조건 번트야. 우리는 끝내기 스퀴즈로 졌다니깐? 어쨌든 이 말 해주려고 전화했다. 번트만 조심해라.”

“그래. 알려줘서 고맙다.”

“고마우면 꼭 이겨줘라. 우승 기념으로 술 사는 것도 잊지 말고.”

남기혁은 알겠다는 대답을 하며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생각이 많아졌다.

주로 주자를 진루시키기 위해서 아웃카운트 하나를 버려가며 희생하는 번트.

프로야구에서의 인식은 이랬지만 리틀야구에서는 느낌이 달랐다.

워낙 1루 베이스까지의 거리가 가깝기도 했고, 아직 어린 선수들이다 보니 수비에서 서투르기 마련.

그래서 몇 년 전에는 번트 하나로 우승하는 팀이 나타났었다.

“이게 야구냐? 번트 대기 대회지!”

“이기는 것도 하나의 목적이긴 하겠지만, 이제 야구를 배우는 어린애들인데 우리 애들이 그쪽 부품이에요?”

“번트만 대면 타격은 언제 발전해요?”

그리고 그 우승 팀의 학부모들은 다들 만족하지 못했다.

결승전을 참관하러 온 학부모들의 항의가 끝이 없도록 빗발쳤고, 그 후에 번트만으로 경기하는 팀은 완전히 사라졌다.

그런 팀을 다시 결승전에서 만나게 되다니. 가장 까다롭고 불편한 팀이었다.

‘어떻게 번트를 완벽하게 막아낼까······.’

고민하던 남기혁 감독은 신이 나서 소고기를 두 점씩 집어 들고 있던 최강남을 바라봤다.

그리고 아까의 플레이를 떠올렸다. 처음 보는 변화구에 팔꿈치 각도를 조절해가며 스윙 궤적을 변경하는 플레이.

어떻게 했냐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이내 관뒀던 남기혁이었다.

왜냐하면 이런 천재들은 자기의 플레이를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반사적인 감각이 뛰어나기 마련이었다.

아마 본인도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 라고 판단한 남기혁.

그리고 한가지의 생각이 그의 머릿속을 스쳤다.

이런 천재라면 완벽한 번트 수비도 가능하지 않을까?

박병규가 아무리 수비력이 좋아졌다고 해도 대부분의 번트를 아웃시키긴 힘들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팀이 우승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최강남을 3루로 돌리는 것.

결승전까지는 이제 3일. 저 천재라면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 남기혁 감독이었다.

***

“3루수요?”

“그래. 결승 상대 팀이 신림을 상대로 번트로 대부분 점수 내고 끝내기 점수도 스퀴즈로 냈대.”

“음··· 그럼 제가 결승에서 3루로 뛸게요.”

“그러면 내일부터 번트 연습 위주로 연습해보자.”

“네. 알겠습니다.”

3루수인 것은 별로 상관없었다. 어차피 정식 경기장의 유격수 위치는 리틀야구 경기장의 3루수 위치와 비슷했다.

그보다는 상대인 정진 리틀야구가 정말 번트 연습을 열심히 해왔다면··· 1루수인 채종현이 번트 수비가 가능할까?

거기다가 1루로 향하는 번트는 쉬운 난이도의 수비가 아니었다.

2루수와 투수의 커버플레이까지 필요했기에, 13살의 선수들에게 전부 기대하기에는 무리였다.

그렇다면 가장 쉬운 돌파구는 하나였다.

“몸쪽 스트라이크?”

“상대가 번트 위주로 올라온 팀이래.”

“그거랑 무슨 상관이야?”

난 결승전 선발로 뛸 유상현에게 번트 수비의 어려움에 대해 설명해줬다. 그리고 이 돌파구를 알려줬다.

그것은 바로 우타자에게는 몸쪽 공을, 좌타자에게는 바깥쪽 공을 던져서 3루수인 나에게 번트의 대부분이 오게 하는 것.

몸쪽 직구를 1루로 보내는 번트는 훨씬 난이도가 높기에 충분히 승산이 있는 전략이었다.

“그럼 내가 내려가면 그 다음엔 어떻게 하지?”

“3이닝이면 충분해. 그 정도로 실패하면 기가 죽어서 제대로 번트를 대지도 못할 거야.”

“그래. 그럼 내일부터 그쪽으로 던지는 걸 연습해봐야겠네.”

다음날부터 3루에 내가 뛰고 유격수에 박병규가 뛰는 포지션으로 바꿔서 연습을 시작했다.

당연히 주된 훈련은 번트 수비였다.

역시나 내 예상대로 1루 쪽으로 완벽하게 댄 느린 번트는 잡기 힘들었다.

남기혁 감독님은 내야 포지션을 바꾸면서 훈련을 계속했고 최종 포지션이 정해졌다.

1루인 채종현이 유격수로 가고 유격수인 박병규가 1루수로 들어갔다.

그 다음날인 시합 하루전날에도 이 포지션으로 계속해서 내야 수비를 연습했다.

그렇게 대망의 결승전 날이 되었다.

1회 초 상대인 정진 리틀야구의 선공으로 경기가 시작됐다.

우리는 번트 수비를 대비해서 1루수와 3루수가 약간 전진수비 형태를 갖추고 있었다.

초구를 지켜본 정진의 1번 타자는 2번째 공에 바로 번트 모션을 취했다.

약속된 대로 유상현은 몸쪽 공을 던졌고 그와 동시에 나와 박병규는 앞으로 달려 나왔다.

상대가 갖다 댄 번트는 3루 쪽으로 느리게 굴러왔다.

어린 선수치고 상당히 잘 댄 번트였다.

거기다가 발도 가장 빠른 1번 타자. 난 앞으로 달려가며 맨손으로 공을 잡은 후 바로 1루로 던졌다.

상당히 가속도를 내며 달려왔기에 공을 던지고 앞으로 넘어졌다.

넘어진 그 상태로 일어나지도 않고 1루를 바라봤다.

“아웃!”

1루심은 아웃을 선언했고 우리의 작전이 완벽하게 통했다.

완벽한 러닝 스로우에 경기를 보러 온 수많은 관객의 환호 소리가 내 귀에 들렸다.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