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3화 〉 우리 자주 좀 보자구!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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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하나가 정상이 아니라는 건 이 바닥에서 알만 한 사람은 다 안다.
비록 미친년 혹은 요물이라 불리지만, 의심의 여지없는 탑클래스 작가다.
게다가 배우 발굴 능력까지 출중하다.
그런 송하나가 찍은 배우라면, 뭔가 있는 거다.
또한 배우의 연기 스승이라는 별명을 가진 신지균은 또 어떤가.
제 아무리 대형기획사 소속이고 스타성이 충분한 젊은 배우라고 해도 자신이 판단하기에 싹수가 없다고 여기면 연기 지도가 되었든 캐릭터 분석이 되었든 멘탈 케어가 되었든 단칼에 거절하는 것으로 유명한 인간이다.
그가 대형 매니지먼트의 눈치를 보지 않고 신인들 연기지도를 거절 할 수 있는 이유는 그의 손을 탄 배우들 대부분이 어느 순간 연기 잠재력이 대폭발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아쉬운 것은 매니지먼트와 배우 본인이라는 말이다.
“스턴트맨이라며?”
“액션아카데미 출신 배우가 한 둘은 아니잖아요.”
“많긴 하지만, A리스트에 드는 배우는 두 명 밖에 없지.”
“인맥이 재밌어요.”
“어떤데?”
“신지균 배우님께 연기 배우는 것도 그렇고. 씬스틸러 모임 배우들과 두루두루 친하더라고요. 게다가 저희 회사와 메가뮤직의 합작회사 아시죠?”
“빌리브미?”
“거기서 데뷔한 하이픈이란 보이그룹이 있어요. 요즘 그 그룹이 잘 나가거든요. 거기 메인 댄서가 친한 후배라고 하네요.”
“하이픈에 한국대 다는 애 없지 않나? 아니 멤버 중에 대학 다니는 애가 있었나?”
“군대 후임이라고 들었던 것 같아요.”
BS E&M 음악 사업은 양미현의 업무 범위 밖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룹 내 엔터테인먼트 사업의 동향에게 깜깜하지 않았다.
드라마 <아이돌> 홍보총괄을 맡게 될 때부터 주요 배우들을 리서치하고, 마케팅에 동원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궁리했다.
그 가운데 조단연급에서 찾은 인물이 오찬기와 이온이었다.
이온에 대한 대략적인 정보가 필요했다.
정보 수집 방법은 매우 쉽다.
<아이돌>에 참여하는 무술팀, 액션아카데미 무술감독들에게 물어보면 되었으니까.
“차기자!”
임성한 기자의 부름에 앞좌석에 앉아 있던 여기자가 고개를 돌렸다.
“예?”
“빌리브미에 대해 잘 알지?”
“그럭저럭.......”
“혹시 하이픈의 메인 댄서가 누군지 알아?”
“아일랜드요.”
“걔 군대 갔다왔어?”
“공군 군악대였을 걸요?”
“몇 살인데 아이돌이 벌써 군대를 다녀와....?”
“경연프로 본선 떨어지고 방황하다가 충동적으로 군대 지원했다나......? 군대에서도 계속 춤 췄다고 했어요.”
“알았어. 고마워.”
“땟감이라도 있어요?”
“내가 아이돌이 약하잖아. 갑자기 생각나서 물어봤어.”
임성한이 양미현에게 가까이 다가오라는 손짓을 했다.
“회식 어디서 해?”
“.......”
“카메라도 녹음기도....”
“어차피 스마트폰으로 다 되잖아요.”
기자를 부르는 파티가 있고, 부르지 않는 파티가 따로 있다.
오늘 회식은 배우들 스케줄 때문에 가볍게 저녁만 먹고 헤어질 예정이다.
“기사 송고 하셔야 되잖아요.”
“넘겼어.”
한 때 기레기였고, 현재도 기레기라고 불려도 할 말이 없는 기자가 임성한이다.
그나마 최소한의 상도의와 타협이 가능한 기레기라고 할까.
“구석탱이에서 저기 한국대하고 망한 아이돌 데리고 사부작사부작 미니 인터뷰 할 게. VIP 근처는 얼씬도 안 해. 약속!”
“이번 달에는 주인공 위주로 홍보하고 드라마 화제성만 부각되어야 해요.”
“알아, 알아! 내가 누구야? 내가 그걸 모르나?”
“......”
“또 알아? 필요할 때가 올지...... 순발력 있게 방송 내보내려면 미리미리 침 발라놔야지.”
양미현은 회식 장소를 알려줄 수밖에 없었다.
괜히 임성한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었다가 공중파 연예정보프로그램에서 제작발표회가 시시하게 소개되면 안 되니까.
✻ ✻ ✻
기어코 저녁식사 자리에 임성한이 찾아왔다.
양미현과 약속한 대로 작가와 PD, 제작사 대표 등 높으신 양반들과 주조연 배우들이 있는 테이블 쪽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다.
이온과 찬기가 식사하는 테이블에 일부러 자리를 잡았다.
한동안 찬기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던 임성한이 이온을 향해 입을 열었다.
“SNS를 안 한다고요? 하다 끊은 게 아니고?”
“안 만들었습니다.”
“왜 요?”
“학창시절에는 공부하고 운동하느라 대학에 와서도 공부하고 트릭킹에 빠져서. SNS 할 시간도 관심도 없었습니다.”
“요즘 세상에 SNS도 없이 젊은 친구가 어떻게 살아?”
임성한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물었다.
듣기 싫은 어법이다.
반말도 아니고 존댓말도 아닌 어중간한 말투.
“아무 문제없었습니다. 외국에서 사귄 친구들하고 메신저나 이메일 또 화상통화로 대화할 수 있고.”
“외국 친구? 유학도 다녀왔어?”
“간난아기때 희귀병 치료 때문에 샌프란시스코에 머문 적이 있습니다. 그때 많은 분들께 보살핌을 받았고 지금까지 인연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희귀병 뭔데요?”
이온은 시시콜콜 이런 이야기까지 해야 하나 싶었다.
어차피 알려질 사실이다.
나중에 다른 식으로 잘못 전해지지 않도록 여러 사람이 듣는 곳에서 말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세가와병입니다.”
“뇌성마비 아니었나?”
“다릅니다.”
“하긴 어릴 때 뇌성마비를 앓았다면 지금 그 모습을 하고 있지 않겠지.”
“그때 인연을 맺은 분들과 북미와 중남미로 봉사를 다녔습니다. 액션배우를 하면서 봉사를 못하고 있지만 전에는 방학 때마다 아메리카 대륙에서 봉사활동을 했습니다.”
“어려서 외국에서 살아서 외국어를 잘하는 거구나?”
“아무래도 외국사람들 사이에 둘러싸여 있다 보니 외국어에 대한 어색함이나 두려움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나이온 배우가 올해 몇 살이라고요?”
“한국 나이로 스물여섯입니다.”
“어린 나이에 참 버라이어티한 삶을 살았네.”
임성한은 <아이돌> 회식 자리에 잘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예인으로 아주 좋은 원석을 만났다.
이렇듯 인생의 스토리가 있는 어린 신인, 요즘 찾기 힘들다.
뻔한 학창시절, 뻔한 연기수업 코스, 뻔한 데뷔, 뻔한 인지도 쌓는 패턴이 대부분이다.
‘연예부 기자로서 양념치기 딱 좋은 땟감이지.’
한국대 출신 연기자.
이젠 흔해 빠졌다.
스턴트맨 출신으로 정극 연기에 도전하는 신인배우.
시시하다.
친구 따라 오디션 봤다가 어쩌다 배우가 된 케이스.
이건 요즘 뜸한 패턴이다.
교포도 아닌데 4개 국어를 구사하는 언어능력자.
약간 흥미가 생긴다.
어린 시절 희귀유전병을 앓았다.
꽤 흥미가 생긴다.
희귀병을 극복하고 정상적인 생활을 하는 것도 모자라 한국대에 입학했다.
사회면까지 커버할 수 있는 스토리다.
불쌍하게 태어나서 불우한 어린 시절을 거쳤지만, 어엿한 배우가 됐다.
어릴 때부터 해외봉사활동을 다녔단다.
그런 녀석이 학폭이나 불미스런 사건에 휘말렸을 리가 없다.
무조건 인터뷰를 해 둘 필요가 있다.
만약 이 신인 배우가 탑스타가 된다면 시리즈로 기사를 내보낼 수 있다.
자신은 누구보다 먼저 단독이나 심층 기사를 내보낼 수가 있다.
자신의 기자수첩 신인배우 리스트 탑에 올려놓을 만한 녀석을 오랜만에 만난 것이다.
“나배우, 술 좀 해요?”
“제가 체질적으로 술이 안 받습니다.”
“취미는 뭐에요?”
“트릭킹이랑 비보이....... 신지균 선생님 따라서 낚시도 가고 등산도 가고 그러고 있습니다.”
“골프는?”
“배울 시간도 없고 돈도 없습니다.”
“건전하게 배우와 기자가 허심탄회하게 속에 있는 이야기 털어놓는데 골프만큼 좋은 것도 없어요. 김영란법만 잘 지키면.”
“......네.”
“회사는?”
“제가 매니지먼트 회사들에게 찍혔습니다.”
“왜?”
“컨택 들어왔을 때 조건을 걸었더니....”
“무슨 조건?”
“성형 금지와 작품 선택권을 제가 결정하겠다고.”
하하하.
임성한이 배꼽이 빠져라 웃어재꼈다.
온갖 잡놈들이 판치는 세계가 딴따란 판이다.
을 중에 을인 배우 지망생 나부랭이는 눈 뜨고 코 베이기 십상이다.
영입하겠다는 매니지먼트 회사에 조건을 걸 배포를 가진 지망생은 정말 흔치 않다.
“나배우처럼 똑똑한 친구가 뭘 모르고 조건을 걸었을 리는 없고. 사기꾼들 걸러내려고 했나?”
“당시에는 평생 액션배우로 살아갈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송하나 작가님 작품에서 좋은 캐릭터를 연기하게 될지 몰랐습니다.”
“액션아카데미 선배들이 길잡이를 잘 해준 모양이군. 요즘 이미지 단역이나 단역 뽑는다고 광고해서는 지원자들에게 합격했다면서 소속비나 트레이닝 비용 요구하는 보조출연 업체들이 난립하고 있어요. 정말 그런 업체들 조심해야 돼. 잘 한 거야.”
“.......”
“믿을 만한 회사 소개시켜 줄까요?”
“신지균 선생님 소속사나 개인적으로 친분을 이어가고 있는 캐디님이 계시긴 합니다.”
임성한 입장에서 더 나가면 오지랖이다.
“<아이돌>이 첫 작품?”
“여기저기 무술팀으로 참여했습니다. 다음 주 개봉하는 <지옥의 악인들>에서 단역으로 한 씬 나올 예정입니다.”
이온은 관계자들을 위한 기술시사를 보지 못했다.
다만 송관효 선배의 말에 의하면 편집에서 잘리지 않고 이온 출연분이 고스란히 영화에 담겼다고 했다.
“영화는 많이 했겠네요? 한국영화 액션은 거의 액션아카데미 출신들이 다 해먹으니까.”
“제가 동안이라서 주로 십대 캐릭터 대역을 했습니다.”
“영화와 드라마가 차이가 많죠?”
“그런 것 같습니다.”
임성한 기자는 이온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본인이 참여한 작품에 대한 이해도가 굉장히 높다는 생각을 했다.
단순한 이미지단역일 뿐이라도 캐릭터에 많은 애정을 가졌고, 연기에 ‘진심’이 느껴졌다.
“어떤 배우가 되고 싶어요?”
“모르겠습니다. 다만 배우로서 제가 어떤 얼굴을 만들지 궁금합니다. 아마 작품을 해나가면서 나중에는 여러 가지 역할이 쌓인 얼굴이 되지 않을까요? 제가 연기한 배역들이 훗날 제 얼굴을 만들 것 같은데.... 그때가 기대됩니다.”
어린 친구가 할 말은 아니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숙성되고 농익은 배우가 삶과 연기에 완전 눈을 뜬 후 하게 될 말이 아닌가.
‘오랜만에 똑똑한 배우와 대화를 나눠본 것 같네.’
배우의 똑똑함은 지식이나 교양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
인생 가치관이나 고민 그리고 연기예술에 대한 질문을 가지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자신이 연기한 배역들이 훗날 나의 얼굴을 만들 것 같다니, 멋지군.’
임성한은 재미삼아 참석한 회식자리에서 오랜만에 재밌는 인터뷰를 했다.
매번 틀에 박힌 질문과 대답만 기사화하고 있었다.
스토커처럼 SNS만 하루 종일 들여다보고 앉아 있다가 아무 쓸모도 없는 스타의 사진이나 글을 퍼다가 기사화하는 게 연예부 기자가 할 일인가.
아니다.
자신이 말진 기자 시절에는 안 그랬다.
“나배우, 우리 자주 좀 보자구.”
“일을 많이 해야 자주 뵐 수 있겠죠. 잘 부탁드립니다.”
“부디 내가 부탁을 많이 할 수 있게 톱스타가 되길 바래.”
“열심히 하겠습니다.“
이온은 연예계 생활 처음으로 아군인지 적군인지 알 수 없는 기자와 인연을 맺었다.
좋은 인연으로 상부상조하는 관계가 될지.
혹은 앙숙처럼 나쁜 관계로 발전할지는 알 수 없다.
어쨌든 배우와 연예부 기자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
이온으로써는 최대한 우호적인 기자를 많이 만들어 놓을 필요가 있다.
한편 임성한 입장에서는 매번 인터뷰에서 명언(?)을 남기는 배우와 인연을 맺게 된 역사적인 날로 기억된다.
✻ ✻ ✻
이온은 간신히 교수들과 약속한 출석일수를 채울 수 있었고, 기말고사 역시 단 한과목만 리포트로 대체했다.
열심히 시험에 대비했다고 해도 좋은 학점은 기대할 수 없었다.
대부분의 학생은 B-의 성적을 받으면 교수를 찾아가 C로 바꿔 줄 것을 부탁한다.
C부터 재수강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온은 낙제만 아니면 되기 때문에 비교적 마음이 홀가분했다.
마침내 드라마 <아이돌>의 첫 방송이 나갔다.
시기상으로 겨울방학을 맞이해서 방영이 시작되면서 주 타깃층인 학생층들을 끌어모으기에 좋은 시기에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첫 주 방송은 전국 7.0%, 최고 9.1%를 기록하며 일단 화제성에 걸맞은 반응을 확인했다.
또한 Vnet 타깃 시청층인 2049 시청률은 평균 6.5%, 최고 9.8%를 기록, 케이블+종편 동시간대 1위에 올랐다.
모든 연령층을 타깃으로 하는 드라마가 아닌 것치고는 상당히 순조로운 출발이라고 할 수 있었다.
10%를 넘지 못하는 시청률로 인해 우려하는 이들도 많았다.
어쩔 수 없다.
청춘드라마의 주 시청자층인 20~30대는 더는 TV로 드라마를 보지 않는다.
OTT로 소비하는 경우가 많다.
작년부터 올해 사이에 방영한 청춘드라마들이 방영 후반까지 시청률이 6~8%대(닐슨코리아)에서 좀처럼 치고 올라오지 못했던 것과 비교하면 최고 9.1% 시청률은 아주 좋은 출발이라고 할 수 있다.
시청률뿐만 아니라, 다른 지표에서는 화제성이 대단히 좋았다.
드라마 화제성 주간순위에서는 지상파 미니시리즈와 함께 1,2위를 다퉜다.
뉴스 기사도 넘쳐났고, 관련 언급도 포털과 SNS 상에서 상당했기 때문에 그러한 화제성이 어느 정도 시청률로 이어졌던 것으로 분석됐다.
[송하나 작가의 신작 <아이돌>이 드디어 베일을 벗었다. 최근 청춘극의 특징은 좀처럼 안 풀리는 환경에서도 주관과 당당함을 잃지 않는 청춘을 묘사하는 게 특징이다. <아이돌>도 그런 방향성을 따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아이돌>의 첫 시작은 슈퍼스타의 자살을 보여준다. 어딘지 의미심장해 보인다. 송하나 작가는 아이돌 지망생이 꿈을 이루지 못하더라도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여정에 집중하는 한편 라이벌을 인정하는 등 요즘 청춘들의 ‘쿨함’을 강조하는 동시에 시스템의 문제까지도 건드릴 야망을 드러낸다. KPOP은 전 세계 마이너 음악장르 중에서 가장 ‘핫‘하며 감히 주류로 나아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이돌>은 그런 KPOP의 본산 내부 시스템과 현실에 현미경을 들이대려고 한다. 첫 장면에서 보여준 충격적인 슈퍼스타의 자살이 암시하는 것처럼 단순히 청춘의 사랑과 열정, 쿨함이 다가 아닌 드라마가 될 것 같다. 과연 송하나의 <아이돌>은 젊은 시청자들로부터 폭넓은 공감을 얻어내면서 작품성, 재미, 시청률 그리고 거의 사실에 가까울 정도의 현실반영이라는 네 마리 토끼를 모두 잡으면서 청춘드라마의 새로운 지평을 열 수 있을까. 청춘드라마는 늘 폭발적인 시청률을 기록하진 않았다. 기성세대 관점에서 청년들의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는 제작 구조라 청년층이 몰입하기에 상대적으로 수월하지 않기 때문이다.]
- MBS 임성한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