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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틀야구 연습경기 (1)
“강남아. 일어나야지!”
“은퇴했잖아요. 오늘은 좀 더 잘래요.”
“13살짜리가 무슨 은퇴를 해! 헛소리하지 말고 일어나서 씻고 학교가!”
“네. 일어났어요.”
눈을 비비면서 잠에 깼다.
며칠 전 13살로 돌아왔지만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은 상태에서 엄마에게 혼이 나며 몸을 일으켰다.
KBO 홈런왕, 골든글러브 유격수. 메이저리그에선 3번 타자를 하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나였다.
다른 메이저리그 선수들처럼 마지막 년도를 KBO 원년 팀이었던 서울 베어스에서 보냈고 영광스러운 은퇴식까지 끝냈다.
은퇴식이라고 맥주를 들이붓고 잠이 들었는데 13살로 돌아왔다.
사실 선수 생활을 돌이켜보면 아쉬운 점도 많았다.
한국 프로야구에서 12년을 뛰고 늦은 메이저리그 도전,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 투수로 활동했기에 늦은 포지션 변경도 그러했다.
하지만 타고난 재능과 뼈를 깎는 노력으로 한국 야구 역사에 이름을 남기게 된 최강남. 그런 그가 다시 어린 시절로 돌아왔다.
“강남이 일어났니? 야구는 할만하고? 재미없으면 아빠랑 골프 레슨받으러 갈까?”
“뭐··· 그럭저럭 괜찮은 것 같아요.”
최강남의 아버지, 최일락이 아침 인사를 건넸다. 사실 내가 야구를 하게 된 건 아빠의 영향이 컸다.
충청도의 조그만 마을에서 태어난 아빠는 어릴 때부터 운동과 공부에 엄청난 재능을 보였다.
동네 명문 고등학교에 서울대까지 진학에 성공했고 대학교 동아리에서 야구를 처음 해본 아빠는 충격에 휩싸였다고 한다.
‘세상에 이렇게 즐거운 스포츠가 있다니.’
대학 진학 전까지 동네에서 운동이라고는 동네 애들과 공하나 던져놓고 즐겼던 축구와 농구뿐이었던 아빠에게 야구는 즐거운 추억이라고 하셨다.
그런 기억을 갖고 계셔서 나에게 리틀야구를 권해주셨다. 리틀야구는 선수보다는 가벼운 취미생활 수준의 야구를 하니깐.
“애 학교 늦겠어. 얼른 와서 밥 먹여.”
“알겠어. 금방 갈게 여보. 강남아 야구 힘들면 그만해도 돼. 골프는 혼자 하는 스포츠라 훨씬 즐거울 텐데, 어떻니?”
엄마의 재촉에 아빠는 식탁에 앉아서도 계속 나에게 골프를 해보지 않으시겠냐고 물어보셨다.
이런 말을 건네시는 게 이해는 갔다.
13살 때의 나는 야구에 재능을 보이면서도 별로 즐거워하지 않았다.
같은 반 친구들은 주말 축구를 하는데 나만 리틀야구에 가서 친한 사람들이 없기도 했다.
그때는 숫기가 없어서 쑥스러움을 많이 탔으니깐.
평범한 중학교에 진학해서 공부를 하던 나는 공부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나서야 중학교 2학년에 야구부에 들어갔다.
아마 예전 내 성격이면 저번 주말에도 야구가 재미없다고 이야기 했었을 것이다.
“진짜 괜찮아요. 저 야구 잘해볼 자신 있어요.”
“그래? 힘들면 언제든 그만둬도 돼.”
13살 아이의 비장한 각오가 담긴 눈빛과 목소리. 하지만 부모님의 눈에는 그저 어린아이로 보였을 뿐이다.
“학교 잘 다녀와라.”
“다녀오겠습니다.”
밥을 먹고 먼저 집을 나섰다. 아직도 꿈을 꾸는 것만 같았다. 스마트폰을 꺼내서 다시 한번 날짜를 확인해도 여전히 똑같다.
2018년 7월 12일. 13살 때로 돌아왔다.
누가 날 다시 과거로 돌려준 걸까? 난 다시 찾아온 이 기회를 놓치지 않을 것이다.
***
시간이 흘러 주말이 됐다. 내가 속해있던 문정 리틀야구에 도착하자 남기혁 감독님이 말을 건넸다.
“강남! 왔어? 이번 대회 나가기로 했던 건 부모님이랑 잘 이야기해봤어?”
주말반은 선수반인 평일반과 다르게 따로 대회가 있지 않다.
하지만 이때부터 돋보였던 내 재능을 높게 평가했던 감독님은 내게 선수반으로 옮기는 건 어떠냐고 늘 물어보셨다.
그때의 나는 가지 않았지만 과거로 돌아온 지금은 다르다. 부모님께는 나중에 따로 이야기하면 허락해주실 것이다.
“네. 옮기기로 했어요. 이번 대회도 출전하고요.”
“그래. 수비는 1루수로 해줄게. 공만 잡으면 돼서 부담은 적을 거야. 1루수인 종현이는 유격수로 가면 되니깐 걱정하지 말고. 위기 때는 마무리 투수로 올라오면 돼.”
“음··· 마무리 투수는 괜찮은데 제가 유격수로 뛰어도 될까요?”
“그러면 나야 좋지. 그래. 유격수로 뛰어.”
감독님은 흔쾌히 허락해주셨고 곧이어 도착한 다른 멤버들과 함께 몸을 풀기 시작했다.
“몸 풀었으면 다들 모여봐. 오늘은 오랜만에 연습경기 잡았다. 상대는 신림 리틀야구 팀이야. 오늘 선발투수는 상현이고 경기는 4회만이야. 오늘은 신림 좀 잡아보자고.”
“네. 알겠습니다!”
리틀야구 경기장은 프로 선수들 경기장의 축소판과 같다.
성인의 마운드는 18.44m이지만 여기는 14.02m.
115km/h의 직구는 체감 속도가 정식 경기장의 150km/h와 같다.
주자들은 리드가 불가능하고 도루는 투수의 손에서 공이 떠났을 때 스타트를 할 수 있다.
그리고 부상 방지 차원으로 투수 이닝 제한은 3회, 투구 수 제한은 60구.
훅 슬라이딩은 가능하고 헤드 슬라이딩은 불가능하다.
당연히 루간 거리도 훨씬 짧지만 나에겐 상관없다. 펜스의 거리는 고작 60~65m가 전부이기에 홈런을 치면 된다.
거기다가 타격에 유리한 알루미늄 배트를 쓰기에 비거리도 훨씬 잘 나올 것이다.
우리 팀인 문정 리틀야구 팀이 후공, 상대인 신림 리틀야구가 선공으로 경기가 시작됐다.
주말에는 선수반과 주말반이 같이 연습경기를 하곤 한다.
하지만 오늘 상대는 대회에서 늘 본선에 진출하는 강팀이기에 나를 제외하고는 전부 선수반 아이들이 주전으로 나섰다.
선발투수인 유상현이 마운드로 올라왔고 나를 비롯한 선수들이 각자의 수비 진영에 자리를 잡았다.
투수의 초구는 103km/h. 이 정도 속력이면 리틀야구에서는 손에 꼽는 강속구 투수다.
1번 타자를 중견수 뜬공으로 잡아내고 2번 타자는 삼진으로 잡아내는 유상현.
“흐아!”
리틀야구는 프로 야구와는 다르게 즐기자는 의미로 세리머니에서 자유롭다.
아무리 그래도 30대 중년이 낼법한 저 기합은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어색해서 웃음이 났다.
다음으로 신림의 3번 타자 이강현이 타석에 들어섰다. 다른 타자들과는 다르게 또래에 비해 머리 하나 차이가 나는 큰 키.
좌타석으로 들어선 그는 초구에 배트를 빠르게 휘둘렀고, 강습 타구가 3루수 정면으로 날아왔다.
3루수는 잡지 못했지만 이런 작은 경기장이면 충분히 내가 수비할 수 있는 범위.
역모션으로 공을 잡아내서 빠르게 1루로 공을 던졌다.
“아웃!”
“흐아!”
심판의 아웃 선언과 거의 동시에 투수인 유상현은 글러브로 박수를 치며 기합을 질렀다.
아마도 기쁘면 내는 소리인 것 같다.
“강남이 나이스 수비!”
“그걸 어떻게 잡았어? 메이저리그 하이라이트에 나와도 되겠는데?”
유상현은 엄청난 수비에 감동이라도 한 듯이 내게 찬사를 날렸다. 자기의 실수를 대신 처리해준 3루수인 박병규도 아부성 칭찬을 하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야, 나만 믿고 던져. 내가 다 잡아줄 테니까.”
“걱정 마라. 2회에는 전부 삼진으로 잡을 테니깐 구경이나 하시지?”
13살의 허세. 귀여워서 웃음이 났다.
1회말 문정 리틀야구의 공격이 시작됐다. 내 타순은 3번이기에 배트를 들고 몸을 풀기 시작했다.
1번 타자는 땅볼, 2번이 타석에 들어섰다.
몸도 다 풀었고 타석을 지켜보던 그때, 뒤에서 3루수 박병규가 내 어깨를 잡았다.
“강남아! 너 다음 나고 다음은 상현이야. 죽지만 마라.”
“뭐래. 나 홈런치고 올 거야.”
“그럼 우리 팀 세리머니 해야지. 오른손 검지만 펴서 하늘 가리키는 거. 기억나지?”
“당연하지. 넘기고 올 테니까 준비하고 있어.”
세리머니라···. 잘 기억은 안 나지만 어릴 때 그런 세리머니가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2번 타자는 우익수 뜬공으로 물러나고 3번인 내가 타석에 들어섰다.
투수가 초구를 던졌다. 느리고 힘없는 볼, 야구공이 수박 크기로 보인다는 게 전혀 과장이 아니었다.
하지만 능숙한 베테랑답게 초구는 타이밍을 잡으려고 흘려보냈다.
“스트라이크!”
심판의 스트라이크 사인. 다시 배팅 장갑을 가다듬고 타이밍을 잡았다. 이윽고 투수가 두 번째 공을 던졌다.
정확한 디딤발에 이어 빠른 속도로 배트를 휘둘렀고, ‘깡’ 소리가 경기장을 울렸다.
공을 배트 정중앙에 정확하게 맞춰냈다. 1루의 더그아웃에서 내 타석을 지켜보던 감독님과 동료들은 전부 자리에서 일어났다.
공은 쭉쭉 뻗어나가서 담장을 훌쩍 넘기는 80m 비거리 대형 홈런.
배트를 집어 던지고 능숙하게 베이스를 돌기 시작했다.
수없이 많은 홈런을 쳐봤지만 역시 깔끔한 타격감, 이 손맛은 언제나 황홀하다.
3루 베이스를 지나 홈플레이트를 밟자 멤버들이 다들 나와 있다.
난 잊지 않고 아까 준비한 세리머니를 보여줬다.
그와 동시에 모든 선수가 나와 같은 행동을 했다.
누가 본다면 검지로 하늘을 찌르는 것 같은 이 제스처는 굉장히 마음에 들었다.
“나이스 홈런!”
“아니 진짜 넘겨버렸네?”
“당연하지. 나 최강남이야.”
“그럼 이제 내가 백투백 홈런 보여준다!”
멤버들과 웃으며 농담을 건네던 그때, 1루에서 따가운 시선이 느껴졌다.
남들보다는 머리 하나는 커 보이는 1루수, 이강현이었다.
하지만 별 의식하지 않고 더그아웃으로 돌아왔다.
다음 타석은 박병규. 170cm 정도에 90kg는 돼 보이는 전형적인 거포의 체형. 하지만 공은 상대 중견수의 글러브로 빨려 들어갔다.
이렇게 1회가 종료되었다.
2회 초는 유상현의 허세대로 전부 삼진으로 돌려세우진 못했지만, 삼자범퇴로 이닝을 마무리했다.
문정 리틀야구는 한 명의 주자가 나갔지만, 홈으로 불러들이지 못하며 1:0의 균형이 계속 이어졌다.
3회 말. 내 앞의 타자가 안타를 치고 살아나가면서 2아웃 1루에 내 타석이 찾아왔다.
타이밍은 아까 잡았기에 초구부터 자신 있게 공을 때렸다.
공은 잘 맞았지만 직선타로 중견수 앞 안타가 되었고 나는 1루에 주자는 2루에 여유롭게 안착했다. 그때 상대 1루수인 이강현이 시비를 걸어왔다.
“쪼끄만 게 잘도 치네?”
뜬금없는 소리에 당황스러웠다. 173cm에 64kg인 지금의 몸을 놀리는 이강현도 그러했지만, 나에게 시비를 걸어오는 선수가 너무 오랜만이었기에.
어릴 때 내성적이었던 나는 화를 잘 내지 못했다. 하지만 이 성격은 야구를 하면서 바뀌었다.
고2 때 야수로 전향한 후 야수 선배들의 괴롭힘. 그 괴롭힘은 경기장에서도 이어졌다.
참다가 폭발한 나는 교내 청백전에서 벤치 클리어링을 열어버렸고 그들 중 날 가장 괴롭힌 놈을 패버렸다.
놀랍게도 그 후로 괴롭힘은 전부 사라졌다.
그때부터 생긴 내 인생 신념 한 가지. 적어도 그라운드 안에서는 참지 말자.
이 신조를 KBO와 메이저리그에서도 잘 지켜냈다. 선배, 후배를 가리지 않고 시비 거는 놈들은 모두 공평하게 패줬다.
팬들은 이런 내 모습을 보면서 좋아했고 나중에는 선수들 사이에서 UFC를 배운다는 헛소문이 돌기도 했다. 난 돌아와서도 이 신념을 바꿀 생각은 전혀 없었다.
“뒤질래?”
내 말에 잠깐의 정적이 이어졌고 이강현이 당황한 듯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덧붙였다.
“나 중학교 1학년이야. 너 6학년 아니냐?”
난 미소를 지으며 대답해줬다.
“어쩌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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