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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배우-91화 (91/127)

〈 91화 〉 그래서 그 로즈버드가 뭔데?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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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온은 이번 한 주 동안 단역 배역 하나를 포기하는 대신에 단역 배역 하나를 얻었다.

둘 다 그때 가봐야 아는 거다.

계약서에 사인하기 전까지는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것이 이 바닥이다.

사인 직전까지 갔다가 다른 이가 치고 들어와 틀어지는 일이 종종 벌어지는 것이 캐스팅이다.

어쨌든 이온은 주말이지만 파주 액션아카데미에서 운동을 했다.

송관효 감독이 작업하는 드라마에서 액션연기를 하려면 충실히 몸을 만들어놔야 했다.

저녁이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서 이온을 맞이해준 이는 누나나 클로이가 아니라 친구들이었다.

“어디 봐봐.”

현관에서부터 이온을 맞이한 단비가 호들갑을 떨었다.

“뭘?”

“머리... 블루 컬러 어디 갔어?”

“원래 머리로 돌아온 지가 언젠데.....”

“야, 유명한 연예인 샵에서 염색했다며? 그걸 왜 원래로 돌려놨어?”

이온은 단비의 쫑알거림을 무시했다.

“웬일이야?”

“이런 날 안 보면 또 언제 봐. 세상 드라마는 혼자 다 찍냐?”

“그렇다고 모처럼 쉬는 날 쳐들어오는 건 아니지.”

“언니도 오라고 했거든.”

거실에는 떡하니 술상이 차려져 있었고, 친구들이 분주하게 주방을 오가며 각종 음식을 날랐다.

“누구 생일이야?”

영재는 물론이고 그의 여동생 영지까지 와 있었다.

“누구 때문에 제주도 여행이 물 건너갔잖아. 그래서 일산으로 여행왔다.”

윤다경이 툴툴거렸다.

“요즘 여행은 방콕해서 배달음식 시켜서 해?”

“방콕 여행이다 왜!”

거실 홈시어터에서 이미 종영된 <아이돌>이 방영되고 있었다.

이슬이 OTT 스트리밍을 틀어놓은 모양이다.

[만약에....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거나 다시 태어난다면.]

[태어난다면?]

[음악은 하지 않을 거야.]

[그 정도였어?]

[좋아서 시작한 일이고, 재능도 있다고 들었고, 집안의 전폭적인 지원도 있었지만, 감수해야 할 시간의 대가가 너무나 큰 것 같아.]

열심히 음식을 나르던 영지가 우두커니 멈춰 서서 드라마에 빠져 허우적거렸다.

“힝~ 어떻게 우리 현기.....”

영지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드라마를 보던 다경이 입을 열었다.

“불쌍하다. 그치?”

“주인공이 성공 못하는 드라마는 처음인 것 같지 않아 언니?”

어느새 단비와 수정도 대화에 참여했다.

“다시 태어난다면 음악은 하지 않을 거래. 개단호하지 않냐? 저러면 시즌2 안 나온다는 거나 마찬가지잖아.”

수정의 말에 대답하려던 단비가 손을 씻고 나온 이온을 붙잡았다.

“뭐 좀 아는 거 없어?”

“몰라.”

“종방연 때 무슨 말 없었어?”

“그런 특급 비밀을 나 같은 단역한테 말해줄 거라고 생각하냐?”

“넌 송하나 작가 낙하산이었잖아?”

“꽂아 준 건 꽂아 준 건데, 낙하산도 안 주고 꽂아 주더라.”

“킥. 그게 뭐야?”

“이미지단역으로 뽑아놓고 아주 제대로 뽕을 뽑아 드셨단 말씀.”

“송하나 작가에 대해 그렇게 말하는 거 너 밖에 없을 걸?”

“너만 입조심하면 아무도 모를 것 같아.”

“아씨... 누구는 친구 따라 강남 갔다가 박씨 물고 왔는데, 난 뭐람.”

별안간 단비가 심통을 부렸다.

옆에서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수정이 참견했다.

“그 박씨를 니가 키워서 나중에 홀랑 까잡숴.”

“오~ 그거 굿 아이디어. 이온아 네 박씨를 내게 줘.”

이온은 무시했다.

“이온아~ 강남에서 가져 온 박씨를 내가 품을 수 있게 함께 방을 잡아서..... 흐흐흐.”

“이게 처돌았나. 누나가 부엌으로 가는 거 안 보이냐? 최근에 홈쇼핑으로 주방용품 풀 체인지 했어. 그 중에 부엌칼 장인께서 손수 두드려 만든 칼도 있거든.”

여사친들이 일제히 주방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단비야~ 형제끼리 그러는 거 아냐. 알았지?”

“흥. 이온이 내 스타일도 아니네요. 내가 외모가 빠져 몸매가 빠져 우리 엄마아빠가 무능하길 해. 차키 세 개 혼수품으로 준비할 수 있는 몸이네요.”

“넌 머리가 나쁘잖아.”

“아빠가 머리 좋으면 됐지. 엄마는 좀 딸려도 돼.”

“죽고 잡냐? 이온이는 아니다.”

단비가 쑥 하고 혀를 내밀었다.

물론 이슬이 볼 수 없도록 등을 돌리고서.

[너만 그러는 거 아냐. 우리 트레이너들도 고민이 많아. 재능이 없어 보이는 학생을 빨리 놔 주면 다른 일을 찾을 텐데 싶은 마음과 조금만 더 열심히 하면 내일이라도 확 바뀔 것만 같은 기대감 사이에서 얼마나 갈등하는데.]

[그래도 트레이너샘은 전문가잖아. 정직해야죠.]

[학생의 꿈에 트레이너가 간섭할 자격은 없어. 기적처럼 잘되는 경우가 없으리란 보장도 없으니까 누군가의 삶이 품고 있는 어떤 가능성을 함부로 재단할 수 없잖아.]

[결국 선택을 오롯이 학생 본인에게 넘기는... 책임 회피 아닌가요?]

[물론 안 되는 친구들이 분명히 있어. 사실 형편없는 실력으로 데뷔하고 결국 유명해지는 아이들도 많이 봤어. 그래서 안 되는 애들 보면 운이 안 따랐다고 생각할 때가 있지. 그러다 보면 내가 조금만 더 잘 가르쳐주면 바뀔 수 있다는 기대를 갖게 돼. 가망 없어보여도 진짜 하고 싶다고 하면 그 학생의 인생이 달려 있는데 어떻게 쉽게 그만 두라고 하겠어.]

단비가 맥주를 벌컥벌컥 마시고 입을 열었다.

“송하나 작가는 미친 것 같아. 수백만 아이돌 지망생하고 트레이너들이라면 다들 공감하는 이야기일 거야. 저 이야기는.”

예고진학을 꿈꾸는 중학생 보컬 레슨을 하는 단비 역시 공감하는 바였다.

이슬이 밥상을 팡팡 두드렸다.

“리액션 하지 마. 드라마 보는데 방해되잖아.”

“언니! 같이 모여서 드라마 보는 재미가 이런 건데 리액션을 하지 말라니.”

“맞아.”

“내가 할 말을!”

수정, 다경, 단비가 차례로 이슬에게 반발했다.

“모두 입 다물어! 우리 이온이 나온다!”

극중에서 크리스티안이 부모님과 통화하며 훌쩍이는 장면, 합숙소를 뛰쳐나와 방황하다가 불쌍한 몰골로 주인공을 찾아가는 장면, 옥탑방에서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는 장면 등이 플래시백(회상장면)으로 나왔다.

이온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편집이었다.

시즌2를 기대하라는 말과 크리스티안도 출연하게 될 거라고 송하나가 말한 이유를 알 수 있게 해준 단초가 된 장면이었다.

굳이 시즌1에서 마무리 될 캐릭터를 막판에 회상씬까지 몽타주로 넣어줄 하등의 이유가 없으니까.

“언니 울어?”

“울긴 누가 울어....”

동생들 앞에서 주책이라 이슬이 단박에 잡아뗐다.

“눈시울이 불거졌구만.”

“눈을 세게 비벼서 그래. 이온아~”

이슬이 얼른 화제를 돌렸다.

“응?”

“남미 나라마다 스페인어가 다르다며? 제대로 감수 받아서 한 거야?”

“아르헨티나 사람들이 쓰는 스페인어는 생각 없이 들으면 이탈리어 듣는 것 같아. 원래 스페인 애들이 말이 빠른데, 아르헨티나 애들은 진짜 정신 안 차리고 들으면 말이 후딱 지나가. 그래서 현지 친구들에게 악센트와 단어 하나하나 다 물어봤어.”

“스페인어 차이가 많이 나?”

“개인적인 느낌으로는 멕시코가 제일 발음이 좋아. 콜롬비아는 노래 같이 들린달까 아름답고, 페루는 뱃사람 말하듯이 투박한 느낌, 쿠바는 솔직히 잘 안 들려. 진짜 스페인어 쓰는 사람들이 맞나 싶을 정도로. 일본애가 영어를 스페인어 악센트로 씨부리는 것 같아.”

“그렇구나.”

이온의 설명은 뒷전이었다.

다들 드라마에 흠뻑 빠져있었다.

민망해진 이온이 자신의 휴대폰을 찾았다.

메시지가 와 있었다.

송관효 무술감독이었다.

[월요일 오후 5시. 용인대장금파크. 홍길동 더블. 준비 단디 하고 와라.]

원래는 오일 후에 홍길동전을 현재적으로 해석한 드라마 <활빈>의 몹씬에 출연이 예정되어 있었다.

그런데 무술감독인 송관효가 이틀 먼저 호출했다.

그것도 주인공의 스턴트 대역으로.

“좋은 일이라도 있어? 뭔데?”

단비가 물었다.

“촬영 나오래.”

“무슨 촬영?”

“<활빈>. 송관효 감독님이 적업하시는 거야.”

“스턴트하러 가는 거야?”

“응.”

“연기를 해야지 무슨 스턴트를 해?”

“연기하려고 하잖아. 액션연기.”

“앞으로 꽃길만 걸을지도 몰라 이온아~ 넌 송하나가 키운 배우잖아.”

“그 양반이 나 키운 적 없는데?”

이온이 이슬을 돌아봤다.

“누나가 키웠어.”

“매니지먼트 회사에서 입질 많이 올 텐데?”

“찍혀서 어떻게 될지 몰라.”

“왜 찍혀?”

“내가 배짱을 좀 부렸었거든.”

“홍성욱 캐디님 회사나 신지균 선생님 소속사는?”

“회사에 소속되면 스턴트를 못하잖아.”

“왜 못해?”

“소속사에서 못하게 하지 않겠냐?”

“아휴. 이 답답이.”

“단비야, 우리 이온이 흔들지 마.”

이슬이 조용히 경고를 날렸다.

“학교 졸업하면 니가 우리 이온이 술 먹이고 덮쳐도 뭐라 안 해. 그 전까지는 이상한 바람 넣지 마.”

“이온이가 술도 안마시겠지만, 덮치려고 들면 날 540도 발차기로 뻥 차버릴 걸.”

킥킥킥.

호호호.

친구들과 영지가 일제히 웃음을 터트렸다.

“단비 네가 나보다 연기 선배라서 더 잘 알겠지만, 좋은 연기는 여유에서 나오는 것 같더라. 서두르지 않으려고.”

“모든 배우가 다 아는 이야기야. 근데 현실은?”

“수입에 맞는 삶을 살 것인가, 지출에 맞는 삶을 살 것인가. 그것이 문제지.”

영재가 툭 하고 말을 뱉었다.

“자본주의 노예 같으니라구.”

“무식한 놈. MZ세대의 가치관이라고 해 줄래.”

“꺼져. 범생이!”

영지가 티격태격하는 오빠 사이로 불쑥 손을 넣었다.

주의를 돌리려는 행동이었다.

의도한대로 두 오빠의 시선이 영지에게 향했다.

“이온 오빠, 근데 1부에서 죽은 그 사람은 도대체 왜 죽은 거야?”

송하나 작가는 드라마가 끝날 때까지 그와 관련해 확실한 답을 주지 않는다.

슈퍼스타의 자살은 시스템의 문제일 수도 있고.

혹은 연예산업이 가진 태생적인 모순 때문일 수도 있다.

“맥거핀 아니었을까?”

“궁금하게 만들어주고 아무 것도 안 알려주고 끝나는 거? 시즌2 떡밥이야?”

맥거핀(MacGuffin)은 영화 등의 줄거리에서 중요하지 않은 것을 마치 중요한 것처럼 위장해서 관객의 주의를 끄는 일종의 트릭이다.

떡밥은 일종의 낚시성 설정 혹은 확장해서 복선의 의미까지 가진다.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송하나 작가가 잘난척을 좀 한 것 같아.”

“무슨 잘난척?”

다경이 관심을 보였다.

“혹시 <시민 케인>이라는 영화 본 사람 있어?”

단비가 번쩍 손을 들었다.

배우를 꿈꿨으니 명작 중에 명작을 안 봤을 리 없다.

1941년 개봉한 오손 웰즈의 영화 <시민 케인>은 영화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작품으로 손꼽힌다.

플로리다 대저택에서 은둔 생활 중이던 70세의 미국 언론 재벌 케인이 죽었다는 부고가 전해지고, 그가 죽기 전 남긴 말 ‘로즈버드’(Rosebud: 장미꽃 봉오리)가 무엇을 가리키는 말인지에 대해 의문을 가진 기자가 추적하는 과정을 그린 영화다.

이온은 친구들에게 <시민 케인>의 대략적인 줄거리를 들려줬다.

“그래서 그 로즈버드가 뭔데?”

“어릴 때 어머니의 곁을 떠나면서 가져온 썰매. 혹은 유리구슬 속의 시골집.”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 거야?”

“부와 권력을 모두 가졌던 케인은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결혼생활도 실패하고 사업도 어려워지면서 갈수록 난폭해져. 자연스럽게 주변에 아무도 남지 않게 되면서 말년에 쓸쓸한 죽음을 맞이하지. 언론재벌로서 큰 성공을 거줬지만, 사랑을 받지 못한 불쌍한 남자였던 거야. 케인이 죽어가면서 말한 단어 바로 로즈버드는 엄마의 이름도 사랑했던 연인의 이름도 친구의 이름도 아닌 어린 시절 타고 놀았던 썰매에 붙인 이름이었어. 케인이 진정으로 원했던 것 돌이킬 수도 없고 가질 수 없는 유년시절의 추억이었던 거지. 우리 모두가 잊고 있는 혹은 놓치고 있는 무언가가 로즈버드가 되겠지.”

“그게 스타가 자살하는 것과 무슨 상관인데.”

“한국의 연예산업이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 처음 케이팝이 태동할 때 순수한 열정과 도전정신이 어땠는지. 욕망에 청춘을 망가뜨린 스타 지망생들의 부질없음. 뭐 그런 질문을 던지고 싶어 하지 않았을까 싶네...”

“무슨 드라마에 그런 거창한 주제의식이...?”

수정이 못 믿겠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영재가 말을 받았다.

“아 자식은 배우를 하겠다면서 드라마 주제 분석까지 하고 있어.”

“연기의 기본은 대본 분석부터야. 알지도 못하면서.”

“그래서 시청자가 알아서 생각하라는 거야?”

“영지 너만의 로즈버드는 뭐야?”

“우웩. 그 표정 뭐야! 내가 싫어하는 모 교수님이 생각나 버렸어.”

하하.

이온이 웃으면서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그리고 냉장고에서 맥주를 가져와 누나의 빈 컵을 채워주었다.

‘로즈버드.... 그 잃어버린 한 조각...’

그 한 조각은 욕망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모든 걸 손에 넣은 괴물의 모습이 아니라 케인의 때묻지 않고 순수했던 유년시절일 것이다.

또한 말년의 외롭고 쓸쓸한 죽음을 맞이하면서 깨달은 인생의 허상이다.

우리는 무언가를 성취하기 위해 매일 치열하게 살아간다.

과연 그런 삶이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일까.

우리는 케인의 로즈버드처럼 뭔가 중요한 가치를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다시 처음부터 재생해봐.”

잠시 샛길로 빠졌다가 모두가 다시 드라마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모두가 눈을 부릅뜨고 <아이돌> 마지막회를 보고 또 보고 다시 봤다.

비록 이온이 연기한 크리스티안은 많이 등장하지 않았지만.

혹시 시즌2에 크리스티안이 등장할지도 모를 어떤 단서라도 있지 않을까.

모두가 집중해서 드라마를 시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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