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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틀야구 전국 대회 (3)
“여보. 우리 강남이 야구선수 시킬까?”
“왜? 저번에는 그렇게 반대하더니.”
“그때는 이렇게 잘하는 줄 몰랐지. 엄청 재능 있어 보이는데?”
“그러게. 생각보다 너무 잘해서 놀랐네.”
오늘 최강남은 며칠 전 야구 선수가 되겠다는 선언에 미심쩍게 생각하던 정승연, 그의 엄마마저 마음을 되돌리게 하는 완벽한 플레이를 보여줬다.
아빠인 최일락의 자랑스러움은 말할 것도 없었고.
경기는 문정의 4회 콜드게임 8:0 승리. 최강남은 4회 초 노아웃 만루의 찬스에서 또 한 번 홈런을 때려냈다.
오늘의 기록은 홈런 포함 3타수 3안타 2홈런 7타점.
거기다가 4회 말에 찾아온 2아웃 1,2루의 위기에서 어려운 타구를 잡아내며 공수에서 모두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야구를 전혀 모르는 사람이 봤더라도 오늘 경기의 주축은 누가 뭐래도 최강남이었다.
“여보! 이럴게 아니고 아이스크림이라도 사서 선수들 나눠줄까?”
“당신이 사 올래? 난 일단 감독님이랑 대화 좀 해봐야겠어.”
“그래요. 그러면 내가 사가지고 올게. 이야기하고 있어.”
최일락은 한껏 들뜬 부인을 옆에 두고 더그아웃으로 내려갔다.
“감독님. 안녕하세요. 전 최강남 아빠 되는 최일락이라고 합니다.”
“아! 안녕하십니까. 저는 문정 리틀야구 감독을 맡고 있는 남기혁이라고 합니다.”
“다름 아니고 오늘 강남이가 야구 하는 모습을 처음 봤는데, 감독님이 보셨을 땐 저희 아들이 야구 선수로서의 재능이 있는 것 같나요?”
“당연하죠. 제가 리틀야구 감독을 한 지 어느덧 10년이 넘었는데, 그동안 봐왔던 선수들 중 가장 재능이 넘칩니다. 거기다가···”
굉장히 들뜬 목소리로 계속해서 최강남의 강점과 재능에 대해서 일장연설을 이어가는 남기혁 감독.
그 이야기들을 듣던 최일락도 가슴이 들뜨기 시작했다.
***
예선 통과에 있어서 가장 큰 변수가 될 거라고 생각했던 서면 리틀야구.
그 팀을 오늘 4회 콜드게임으로 잡아냈다.
물론 내 홈런 두 개와 안타성 타구를 잡아내던 수비가 크게 도움이 됐지만, 그 외에도 다른 팀원들의 공수 모두 빛을 발했다.
‘이 정도면 정말 대회 우승도 가능하겠는데?’
나와 팀원들이 오늘의 경기력을 계속 보여준다면 좋은 결과는 따라올 것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니 조금씩 대회를 우승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아이스크림 하나씩 먹고들 해요.”
“엄마?”
“강남이 엄마가 오늘 경기 하는 거 봤는데 엄청 잘하더라?”
“아이스크림! 감사합니다!”
갑작스런 엄마의 등장에 당황한 나였지만, 거구의 박병규는 고맙다는 인사를 넙죽하며 아이스크림을 입에 하나 물었다.
일단 감독님에게 엄마가 왔다는 말을 하려고 고개를 돌렸는데, 굉장히 들뜬 모습으로 아빠에게 신이 나서 설명하는 남기혁 감독을 보고 고개를 다시 돌렸다.
나도 차분하게 앉아서 다른 팀원들과 아이스크림을 먹기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이야기가 끝이 났는지 아빠가 내게 말을 걸었다.
“오늘 경기 처음부터 봤는데 엄청 잘하더라? 그래서 아까 엄마랑 이야기 해봤는데, 야구 중학교 가는 거 찬성하기로 했어.”
“감사해요. 한번 열심히 해볼게요.”
“아빠는 그래도 우리 강남이가 안 다치고 즐겁게 했으면 좋겠어. 우리는 이 근처에 약속이 있어서 이만 가볼게.”
“네. 대회 끝나고 집에서 봬요.”
부모님이 그렇게 떠나시고 감독님은 모두를 불러 모았다.
그리고 이번 경기 피드백이 이어졌다.
평소와는 다르게 칭찬이 주를 이뤘고 주루에서 아쉬운 플레이들을 몇 가지 읊어주셨다.
“그래서! 오늘은 숙소까지 뛰어가자. 여기서 고작 3km 떨어져 있어. 문정! 할 수 있지?”
“그렇습니다!”
칭찬과 격려를 북돋아 줘서일까? 경기를 방금 뛰어서 지칠 법도 했지만, 모두들 파이팅 넘치는 대답.
그렇게 우리는 뛰어서 숙소로 향했고 대회 첫 경기가 이렇게 끝이 났다.
2경기 괴산 리틀야구와의 경기는 초반부터 승부가 기울었다.
박병규와 나 그리고 유상현이 홈런을 치면서 백투백투백 홈런으로 초반 기세를 완벽하게 잡았다.
선발 투수는 5학년 투수들을 기용하면서 주전 투수들의 체력까지 아끼면서 경기를 승리할 수 있었다.
3경기 도농 리틀야구는 늘 예선에서 떨어졌었기에 조에서 가장 약팀으로 평가받았었지만, 서면과 괴산을 잡아내면서 우리와 동점인 2승 0패로 공동 1위였다.
도농에는 올해 6학년, 무려 110km/h를 던지는 김성환이 있었고 그가 1,2차전에서 모두 선발로 나와 승리를 견인 중이었다.
2회 초 첫 타자로 나선 나에게 대회 최고 구속인 116km/h까지 던졌다.
18.44m인 성인 마운드 체감 속도로 151km/h의 초 강속구.
내 타격은 아쉽게도 펜스 바로 앞인 상대 중견수의 글러브로 빨려 들어갔고 3회까지 9명의 타자 모두를 아웃으로 잡아내며 한 명의 출루도 허락하지 않았다.
하지만 리틀야구의 선발 최대 이닝은 3이닝이었고 김성환이 내려온 도농은 힘이 없었다.
그런 도농을 상대로 우리 타선은 폭발하기 시작했고 5:2로 승리를 거머쥘 수 있었다.
“와······. 쟤는 6학년 맞냐? 무슨 저런 공을 던지지? 6회까지 다 나왔으면 우리가 떨어질 수도 있었겠어.”
“그래도 네가 3이닝 무실점으로 0:0 균형 맞춰줬으니, 우리가 4회부터 점수 뽑아서 이길 수 있던 거지.”
“그래도 쟨 너무 잘 던진다.”
“그러게? 쟤는 나중에 프로 선수 되겠네. 그래도 4회에 올라왔어도 힘들어서 못 던졌을 거야.”
“그렇겠지? 저렇게 6회까지 던지면 괴물이지. 그런 사람이 어디 있겠어.”
KBO에서 신인왕을 받았던 건 나였지만, 나와 마지막까지 신인왕 후보 경쟁을 했던 김성환.
처음에는 몰랐지만 던질 때 발을 높이 드는 그 버릇을 보자, 라이온즈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김성환이라는 사실을 한눈에 깨달았다.
리틀야구 출신이었다니. 예상도 하지 못했는데 하마터면 예선에서 떨어질 뻔했다.
상대의 빠른 구속과 완벽한 제구력에 살짝 기가 죽은 유상현.
하지만 그 어떤 6학년을 데리고 와도 저거보다 잘 던지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난 유상현에게 고생했다고 계속 다독여주며 멘탈을 치유해줬다.
그렇게 조 1위로 살아남게 된 문정 리틀야구. 본선에 진출하게 되었다.
“다들 예선 통과하느라 고생 많았다! 우리 다음 상대는 대구 지역 대회에서 늘 우승하는 동성 리틀야구다.”
“그 팀은 어떤 팀인가요?”
“설명은 고기 먹으면서 해줄게. 오늘 예선 통과했으니 회식이다!”
“나이스!”
3년 만의 문정 리틀야구의 본선 진출. 감독인 남기혁은 사비를 털어 선수들에게 삼겹살을 사 먹였다.
마음 같아서는 소고기라도 먹이고 싶었지만, 최근 주머니 사정이 그리 풍족하지는 않았기에.
“먹으면서 들어. 동성 리틀야구에 대해서 설명해 줄게.”
동성 리틀야구의 장점은 공격과 수비 모두 구멍이 없다는 것.
클린업 트리오인 3, 4, 5번 타자가 예선전 3경기에서만 12점을 쓸어 담은 다이너마이트 타선이기도 했다.
거기다가 작년 전국 대회 준우승 당시에 투수로 뛰었던 선수가 둘이나 있었다.
그 중 하나는 결승전 마무리로 뛰었기에, 문정의 가장 큰 약점 중 하나인 큰 경기 경험이 없다는 단점도 갖고 있지 않았다.
“작년 그 마무리 투수가 선발로 올라올 거야. 걱정할건 없어. 작년에 5학년이어서 올해 너네와 같은 6학년이거든. 걔만 마운드에서 끌어내리면 다음 투수는 훨씬 상대하기 편할 거야.”
“저희는 선발로 누가 뛰죠?”
“우리는 선발로 현철이가 나간다. 그리고 남은 이닝은 강남이가 던질 거야. 연장전까지 경기가 이어지면 상현이도 또 나올 수 있으니 그때 보고 이야기해 줄게.”
본선부터는 토너먼트이기 때문에 단 한 번의 패배는 바로 짐을 챙겨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렇게 우리의 토너먼트가 시작됐다.
***
시간이 흘러 드디어 16강 당일 목요일. 경기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은 1회 초지만 남기혁 감독은 얼굴이 새하얘졌다.
내년에 에이스로 팀을 이끌 충분한 재능이 있는 5학년 임현철. 그를 선발 투수로 내보냈지만 역시 동성의 타선은 강했다.
1, 2번 타자는 모두 아웃처리 시켰지만, 3번과 4번 타자의 연이은 안타. 그리고 5번 타자가 3점 홈런을 쏘아 올리면서 스코어는 0:3.
16강부터는 토너먼트이기에 단 한 경기만 패배하더라도 도전은 여기서 끝이다.
3점 홈런에 멘탈이 제대로 흔들렸는지 2구 연속 볼. 투수를 바꾸기 위해 일어나서 마운드로 올라가려는 남기혁 감독이었다.
그때 유격수였던 최강남이 심판에게 타임을 외치고, 투수에게 달려가 뭐라고 귓속말을 속삭여줬다.
그걸 본 남기혁은 일단 자리에 다시 앉았다.
아무리 3점차라지만 점수가 많이 나는 리틀야구 특성상 뒤집을 수 있는 상황은 충분히 나올만했으니.
거기다가 8강에서 선발로 나올 유상현을 16강에서 등판시킨다면 8강을 이기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할 것이다.
다시 경기가 재개되고 다행히 임현철의 공은 스트라이크존에 들어왔다.
동성 6번 타자는 다음 공을 타격했고 빠른 땅볼을 최강남이 안정적으로 잡아 1루로 던졌다.
“아웃!”
그 어느 때보다 길었던 1회 초 수비가 드디어 끝이 났다.
“강남아. 잠깐만 와볼래?”
“네. 부르셨어요?”
“아까 현철이한테 뭐라고 했던 거야?”
“그냥 긴장하지 말라고 했어요. 몸에 힘이 들어가는 것 같다고 힘 빼고 던지라고. 그러면 제가 다 잡아준다고 했죠.”
“그래. 감독이 해야 되는 일인데 고맙다.”
“별 말씀을요. 그리고 저희 타선도 동성 못지않게 강한데, 금방 점수 따라잡을 수 있을 거예요. 저 타격 준비하러 가볼게요.”
“그래 알겠다. 잘··· 잘하고 와라.”
차마 감독으로써 13살의 선수에게 부담을 줄 수는 없었기에, 잘 치고 오라는 말 대신 잘하고 오라는 말로 최강남을 보낸 감독 남기혁이었다.
‘누가 어른이고 누가 아이인지.’
어른스럽게 팀원들의 멘탈까지 챙기며 에이스 역할을 해주는 최강남을 보고 허탈한 웃음이 저절로 났다.
꼭 자신의 고등학교 시절 에이스였던 주장의 리더십을 보는듯했다.
0:3으로 뒤쳐진 1회 말 문정 리틀야구의 공격이 시작됐다.
1번 타자인 1루수 채종현은 끈질기게 승부하던 끝에 5구에 안타로 1루로 살아나갔다.
2번은 중견수 이주혁. 빗맞은 내야 땅볼을 쳐냈지만 빠른 발로 내야 안타를 만들어냈다.
3번은 최강남이 오기 전까지 에이스를 담당했던 박병규.
누가 봐도 겉모습은 전형적인 거포의 체형이었지만, 굉장히 침착한 성격이기도 했다.
연이은 안타에 상대 투수도 당황했는지, 풀카운트까지 가는 접전 끝에 볼넷으로 1루로 걸어 나갔다.
노아웃 만루. 절호의 찬스에 최강남이 배트를 들고 늠름하게 타석에 들어섰다.
‘설마 여기서 또 넘겨줄까?’
약간의 기대감과 살짝 의심의 눈초리로 최강남을 바라보던 남기혁.
하지만 이내 주자로 시선이 돌아갔던 남기혁은 의심의 눈초리를 거둘 수밖에 없었다.
주자들의 눈빛은 기대감을 넘어서는 무한한 신뢰의 눈빛.
자기가 고등학교 시절 에이스였던 선배를 바라보던 바로 그 눈빛이었다.
초구를 지켜본 최강남은 두 번째 공에 배트를 휘둘렀고 공은 저 멀리 날아가는 모습.
감독인 남기혁은 고등학교로 돌아온 듯, 가장 먼저 더그아웃을 뛰쳐나와 홈 플레이트로 달려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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