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 - 3688273
#
리틀야구 전국 대회 (2)
“도착했으니깐 짐 숙소에 두고, 유니폼으로 갈아입고 나와. 밥 먹고 몸 풀러 가자.”
“알겠습니다!”
남기혁 감독님의 말에 모두들 숙소로 들어갔다. 숙소의 상태는 생각보다 괜찮았다.
비록 2인 1실의 호텔 구조는 아니었지만 다 같이 누워서 자도 충분할 정도로 큰 펜션.
벽에 걸린 아담한 시계는 11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경기 시작 시간은 2시이기 때문에 아직 한참의 여유가 남아있다.
“강남아. 넌 긴장도 안 되냐? 너 말고 다들 한숨도 못 잤어.”
“긴장될 게 뭐가 있어. 그냥 예선전인데 몸 풀겠다는 마음으로 뛰면 되지.”
“하필이면 같은 조에 서면이 있네. 저번 대회에서도 서면 만났을 때, 내가 선발로 던져서 떨어졌는데······.”
“야. 그땐 나도 없었고 주전도 달랐잖아. 이번엔 우리가 무조건 이겨. 내가 다 잡아줄 테니깐 걱정 말고 던져.”
선발 투수인 유상현은 많이 긴장했는지 표정이 굳은 모습이었다.
어떤 말을 해줘야 긴장을 풀어줄 수 있을지 고민하던 그때, 박병규가 태연스럽게 농담을 던졌다.
“나랑 강남이가 백투백홈런 치면 되잖아. 2:0으로 시작할 텐데 고민하지 말고 가벼운 마음으로 던져. 정 안되면 기합이라도 넣어보던가. 너 늘 하던 거 그거 있잖아.”
“······그럴까? 흐아!”
경기장에서 말고는 부끄러운지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유상현.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기합을 지르자 경직된 얼굴이 살짝 풀어졌다.
“긴장 좀 풀리지? 그럼 이제 밥이나 먹으러 가자.”
밥 먹을 생각에 신이 났는지 자작곡인 ‘밥 주세요’를 흥얼거리며 빠르게 식당으로 걸어가는 거구의 박병규. 우리도 그 뒤를 따랐다.
점심으로는 춘천의 상징인 닭갈비가 나왔다. 다들 배가 고팠는지 허겁지겁 빠르게 먹어 치웠다.
“다들 밥은 잘 먹었어?”
“그렇습니다!”
“뭐야? 버스에서 긴장하던 애들은 어디 갔어? 30분 휴식했다가 12시부터 경기 준비 시작하자.”
너스레를 떨면서 이야기하는 남기혁 감독. 하지만 본인도 긴장이 되었는지 목소리가 떨리는 게 느껴졌다.
스트레칭으로 시작된 몸 풀기는 가벼운 달리기와 펑고, 티볼 타격으로 끝이 났다.
“고생했다. 음료수 마시고 좀 쉬고 있다가 경기장으로 가자.”
한여름의 무더운 날씨답게 다들 땀이 맺혀있는 모습. 곧 이어 감독님의 말에 우리는 모두 일어났고 경기장으로 향했다.
경기장에 먼저 대기하고 있던 서면 리틀야구. 상대 팀과 악수를 한 후 더그아웃으로 돌아왔다.
경기는 문정 리틀야구의 선공으로 1회초가 시작됐다.
“플레이 볼!”
우렁찬 심판의 소리와 함께 타석으로 들어선 1번 타자 채종현.
3구를 타격했지만 아쉽게 우익수 뜬공으로 물러났다.
2번 타자는 삼진으로 돌아섰고 3번인 박병규가 타격에 들어섰다.
초구에 크게 헛스윙을 한 후 2구를 중견수 앞 안타를 만들어내고 주먹을 내 쪽으로 번쩍 들어 올리는 모습.
그 모습을 보며 살짝 웃음을 짓고 나도 타석에 들어섰다.
여태까지 투수의 공은 90km/h 중반. 초구는 늘 스트라이크 정중앙에 던지는 모습을 보여줬다.
성인 야구에 비해서 스트라이크 판정이 후한 리틀야구이기에, 굳이 공을 보며 카운트를 몰릴 필요가 없었다.
상대 투수의 와인드업이 시작되었고 난 배트를 꽉 움켜쥐었다.
날아오는 초구는 역시 스트라이크 정 가운데 코스. 과감하게 배트를 휘둘렀고 알루미늄 배트의 청량한 타격음이 경기장을 울렸다.
날아가는 타구를 주시하며 1루로 달리기 시작했고 공은 쭉쭉 날아가더니 왼쪽 담장을 훌쩍 넘겼다.
여유롭게 베이스를 전부 돌며 홈으로 들어왔고 모든 선수들과 감독들이 마중 나와 있었다.
가장 먼저 손을 번쩍 든 건 1루 주자였던 박병규.
홈 플레이트를 밟음과 동시에 그와 하이파이브를 하였고 모든 선수들이 하늘을 가리켰다.
저번에도 그랬지만 역시 너무 마음에 드는 세리머니.
더그아웃으로 걸어 들어오며 유상현에게 긴장을 풀라는 의미로 거만을 떨었다.
“봤지? 걱정하지 말고 던져. 다음 타석도 넘겨줄게.”
“수비도 그렇게 보여줘라. 너만 믿는다.”
5번 타자 유상현과 6번 타자 포수인 정인철도 안타를 쳐내는 문정 리틀야구.
7번 타자 우익수 이창용의 적시타로 3:0까지 1점을 더 추가하고, 1회를 끝내는 모습이었다.
1회 말 서면 리틀야구의 공격이 시작됐다. 1번 타자가 유상현의 초구를 바로 타격했다.
공은 내 쪽으로 향했고 난 바로 자리에 뛰어올라 글러브를 낀 왼손을 번쩍 들었다.
자리에 착지한 나는 글러브를 바라봤고 오른 손으로 글러브에 든 공을 심판에 보여줬다.
“아웃!”
“흐아!”
유상현도 첫 타자부터 안타를 맞을 코스를 호수비로 아웃 처리한 게 기분이 좋았는지 기합을 지르며 환호했다.
기세를 탄 것일까? 2번 타자를 삼진으로 돌려세우는 모습까지 보여줬다.
3번 타자의 타격은 3루수 정면을 향했다.
안전하게 잡아내서 1루로 송구를 하는 박병규.
펑고 연습이 빛을 발한 순간이었다.
“아웃!”
1회 말을 삼자범퇴로 마무리하는 좋은 출발로 시작했다.
더그아웃에서 앉아있는 감독 남기혁은 자리에 앉아 주먹을 불끈 쥐며 생각했다.
‘됐다. 우리가 본선에 올라갈 수 있을지도 몰라.’
***
“여보! 이러다 늦겠어. 조금 더 빨리 가봐.”
“아직 여유 있어. 2시 시작이라며 이제 겨우 1시 30분이야.”
“그래도 미리 가서 음료수라도 먹으라고 하나씩 돌리는 게 낫지 않겠어?”
“그 정도는 다 있겠지. 경기 끝나고 아이스크림이라도 하나씩 사줘야겠네.”
최강남의 부모님인 최일락과 정승연.
아들의 첫 대회이기 때문에, 본인의 경기라도 되는 듯이 설레는 마음으로 경기장으로 향했다.
특히 최일락은 들뜨는 마음이 좀처럼 가라앉지가 않았다. 아들이 리틀야구에 가입한지도 어느덧 4개월.
가볍게 운동을 하라는 마음으로 등록했지만 한편으로는 본인의 뒤늦은 꿈인 야구선수를 아들이 이뤄내는 게 아닐까? 하는 마음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거기다가 저번 주말 식탁에서 메이저리거가 되고 싶다는 최강남의 이야기까지 들었다.
이런 상황에 어떤 아빠가 연차를 내고 경기장을 오지 않겠는가?
아슬아슬하게 시작 전에 경기장에 도착한 최일락은 놀랐다.
리틀야구다 보니 협소한 경기장일 줄 알았는데 전국 대회는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광판이 갖춰져 있는 경기장에 펜스에는 쿠션까지 구성되어 있었다.
아이들이 다치지 않게 경기를 할 수 있도록 투자를 한 주최 측의 배려가 느껴졌다.
“여보. 강남이는 4번에 있네! 이름 옆에 SS는 뭐야?”
“유격수. 강남이는 4번 타자에 유격수로 뛴다는 뜻이야.”
첫 대회에서 에이스인 4번 타자로 나오다니. 최일락은 뿌듯한 마음이 먼저 들었다.
“안녕하세요? 강남이 부모님이신가 봐요? 이야기 많이 들었습니다. 저는 박병규 아빠 되는 박종수라고 합니다.”
“아···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그런데 이야기요?”
“네. 매일같이 아침마다 달리기 하는 친구가 생겼다고 하던데 그 친구 부모님을 여기서 뵙게 되네요. 덕분에 아들이 예전보다 건강하고 활기찬 모습이에요. 감사합니다.”
“별 말씀을요. 저희도 잘 부탁드립니다.”
요즘 등교를 예전보다 빨리하는 이유가 달리기였다니.
야구 선수가 되고 싶다는 아들의 말이 진심이라는 게 더욱 느껴졌다.
“그렇지!”
얼마 지나지 않아 경기가 시작됐고 자신의 아들이 타석에서 안타를 때려내자 즐거워하는 박종수.
다음 타석에는 최강남이 올라왔다.
올라오자마자 초구를 때려내서 큼지막한 홈런을 만들어내는 모습에 최일락과 정승연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
2회 초에도 최강남은 1타점 적시타를 때리며 4:0으로 격차를 벌렸다.
경기는 예상대로 난타전이 이어졌지만 무실점으로 3회말 4:0으로 문정이 앞서는 상황.
“현철아. 불펜에서 몸 풀어. 다음 투수 너로 내보낼게.”
“네. 알겠습니다.”
감독인 남기혁은 당초 계획이었던 최강남 대신 5학년 임현철을 등판시킬 생각이었다.
최강남 본인이 경기 시작 전에 위기 상황에 써달라고 부탁하기도 했고, 4점차면 여유가 있었기에 다음 경기를 생각해서라도 투수를 아낄 필요성이 있었다.
거기다가 유격수로써 최강남의 역할 또한 투수만큼 컸다.
2회 말 2아웃 만루 상황에서 상대 타자가 친 3루 쪽으로 향하는 느린 힘없는 땅볼.
공을 잡아서 1루에 던져도 세이프가 확실시 되는 상황에 최강남은 소리쳤었다.
“공 잡지 마!”
그 말에 3루수인 박병규는 공을 가만히 지켜봤고 공은 이내 파울 라인으로 벗어났었다.
이 판단 덕에 2아웃 만루에서 무실점으로 위기를 벗어난 문정 리틀야구.
비록 3회 초는 삼자범퇴로 끝이 났지만, 늘 대회에서 우승 후보 중 하나로 손꼽히는 서면을 상대로 리드하고 있는 선수들이 자랑스러운 남기혁이었다.
“상현이 고생 많았다. 현철이랑 바꿔줄 테니 아이싱 하면서 좀 쉬고 있어.”
“수비는 안 해도 될까요?”
“응. 여유 있게 이기고 있으니깐 이번 경기는 좀 쉬어도 돼.”
“네. 알겠습니다.”
전국 대회 룰상 투수의 최대 이닝은 3이닝.
선발 투수인 유상현은 3이닝동안 5안타를 맞았지만 무실점으로 마운드에서 내려왔다.
무실점 이긴 하지만 40개나 공을 던졌기에 냉찜질인 아이싱을 어깨에 둘렀다.
***
“전국 대회 방어율 0.00 투수! 내가 걱정하지 말랬지?”
“다 네 덕분이지. 2회 말에 고마웠다.”
“그걸 내가 잘했나? 병규가 안 잡아서 파울 된 거지.”
“그래! 나한테 고마워해야지. 너 무실점 사실상 내가 만들어 준 건데!”
더그아웃에서 아이싱을 하며 쉬고 있는 유상현에게 나와 박병규가 너스레를 떨었다.
무실점으로 경기를 끝낸 게 만족스러웠는지 아까의 표정과는 비교도 안 되게 밝은 모습이었다.
“그래. 안 잡아준 덕분에 무실점했다. 고맙다 박병규!”
“너도 던지느라 고생 많았다. 난 이제 타격하러 간다.”
4회 초는 1번 타자부터 시작이었기에, 1번 타자가 안타로 1루에 가는 것을 보고 박병규는 대기 타석으로 배트를 들고 향했다.
“너한테도 진짜 고맙다. 첫 타자가 친 그 공이 안타였으면 진짜 흔들렸을 거야.”
“유격수면 당연히 그 정도는 잡아줘야지. 나도 이제 타격하러 가본다.”
“그래. 이번에도 점수 내고 와라.”
“당연하지. 나 최강남이야.”
2번 타자도 안타를 치고 노아웃 1,2루에 박병규가 타석에 들어섰다.
그리고 상대 투수의 초구는 박병규의 허벅지로 향했다.
“히트 바이 피치!”
심판은 데드볼을 선언하고 바로 박병규에게 아픈 곳은 없는지 확인했다.
프로 야구와는 다르게 인간적인 모습의 리틀야구 심판.
‘그래. 이게 올바른 심판이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박병규는 괜찮다는 말을 하고 1루로 달려갔다.
노아웃 만루. 절호의 찬스에 내 타석이 돌아왔다.
상대는 3회에 바뀐 투수인 정승준.
3회를 삼자범퇴로 마무리했지만 4회에 들어서 흔들리는 모습이었다.
초구는 바깥쪽 볼.
“스트라이크!”
공이 하나 이상 빠진 코스였지만 스트라이크를 잡아주는 심판이었다.
속도도 빠르지 않고 무브먼트가 그리 특별하지도 않은 평범한 투수의 공.
투수가 두 번째 공을 던졌고 나는 배트를 휘둘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