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역대급 홈런왕의 탄생-4화 (4/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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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틀야구 전국 대회 (1)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

“네. 한국 최초로 명예의 전당에 오르는 선수가 되고 싶어요.”

13살짜리 아들의 예상치 못한 발언에 살짝 당황한 듯 눈썹이 움찔거리는 최일락. 하지만 태연하게 말을 이어갔다.

“야구 선수는 취미로 하던 지금이랑은 다르게 힘들 거야. 그래도 괜찮겠니?”

“네. 저 야구가 너무 하고 싶어요. 중학교도 야구부가 있는 중학교로 가고 싶어요. 엄마도 허락해주시면 안될까요?”

아들의 뜬금없는 미국행에 당황한 건 정승연도 마찬가지였다.

집안 형편 때문에 전문대를 나와야 했던 본인이기에, 아들은 자기 남편처럼 명문대에 보내고 싶어 했던 정승연.

하지만 자식 이기는 부모는 없다고 했던가. 아들인 최강남의 절실해 보이는 눈빛을 보고 허락해 줄 수밖에 없었다.

“알겠어. 대신 미국 가려면 영어 공부도 열심히 하고, 야구를 그만두게 되면 다시 공부도 열심히 해야 돼. 알겠지?”

“네. 그렇게 할게요.”

저번 삶에서도 들었던 엄마의 충고. 하지만 이번에도 저번처럼 야구를 그만두는 일은 없을 것이다.

거기다가 메이저리그에서 4년을 뛰었기에 웬만한 영어 회화는 할 수 있는 나였다.

적어도 영어에 대한 부담감은 전혀 없었다.

***

부모님께 선수반으로 변경까지 허락받은 나는 월요일부터는 선수반 아이들과 함께 훈련에 참여했다.

“오늘 훈련 시작 전에 대회 룰이랑 타순, 상대 전력부터 알려주고 시작할게.”

이번에 전국 대회 참가팀은 총 64팀. 예선전에서 4팀이 1조가 되며 단 한 팀만이 16강으로 올라간다.

각 경기는 2일의 휴식 기간이 주어지고 결승은 3일의 휴식 기간.

우승 팀에게는 100만원의 상금과 각종 야구 장비가 부상으로 주어진다.

경기는 총 6회로 구성되고 한 투수가 던질 수 있는 최대 이닝은 3회까지로 제한된다.

콜드 게임은 4회부터 8점 이상. 4이닝이 넘으면 정식 경기 처리된다.

연장은 8회까지 이루어지고 그래도 경기가 끝나지 않으면 제비뽑기로 결정짓는다.

나머지 룰은 연습경기와 같다.

1차전 상대는 서면 리틀야구. 저번 대회에서 8강까지 올라갔던 부산에서 손꼽히는 강팀이다.

2차전은 괴산, 3차전은 도농 리틀야구. 두 팀 모두 저번 대회에서는 예선을 통과하지 못한 약팀.

그렇기에 우리는 1차전만 확실하게 승리할 수 있다면 예선 통과를 확신할 수 있다.

타순은 3번이 박병규, 4번이 나, 5번이 유상현으로 클린업 트리오가 완성됐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선발 투수로 상현이, 마무리 투수로는 강남이를 쓸 거야.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건 첫 경기인 서면이니깐.”

“숙소랑 밥은 어떻게 되나요?”

“춘천에서 열리는 대회인데 춘천시에서 전부 지원해 주기로 했어. 소문으로는 음식 솜씨가 좋다던데?”

“맛있겠다!”

숙소와 밥부터 물어보고 입맛을 다시는 거구의 박병규. 이어서 내가 손을 들고 질문을 했다.

“서면 선발투수는 어떤 선수인가요?”

“좋은 질문이야. 키 168cm에 90km/h 후반의 직구를 던지는 투수야. 강팀치고는 생각보다 느리지? 서면은 타자 중심의 공격적인 팀이거든. 그래서 오늘 훈련은 펑고다! 전부 준비해.”

감독님의 말씀에 나를 포함한 선수들은 모두 각자의 포지션으로 들어갔다.

“이번엔 강남이 자리에 상현이가 들어가.”

5개의 공을 완벽하게 받아내자 유격수인 내 자리에 유상현이 들어갔다.

내가 투수로 마운드에 올라갈 때는 유상현이 유격수를 대신할 계획.

다르게 표현하면 내가 투수로 기용될 일이 많다는 뜻이기도 했다.

하지만 투구 연습보다는 여전히 스윙 연습에 많은 시간을 쏟고 있는 나였다.

전성기 시절 난 186cm 88kg의 타자였지만 지금 키는 고작 173cm.

스윙 궤적이 예전 몸과 다르다는 것을 저번 경기에서 확실히 느꼈다.

2번째 타석에서 홈런으로 만들기 쉬운 높은 직구를 안타를 만드는 것에 그쳤다.

작아진 키에서 홈런이나 장타를 치려면 배트 스윙 각도를 예전보다 조금 높여야 했다.

그렇게 내 키에 맞는 스윙 궤적을 찾고 있던 그때, 유상현이 말을 걸었다.

“강남아. 저번에 병규가 놓친 공을 커버해서 네가 잡았잖아. 그거 어떻게 했어? 아무리 연습해도 안 되더라고.”

“저번에 유격수 할 때 보니깐 넌 자세가 너무 높더라. 자세를 더 낮추고 공 방향으로 달리기하듯이 출발하면 돼.”

“그러네? 자세를 낮추면 더 빠르게 출발할 수 있네. 이해했어. 고맙다.”

직접 자세를 낮추며 타구 방향의 반대 발부터 출발하는 자세를 보여주니, 유상현은 이해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 후로도 다른 멤버들의 펑고는 계속 되었고 난 계속 타격 자세를 가다듬었다.

“오늘 훈련하느라 고생 많았다! 마무리 운동으로 운동장 5바퀴만 돌고 스트레칭하고 끝내자.”

“네······.”

펑고와 다른 기본기 훈련으로 힘을 많이 뺀 팀원들의 대답은 평소와 다르게 기가 죽어있었다.

하지만 모든 스포츠의 기본은 체력.

달리기를 끝내고, 지쳐서 무릎을 잡고 헉헉대는 다른 멤버들과는 다르게 바로 스트레칭을 시작했다.

“강남아. 넌 힘들지도 않냐? 훈련에 달리기까지 해도 멀쩡하네.”

“그럼. 평소에도 꾸준히 달리는데.”

“평소에도? 다음에는 나도 데리고 가줘.”

“그래. 학교 등교하기 전에 30분씩 뛰는데 앞으로는 너한테 전화해줄게.”

“알겠어. 나도 앞으로 30분씩 일찍 일어나야겠네.”

90kg는 거뜬히 넘어 보이는 박병규가 숨을 헐떡이며 한 질문에 친절해 답해줬다.

고등학교 선수시절에는 매일 아침마다 5km, 훈련이 끝나고 10km씩 강제로 달리기를 하던 나였다.

그때는 왜 이런 짓을 해야 하나 전혀 이해 못했지만, 프로가 되고 나서 체력 관리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주 6일의 끝없이 이어지는 시즌.

거기다가 메이저리그는 원정 경기의 이동 거리가 훨씬 길기 때문에, 경기에 매일 출전하는 야수에게 체력은 필수 덕목이다.

그렇게 월요일 첫 훈련은 기본기 훈련으로 끝이 났다.

“어떻게 커버 플레이를 해야 하는지 머리로 이해했어? 상현아. 네가 투수인데 1아웃에 주자는 2루에 있고 타자가 우익수 앞 안타를 쳤어. 그러면 넌 어디로 커버 플레이를 가야겠어?”

“음······. 2루 중계 플레이인가요?”

“이럴 때 투수는 우익수의 홈 송구가 빠지는 걸 막기 위해서 포수 뒤를 커버하는 거야. 그럼 2루랑 유격은 어디로 가야겠어?”

“2루수는 2루 베이스 커버와 중계 플레이. 유격수는 3루로 송구 됐을 때 공이 빠지는 걸 막아주기 위해서 3루수 뒤에서 커버해 줍니다.”

“그렇지! 강남이 완벽하게 이해했네.”

화요일과 수요일은 이런 기본적인 커버 플레이와 번트 수비 연습을 했다.

나를 제외한 다른 멤버들은 아직 정확하게 커버 플레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암기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아직 13살의 아이들이라면 당연했다.

나도 뒤늦게 선수 준비를 시작한 중학교 2학년 시절, 욕먹으며 배웠던 몸이 기억하는 커버 플레이였으니.

전문 선수 교육을 받지 않는 리틀야구라면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당연하다.

누군가는 말한다. 야구는 투수놀음이고 홈런 타자들이 게임을 주도한다고.

또 야구 좀 아는 전문가를 자칭하는 팬들은 수비야말로 강팀이 되는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말한다.

“넌 그거밖에 못 던지냐?”

“어휴. 내가 쳐도 저건 치겠다. 1년에 몇억을 처먹는 놈들이 저것도 못 쳐?”

“아니. 그걸 뒤로 빠뜨리냐? 너네가 그러고도 프로냐? 그럴 거면 선수 때려치우고 가서 볼보이나 해라!”

그런 이유인지는 몰라도 야구장에서 취한 관객은 그물망에 매달려 선수들에게 이런 소리를 하곤 한다.

나 역시 많이 들어본 말이고, 신인 시절에는 상처를 많이 받기도 했다.

하지만 연차가 많이 쌓이고 이런 말들을 무시하게 됐다.

내가 얼마나 열심히 훈련하는데, 답답하면 니들이 뛰던가. 이런 의미는 아니었다.

야구는 그렇게 단순하게 개인으로 운영되는 스포츠가 아니다.

내가 생각하는 야구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커버 플레이와 콜 플레이.

공이 중계 플레이될 때 야수의 실책으로 주자가 한 베이스 더 전진했다면, 그건 커버를 제대로 하지 못한 다른 수비수의 책임도 크다.

이런 순간적인 판단을 경기장에서 지휘해주는 콜 플레이 역시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렇기에 야구는 어떤 스포츠보다 팀워크가 우선이다.

야구는 기록의 스포츠이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커버나 콜 플레이는 기록에 남지 않는다.

하지만 한 시대를 호령했던 강팀들의 엄청난 기록 뒤에는 늘 완벽한 호흡을 보여주는 팀플레이가 따르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주장의 리더십과 커버 플레이가 바탕에 있다.

이걸 가장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는, 양키스의 영원한 주장 데릭 지터.

2001년 디비전 시리즈 3차전에서 보여줬던 더 플립(The Flip)은 0승 2패로 지고 있던 양키스에게 역전의 발판을 만들어줬다.

물론 데릭 지터의 사기를 끌어올리는 플레이와 리더십은 말할 것도 없는 최고 수준이기도 했다.

그런 이유 때문이었을까? 수요일 훈련이 끝나고 집으로 향하던 날 불러 세운 남기혁 감독님.

“강남아. 이번 대회 주장 맡아줄 수 있니?”

“주장이요?”

“응. 며칠 동안 훈련하는 거 지켜봤는데 가장 적임자는 너다.”

“제가 주장이 되면 뭘 하면 될까요?”

“지금이랑 똑같아. 며칠 지켜봤는데 늘 리더십 있는 모습이더라.”

“음··· 알겠습니다.”

“그래. 오늘 고생했고 내일 보자.”

주장이라···. 하긴 과거로 돌아온 나한테는 또래에게는 없는 리더십이 보였을 것이다.

대회가 시작하기 하루 전날인 목요일에는 자체 청백전을 열었다.

경기와 다른 점이라면 투수를 감독인 남기혁이 맡았다는 것.

“오늘은 내가 던질 거야. 내일이 대회 첫날이니깐 그동안 했던 수비 연습이랑 타격에만 집중해.”

“알겠습니다!”

왕년에 선수로 뛰었던 남기혁. 거기다가 투수 출신이었기에 100km/h의 공을 가볍게 100개 정도 던지고 청백전은 끝이 났다.

난 두 번의 타석에서 홈런성 타구를 하나 때려냈다.

훈련기간 동안 가장 집중해서 연습했던 스윙 궤적이 이젠 몸에 익은듯했다.

이렇게 자체 청백전마저 끝이 나고 모든 훈련이 마무리됐다.

“이번 주는 좀 빡세게 연습해서 다들 힘들었을 텐데 따라와 줘서 고맙다. 고생 많았다. 내일 대회에서 우리가 연습한 걸 서면한테 보여주자!”

“고생하셨습니다!”

이렇게 대회에 나가기 위한 모든 준비가 끝이 났다.

***

오늘은 대망의 전국 대회 날.

다들 합숙을 위한 짐이 든 가방을 들쳐 메고 대여된 미니버스에 탔다.

“뭐야? 다들 긴장했어? 왜 이리 표정들이 굳었어?”

“아닙니다!”

“뭐가 아니야? 긴장했네. 기죽지 마! 우리보다 연습 열심히 한 팀도 없어. 다들 구호나 한번 외치고 출발하자!”

긴장한 버스 분위기를 읽었다는 듯이 남기혁 감독이 농담을 던지며 분위기를 풀어줬다.

그 후에 남기혁은 주먹을 번쩍 들었고 그의 앞에 앉아있는 선수들은 목이 터지라고 외쳤다.

“문정! 문정! 문정!”

그렇게 미니버스는 설렘에 가득 찬 어린 소년들을 태우고 춘천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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