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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틀야구 연습경기 (2)
“난 14살이라니깐?”
“됐고. 넌 내가 투수로 올라오면 머리에 공 맞을 준비나 해라.”
“······지랄한다.”
“한번 봐보던가.”
슬쩍 1루심을 바라봤지만 우리끼리 대화를 나누는 소리가 워낙 작았기에 별 신경 쓰지 않아 보였다.
그렇다고 리틀야구, 그것도 연습경기에서 주먹질을 할 수는 없기에 더 이상 별다른 말없이 난 주루 플레이에 집중했다.
4번 타자인 박병규는 펜스를 직격하는 타격을 보여줬고 1루인 나는 3루로, 2루 주자는 홈으로 들어왔다.
5번 타자 유상현의 안타로 1점을 더 뽑아낸 문정 리틀야구는 3:0으로 점수 차이를 더 벌렸다.
“흐아!”
어느새 그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어버린 기합은 안타를 칠 때도 유효한가 보다.
“강남아. 4회에 투수로 들어가니깐 인철이랑 몸 풀고 있어.”
“네. 준비할게요.”
유상현의 안타로 홈으로 들어와 더그아웃에 앉았던 나는 다시 일어났다.
감독님의 지시에 정인철은 포수 장비를 차기 시작했고 난 글러브를 집어 들고 불펜으로 향했다.
“나 준비 다 됐어. 던져봐!”
정인철은 포수 글러브를 주먹으로 치며 나에게 소리쳤고 어깨를 가볍게 풀던 나는 알았다는 의미로 글러브를 들어보였다.
초구를 던졌고, 펑―! 소리에 잠깐 더그아웃의 시선이 주목됐다.
“와. 쟤는 공도 잘 던지네.”
“그러게? 왜 여태까지 선수반으로 안 왔지?”
“그래도 이번 대회부터는 선수반 합류해서 뛴다던데.”
“강남이 있으면 우리도 우승해 볼 수도 있겠는데?”
“잡담 그만하고 경기 집중해라. 보는 것도 훈련만큼 중요하니깐.”
“아··· 네! 알겠습니다!”
감독인 남기혁의 말에 이내 경기장을 바라보는 선수들. 하지만 남기혁은 얼굴에 미소를 숨길 수가 없었다.
불펜에서 공 몇 개를 더 던지니 우리 팀의 공격이 끝나고 공수가 교대됐다.
“아까 투구 너무 좋던데? 내가 블로킹 잘 해볼 테니깐 편하게 믿고 던져줘.”
“그래. 편하게 던질게.”
“변화구는 따로 없어? 사인이라도 정하고 들어갈까?”
“나 직구밖에 없어. 글러브로 위치만 대충 잡아줘. 거기로 꽂을게.”
고개를 끄덕이며 정인철은 마운드에서 내려갔고, 나는 내 손에 쥐어진 야구공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마운드에서의 투구가 오랜만이지만 그래도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는 투수로 활약했다.
최고 구속 143km/h 직구를 던지던 나였지만 피안타율을 낮추기 위해 변화구를 배웠다.
그리고 그때 무리하게 배운 변화구 때문에 어깨가 망가졌다.
그때 망가진 어깨는 프로에서 유격수로 활동하면서도 종종 고통이 느껴졌고 발목을 붙잡는 내 단점이 되었다.
다시 기회를 잡은 이 순간에 굳이 변화구를 배워서 또 어깨를 망가트릴 이유는 전혀 없다.
난 최고의 유격수이자 홈런왕이 될 거니깐.
정인철이 포수석에 자리를 잡고 상대 타자가 타석에 들어서자 나도 와인드업을 시작했다.
펑―!
포수 미트에 내 공이 꽂히자 우렁찬 소리가 났다.
“스트라이크!”
포수에게 공을 건네받은 나는 전광판을 바라봤고 106km/h의 구속이 찍혀있는 걸 확인했다.
이 정도의 공이면 평범한 리틀야구 선수들은 쉽게 칠 수 없을 것이다.
“스트라이크 아웃!”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공을 두 개 더 던졌고 모두 스트라이크에 꽂히며 삼진으로 2번 타자를 잡아냈다.
다음은 3번 타자인 이강현. 내 공을 봐서인지 굳은 표정으로 타석에 들어서는 모습이다.
***
14살인 이강현은 방금 전 공을 바라봐서인지 생각이 많아졌다.
리틀야구는 14살까지 참가가 가능하지만 대부분의 주전 선수들은 14살에 야구 중학교에 입학한다.
하지만 좋은 타격과 수비 실력에도 불구하고 부모의 반대에 아직까지 리틀야구에 남아있는 그였기에, 선수가 되지 못한다는 자격지심 역시 심했다.
잘하는 선수들을 보면 늘 비아냥대며 시비를 걸었고 14살인 올해는 대부분이 자기보다 나이가 어렸기에 더 심해졌다.
거기다가 184cm에 74kg, 거구인 그였기에 대부분의 어린 선수들은 눈도 제대로 마주치지 못했다.
하지만 저기 마운드에 서있는 저 놈은 다르다.
‘뒤질래?’라는 들어보지도 못했던 말투와 정색하던 표정은 소름이 돋았다.
좌타석에 들어선 그는 평소보다 조금 바깥쪽에 자리를 잡았다.
아까 그 표정이라면 머리에 공을 던지고도 남을 테니, 피하는 게 목적인 엉거주춤한 타격 폼으로 초구를 바라봤다.
“스트라이크!”
초구는 바깥쪽 스트라이크. 머리 근처로도 공이 오지 않았다.
의아한 표정으로 투수를 바라봤지만 눈을 마주치지 않고 무표정한 모습.
‘그럼 그렇지. 너도 쫄았구나?’
씩― 웃으며 평소처럼 안쪽으로 자리 잡은 그는 배트를 움켜쥐었고 최강남을 노려봤다.
이어서 두 번째 투구. 여태까지의 공보다 조금 느린 직구가 머리로 날아오자 황급히 배트를 던지며 뒤로 넘어졌다.
이강현은 당황한 듯 바닥에 주저앉아 투수 쪽을 바라봤다.
모자를 벗으며 사과하는 투수 최강남이었지만 입꼬리가 씰룩거렸다.
‘일부러 던졌구나.’
기가 눌려버린 이강현은 또다시 바깥쪽에 자리를 잡을 수밖에 없었고, 연이어 들어온 바깥쪽 스트라이크 두 번에 배트 한 번 휘둘러보지 못하고 더그아웃으로 걸어 들어갔다.
***
‘고작 14살짜리 아이인데 좀 심했나?’ 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하지만 먼저 도발한 것도 상대이고 굳이 맞겠다고 홈 플레이트에 가깝게 붙으며 노려보기까지. 건방지기 짝이 없었다.
대신 피할 수 있도록 약간 힘을 빼서 던졌고 또한 어느 정도 기 싸움이 필요한 상대기도 했다.
아까 더그아웃에서 들은 바로는 신림 리틀야구는 늘 4강권에 올라가는 팀이었기에, 대회에 나간다면 또 만나게 될 것이다.
기 싸움을 하려면 다시는 쳐다도 못 볼 정도로 누르는 것이 당연하기에, 나도 공을 던진 후 상대가 보이도록 입꼬리를 과하게 올려줬다.
이어서 들어온 4번 타자는 초구에 배트를 휘둘렀고 우익수 뜬공으로 아웃을 잡아냈다.
3:0 문정 리틀야구의 완벽한 승리로 내 첫 경기이자 연습경기가 끝이 났다.
“강남! 나이스 피칭!”
선발 투수인 유상현이 웃으며 달려와서 주먹을 내밀었다.
“3이닝 0실점 승리투수가 왜 이래? 덕분에 세이브 잘 챙겨간다?”
난 주먹에 주먹을 갖다 대고 웃으며 농담을 건넸다.
“난 아까 홈런치고 올게. 라고 하더니 진짜 홈런 치는 거 보곤 소름이 돋았다니깐?”
“나는 불펜에서 공 받아보고 깜짝 놀랐다? 살면서 받아본 것 중에서 제일 빨랐어.”
“왜 이래? 이제 대회 나가는 선수반 들어간다고 비행기 띄워주는 거야?”
3루수인 박병규와 포수인 정인철도 어느새 대화에 끼어들어 내 칭찬을 시작했고 난 너스레를 떨며 이 순간을 즐겼다.
반대편에는 상대 팀인 신림 리틀야구가 짐을 챙겨 경기장을 떠나는 모습이 보였다.
아까 시비가 붙었던 이강현과도 눈이 마주쳤지만 별말 하지 않고 떠나는 모습이었다.
멀리서 우리를 부르는 소리에 이 수다가 끝이 나고 모두들 감독님에게 발걸음을 향했다.
***
문정 리틀야구 감독인 남기혁은 고민이 많았다. 최근 몇 년간 문정의 전국대회 최고 기록은 겨우 16강.
적게는 60팀에서 많게는 160팀 정도가 참가하는 전국대회이기에 본선 진출이 최고 기록이라고 해도 무방했다.
아무리 야구를 좋아해서 이 직업을 택했다고 해도, 결국 이것도 하나의 돈벌이.
대회에서 좋은 기록을 해야 홍보가 될 텐데 점점 신입생들이 줄고 있었다.
거기다가 근처의 팀들과는 다르게 프로 선수를 한명도 배출해내지 못했다.
하지만 올해는 지난 몇 년과 다를 것이다.
서울에서 손에 꼽는 에이스 투수인 유상현, 전형적인 거포인 3루수 박병규.
거기다가 오늘 팀에 합류한 유격수 최강남까지. 그의 두 번의 타석과 수비 능력. 거기다가 투수로써의 재능을 본 남기혁은 확신했다.
이번 전국 대회는 좋은 성적을 거두어 많은 신입생을 챙길 수 있겠다고.
“다들 오늘 경기 하느라 고생 많았어.”
“고생하셨습니다!”
“다음 주는 평소처럼 훈련하고 상대 팀 교육 들어갈 거야. 상현이랑 강남이는 아이싱 좀 더 하고 풀고.”
“네. 알겠습니다.”
“대회 동안은 합숙하는 것도 다 알지? 부모님들 걱정 안 끼쳐드리게 미리 말하고 오도록. 이상!”
90도 인사를 하며 집으로 돌아가는 아이들의 귀여운 모습에 미소가 저절로 지어졌다.
‘귀여운 녀석들. 일단은 예선에서 만나는 팀들 데이터부터 분석해야겠네.’
대회에 나가기 전에 늘 해오던 상대 팀 분석. 하지만 예전에는 참고 정도였다면 올해는 느낌이 달랐다.
예선에서 철저하게 투수들을 아껴서 기용해야 본선에서 높은 성적을 거둘 수 있다는 다른 이유 때문이었으니.
정말 이번 대회에서 문정 리틀야구는 지난 몇 년과 다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 남기혁이었다.
***
집에 도착하자마자 씻고 저녁을 먹기 위해 부모님과 식탁에 앉았다.
대회에 나가도 되냐는 이야기를 물어보기 위해 타이밍을 재고 있던 그때, 아빠가 먼저 물어보셨다.
“오늘 야구는 즐거웠니?”
“네. 즐거웠어요. 그런데 저 할 말이 있어요.”
“어떤 거니?”
“저도 선수반으로 옮겨도 될까요? 다음 주 금요일에 열리는 대회도 출전하고 싶어요.”
“대회? 힘들 텐데 괜찮겠어?”
“네. 하고 싶어요.”
“그러면 그렇게 해. 힘들면 언제든 말하고.”
역시나 아빠인 최일락은 흔쾌히 허락했다. 하지만 의외의 변수는 다른 곳에 있었다.
“대회? 그거 하루만 하는 거야?”
“아니요. 13일 동안 진행된대요. 그 기간 동안 합숙해서 학교도 못가고요.”
“그러면 너 학교는 어떻게 하려고?”
“학교는 대회 기간 공결 처리 받을 수 있도록 처리해 주신대요.”
“여보. 이거 보내도 될까? 그래도 13살이라 아직 학교는 보내야 하는데···.”
어머니인 정승연은 내가 어릴 때부터 교육열에 불타오르는 성격이었다. 뭐··· 나는 공부에 별 다른 흥미는 없었지만.
“이 나이 때에 학교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중요한 게 있지 않을까?”
“그게 그깟 공놀이야? 그래도 학교는 보내야지.”
“그깟 공놀이라니! 야구는 낭만과 열정이 있는 스포츠라고! 거기다가 운동이 사회성 기르기에 얼마나 좋은데 요즘 시대에 그런 말을 해?”
최일락은 아이 앞에서 목소리가 약간 커졌다는 걸 의식했는지 헛기침을 하더니 다시 말을 이어갔다.
“그러니까 내 말은 아이가 하고 싶은걸 밀어주는 게 부모의 역할이란 거지.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여보?”
“음··· 알겠어요. 그럼 강남이 말부터 들어보고 결정할게요.”
부모님의 시선이 나에게 꽂혔고 이내 아빠, 최일락의 말이 나를 향했다.
“그래서 우리 강남이는 목표가 뭔데?”
목표라··· 이미 KBO홈런왕과 메이저리그 진출은 이뤄냈다.
하지만 메이저리그에서 홈런왕을 이뤄내지 못하고 은퇴한 건 아쉬움이 정말 컸다.
그렇다면 목표는 메이저리그 홈런왕? 그것보다 더 대단한 목표를 세우고 앞으로 나아가고 싶다.
“저는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에 들어가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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