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0화 〉 비객(悲客). (8)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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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온은 스태프들의 반응이 은근히 신경이 쓰였다.
신인배우가 감독들을 모아두고 자신의 생각을 관철시켰다.
그로 인해 스태프들이 좋지 않게 볼 가능성이 높았다.
헌데 스태프들은 이온에게 다치면 안 된다고 격려와 응원의 말을 건넸다.
이온은 배우지만, 현직 스턴트맨이고 춤꾼이기도 했다.
스태프들은 이온이 감독들과 안무에 대해 논의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이온을 자신들과 같은 스태프의 일원으로 여기는 이들도 있었다.
배우라는 다른 영역의 동료라고 선을 긋지 않은 것이다.
<비객>에 출연하기 전까지만 해도 현직 스턴트맨으로 일했으니까.
중요한 것은 이온이 무조건 자신이 옳다고 우기지 않았다는 점이다.
최종적인 결정은 감독이 했고, 작가도 수긍했다.
그러면 된 것이다.
무술감독의 체면이 손상되긴 했다.
임대한은 전형적인 비즈니스 마인드로 똘똘 뭉친 인물이라 조수들에게 그리 인기가 있는 인물도 아니었다.
그러니 여기저기 말을 옮기는 조수들이라지만 이온의 편을 들 수밖에.
“갑자기 연락을 드렸는데, 이렇게 와주셔서 고맙습니다.”
이온이 남사당전수관 단원들을 반갑게 맞이했다.
이들은 사당패놀이에 출연하기 위해 온 것이 아니다.
사당패놀이는 고증담당자가 섭외한 공연단이 준비 중이다.
전통적인 사당놀이에서는 연희가 잘되길 비는 고사굿을 지내고 공연을 시작했다.
남사당전수관 단원들은 고사굿 하는 모습을 찍기 위해 특별히 이온이 초청했다.
‘작가님이 하고 싶은 거 다 하라고 하셨으니까......’
풍부한 장면들을 찍게 되지만, 실제 편집에서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다.
엄 감독의 말처럼 몽타주로 처리할 수도 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어떤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처음부터 끝까지 일일이 보여주면 몰입도 떨어지고 지루해지기 마련이다.
상징적인 장면 몇 가지를 분할해서 촬영한 후 유기적으로 연결하면,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를 보여주지 않아도 관객들이 어떤 상황인지를 알 수 있다.
그런 편집기교를 몽타주(montage)라고 한다.
영화 <록키> 시리즈에서 발보아가 훈련하는 장면을 음악과 함께 빠르고 경쾌하게 편집해서 보여줌으로써 실력이 상승하고 있다는 걸 알려주는 장면을 몽타주의 예로 들 수가 있다.
<록키>처럼 시간과 공간을 넘나들며 커트를 이어붙일 수도 있고, <비객>의 경우처럼 6~7시간(전통공연 기준)의 사당패놀이를 압축적이고 임팩트 있게 보여주기 위해 몽타주 기법을 사용할 수도 있다.
암튼 살판 공연은 멍석 위에서 펼쳐졌다.
전통의 재연이긴 했지만, 이온이 한바탕 재주를 뽐낼 수 있는 멍석이 깔린 것이다.
[공자 맹자 유자 탱자 죽자 살자 말씀이... 쇠꼬리가 되느니 모이를 쪼는 닭부리가 낫다고 하셨것다~]
[옳거니!]
[이 몸으로 말씀드릴 것 같으면... 삼신 할매한테 점지 받아 응애응애~ 한 뒤부터 어미한테 회초리 맞아가며 땅재주를 익혔고.... 아비한테 몽둥이 찜질 당해가며 죽을 판 살판을 익혔것다!]
[악동이 이놈아~ 대관절 땅재주가 뭐더냐~]
[우리나라가 어떤 나라요. 바로 동방예의지국 아니요. 이 땅재주란 것이 동방예의지국의 놀음인지라 한 여름에도 살 한 점 보이는 법이 없읍죠.]
이온이 물구나무서기를 했다.
스르륵.
저고리가 흘러내리며 잘 발달 된 복근이 보였고, 특수분장이 가미된 볼록한 배꼽이 드러났다.
하하하.
깔깔깔.
좌중의 폭소가 터졌다.
앞 뒤 말이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종의 조선시대판 개그다.
[이놈아! 너는 어찌 배웠기에 배꼽이 보이느냐!]
[그러지 않아도 아비가 노발대발 하시더란 말이오.]
[옳지! 그래서? 너는 뭐라고 했는고?]
이온이 물구나무 선채로 앞뒤로 몇 걸음 움직였다.
[눈을 껌뻑, 코를 씰룩, 입을 삐죽거리며 되받았읍죠. 시궁창 같은 시상 쥐똥 같은 인간들을 거꾸로 세워 놓으려 굽쇼.]
원래 대본에는 전혀 없는 대사들이다.
이온의 애드리브도 아니다.
사전에 땅재주꾼 전수자 어르신과 함께 만든 대사였다.
촬영감독의 아이디어로 이 대사 부분은 카메라를 악동이의 시선으로 찍었다.
화면상으로 세상이 뒤집어 보이도록 촬영했다.
갑자기 화면이 튀겠지만, 조선의 세태를 풍자하는 영상이자 악동이 처한 신분의 높고높은 벽에 대한 냉소를 드러낼 수도 있다.
편집에 들어갈지 촬영 당시에는 장담할 수 없었다.
암튼 이온은 역사고증이 데리고 온 매호씨 역할의 배우와 흥겨운 살판 무대를 벌였다.
땅재주의 클라이맥스는 뭐니뭐니해도 잘하면 살판이요 못하면 죽을 판이라고 불리는 마지막 기예다.
재주를 넘을 때 손에 무엇을 들고 하는 가에 따라 칼살판, 대접살판, 화로살판이 있는데 그 가운데 가장 위험하고 난이도가 높은 살판이 불이 담겨 있는 화로를 들고 재주를 넘는 것이다.
벌겋게 달구어진 숱이 가득 담긴 화로를 들고 공중돌기를 한다는 것은 매우 민첩하지 않으면 화로 안의 숯을 뒤집어써서 화상을 입을 수도 있다.
악동이 화로에 화선지를 대자 불길이 활활 타오른다.
화르륵!
좌중이 술렁이고, 엄마가 아이의 눈을 가리고, 젊은 처자가 침을 꼴깍 삼킨다.
악동이 활활 타오르는 화로를 들고 조심스럽게 자세를 잡았다.
구경꾼들이 숨을 죽이고.
[타하핫!]
우렁찬 기합과 함께 악동이 뒤공중돌기를 시전했다.
눈 깜짝할 정도로 찰나에 벌어진 일이다.
와아아아아!
구경꾼들의 우레와 같은 함성과 박수가 쏟아졌다.
화로는 실제 숯이 담기지는 않았다.
미술팀이 최대한 비슷한 느낌을 낸 것이다.
살판의 진정한 대미는 일명 모둘빼기다.
갓 쓴 열두 사람을 세워놓고 넘으면서 공중에 떠서 몸을 옆으로 뒤로 앞으로 틀어 방향을 자유자재하여 바꾸는 동작을 펼치는 것이다.
임대한이 그렇게 보여주고 싶어 했던 고난이도 기술이다.
실제 살아있는 사람을 세워놓고 뛰어넘을 수는 없다.
안전사고 때문이다.
한복을 입혀놓은 마네킹을 뛰어넘기로 했다.
아쉽지만 이온이 할 수 없었다.
감독부터 모두가 강력하게 만류했기 때문이다.
혹시라도 부상이라도 당하면 추후 촬영에 지장을 초래하기 때문에 이온도 고집할 수 없었다.
따라서 기계체조 선수 출신 형민이 대역을 했다.
신장 차이가 상당하지만, 나란히 세워놓은 9개의 마네킹 위를 뛰어넘는 모습을 형민의 촬영분을 아주 짧게 넣고, 덤블링과 공중에서 몸을 비튼 후에 착지하는 모습은 따로 잘라서 이온의 모습을 찍어 이어붙이는 편집기교를 부리기로 했다.
[젠장맞을! 장승한테 절하기여 뭐시여..... 눈치도 없고 다들 얼굴도 차암~ 두껍소. 맨입으로 싱거워서 어디 재주를 넘겠수.]
[옛다!]
엽전은 물론이고 감자 같은 채소도 구경값으로 나왔다.
방실이 삐리들과 함께 구경꾼들 사이를 돌며 구경값을 걷었다.
그러는 가운데 방실이 운명처럼 송우준과 마주친다.
또 그 장면을 악동이 발견하게 되고.
그 모든 걸 송우준을 수행하는 하인이 지켜본다.
그렇게 드라마 중반으로 접어들며 주인공들에게 위기가 찾아온다.
“물건이네, 물건이야. 지균씨가 호들갑 떨 만하군.”
사당패의 우두머리 꼭두쇠로 출연하는 연극배우 출신 서호준이 이온을 칭찬했다.
곰뱅이쇠로 출연하는 주노근이 맞장구를 쳤다.
“이야, 멋진데. 무술을 하는 친구라 그런가? 아주 제대로야.”
모션캡쳐 전문가이기도 한 주노근이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이온은 연기 스승인 신지균과도 친분이 있는 이들 연극배우 출신 선배들과 금방 친해졌다.
이온이 연기도 못하고 성격도 내성적이었다면, 선배들과 쉽게 친해지지 못했을 터.
배우들끼리 모두 친하고 스스럼없이 지낼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작품을 할 때만 친하게 지내다가 끝나고 나면 남남이 되는 경우가 많다.
연극배우 출신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같은 극단출신끼리 주로 어울린다.
그 외에는 동종 업계 동료 그 정도일 경우가 많다.
어쨌든 선배 배우들이 호의적이니 이온은 인간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없이 편하게 연기를 할 수가 있었다.
“술 못한다며?”
“체질적으로 안 받아요.”
“지균이형 엄청 술고래잖아. 그 술시중을 어떻게 들어?”
주노근이 무척 궁금해 하는 표정으로 물었다.
“매번 술자리에서 뵙지는 않아요. 등산도 가고 밤낚시도 가고 운동도 데리고 가세요.”
“군대는?”
“공군 군악대 비보이병이었어요.”
“밀리터리는 관심 없겠구나?”
“하하. 지금까지는 그랬습니다.”
“몸 쓰는 거 잘하면 마임도 한 번 배워봐. 연기하는데 도움 많이 되니까.”
“예. 선생님.”
“선생 아니라니까! 형이라고 불러. 왜 니들은 날 자꾸 원로 배우 쪽으로 밀어내려고 안달이냐. 친하게 좀 지내자. 나 아직 50대야.”
“옛!”
“형.”
“형님!”
원래는 반나절 정도 몽타주 씬에 들어갈 정도로 짧은 커트들 위주로 찍을 계획이었다.
그런데 이온이 짜온 안무 콘티도 썩 훌륭하고 실제 이온이 구현하는 몸놀림이 예사롭지 않아서 하루를 통째로 살판놀이 촬영에 투자했다.
그로인해 반나절 정도 촬영 스케줄이 엉켰다.
하는 수 없이 예정에 없던 야간촬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스태프들이 불평을 할 만했다.
이온은 찬기가 간식을 쏜 이후로 자비를 들여 야식을 거하게 쐈다.
✻ ✻ ✻
“어디 봐봐.”
형민이 근심어린 표정으로 이온을 붙잡았다.
“뭘 봐?”
“발목......!”
“......”
이온은 태연하게 발목을 살살 돌려보였다.
머리에 벼락을 맞은 듯 솜털이 뾰족 서는 고통이 몰려왔다.
미간이 찌푸려지는 걸 숨기지 못했다.
임대한이 두 사람의 대화를 들은 모양이다.
“다쳤어? 부상이야?”
“......”
이온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형민이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모둘빼기 씬 찍을 때 발목이 돌아간 것 같습니다.”
형민의 말 대로다.
그럼에도 이온은 어떤 신음도 내지 않았을 뿐더러 아무렇지도 않게 촬영을 마쳤다.
“이리 앉아봐.”
이온이 순순히 보호장구를 담는 박스에 엉덩이를 걸쳤다.
그리고 바지를 걷어 올려 왼쪽 발목을 보여줬다.
임대한이 이온의 발목을 부드럽게 주무르고 만졌다.
고통이 밀려왔지만 이온은 이를 악물고 참았다.
“쯧쯧. 미련한 놈. 이걸 참고 계속 했단 말이야?”
“......예.”
“이거, 이거... 누가 독종 아니랄까봐.”
“촬영이 딜레이 되는 게 무술팀 때문이란 소리, 솔직히 그 말 듣기 싫습니다.”
“배우가 연기를 개 뭣 같이 해서 계속 NG가 나는 건데.....”
“......”
“너는 무술팀도 아니잖아. 촬영도 많이 남은 놈이....”
“얼음찜질 좀 하고 촬영 없는 며칠 동안 쉬면 괜찮아 질 겁니다.”
형민이 뭔가 말을 꺼내려다가 입술만 달싹거렸다.
이 미련한 동생놈은 저 발목을 해서 등교를 할 것이다.
남들보다 회복이 빠르다는 걸 알지만, 몸을 함부로 굴리는 경향이 있었다.
“그렇게 가르치셨잖습니까? 그 교관의 그 교육생이 어디 가겠습니까?”
이온이 걷었던 바지를 다시 원래대로 하며 말했다.
“나 너 싫어. 졸라 싫어.”
“압니다.”
“하여간 잘 난 새끼! 입만 살아서는...”
“가끔 듣는 말이라 별로 기분 안 나쁩니다.”
“병원 가기 전에까지 계속 얼음 대고 있어.”
“병원에 갈 정도는 아니...”
“이 새끼야. 우리 같은 놈들이 몸뚱아리 빼면 뭐가 남아. 어릴 때 간수 잘해야 나중에 고생 안 해.”
“....예.”
촬영은 순조롭게 마무리 되었다.
이온의 광대연기는 더더욱 빛을 발했다.
딱딱했던 임대한과의 사이도 조금은 풀어진 것 같았다.
언젠가부터 액션의 합에 대해 같이 의견을 교환하기까지 했다.
임대한과 관계가 조금 개선될 수 있을까.
결론적으로 말하면 그럴 일 없다.
사람은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는다.
죽을 고비를 넘기고도 바뀌지 않는 게 사람이다.
사람의 인격이 바뀐다면 오히려 그게 더 문제다.
앞으로 두 사람 사이의 관계가 개선될 경우는 한가지 밖에 없다.
이온이 명백하게 ‘갑‘의 입장이 되는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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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방 본방사수 못한게 한이네요ㅠㅠㅜㅜ이번주부터 본방사수 갑니다
- 안 봤으면 후회했을 듯.
- 오랜만에 볼 드라마 생겼어ㅠㅠ 그것도 나이온 배우가 하시는 사극.. 배우분들 합도 좋고 진짜 내 삶의 낙이다
- I haven't been able to watch historical dramas for a long time and this drama managed to make me fall in love!! I love Na E 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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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댓글 알바 풀었나? 갑자기 나이온 언급이 갑자기 늘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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