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역대급 홈런왕의 탄생-7화 (7/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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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틀야구 전국 대회 (4)

바로 전 경기에서 116km/h를 던졌던 김성환의 공을 봐서 그런지, 100km/h 초반대의 공이 너무나 느려보였다.

하긴. 그러니 내 앞의 3명의 타자들도 모두 출루했을 것이다.

일단 투수의 초구를 지켜보며 스윙 타이밍을 맞췄다.

정말 밋밋한 직구가 날아오는 걸 보며, 다음 공이 스트라이크 존 근처로만 와도 휘둘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대 투수의 두 번째 공은 스트라이크 존 한가운데로 몰리는 직구.

고민할 것도 없이 과감하게 배트를 휘둘렀고, 공을 배트로 맞춰냈지만 손에 떨림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맞는 순간 알 수 있는 완벽한 타격이었다.

굳이 내 타구를 지켜보지 않아도 넘어갔다는 걸 확신할 수 있었다.

무신경하게 배트를 집어 던지고 베이스를 돌기 시작했다.

3루 베이스를 돌아서 홈으로 향하자 감독님과 멤버들이 다들 나와 있는 모습이 보였다.

“최강남! 나이스 홈런!”

“역시 문정의 4번 최강남!”

“형. 감사합니다. 2회에도 잘 던져볼게요!”

가장 먼저 반겨주는 건 감독인 남기혁.

그 뒤를 이어 1루 주자였던 박병규가 엄지를 치켜세우며 너스레를 떨었다.

선발 투수인 임현철은 자기의 멘탈을 잡아줘서인지, 내 홈런 덕분에 부담이 줄었는지는 몰라도 고맙다며 감사함을 표했다.

그 외에도 수많은 찬사가 내가 홈 플레이트를 밟기 직전까지 쏟아졌고, 난 이 순간을 충분히 즐겼다.

그리고 홈 플레이트를 밟은 후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미소를 지으며 오른손을 들었다.

내가 검지로 하늘을 가리키자 감독님을 포함한 모든 멤버들이 같은 자세를 취했다.

이렇게 또 하나의 홈런을 추가했다.

***

같은 시각. 관객석에서는 두 명의 남자가 이 상황을 지켜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역시 수비도 타격도 유격수로는 문정의 최강남보다 대단한 선수는 없네요.”

“쟨 이미 확정이잖아. 넌 이틀 전에 신림 경기 잘 보고 왔어?”

“네. 1루로는 이강현을 데리고 오는 게 제일 나아 보입니다.”

“그래. 최강남은 예선 때 확정됐고 오늘은 3루수 박병규. 쟤 데리고 올만 한가 확인해보자고. 다른 선수들도 겸사겸사 보면 더 좋고.”

“네. 현재 3루수 후보로는 압구정 민정훈과 저 박병규란 친구인데, 수비는 민정훈이 낫지만 타격은 비교도 안 되는 박병규의 압승인 것 같습니다.”

서울/경기/인천 리틀야구 연맹의 감독인 한승원과 그의 코치인 김민수였다.

3주 후에 열릴 리틀야구 월드시리즈 한국 선발전.

전국에 130여개의 팀이 4개 지부로 나눠 승부를 겨뤄서 한곳만이 한국 대표로 나가게 된다.

늘 우승 팀은 일본이나 미국. 한국의 마지막 우승은 10년도 더 된 과거였다.

하지만 올해가 한승원 감독의 마지막 계약 년도.

이번에도 좋은 기회를 잡지 못하면 재계약이 불투명한 한승원이었기에, 평소보다 더욱 까칠하고 엄격하게 선수들을 선별 중이었다.

이런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박병규는 더그아웃으로 돌아와 정신없이 음료수를 마시고 있었다.

***

2회 초에는 하위 타선을 상대한 임현철. 비록 상대에게 안타를 하나 맞았지만 무실점으로 이닝을 마무리했다.

2회 말 문정은 2루에 있는 주자를 홈으로 불러들이지 못하고 4:3의 균형이 이어졌다.

위기는 3회 초에 다시 찾아왔다. 1번과 2번 타자를 이번에도 잘 처리했지만, 또 다시 안타를 치고 나간 3, 4번 타자.

“타임!”

문정의 남기혁 감독은 위기 상황에 나를 투수로 등판시켰다.

“고생했다.”

“형. 죄송해요. 제가 3회까지는 잘 던졌어야 했는데······.”

“넌 이제 5학년이잖아. 그리고 3회까지 겨우 1아웃인데 뭘. 내가 처리할게.”

시무룩한 임현철에게 위로의 말을 던지며 공을 받았다.

이 나이 때는 1년이라는 시간이 매우 크게 느껴질 시기다.

5학년이 타선이 강한 동성을 상대로 2.2이닝을 던진 것만으로도 충분히 제 몫을 다해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난 마운드에 올라가 연습 구를 던지기 시작했다.

5번 정도의 공을 던지며 몸을 풀던 난 어깨가 다 풀렸다는 의미로 포수인 정인철에게 손으로 ok 사인을 보냈다.

그리고 첫 번째 와인드업을 시작했다. 내 초구는 107km/h.

선발 투수보다 10km/h나 빨라진 공에 적응하지 못한 5번 타자를 삼진으로 돌려세웠다.

내 투구에 감명이라도 받은 걸까? 내가 등판하고 문정의 타선은 터지기 시작했다.

내 타석에서 상대 투수는 고의사구로 도망가는 피칭을 하였지만, 다음 타자로 타석에 들어선 유상현에게 홈런을 얻어맞았다.

그 후로 연이은 안타를 견뎌내지 못한 상대 선발 투수. 그도 3이닝을 채우지 못하고 마운드를 내려왔다.

우리는 동성의 다음 투수를 상대로 무자비하게 배트를 휘두르기 시작했고 동성은 그렇게 무너졌다.

그날 서울/경기/인천의 코치인 김민수의 노트북에는 몇 개의 이름이 더 추가됐다.

8강 상대는 상무 리틀야구가 올라왔다.

강력한 투수진과 수비력을 바탕으로 올라온 팀. 초반에는 강팀답게 1회를 삼자범퇴로 마무리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하지만 내 홈런으로 흔들리기 시작한 선발 투수는 연이은 안타를 허용했다.

상대의 선발 투수가 조금 이른 2회에 강판당했다.

그리고 다음으로 나온 투수들도 계속해서 안타를 얻어맞으며 5회 10:2 콜드 게임으로 가볍게 승리를 쟁취하며 4강 진출에 성공했다.

“4강은 선발을 강남이로 쓸 거야. 이번 상대인 세정이 매년 대회 우승 팀인 건 알지?”

“그렇습니다!”

“우리가 이번에 4강에서 세정을 꺾으면 결승에서는 아마 신림을 만날 거야. 세정만 이기면 우리가 우승할 수 있어. 다들 마지막까지 집중해보자.”

4강은 전통의 강호 세정 리틀야구. 이번 대회에서는 처음으로 내가 선발 투수로 나오게 되었다.

“우리가 세정 이겨서 결승 진출하면 소고기 쏜다!”

“제가 꼭 홈런 칠게요! 소고기를 위해서!”

소고기라는 소리에 눈이 빛나서 소리치는 박병규.

너무나 큰 목소리에 모든 팀원들이 웃으며 긴장된 분위기가 많이 풀어졌다.

4강 경기가 끝나고 다 같이 저녁을 먹은 후 숙소로 향했다.

“만약 문정이 우승한다면, 아니 여기까지 온 것도 다 네 덕분일 거야.”

“나만 잘해서 경기를 이길 수 있나? 다 같이 잘하니깐 4강까지 온 거지.”

“그래도 중요할 때마다 강남이 네가 공격이랑 수비에서 좋은 모습 보여줬잖아. 너 없었을 땐 맨날 예선 탈락이었어.”

“내일 나 다음 투수는 너일걸? 고마우면 내일 잘 해줘서 우승할 수 있게 힘 좀 합쳐줘.”

“그래. 나만 믿어.”

내가 선수반으로 오기 전까지 유일한 에이스 투수였던 유상현.

13살의 어린나이인데 꽤나 부담감이 심했는지 나에게 고마움을 표현하는 게 좀 짠해 보였다.

내일은 내가 그 부담감을 조금 줄여줘야겠다.

***

시간이 흘러 4강 당일이 되었다.

“나 믿고 던져. 내가 다 잡아줄 테니깐.”

“난 너처럼 긴장 안하거든? 그래도 잘 잡아주라.”

“당연하지. 너 고의사구해도 내가 홈런 친 거 봤지? 우리가 세정 잡고 결승 가보자!”

언제 우울했냐는 듯이 나 대신 유격수로 출장한 유상현은 자신감 있는 모습을 드러내며 농담을 던졌다.

상대는 몇 년간 단 한 차례도 결승전에 올라가지 못한 적이 없는 세정 리틀야구.

마운드에 올라서 로진백을 몇 차례 매만진 후 있는 힘껏 공을 던졌다.

펑―! 내 공은 정인철의 포수 미트에 꽂혔다.

“스트라이크!”

상대 1번 타자의 당황한 표정을 뒤로 한 채, 공을 돌려받은 후 전광판을 바라봤다.

구속은 110km/h. 그동안 대회에서 계속 투수를 해서인지 구속이 조금 늘었다.

다시 와인드업하고 공을 던졌다. 이번 구속은 111km/h.

아무리 세정이어도 이 정도의 강속구는 쉽게 칠 수 없을 것이다.

순식간에 공 6개로 1, 2번 타자를 모두 삼진으로 돌려세웠다.

그리고 타석에 등장하는 키가 상당히 커 보이는 3번 타자, 윤희근이 올라왔다.

이번에도 스트라이크를 요구하는 정인철의 사인에 고개를 흔들었다.

그러자 정인철은 스트라이크 살짝 바깥쪽에 미트를 갖다 댔고, 난 고개를 끄덕이고 와인드업을 시작했다.

카운트가 몰리면 삼진을 당한다는 부담감 때문이었는지, 바깥쪽 볼을 타격하는 윤희근.

공은 3루로 향했고 박병규는 그동안의 펑고 특훈 덕분인지 예전보다 훨씬 유연한 동작으로 공을 잡아서 1루에 던졌다.

“아웃!”

세정의 상위 타선을 삼자범퇴로 돌려세우고 더그아웃으로 향하는 나였다.

“나이스 피칭!”

“너 수비 많이 늘었다? 연습 경기 때 놓쳤던 코스였는데.”

“난 스펀지 같은 남자니깐 당연하지. 네가 가르쳐준 거 다 흡수했다.”

음식도 야구 기술도 바로 흡수하는 거구의 박병규. 그가 씩― 웃으며 더그아웃으로 뛰어 들어가서 음료수를 마시는 모습에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났다.

상대 투수는 좌완 투수인 장요한. 초구에 던진 공은 102km/h. 엄청난 강속구를 던지는 투수는 아니었다.

하지만 세정은 리틀야구 강호의 면모를 제대로 보여줬다.

1번 타자 채종현이 2―유간을 가르는 안타성 타구를 쳐냈지만, 유격수인 윤희근이 슬라이딩으로 잡아낸 후 1루에 송구해서 아웃을 잡아냈다.

다음으로 타석에 들어선 이주혁. 투수의 초구를 그대로 받아쳤다. 타구는 3루수에게 향하는 느린 땅볼.

문정에서 가장 달리기가 빠른 선수 중 하나였기에 충분히 살 수 있는 코스였다.

“아웃!”

하지만 3루수인 고용석이 빠르게 달려오며 타구를 맨손으로 잡아 송구해서 아웃을 만들어냈다.

고작 13살짜리 수비가 이렇게 완벽하다니.

충청도에서 가장 강한 팀인 대전의 세정. 대전을 연고로 한 이글스의 미래는 밝아보였다.

3번 타자인 박병규마저 중견수 뜬공으로 물러나며 세정도 삼자범퇴로 1회 말을 마무리했다.

난 글러브를 챙겨 마운드로 향했다.

***

최고의 리틀야구인 세정을 지휘하고 있는 이선웅 감독.

4년 동안 최악의 기록이 준우승. 그러한 팀을 만드는데 있어서 감독 본인의 노력이 제일 컸다.

선수들에게 늘 기본기를 강조하며 수비를 중점으로 팀을 키웠다.

물론 타격 역시 최고라고 불리는 세정. 매주 연습 경기를 잡거나 자체 청백전을 하며 실전 감각을 높여줬기 때문이다.

거기다가 매년 수많은 대회에서 우승을 경험한 세정의 선수들은 큰 경기에서 경험치도 많이 쌓였다.

그래서 이선웅은 4강 상대로 나온 문정 리틀야구를 보고 이번에도 결승행은 확정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문정은 올해 인천에서 열린 대회에서 예선전 콜드 승의 제물이었으니.

하지만 경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최근에 단 한 번도 당한 적 없던 1회 삼자범퇴.

1회 말 수비를 깔끔하게 해내며 2회 초 공격에 들어섰지만, 이번에도 삼자범퇴로 끝나버렸다.

특히 4번 타자인 고용석이 삼진을 당했던 게 언제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데, 오늘 3구 만에 힘없이 더그아웃으로 돌아오는 모습을 보며 갸우뚱했다.

그래도 선발이 던질 수 있는 최대 이닝은 겨우 3이닝.

저번 대회 예선에서 못 보던 얼굴이었지만 혹시나 저 투수의 공을 치지 못하더라도, 0:0의 균형은 4회 초에 깨질 거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이유로 2회 초 공격에서 삼자범퇴에도 여유롭게 다리를 꼬고 앉아서 경기를 지켜보던 그였다.

하지만 전혀 예상하지도 못한 순간 0:0의 균형이 깨졌다.

4번 타자로 나선 상대의 선발 투수. 그는 공 하나를 지켜보더니 2구째에 엄청나게 큰 타구를 때려냈다.

“쟤 뭐야?”

혼자 다 해 먹는 예상도 못 한 이 상황에 이선웅 감독은 선글라스를 벗고 자리에서 일어나 타구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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