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3화 〉 뭐야 이 웅장한 스케일은! (4)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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핫!
이온이 상단 막기에 이어 흘리는 동작을 펼쳤다.
헌데 당장 일재의 호통이 터져 나왔다.
“멋 부리지마!”
이온이 얼른 자세를 고쳐 잡았다.
툭.
툭툭.
표일재가 가검으로 이온의 팔꿈치, 어깨, 허리 등을 가볍게 쳤다.
그 부위를 잘 이용하라는 의미다.
촬영을 코앞에 둔 상황이다.
때문에 목검이나 목도 대신 가검을 사용해 실전을 방불케 하는 훈련을 하고 있었다.
참고로 날이 서있지 않더라도 진검과 똑같이 만들어진 특수강 가검의 경우 1Kg이 넘어가면 도검 소지 허가가 있어야 한다.
영화 소품용 가검은 대략 900g 정도 된다.
액션아카데미에서 훈련용으로 사용하는 가검은 알루미늄으로 만들어진 비교적 저렴한 제품이기 때문에 험하게 다루면 금방 망가졌다.
“내가 하는 거 봐봐.”
표일재가 시범을 보이며 자세에 대해 다시 한 번 설명했다.
“방어는 무조건 안에서 바깥으로! 칼끝이 먼저 튀어나오면 반응 타이밍이 늦어질 수밖에 없어. 특히 뒤돌아 막기는 칼끝을 들어 올리면서 나오면 절대 안 돼! 동시에 나오란 말이야!”
“네!”
“다시!”
이온이 기합과 함께 일재를 향해 목검을 찔렀다.
찌른 후 막고 다시 사선베기, 일재가 뒷걸음질 치면 따라 붙으며 상단매려치기를 퍼부었다.
“처지잖아. 칼 뿌리지마. 칼을 쓸 때는 절도가 있어야 돼.”
“네!”
“진짜 상대를 죽이겠다는 각오를 보이는 것은 좋지만, 우리가 하는 것은 실전이 아니야. 얼마나 실감나고 처절한지...... 그거야. 딴 거 다 필요 없어!”
“예.”
일재가 훈련을 마무리했다.
“합천 내려가야 하니까 오늘은 이 정도만 하자.”
이온이 아쉬운 듯 쉽게 가검을 반납하지 못했다.
“인마, 그 정도 준비했으면 충분해.”
“......”
“현장 가서 합이 바뀔 수도 있어.”
“......예.”
“권용찬 감독님도 할 때마다 아쉽고 후회되고 한다더라. 완벽하려고 하지 마. 스턴트에서 중요한 건 완벽이 아니라 안전이야 나와 파트너 또 현장에서 연기하는 모두의.”
“알겠어요.”
그제야 이온이 일재에서 가검을 건네받아 장비실에 반납했다.
“어떻게 할래?”
퇴근 준비를 하는데, 일재가 물었다.
“뭘요?”
“나는 오늘 현장에 내려갈 거야. 우일이도 같이. 생각 있으면 같이 가든가.”
“형 차로요?”
“응.”
“혹시 형민이형도 같이 내려가요?”
“응. 넌 다른 스케줄 있어?”
있을 리가 없다.
“옷이나 세면도구를 챙겨 와야 되는데..... 한 시간 정도 기다려 줄 수 있어요?”
“집이 일산이라며? 가는 길에 들렀다 가면 되지. 뭘 복잡하게 다시 여기로 와?”
“고마워요. 형!”
액션아카데미 스턴트맨들이 버스를 대절해서 지방까지 내려가는 경우는 없다.
보통은 각자 알아서 촬영현장으로 이동한다.
제작팀에서 따로 교통비도 준다.
게다가 이번 액션씬에 참여하는 일부 스턴트맨은 지방 어딘가에서 한창 촬영을 하고 있다.
한날한시에 정해진 장소로 모이기 쉽지 않다.
“......!”
일재의 SUV 안은 누가 스턴트맨 아니랄까봐 온갖 보호장구와 영화용 소품들이 한가득했다.
물론 축구공부터 야구장비와 낚시장비까지 있었다.
조폭들이 쓸법한 야구배트와 각목도 있다.
만약 검문이라도 받는다면 오해받기 십상이다.
“누나 나 출장 같다 올게.”
- 갑자기?
“뭘 갑자기야? 합천에 촬영간다고 했잖아.”
- 내일 아니었어?
“선배님들 하고 하루 일찍 내려가기로 했어.”
이슬은 잊고 있었다.
동생이 3박 4일 동안 지방에 내려간다는 것을.
해외에서 몇 달씩 체류하는 주제에 겨우 3박 4일 집을 떠나는 것쯤이라고 여길 수도 있다.
그것과 국내에서 외박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적어도 이슬에게는 그랬다.
- 무슨 암행어사 지방 감찰 떠나?
가을에 나온 듯 안 나온 듯 TV 드라마에 출연했지만, 최근에 부쩍 누나 눈치가 보였다.
전공 공부는 하지 않더라도 어학공부만은 열심히 해주길 바라는 누나.
그런 누나의 마음을 모른 척 할 수 없는 이온이다.
학원이나 인터넷 강의를 들을 시간은 없다.
따라서 꾀를 하나 냈다.
프랑스 영화와 스페인 영화를 자막 없이 보면서 회화실력도 다듬고, 영화 공부도 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노렸다.
물론 누나는 이온의 그런 깊고 심오한 계획을 인정하려 들지 않았지만.
“잘 다녀오라고 하면 안 되냐? 출전 하는 동생의 사기를 꼭 죽여 놔야 속이 시원하겠어?”
- 중동에 평화유지군으로 파병 가냐? 출전은 무슨!
“고구려의 용맹한 12번 병사로써 도적들로부터 백성을 무사히 구출해 오겠습니다!”
- 밥 잘 챙겨먹고. 모르는 사람이 주는 거 아무거나 넙죽넙죽 받아먹지 말고.
“됐어. 누나는 밥 잘 챙기고.”
- 남 걱정할......
“클로이 밥 잘 챙기라고. 나 없다고 굶기지 말고.”
뚝.
이온이 통화를 종료했다.
언젠가 누나가 했던 말을 그대로 돌려준 것에 의기양양해 하면서.
“클로이! 오빠 출장 간다. 집 잘 보고 있어~”
이온이 스포츠더블백을 어깨에 걸치고, 현관을 빠져나갔다.
기다리고 있어야 할 일재의 SUV가 아파트 주차장에서 보이질 않았다.
아파트 단지를 천천히 걸어 나오자, 분식집 앞에 서 있는 SUV가 보였다.
“저녁 먹고 가기로 한 거에요?”
“밥은 휴게소에서 먹어야지. 간단하게 김밥 몇 줄 샀다.”
“이온이는 무슨 김밥 좋아해?”
이번 촬영에서 형민과 합을 맞추기로 한 22기 우일 선배가 물었다.
겉으로는 호리호리한 체형이다.
헌데 근육이 예술인 선배다.
스턴트 외에 각종 근육 부분 대역도 틈틈이 하는 특이한 선배였다.
“날치알김밥...... 아닙니다. 아무 거다 다 좋습니다.”
“응. 그냥 천국김밥 처먹어.”
어차피 제일 싼 일반김밥을 살 것이면서 가끔 보면 꼭 물어볼 때가 있다.
이온은 우일이 건네는 한 줄의 김밥을 받아 들고 차에 올랐다.
“언제든 피곤하면 말하세요. 바꿔드릴게요.”
“운전은 공평하게 돌아가면서 하는 걸로 하자.”
“출~ 발!”
일재가 쾌활하게 차를 몰기 시작했다.
차가 달리기 시작하자, 우일 선배가 유행이 꽤 지난 걸그룹 노래를 틀었다.
노래보다는 퍼포먼스가 재밌는 곡이 흘러나왔다.
나름 중독성이 강해서 해외팬들도 좋아하는 노래다.
현재는 그룹이 해체되어 멤버들이 각자 연기와 예능에서 맹활약 중이다.
걸그룹 활동 당시에는 안티가 거의 없었는데, 그룹이 해체 된 후 개인활동을 하면서 부족한 연기력과 방송 태도 논란 등으로 안티가 꽤 생겼다.
“승연이 어때? 연기력 논란 때문에 많이 힘들어하지 않나?”
운전하던 일재가 조수석의 우일에게 물었다.
걸스카우트라는 여자아이돌 그룹 멤버였던 승연은 분에 맞지 않게 여자주인공을 꿰찼다는 악플과 함께 발연기 논란이 일었던 적이 있었다.
“형도 승연이랑 일해 봤어?”
“<수류견>에서 일했잖아. 승연이 대역을 민주가 했어.”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가장 미스터리한 사건인 개처럼 생긴 짐승의 한양 출몰 소동을 다룬 영화였는데, 대한민국 괴수영화를 완전히 끝장 낸 영화라는 오명을 쓴 영화였다.
“영화 안 하고 드라마 가서 잘되고 있지 아마.”
“드라마에서는 계속 찾는 거 보니까, 그쪽에서는 자리 잡았나 보네.”
“털털해서 좋아. 어린 녀석이 연예인병도 없고.”
앞자리의 선배들의 대화를 엿듣고 있던 형민이 참지 못하고 끼어들었다.
“실물도 예쁩니까?”
“누구, 승연이?”
“예.”
“맡는 배역 때문인지 몰라도 실물보다 화면빨이 잘 안 받는 애 중에 하나야. 실물은 진짜 예쁜데 화면에서 보여지는 건 그렇게 예쁘게 나오지는 않더라.”
“그래서 영화만 하던 여배우들이 TV 가면 처음에 스트레스 많이 받는다잖아.”
“그건 얼굴이 인공이라서 그래.”
“그런 말 현장에서 함부로 하지 마.”
“미쳤어. 우리끼리니까 하는 이야기지.”
낮말은 배우가 듣고 밤말은 매니저가 듣는다는 말이 있다.
스태프들 사이에서 입조심을 경고하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승연이는 한 동안 영화로 못 오겠지?”
“두 작품이 다 안 됐으니까. 녀석이 걸그룹 출신이라서 그런지 액션을 제법 잘 따라했어. 그 정도 따라오는 애도 별로 없는데.”
“잘하지. 승연이가 춤이 특기였나 그럴 걸. 은근히 독한 구석도 있고.”
선배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이온이 오승연이란 배우를 검색해 보았다.
처름에는 걸그룹 활동명이 아닌 실명이라 누군지 몰랐다.
사진을 보니 누군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연기로 전향하며 부침이 있긴 하지만, 나름 드라마에서는 연달아 여주인공을 따내고 있었다.
기획사 파워로 보긴 어렵다.
연기자 자체가 여자주인공으로 가치가 있기 때문에 캐스팅이 되는 것으로 봐야 맞는 것 같다.
이온은 계속해서 오승연 배우에 대해 검색했다.
선배들이 액션연기가 되는 여배우라는 평가를 했기 때문이다.
언젠가 현장에서 만날 수도 있기에.
“체리 맛 좋아~ 체리, 체리 예에~.”
운전하는 일재가 걸그룹 노래를 흥얼거렸다.
안타깝게도 그는 심각한 음치였다.
도저히 들어줄 수 없는.
하늘같은 선배가 자기 차에서 노래를 부르겠다는데 하지 말라고 할 수도 없고.
귀를 막을 수 없으면 잠이라도 청할 수밖에.
쿨쿨.
어느새 형민은 잠이 들었다.
사실 이온이니까 버티는 것이다.
형민이 이온처럼 운동을 했으면 탈이 나도 벌써 났다.
샤머니즘과 과학의 콜라보레이션 혜택을 받을 수가 없으니까.
암튼 목적지는 경상남도의 산청군.
합천에는 영상테마파크가 존재했는데, 1920년대에서 1980년대를 배경으로 특화된 시대물 야외오픈세트장이었다.
때문에 고구려 배경은 그곳에서 촬영할 수 없다.
이온이 액션배우 생활을 하면서 자주 가게 될 곳 중 한 곳이다.
중간에 휴게소를 다섯 번이나 들렀다.
야식도 먹고, 간식도 먹고.
휴게소 맛집 투어를 나온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이렇게 먹어도 다들 살이 안 찐다.
찔 틈이 없다고 하는 것이 정확하다.
다음 날 먹은 것의 몇 배를 운동으로 배출해버리니까.
암튼 장장 8시간을 달려 합천호수 인근의 숙소에 도착했다.
“술 한 잔 하게 내 방으로 와.”
“선배님들, 이온이는 술을 못 마셔요.”
곤란한 이온을 대신해 형민이 대신 말했다.
“맥주 한 잔도?”
“체질적으로 술이 잘 안 받습니다. 죄송합니다.”
“뭐가 죄송해. 술 못 마시는 게 죄냐? 이온이는 얼른 들어가서 씻고 먼저 자.”
형민은 자신의 짐을 방에 풀어놓고 냉큼 선배 방으로 넘어갔다.
이온은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그대로 잠자리에 들었다.
요상한 체질이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토끼발의 변덕이라고 해야 할지.
피로나 부상의 회복력은 잘도 도와주면서 술·담배·마약 같은 독성물질을 해독시켜주는 작용은 하지 못하는 모양이다.
마약은 실험해보지 않았지만.
왠지 그럴 것 같았다.
그렇다고 몸의 해독작용을 담당하는 간이 약하지도 않다.
토끼발의 행운이 일관성이 있는 것은 좋다.
다만 전천후 혹은 만능이 아닌 것은 아쉬운 부분이었다.
물론 복에 겨운 투정일 뿐이다.
✻ ✻ ✻
액션아카데미 스턴트맨 서른 명이 동원되는 정도라 촬영규모를 크게 생각하지 않았다.
이온의 오산이었다.
다음 날 오전 중으로 액션아카데미 스턴트맨들이 속속 도착하고, 액션아카데미를 나가 독립한 무술감독이 이끄는 팀들도 합류하기 시작했다.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주인공을 비롯해 조단역만 열 명이 넘었다.
보조출연자들이 탄 관광버스만 세 대에 달했다.
“저 중에 한 대는 서울에서 불렀을 거야.”
일재 선배는 귀띔했다.
서울에서 부른 보조출연자들은 나름 경력자들이란다.
주인공이나 스턴트맨들이 마상액션을 펼칠 경우, 경험이 없는 보조출연자들이 우왕좌왕하다가 말을 놀라 해 사고를 유발할 수도 있다.
따라서 복잡한 액션시퀀스를 찍을 때는 사극액션 시퀀스 촬영 경험이 많은 보조출연자를 서울에서 불러온다고 일재 선배가 설명했다.
보조출연자 인건비, 식대, 숙소비용 등 더 많은 예산이 들어가지만, 만일의 사고로 인해 주인공이 다친다거나 숙련되지 못한 인력들로 인해 촬영이 지연이라도 된다면 그것으로 발생하는 비용이 더 크기 때문에 대규모 전투씬을 촬영해야 할 경우 제작비를 아끼지 않는다고 한다.
“이온아, 이 분위기는 뭐냐?”
올림픽 예선과 국제대회 경험까지 있는 형민도 긴장이 되는 모양이다.
“그러게. 분명 대본과 영상콘티로 봤을 때는 이 정도로 큰 액션이 아니었는데......”
아직 경험하고 배워야 할 것이 많았다.
나중에 완성된 최종 장면을 본다면 더 놀랄 수도 있다.
영화나 드라마 작업은 현장에서 눈으로 보는 것이 다가 아니기 때문에.