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어쩌다 배우-97화 (97/127)

〈 97화 〉 성스럽도록 순수한 그들. (4)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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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회차로 예정된 <내가 화가 나 있다면 모두 너 때문이야>는 2주 간 토·일요일 이틀 간 주로 관악구 일대에서 촬영을 진행했다.

가장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 자동차 사고 장면은 3주 차 일요일에 찍었다.

“저기. 오빠.....?”

“응?”

“이렇게까지 안 하셔도......”

미연과 후배들은 리허설 내내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 정도까지 바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막 날아다닌다.

시나리오를 보지 못한 사람들이 리허설을 보면 액션영화를 찍는 줄 알 것이다.

“부담 갖지 마. 이 정도는 우리끼리 가볍게 하는 거니까.” “아니.... 그런 게 아니고......”

“아, 잠깐만. 미연아 미안해.”

이온이 우물쭈물 대는 미연을 살짝 옆으로 밀어내고 동료들에게 달려갔다.

“형! 가게 앞에 아이스크림 냉동고는 아니야.”

이온은 제작부 일을 보고 있는 호철과 함께 낑깡대며 냉동고를 옮기는 형민을 만류했다.

딴에는 이온이 차에 부딪친 후에 뒤로 날아가 냉동고에 떨어진 후에 튕겨서 바닥에 떨어지는, 조금 복잡한(?) 액션 콘티를 구상한 모양이다.

안 될 말이다.

액션 콘티만 놓고 보면 멋질 것이 확실하다.

문제는 영화의 스토리나 톤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마디로 너무 과했다.

“중국 영화 찍는 거 아니거든!”

“선배들도 다 좋겠다고 하던데?”

“형들은 구경꾼, 내가 무술감독!”

액션아카데미팀만 일곱 명이 현장에 나타났다.

본래는 F1팀 윤범수 선배에게 카 드라이빙 컨트롤을 부탁했다.

서포트 해줄 사람이 필요해서 동기인 형민을 합류시켰다.

이온 포함해서 세 명이면 충분했다.

그런데 동기인 샘물이 끼어들더니, 촬영이 없는 선배들까지 어떻게 알았는지 동작구 재개발구역 촬영현장으로 찾아왔다.

박충원, 표일재, 박우일, 장유봉 네 사람이었다.

모두 이온과 여러 차례 손발을 맞춰봤던 선배들이었다.

이온 입장에서는 천군만마들이라고 할 수 있었다.

잔소리만 빼놓고는.

‘......!’

미연 입장에서는 현재의 상황이 무척 곤란했다.

450만 원 예산의 단편영화다.

일단 쟁쟁한 충무로 스턴트맨들에 기가 눌렸고, 인원이 늘었으니 자연스럽게 밥값이나 간식비가 걱정됐다.

게다가 액션아카데미 로고가 떡하니 붙어 있는 승합차에 한국영화계의 대표적인 특수효과 업체 다이너마이트 장비차까지 현장에 나타났다.

그것으로 끝이길 간절히 바랐지만.

“작은 크레인 하나 부를까?”

“와이어 타는 건 좀 그런데......”

“요새 고등학생들도 와이어 지우는 CG는 혼자서 다 하더라고. 한국대 애들이면 더 한 것도 하겠지.”

“형들! 후배들 돈 없어요.”

“돈은 신경 안 써도 돼. 한 두 시간은 그냥 와서 공짜로 해줄 팀 있으니까.”

“그냥 내가 몸으로 떼울 거니까. 오버 하지 말아요.”

이온은 일을 벌이는 선배들을 진정시키느라 애들 먹었다.

박충원의 경우는 언제 입봉해도 이상하지 않을 짬밥이다.

전화 한통화면 특효팀이나 장비팀을 무료로 섭외할 수가 있다.

장비팀들도 스케줄만 없으면 흔쾌히 현장으로 달려와 줄 것이다.

어차피 무술팀과 특효팀은 한 세트로 움직이는 경우가 흔하니까.

서로 돕고 사는 거다.

마치 촬영팀과 조명팀, 그립팀, 렌탈업체가 서로 영업적으로 얽혀 있는 것처럼.

“여기 제 현장이니까 형들은 참견 하지 말아요 좀. 저쪽으로 비켜봐요.”

“어쭈! 내 현장?”

“그럼 제 현장이지 형들 현장 아니잖아요.”

“우리 그냥 간다?”

“제발 좀 가세요.”

킥킥킥.

샘물이 웃음을 터트렸다.

선배들은 도와주겠다며 이것저것 참견하고, 후배 이온은 그런 이들이 귀찮아서 피해 다니고.

뭔가 어수선했다.

아무리 이온이 새까만 후배라고 해도 선배들이 낄 데가 있고 안 낄 데가 있는 것이다.

말 그대로 이 단편영화 현장의 무술감독 겸 액션배우는 이온이다.

부족한 부분이나 이온이 감당할 수 없는 액션에 대해 조언하고 도와주는 것은 그럴 수 있다고 해도 사사건건 나대는 것은 예의가 아니었다.

“얼마나 잘하나 보자~”

“특효팀이 일요일에 쉬지도 못하고 일부러 왔는데, 쪽팔리게 어영부영 하면 죽을 줄 알아.”

“알았다니까요!”

“자자. 정신 사나워서 리허설이 안 돼. 이온이랑 합 좀 맞추게 다들 물러나 봐.”

F1팀 범수 선배가 나서고, 구경 온 선배들이 뒤로 물러났다.

그제야 현장이 어느 정도 정리가 됐다.

부우웅.

텅.

끼익.

오전 내내 텅 빈 재개발구역 일방통행 도로에서 차량 스키드마크 소리가 여러 차례 들려왔다.

점심은 도시락을 시켜 먹었다.

계산은 이온이 했다.

입이 일곱이나 추가되었다.

예정에 없던 지출이라 미연에게 부담을 지울 수가 없었다.

“누가 단편영화 촬영장에 개념 없이 이렇게 우르르 몰려와요.”

“네 짬에 액션을 직접 한다니까 안심이 되겠냐?”

“언제부터 막내를 그렇게 챙기셨다고요?”

“진짜 할 수 있겠어?”

“할 수 있으니까 하죠.”

선배들은 미심쩍은 표정을 숨길 수 없었다.

그렇다고 이온의 스턴트를 막을 수도 없었다.

지난 2주 동안 차량을 이용한 훈련은 몇 번 하지 못했다.

상업영화나 드라마에서도 실제 차량을 이용한 훈련을 그렇게 많이 하지 못하는데, 단편영화를 위해 차량 스턴트 훈련을 충실히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다만 시뮬레이션 훈련은 정말 열심히 했다.

F1팀 윤범수는 베테랑이다.

이 정도 스턴트로 사고가 날 가능성은 낮았다.

한국의 스턴트맨들이 밥 먹듯이 하는 것이 계단구르기와 고통사고 스턴트다.

거의 모든 드라마나 영화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장면들이다.

불안한 점이 없진 않았지만 이온을 믿을 수밖에.

점심을 먹고 마지막 리허설까지 마쳤다.

이제 촬영하는 일만 남았다.

“미연아! 슛 가보자!”

“네~”

‘액션’ 사인이 터지기 전부터 이온이 터벅터벅 걸었다.

이는 승용차를 운전하는 F1팀 범수 선배와 미리 맞춰놓은 템포 때문이다.

카메라는 그의 뒷모습을 잡고 있다.

담배연기가 사방으로 펴져나가고.

뒷모습이라 이온의 입담배 태가 나진 않는다.

그런 이온을 향해 준중형 승용차가 무섭게 질주한다.

불길한 기분을 느꼈을까.

이온이 고개를 돌린다.

그 순간.

쿵!

둔탁한 충돌음이 들려왔다.

이온은 미리 약속된 대로 속으로 ‘셋 둘 하나’를 센 후에 무릎 부위에 승용차 앞 범퍼가 닿기 전에 보닛위로 몸을 던졌다.

최대한 몸을 가볍게 했다.

데구르르.

보닛 위를 미끄러져 승용차 전면유리창에 부딪치고 지붕까지 타고 넘어가기 직전.

끼이익!

불길한 자동차가 급정거하는 소리와 함께 승용차가 멈췄다.

“커엇!”

후다닥!

미연과 호철 등 스태프들이 일제히 이온을 향해 달려갔다.

너무 실감나는 액션이라 이온이 부상이라도 당했을 것 같은 걱정 때문이다.

반면에 지켜보던 무술팀 선배들은 느긋했다.

“오, 오빠!”

미연의 음성이 떨렸다.

그런데.

언제 보닛에서 내려왔는지 이온이 천연덕스럽게 승용차를 꼼꼼히 살피고 있다.

“휴우~ 다행이다. 미연아, 보닛 요 부분은 좀 찌그러졌는데, 앞 유리는 안 깨졌어.”

“괜찮으세요?”

“뭐가?”

“차에 세게 부딪쳐서.......”

“이런 일로 밥 먹고 사는데 다치면 그게 프로냐?”

“......”

“암튼 최대한 가볍게 보닛에 올라탄다고 했는데, 좀 찌그러졌네. 앞유리창에 기스가 좀 났을 것 같은데.... 그건 어쩔 수가 없었다.”

“차가 어떻게 되든지. 그게 중요해요? 오빠가 안 다친 게 다행이죠.”

“얀마! 이거 사촌 오빠한테 빌려온 거라며? 차 개판 만들어 놓으면 보상해 줘야 할 거 아냐. 제작비도 없어서 쩔쩔매는 주제에.”

미연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자기 몸 간수하기도 바빴을 텐데, 빌려온 차가 망가지지 않도록 조심했단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괜히 프로가 아니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

한편으로는 감동이 밀려왔다.

“본네트 갈아야 돼.”

“이 정도면 판금도색으로 안 될 것 같지?”

“녹 올라올 거야.”

느릿하게 승용차로 다가온 선배들이 한마디씩 했다.

마치 놀리는 것 같다.

이온이 항변했다.

“이 정도면 거의 안 찌그러진 거죠. 뭘 통째로 갈아요?”

“액션이 잘 나와야지. 본넷 찌그러지게 문제냐?”

“사촌오빠한테 사정사정해서 빌려왔다는데. 어떻게 마음대로 몸을 날려요.”

상업영화나 드라마에서는 중고차를 사다가 도색을 새로 해서 찍고 다시 팔아버리거나 하지만, 저예산영화에서는 가족이나 친인척의 차를 빌려다가 찍을 수밖에 없다.

선배들도 잘 알고 있었다.

도리어 단편영화에서 이 정도 차사고 장면을 찍겠다고 나선 감독의 용기를 칭찬해야 했다.

“미연아, 모니터 해야지?”

“네. 오빠.”

어차피 여러 번 촬영하지도 못한다.

사전에 한 번에 끝내버리자고 합의를 보기도 했고.

“오케이!”

“진짜?”

“이것 이상 뭘 더 바래요.”

“한 번 만 더 해보자.”

미연은 이온과 사촌오빠 차를 번갈아 바라보며 망설였다.

이온의 건강이냐 빌려온 차가 파손되었을 때 보상해줄 것이냐.

이온은 잠자코 미연의 결정을 기다렸다.

“한 번 만......”

미연이 내키지 않는 듯 손가락 하나를 펴서 강조하고 또 강조했다.

“딱 한 번이에요.”

“알겠어.”

그럴 줄 알았다.

자신이라도 이런 기회를 놓치지 않을 것이다.

사촌오빠의 차가 망가지든 말든, 그것은 촬영이 끝난 후 고민할 부분이다.

일단 영화가 잘 나오는 것이 중요하다.

두 번째 테이크에서 이온은 좀 더 과감하게 스턴트를 했다.

다만 전면유리창이 깨지는 것만 극도로 조심했다.

보닛은 어차피 차주가 판금도색을 하든 교체를 하든 해야만 한다.

전면유리까지 깨먹으면, 그것까지는 피차 선수끼리 도리가 아닌 것 같았다.

‘힝. 이걸 어째.......’

앞 선 테이크보다 임팩트가 훨씬 컸다.

좋은 영상을 얻었으니 기뻐할 일이지만.

움푹 들어간 보닛을 보니 미연은 사촌오빠를 어떻게 달래야 할지 난감했다.

“피 좀 주세요.”

이온은 곧바로 후배들이 직접 만든 인공피를 머리에 뿌렸다.

그런 후 아스팔트 바닥에 떨어지는 장면을 촬영했다.

이런 교통사고 장면에서 빠지지 않는 커트가 있다.

바로 카메라가 차량 내부에서 촬영한 스턴트맨이 전면유리창에 부딪치며 금이 가는 장면이다.

유리창 깨지는 것은 생략했다.

어차피 빌려온 차량이라 실제로 전면유리를 깰 수가 없다.

대신 이온이 전면유리창에 부딪치는 모습은 약간의 트릭을 섞어서 촬영했다.

교통사고만 모두 여섯 커트다.

이온의 걸어가는 뒷모습이 잡힌 화면에서 불쑥 승용차가 튀어나오는 것.

반대 방향에서 이온을 향해 무섭게 달려오는 승용차.

이온이 승용차에 부딪쳐서 보닛 위로 떨어지는 모습을 옆에서 찍은 장면.

차량 안에서 화면을 덮치듯이 전면유리창에 이온이 부딪치는 장면.

다시 넓은 화면으로 이온이 보닛 위에서 바닥으로 굴러 떨어지는 모습.

마지막으로 얼굴에 피칠을 하고 아스팔트에 처박히는 이온의 얼굴 클로우즈업.

그렇게 구성되었다.

단편영화라서 현장 모니터가 없다.

당연히 현장편집이 있을 리가 없다.

대신 스마트폰이 현장편집 역할을 대신할 수가 있다.

이온은 형민이 메인 카메라 바로 옆에서 스마트폰으로 촬영한 소스를 가지고 앱을 이용하게 간단하게 편집을 해서 미연에게 보여줬다.

감만 보는 거라서 앵글이나 쇼트 길이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대강 이런 느낌이야.”

“좋네요. 이렇게 편집할 게요.”

미연은 이번 단편영화를 준비하면서 이 정도 퀄리티를 전혀 기대하지 않았다.

이온이 배우로 출연해준 것만 해도 감지덕지.

그런데 상당한 수준의 스턴트까지 영화에 담아줬다.

부산국제영화제 같은 큰 규모의 영화제에서 수상은 어려울지 모른다.

다만 미쟝센 등에서는 비벼볼만하지 않을까 하는 자신감이 마구 샘솟았다.

“오빠, 5~7분짜리 러닝타임 버전도 편집해서 모니터 시사 한 번 해봐야 할 것 같아요.”

“그래라.”

이온이 할 일은 모두 끝났다.

남은 것은 감독인 미연의 몫이다.

캐릭터와 연기 부분 그리고 액션 안무는 감독과 의논할 수 있겠지만, 편집까지 참견하는 것은 너무 나가는 거다.

그것이 후배들이 찍는 단편영화라고 할지라도.

“다들 수고했어.”

“오빠와 저분들 저녁은.......”

“미안한데. 오늘 저녁은 너희들끼리 먹어야겠다. 나는 선배들하고 어디 갈 데가 있어서.”

“그래도 저녁은 드시고 가셔야.”

“나중에 편집 다 끝나고 함께 모여서 시사볼 때 쫑파티 제대로 해. 그때 즈음 <활빈> 출연료가 들어올 것 같거든.”

“고마워요. 오빠.”

“너희들만 좋으라고 참여한 거 아냐. 나도 좋자고 참여 한 거지. 그리고 재밌었어. 나중에 너희 동아리에서 또 단편 찍으면 시나리오 한 번 줘봐. 작품이 나와도 맞고 스케줄 되면 출연 생각해볼게.”

“네!”

이온은 후배들에게 일일이 다가가 수고했다는 말을 건넸다.

그런 후, 선배들과 함께 촬영장을 떠났다.

자신들이 현장에 남아 있는 것은 민폐였다.

이온은 선배들 그리고 특효팀과 함께 사당동 먹자골목에서 저녁을 먹고 헤어졌다.

3주라는 시간 동안 일탈 아닌 일탈을 했다.

액션아카데미로 복귀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한국대학교 축제준비원회 학생이 이온을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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